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사랑하오, 올리비아. 당신이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완벽하고 달콤한 휴식처요.”

디카르의 영주 레오나드 디카르 공작, 결혼을 약속했던 여인에의 신의를 지키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황명으로 그때까지 알지도 못하던 여인 올리비아 베일리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남편이 될 레오나드를 처음 본 것은 몰락한 베일리 가의 외동딸인 올리비아도 마찬가지로, 황명으로 맺어지게 된 두 사람의 위태위태한 결혼생활이 시작된다.

처음의 내키지 않는 마음과는 달리 레오나드는 당차고 아름다운 올리비아에게 서서히 마음이 끌리기 시작하지만, 그들의 행복을 시기하는 그림자는 끊임없이 그들을 추격해 오는데…….

“우리 둘의 결혼식은 이미 올려졌고, 어쨌든 당신은 나의 부인이 되었으니 이곳에서 지내도 좋소. 그렇지만 그녀와 나의 사이의 관계를 당장에 칼같이 끊어낼 수는 없다는 것만은 미리 말해둬야 할 것 같군.”

“이제 공작께서는 저의 남편이십니다. 그러니 제가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저에게 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2. 작가 소개

그린커피

블로그 : blog.naver.com/jang_hy74

▣ 출간작

너무 예뻐서 피곤한 그녀

늑대와 바니걸

넌 나만 봐!

매너를 아는 늑대

마지막 스캔들

디카르의 여인

사랑을 점치다

불꽃같은 사랑

달콤한 블랙커피

파란만장 스캔들

3. 차례

#10장. 밝혀진 비밀

#11장. 달콤한 휴식

#12장. 또 한 번의 위협

#13장. 탐욕의 말로

#14장. 너처럼 살고 싶었다

#15장. 새 생명의 탄생

#16장. 다시 찾은 봄날

#17장. 봄의 향기가 흘러들다.

#18장. 메들린의 양자

#Epilogue

4. 미리 보기

근래 들어 레오나드는 아이에 대한 욕심을 부쩍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절친한 벗인 스노든의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소식이 그의 승부욕을 자극한 듯싶었다.

덕분에 올리비아는 눈만 마주쳐도 자신을 안으려 드는 남편 때문에 곤란할 지경이었다. 모임이 있어 외출을 했다가도, 영지를 둘러보러 나갔다가도, 레오나드는 해가 지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늦을 세라 서둘러 돌아오는 레오나드의 말발굽 소리가 저녁마다 디카르 성문 앞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이날도 또래의 젊은 귀족들과 모임이 있었던 레오나드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올리비아가 쉬고 있는 침실로 곧바로 올라왔다. 영지의 일로 의논할 것이 있다며, 카일이 아까부터 그가 돌아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올리비아는 침실로 들어온 그를 보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잠자리에 드십니까? 카일이 아까부터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알고 있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레오나드가 그녀가 앉아 있는 침대에 엉덩이를 걸쳤다. 올리비아는 기가 막힌 듯 레오나드의 어깨를 밀어냈다.

“알고 계시다고요? 그런데도 쉬러 오신 겁니까? 카일은 어쩌시고요? 그러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카일이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녀가 밀어내자 레오나드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양손으로 자신을 밀어내는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아 꼼짝 못하게 만든 뒤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올리비아, 당신은 카일의 기다림만이 중요하단 말이오? 내가 오늘 당신에게 돌아올 순간만 기다리며 모임이 끝나기를 학수고대했던 그 시간들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오? 당신과의 일을 먼저 끝낸 후에, 그에게 가도 되지 않겠소? 이미 그리 나를 오래 기다렸다면, 조금 더 기다린다고 무엇이 그렇게 큰 문제겠소.”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는 듯 볼멘 얼굴로 투덜거리는 레오나드의 불평에 그녀의 얼굴엔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도 물론 남편의 투정이 싫지 않았다. 그는 따뜻하고 자상한 남편이면서도 누구보다 더 정열적이고 뜨겁게 달아오를 줄 아는 애인이기도 했다. 그와 사랑을 나눌 때면 얼마나 큰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기에 올리비아의 가슴은 기대감으로 한껏 뛰었다.

그러나 레오나드는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검토를 기다리고 있는 서류들이 책상에 한가득 쌓여 그가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깝게는 카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제라드 또한 공작의 결재를 기다렸다. 이것은 성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멀게는 레오나드의 결정이 디카르 영지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런 그를 무한정 독차지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레오나드가 자신의 할 일을 잘 처리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공작 부인으로서 그녀가 해야 할 내조이기도 했다.

“그러지 말고 먼저 다녀오십시오. 제가 어디 다른 곳으로 도망가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곳에서 얌전히 책을 보며 당신이 일을 마치고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린아이를 달래듯 올리비아는 남편을 달랬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그의 뺨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가만히 눈을 들여다보았다.

“레오나드, 실은 오늘 낮에 헬렌과 제라드가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당신께서 올가을에 추수한 곡식을 어떻게 처리하실지, 아직 결정을 내려주시지 않았다고요. 곧 겨울이 닥칠 텐데, 제라드가 걱정이 많은 듯 보였습니다. 아시죠? 디카르 영지에서 당신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를요. 지도자로서 아랫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마세요. 그들이 제 할 일을 못 찾아 헤매게 하지 마세요. 디카르 공작이 아내의 치마폭에 싸여 제 할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소리는, 당신도 저도 원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서 가서 카일을 만나세요. 그리고 쌓여 있는 서류도 검토하세요. 제라드에게도 그가 할 일을 알려주세요. 저는 이곳에 앉아 당신이 돌아오기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올리비아는 응원하듯 남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녀가 먼저 다가온 것이 기분 좋은 듯 레오나드의 입가가 길게 늘어졌다.

“그걸로 되겠소? 나를 달래려면 좀 더 확실한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오? 그래야 내가 당장의 이 갈증을 해결하고 일을 하러 갈 것 아니겠소?”

가벼운 입맞춤 정도로 끝내기에는 성에 차지 않는 듯 레오나드의 목소리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는 키스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듯 양손으로 올리비아의 얼굴을 감싸더니 그대로 입술을 내렸다.

올리비아의 입술에 내려앉은 레오나드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빨아들였다. 말캉하고도 부드러운 그 입술을 마음껏 희롱하다 깊숙이 빨아들였다. 그녀의 숨결 하나라도 놓치기 싫은 듯 꼭 붙은 입술 사이로 두 사람의 혀가 넘나들었다. 산해진미라도 만난 듯 그녀의 모든 것을 맛보려는 그의 혀가 바쁘게 움직였다.

“하읏…….”

레오나드의 깊고도 농밀한 키스에 올리비아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녀가 어지러움에 그의 옷자락을 붙들고 매달릴 때까지도 레오나드의 키스는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입술을 떼어낸 레오나드가 속삭였다. 그의 숨결도 거칠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올리비아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마주 댄 채 호흡을 가다듬던 레오나드의 얼굴에 만족한 듯 미소가 어렸다. 그는 양팔을 벌려 올리비아를 꼭 끌어안았다가 놓은 후, 아쉬움을 떨치려는 듯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당신 말대로 가서 일을 하고 오겠소. 최대한 빨리 끝낼 테니, 꼭 기다리고 있어야 하오. 알겠소? 그럼 다녀오리다.”

침실 문 앞에서 발을 멈춰선 레오나드가 미련이 많은 눈길로 올리비아를 돌아보다 결심한 듯 그대로 방을 나섰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형님.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레오나드가 서재로 들어가자마자 카일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며 그를 맞았다. 레오나드는 카일의 앞에 쌓인 서류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아예 일을 등한시한 것도 아니었는데 언제나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때이기는 했다. 농부들이야 이맘때부터 내년 봄까지 긴 휴식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달랐다. 그에게는 지금이 일 년 중 가장 바쁜 때다. 챙겨야 할 일이 태산이었다. 수확에 관한 일부터 내년에 어떤 작물을 재배할 것인지에 대한 계산과 갈무리한 수확물들을 어떻게 보관하고 나누어 쓸 것인지, 얼마나 종자로 남겨두고, 얼마를 사용할 것인지도 미리 계획을 세워야 했다.

더불어 영주민들이 농한기인 겨울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세워두어야 했다. 겨울이라고 마냥 놀기만 한다면 소득이 없어져 살림이 어려워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겨울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다른 영주들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레오나드는 제 영지에 사는 사람들이 좀 더 여유롭고 넉넉하게 살기를 바랐다.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챙기려니 레오나드의 입장에서는 괜한 오지랖으로 할 일만 많아져 고생을 사서 한다고 가끔 투덜대기도 하지만, 영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영주는 없는 셈이다.

“그래. 카일. 지금 가장 급한 일이 무엇이냐?”

“수확한 작물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아직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내다 팔 것과 식량으로 남겨둘 것, 그리고 내년에 심을 작물의 씨앗으로 삼을 것을 구분해서 보관하는 일이 급합니다. 그러자면 내년에 어떤 작물을 어디에 얼마나 심을 것인지를 미리 계획해야 합니다. 올해의 경우에는…….”

카일과 레오나드는 본격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내년 농사에 관한 것들을 의논했다. 우선은 예전의 서류를 찾아보고, 올해의 수확량을 기록한 서류와 비교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두 사람이 한창 일하고 있을 무렵, 성의 살림을 맡고 있는 제라드도 서재로 와서 두 사람의 의논에 동참했다. 세 사람은 그렇게 밤이 깊어가도록 영지의 급한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에 열중했다.

밤이 깊어 온 세상이 잠에 빠져 있을 무렵에야 레오나드는 밀린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올리비아가 기다리고 있는 침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올리비아?”

은은한 촛불이 부드럽게 일렁이며 침실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올리비아는 읽던 책을 가슴 위에 내려놓은 채 침대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레오나드는 침대 옆에 살며시 걸터앉아, 잠든 그녀의 가슴 위에서 조심스럽게 책을 걷어냈다. 그녀가 펴놓은 페이지에 책갈피를 끼워 테이블에 올려놓은 후, 올리비아의 목과 다리 아래로 팔을 넣어 가만히 눕혔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더니, 잠이 들어버렸구려.”

레오나드는 손을 들어 잠든 올리비아의 흘러내린 머리를 가만히 쓸어 넘겼다. 아쉬움이 가득한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피곤하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깨우고 싶지만, 이렇게 달게 자고 있으니…….”

차마 곤히 잠든 그녀를 깨울 수가 없었다. 한참 그녀의 자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짓던 레오나드가 고개를 돌려 후우, 입김을 불어 촛불을 껐다.

레오나드는 올리비아의 곁에 몸을 뉘였다. 침대가 출렁이는 바람에 그가 돌아온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녀가 잠결에 그의 품을 파고들며 안겨왔다.

“좋은 꿈꾸시오, 올리비아.”

달콤한 속삭임을 꿈속에서도 들었는지 그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