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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물의 자흔을 쫓는다(완전판) 3권

신여리 지음가하에픽2016.05.17

판매정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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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가격 | : 5,300원 |
적 립 금 | : 0원 |
파일용량 | : 603 KByte |
이용환경 | : PC/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타블렛 |
독자평점 | : ![]() ![]() ![]() ![]() ![]() |
듣기기능 | : ![]() |
ISBN | : 979-11-300-064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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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이곳엔 등불조차도 없었다.
멀건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진 어둔 밤.
그 암흑 속엔
자신과 저 사내, 둘뿐이었다.
제르 시나와.
데바람의 총비였다는 신분을 숨기고 원수국으로 도망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냉혹한 땅의 영주가 된 그녀의 앞에 놓인 끊이지 않는 불신, 거듭된 절망
그리고 잘라낼 수 없는 인연.
상처를 온몸에 휘감은 채 살아남은 그녀의 새로운 삶이, 역사가 시작된다!
“네 진심은 모자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쳤으면 더 좋았을 터다.”
아주 조금의, 인간이 인간에게 기댈 수 있을 만큼의 동정심이 존재한다면.
“너는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는 너에 대해 알고 있어."
네가 나의 일생에 대해 안다면, 조금이라도 나를 헤아리려 했더라면…….
너만은 내게 그리 말해서는 안 되었다.
2. 작가 소개
신여리
은위, 돌시아니 등의 필명으로 웹소설 작가 활동 중.
누군가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은, 그러나 게으른 아가씨.
무더운 7월의 첫째날 태어난 게자리.
blog▶http://blog.naver.com/shinyeori
e-mail▶shinyeori@naver.com
kakaotalk▶shinyeori
▣ 출간작
물의 자흔을 쫓는다(구)
수라화
가시나무 우는 성 1부
바라연
▣ 출간 예정작
마리포사 mariposa
이매魑魅
미사
3. 차례
#열 번째 장 : 한비의 여정
#열한 번째 장 : 물가에 억새가 피면
#열두 번째 장 : 원추리 꽃이 고개를 든다
#열세 번째 장 : 탕아들의 공방전
4. 미리 보기
침대에 길게 누운 제르는 탁상 위에 쌓인 서신들을 바라보았다. 양이 제법 되었다. 그중 대부분은 알렉시스로부터 온 ‘연서’들이었다. 개인적인 서간이다 보니 아스난에게 맡기기도 저어되었고, 집무실에 두기에도 적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에 두자니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었다.
제르는 팔을 뻗어 손에 짚이는 서간 몇 통을 끌어왔다.
[아가씨, 요즘은 어찌 지내? 나는 다시 엘올라로 돌아왔어. 이제 완연한 여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구나. 네가 있는 퀸시오는 어때?]
[얼마 전 이한의 여왕 후보인 여자를 만났어. 이한이 네게 익숙한지는 모르겠다. 이한의 여자들도 몹시 드세. 그 여자를 보고 있으니 네 생각이 조금 더 나더라. 물론 평소에도 네 생각을 많이 하고 있으니까 염려 마. 몸 건강히…….]
[어떻게 답신 한 번 없어? 제르, 조금 서운해지려고 해. 나같이 잘난 남자를 놓치는 건 정말 큰 실수라니까. 그나저나 곧 선물을 보낼 거야…….]
[이번에 보낸 성의는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 다음번엔 남국에서 들어온 귀한 것들을 네게 보내줄 생각이야. 너는 요란하게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거 같지만 아마 너와 무척이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
전서구로부터 전해지는 편지는 별다를 것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녀의 거듭된 무시도 그에겐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녀석을 어쩌면 좋은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어 제르는 퀴네도사이로부터 건네받은 카르시타 왕실 서신을 걸러 들었다.
‘본 카르시타 왕실은 데바람의 내전에 관여하지 않겠다. 불가침 조약은 여전히 유효하며 왕실은 현 데바람의 왕을 지지한다. 대가로 데바람 역시 조만간 있을 카르시타의 후계자 선포를 지지하여주기를 바란다. 또한 귀국의 선왕의 치세에 정립된 불가침 조약의 기한 연장 회담을 제안한다.’
라는 이야기였다.
카르시타의 후계자 선포.
그것만으로도 제르의 심장을 옥죄긴 충분했다. 세드로 마르티사는 이제 고작 세 살 남짓이었다. 유스카리가 당장 죽는 것이 아니라면 이리 급할 이유가 있을까. 병질이라도 생긴 것일까. 아니면 그 밖의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 빠르게 세드로의 입지를 확정하는 것이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의문을 떨칠 수는 없었다.
이미 암암리에 떠도는 기정사실에 의거해 볼 때 대륙은 전례 없는 혼란의 시기로 맞이했다. 데바람은 일반 백성들과 농노들이 봉기한 내전이 일어났고, 트란실은 차르 쟁탈전으로 인해 격통을 앓고 있다 했다. 이제 카르시타까지 세 명의 왕위 후보들의 싸움으로 난잡해질 것이다.
전 대륙을 거의 세 토막 낸 두 개의 대국과 한 개의 부락국이 일제히 세대교체의 시기를 맞이하려 하는 것이다. 그 격변 속에서 자신의 아이는.
‘……괜찮을까.’
불안했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건 몇 가지 없다는 걸 잘 아는데.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밀려드는 회의감에 배 속이 불쏘시개로 쑤신 듯 욱신거렸다. 일어난 통증에 침음하단 곧 제르는 서신을 접어 협탁 위에 성의 없이 밀어놓았다. 그러곤 가는 팔목으로 눈가를 가리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한동안 입에 대지 않았던 약주 생각이 났다. 벽난로 화톳불 튀는 소리가 그녀의 작은 충동을 부채질했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곁눈으로 벽난로를 응시하던 그녀가 쓰게 웃었다.
붉은 불길 속에 그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더없이 쾌활하고 능청스러우며, 저와 닮은 삶을 겸허히 받아들인.
‘오늘이 내 인생 최악의 날은 아니었어.’
인생 최악의 날이 아니었다 말한 남자는, 그녀에게 청혼했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었지만 제르는 그의 감춰진 혈기와 진심이 섞여 있다는 걸 알았다. 그가 내민 것은 계산 없는 순수한 손이었다.
‘왕위 후보라…….’
알렉시스 테피온. 그는 세드로의 적이었다. 만일 세드로를 위해 그를 죽여야 한다면 그녀는 주저 없이 죽일 각오도 되어 있었다. 이 모진 목숨 내던져서라도 세드로만큼은 온전한 삶을 누리게 해주리라는 각오로 지금껏 버텨오지 않았나. 그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구애를 펼치지만 만일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영영 그녀는 죽은 어미이므로 가망 없는 경우의 수였다.
가슴과 목 사이 어딘가가 짓눌린 듯 아릿했다. 그는 충분히 카르시타의 의리를 보여주었다. 어떤 의미로는 아스난이나 테일런만큼이나, 의미 있는 사람이었다.
에르크에서의 일은 아직까지도 선연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진에 단신으로 뛰어들어 자신을 구했던 남자의 호의와, 보호. 기억을 더듬는 뇌리가 혼잡했다. 제르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자조했다.
‘하지만…… 그 대신 쇼하인 공작이 바빠진 모양이니.’
정식 보고 아닌 비공식 귀띔으로 제르는 이미 저를 노리는 이들의 존재를 알았다. 쇼하인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것이 논리적인 설명이었다. 쇼하인은 알렉시스를 지지하는 거대 가문. 알렉시스가 세드로의 친모와 붙어먹을까 두려웠던 걸 터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그들은 제 가슴이 얼마나 헤져 있는지, 얼마나 넝마가 되어 있는지, 얼마나 여유가 없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 덕에 르니아만 매일 밤 쪽잠을 자며 성곽 언저리를 뛰어다니느라 바빴다.
얼마간 그리 착잡한 생각에 잠겨 있으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군, 주무십니까?”
테일런이었다.
“들어와.”
테일런의 손에는 탕약이 들려 있었다. 제르가 퍽 미간을 찡그리며 침대에서 벗어났다.
“……아까 마셨잖아?”
“귀한 약재를 우려 만든 탕약입니다. 꼬박꼬박 장기간 드셔야 효험이 있습니다.”
며칠 전 또다시 월경에 의한 복통으로 나흘 내리 침상을 떠나지 못했던 그녀에게 반항의 여지란 없었다. 또한 약에 관한 건 테일런이 고집을 부리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 제르는 우거지상으로 사발을 받아들어 단번에 마신 후 침대에 걸터앉았다.
“맛없어.”
“몸에 좋은 건 입에 맞지 않는 법입니다.”
“진짜 써.”
“주군은 어린아이가 아니십니다.”
그리 말하면서도 은연중 애 취급하는 듯한 투에 제르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몸이 고될 테니 약이나 내려줄까?”
“사약입니까?”
“사약만큼 맛없는 걸로.”
“주군께서 내리신다면 뭐든 달게 받겠습니다.”
재미없는 녀석. 제르가 이어 들어온 시녀에게 사발을 건넨 후 탁자를 향해 턱짓했다.
“잠깐 앉았다 가라. 무료했던 참이니.”
주저하던 테일런이 마지못한 사람처럼 의자에 앉았다. 제르도 마주앉았다. 테일런의 시선은 이윽고 침대 맡 협탁에 놓인 알렉시스의 연서에 닿았다.
“저게 전부…….”
“저건 신경 쓰지 마라.”
제르가 침의 위로 외투를 하나 걸친 후, 벽난로의 불씨를 잠시 살피더니 시녀에게 술상을 준비하라 일렀다. 그에 테일런이 즉각 낯빛을 바꾸었다.
“몸이 아직 좋지 않으십니다. 방금 탕약을 드셨으니 오늘은…….”
“그럼 네가 마시면 되지. 네가 안 마시면 내가 마시면 되고.”
그녀의 방을 돌보는 두 시녀가 종종걸음으로 걸어와 술과 안주를 들여놓은 후 물러났다.
“지금 공무 중입니다, 저는…….”
“그럼 내가 다 마셔야겠군.”
반 협박이었다. 테일런은 곧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참담한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받겠습니다.”
그가 술잔을 받아 마시자 제르가 턱을 괴며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엘보르트 경이었다면 내 허락이 없더라도 꼬장꼬장 따지며 상을 물렸을 거야. 헥터 경이라면 일하는 중이니 혼자 알아서 마시라고 했을 거고. 페이랑이라면 먼저 나서서 술타령을 했을 테지. 후안 경은 날 한심하게 보고 갔을 것 같군.”
빈말로라도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할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제르는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 탁자 가에 시선만 박고 있는 테일런의 잔에 술을 채웠다.
“아이들은 말을 잘 따르던가?”
“아…… 예. 어느 정도 규율은 잡혀 있습니다. 전부 다 주군의 은덕입니다.”
“은혜라.”
제르가 고개를 비스듬 기울이며 제 술잔을 채웠다. 테일런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당장이라도 너무 많이 따랐다고 잔소리를 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들은 약하지, 세심하게 잘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된다. 고생해라, 클로이스 경.”
테일런이 덤덤히 대꾸했다.
“주군께서 그리 말하시니 의외입니다.”
“왜?”
“에노디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내기를 걸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어린아이의 목숨이 걸린 내기였다. 제르는 쓰게 웃었다. 그의 말도 사실이다.
“그때는 나도 제법 절박했으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으시다는 말이십니까?”
적막하게 흐르는 침묵을 헤쳐 제르가 한 모금, 술을 흘려 넘긴 후 덧붙였다.
“날 때부터 르니아처럼 강하게 태어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날 때부터 몹시 심약하게 태어나는 나 같은 이도 있다. 나는 그 아이가 르니아 같은 아이이길 바랐다. 많은 아이들이 르니아 같은 아이이길 원해.”
“페이랑이 들으면 몹시 놀랄 이야기입니다.”
“사실이야.”
그녀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누군가를 지키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체만 딛고 살아야 버틸 수 있는 이들도 있다.”
세드로에게 그녀가 존재조차 않는 이였다면, 그녀의 안에서 세드로는 유령이었다. 그녀가 유스카리에게 보냈던 첫 서신은 그를 제 안에서 죽이겠다는 불가능한 거짓. 죽이는 체라도 하기 위해 애쓰고 애쓰니 어느새 세드로는 그녀의 가슴속에만 살아 있는 유령이 되었다.
눈물이 마른다는 건 거짓말이다. 다만 무딤에 높아진 역치가 있을 뿐이다. 모진 세월 견디고도 서신 한 통에 숨이 넘어갈 만큼 울었다. 눈물에 젖어 서간이 흐늘거리면, 마를 때까지 기다려 그 위에 다시 글자를 써내려갔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그녀는 제 목숨도 연명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같은 결론이었다. 결론이 같다면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지나치게 깊은 속내까지 들추어낸 기분에 제르는 입술을 다물고 다시 술잔을 채우고, 비웠다.
그녀는 심약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제 앞에 던져진 어교에 새겨져 있던 어처구니없는 죄목을 보고도 단말의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체렌시와가 사형당했다. 왕의 총비라 일컬어지며 질시받던 그녀는 죽은 동생의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 같은 얼굴의 쌍둥이로 태어난 엔사와 엘지가 그리 억울하게 이승을 떠날 때조차도.
문득 그녀의 시선이 벽난로의 타오르는 불길로 미끄러졌다. 온기가 따스했다.
“알렉시스 테피온은…… 꽤 괜찮은 사람이야.”
“…….”
“내가 만나보았던 데바라노와 카르시탄을 통틀어 그자는, 가장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게 전부였다.
테일런이 떨어지지 않던 입을 열었다.
“……주군은, 한평생 혼자 사실 생각이십니까?”
“왜?”
“외로움은 사람으로 채워진다 배웠습니다.”
“내가 외로워 보이나?”
“…….”
“……내가 안타까운가 보군, 경은. 그럼 내가 알렉시스 테피온의 구애에 응하길 바라나?”
노골적인 반문에 테일런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아르노만의 벗이라 말했다. 아르노만은 알렉시스와 척을 질 수밖에 없는 이이므로 제르가 그의 구애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상황은 이상해질 것이다.
‘하지만…….’
테일런은 얕게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 술잔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의 판단을 가장 크게 좌지우지하는 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논리가 아니었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얼어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니요.”
제르가 덤덤히 웃었다.
“나도 그리 생각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스스로에 대한 환멸을 이기지 못한 테일런이 시선을 피해 연거푸 술을 받아 넘겼다. 제르도 말없이 입술을 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로를 이기지 못한 제르가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녀는 곧 잠든 사람처럼 새근새근 고른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잠들고도 한참이나 홀로 병을 비운 테일런이 그녀를 옮기기 위해 일어서려 했다. 그가 마지막 잔을 내려놓는 것과 거의 동시에, 숨처럼 자그마한 목소리가 울렸다.
“클로이스 경.”
“주군, 편히 누우십시오.”
“……이게 편해. 그리고 클로이스 경, 난 지금은 그리 외롭지 않아. 가끔 이리 술상대가 되어주는 이가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나는.”
가슴이 불붙은 듯 뜨거워졌다. 감히, 허락한다면 당신의 곁에 영원히 남아 있겠노라는,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삼켜졌다.
창백한 낯빛, 흘러내린 머리칼이 연약한 숨결에 흔들렸다. 늘 날카롭던 눈이 평온히 감겨 있고, 늘 찡그린 듯 파여 있던 미간이 펴지자 그녀는 그 자체로 순수한 그 나이대의 여인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