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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황제의 유혹

에이샤 지음로망띠끄201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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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 세일리안 제국 최고의 기사의 명예로운 이름. 샤일의 성을 가진 자는 제국 최고의 기사로서 제국을 대표하는 샤일 기사단의 기사단장이며, 샤일에 속한 기사단원들은 왕의 명령 다음으로 지켜야 할 것이 샤일의 명령이다. 감히 그에 거부하거나 샤일을 낮추는 자는 제국법에 의해 엄히 처벌된다. 샤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황제를 일순위로 호위해야하며,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항상 황제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황제의 유혹’은 판타지로맨스로 세일리안 제국의 최고의 기사인 스윈과 세일리안 제국의 황제인 제이얀이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황제와 그런 그를 지키는 여기사 스윈. 강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약해지는 여자와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 두 사람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입니다.
-본문 중에서-
정원에 혼자 남은 스윈은 한참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한곳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얀 꽃들이 가득한 꽃밭 위에 그 꽃들보다 더 빛나는 금발을 가진 한 아이였다. 스윈의 또래로 보이는 그 소년은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그곳에 서 있는 스윈을 쳐다보았다. 그 소년과 눈이 마주친 스윈은 소년의 요정 같은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본적은 없지만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정령왕에 관한 서적들에서 묘사되는 얼음의 정령왕의 외형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흘러내릴 것 같은 꿀을 머금은 허니 골드의 금발과 고개를 돌린 작은 얼굴에는 커다란 눈과 함께 오뚝한 코와 하얀 피부에 대조되는 빨간 입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조각을 해놓은 듯한 얼굴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얼굴에 스윈은 실례를 범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뚫어져라 그 소년을 바라보았다.
“넌 누구지?”
제 또래의 소년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차가운 목소리였다. 항상 광장에서 제 또래의 남자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며 유난스럽게 놀던 스윈이었지만 왠지 이 소년에게는 부끄러운 마음에 쉽사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스윈이 우물쭈물 대고 있자 소년은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 천천히 스윈에게 다가왔다.
“아무 말이 없는 걸 보니 더 수상하군, 바른대로 말해라, 난 그렇게 자비가 넘치지 못하니.”
소년은 천천히 자신에게 꼭 알맞은 길이의 장검을 허리춤에 있는 검 집에서 스르르 뽑으며 싸늘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제야 스윈은 정신을 차리고는 황급히 말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잠깐만요! 전 수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어린 소년임에도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에 스윈은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 넌 누구지? 여긴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전, 그게.”
“삼 초 주지, 그 안에 말하지 못하면 난 여기서 널 베겠어.”
어린 소년이 들고 다니는 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날카로운 검 날이었다. 스윈은 조금 질린 얼굴로 소년에게 대답했다.
“아버지를 따라서 들어오게 됐어요.”
“아버지? 어느 귀족의 아들이지? 내가 모르는 귀족 아이가 있었나?”
아들? 스윈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콧방귀를 끼고는 칼이 목 가까이 닿아 있단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조금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소년에게 대답했다.
“리안 샤이안르 샤일의 이름을 계승할 스윈 제이윌르에요.”
삐죽삐죽거리며 스윈이 당차게 대답하자 그 소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살짝 웃으며 칼을 거두었다.
“리안 샤일의 아들이었단 말이지? 소문 속의 그 아들이 너였나?”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고! 내가 어딜 봐서 남자애 같다는 거야!”
스윈이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빽 지르며 반말을 하자 소년은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스윈을 보며 킬킬대며 웃었다.
“네가 어딜 봐서 여자애 같은데?”
그 말에 스윈은 조심스럽게 자기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의 훈련을 받을 때면 늘 땀으로 범벅되어 달라붙는 긴 머리카락이 귀찮아 자기가 아무렇게나 대충 자른 푸석푸석한 짧은 은발머리에 아버지를 몰래 따라오느라 여기저기 얼굴이나 옷에 묻은 흙들. 말끔한 얼굴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예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소년이 자신보다 더 여자애 같아 보였다. 그것을 깨달은 스윈은 조그마한 입술을 꼭 깨물고는 표독스럽게 소년을 째려보았다. 소년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자기를 노려보는 스윈이 너무 웃겨 배를 잡고 킬킬대며 더욱 놀려댔다.
“너 내가 키우는 토토보다 못생겼어, 여자애가 그렇게 생긴 거 처음 봐. 나는 귀족 여자애들은 다 예쁜 줄 알았는데 넌 뭐…….”
소년은 더 웃으며 말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스윈이 소년에게 달려들어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너 가만 안 둘 거야!”
스윈은 악을 지르며 이리저리 매운 주먹을 휘둘렀고, 소년은 생각보다 빠른 스윈의 몸놀림에 당황한 나머지 이리저리 얼굴을 내 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자기도 울컥해 같이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엎치락뒤치락했을까? 우악스럽게 자신을 잡아끄는 손길에 스윈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자기를 잡은 사람이 누군지 쳐다보고는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
서러운 마음에 아버지에게 총총 뛰어가 안기려는데,
“황태자전하! 괜찮으십니까!”
아버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소년에게 달려갔다. 스윈은 그대로 울음 뚝. 황태자전하? 아무리 어린 스윈이라도 황태자전하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덩달아 새파란 얼굴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소년이 입가에 고인 침을 퉤 뱉어내며 리안의 손을 밀어냈다.
“됐습니다, 리안 경.”
“죽여주십시오, 황태자전하. 제가 자식을 다 잘못 키운 탓입니다.”
“아버지! 전 잘못한 게 없어요!”
억울한 마음에 스윈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아버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표정으로 스윈을 쳐다보며 말을 했다.
“스윈, 입을 열지 말거라.”
“괜찮습니다. 제가 먼저 그런 걸요.”
소년은 아까의 표독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가녀린 모습을 하고서는 살짝 비틀거리며 리안의 옷소매를 잡았다. 예쁜 얼굴이 얼룩덜룩해서는 입술에 핏방울까지 머금고 있자 리안은 레드 드래곤과 흡사한 무서운 얼굴로 스윈을 내려다보았다.
“스위인!”
리안이 무서운 얼굴로 스윈을 내려다보자 스윈은 마지못해 고개를 푹 숙이면서도 터져버린 입술로 비웃음을 머금고 있는 소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꿈을 꿨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쓸데없는 꿈을 꾸느라 늦잠을 자버리다니.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때의 그 끔찍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짜증스러운 기분에 아침부터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자꾸 짜증만 내면 뭐해, 이런 건 빨리 잊어버리는 게 편해, 고개를 세차게 저은 뒤 기지개를 한번 쭉 폈다. 거추장스러운 긴 머리를 높게 올려 묶고 가볍게 씻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에 수련을 하기 위해 뒷마당으로 향했다. 마당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아침부터 바지런한 유모가 여전히 인심 넘치는 몸으로 나에게 통통 뛰어왔다.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응, 로웬. 좋은 아침이야.”
싱긋 웃는 얼굴로 로웬을 꼭 껴안자 그녀는 통통한 볼에 홍조를 띠더니 나를 토닥여주고는 살짝 떼어냈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가씨. 아, 그건 그렇고 지금 리안 님께서 급하게 아가씨를 모셔오라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꽤나 급한 일이었는지 로웬이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내 손을 잡고는 급하게 아버지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뒷마당에서 아버지의 서재까지 그렇게 짧은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도착한 나는 숨 고를 새도 없이 빠르게 노크를 한 그녀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의 앞에 섰다.
“아휴, 아버지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하게 부르셨어요.”
“로웬 수고했네, 나가서 일 봐도 좋아.”
로웬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나갔고 아버지는 대답도 없이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바쁘신지 황궁에 들어가 계시느라 사흘 동안 보지 못한 딸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으시고 서류더미에 몸을 파묻고 계셨다. 그런 아버지를 재촉하지 않고 느긋하게 아버지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서류 넘기는 소리와 사각거리는 펜의 소리를 얼마나 들었을까? 그리 길지 않은 침묵 끝에 아버지의 입이 살짝 열렸다.
“밤새 잘 잤느냐, 오늘은 별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잠을 좀 설쳤어요, 그러는 아버지는 많이 핼쑥해지셨어요.”
“마무리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 일을 급하게 처리하다 보니 피로가 쌓였구나.”
피곤한 듯 펜을 놓고 얼굴을 쓸어내리는 아버지께 고개로 살짝 양해를 구하고는 차를 타기위해 티 세트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잘 말린 찻잎을 찻잔에 넣고는 가져다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자기 주전자의 물을 찻잔으로 천천히 따랐다. 어느 정도 우러나자 은은하게 향을 풍기는 찻잔을 천천히 아버지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향을 음미하고는 한 모금 마셨다. 그런 아버지를 한번 흘끔 쳐다보고는 소파로 가서 살짝 엉덩이를 걸쳤다.
“잘 마시마.”
“로웬도 아버지가 많이 피곤해 보였나 봐요,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차예요. 드시면 그나마 좀 나을 거예요.”
“음.”
아무 말 없이 차만 들이켜는 아버지를 보자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어 보였다. 반쯤 마신 차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성격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 건지. 아무래도 가만히 기다리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아버지,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거죠?”
“녀석, 성격도 급하기는. 기다리면 어련히 말해 주지 않을까, 근데 그렇게 티가 났느냐?”
“아버지 알아온 게 벌써 얼만 줄 아세요?”
“그중에 몇 년은 네가 기억도 못할 때가 아니더냐.”
원래 이렇게 잡다한 말이 많으신 아버지가 아니었는데, 지금 하려는 말이 꽤나 중요한 말이긴 한가보다. 자꾸 이야기를 질질 끄는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이제 그만 본론으로 넘어가시죠? 아침수련을 방해하면서까지 하실 그 중요한 이야기가 도대체 뭐냔 말이에요!”
참다못한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아버지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태연스레 아무것도 묻지 않은 손가락을 후후 불며 말했다.
“쯧쯧, 넌 인내심이 부족해. 그래가지고 어떻게…….”
“아버지!”
“최고기사가 되겠느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말을 하는 아버지의 말씀에 덩달아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자 그제야 아버지는 진지하게 이야기하실 마음이 생기셨는지 책상에서 일어나 나의 맞은편 소파로 걸어와 앉으셨다.
“이제 난 너무 늙었다. 후임을 세워야 돼.”
“아버지 아직 팔팔하신 거 세상이 알고 제가 다 알거든요?”
“콜록, 난 너무 늙고 병들었어. 콜록.”
여전히 장난스러운 아버지의 행동에 스윈은 더 이상 맞춰가지 않겠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아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흠흠, 지난 며칠간 내가 황성에 들어가 있었던 건 알고 있지?”
“네.”
“그동안 네가 샤일의 이름을 받을 절차를 모두 다 처리해 놓았다. 이제 황성으로 입궁하여 폐하께 이름을 받으면 돼.”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이제 내 나이도 벌써 쉰이다. 슬슬 은퇴할 때도 되지 않았니?”
“선대의 샤일들은 육십이 넘은 분들도 있었어요.”
“그 분들은 너무 오래 하신 거야, 적당히 때가 되면 늙은이들은 물러서 줘야지, 그래야 떠오르는 태양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거야.”
진지한 아버지의 눈빛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직은 나는 샤일이란 이름을 받아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그것을 아버지는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 전 솔직히…….”
“널 믿는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하고 있던 변명거리도 그리고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했던 핑계 거리도 머릿속에 있던 모든 말들을 입 밖에 꺼내 볼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진지한 표정과 무한한 신뢰감이 담긴 그 눈과 마주 친 순간. 그냥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휴, 아버지는 저에게 항상 넘을 수 없는 벽이에요.”
“허허, 그럼 당연하지. 넌 수억 년이 지나도 날 뛰어 넘지 못한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버리자 아버지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셨다.
“부디 최선을 다해서 샤일의 이름을 뺏기지 않도록 하여라.”
(* ‘샤일’은 샤일의 후예가 이름을 계승 받았을 시에 무작위로 ‘샤일의 시험’을 보게 된다. 몇 년에 걸쳐져서 시험을 보는지, 몇 번의 시험을 보게 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샤일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샤일은 그 이름을 박탈당하게 된다.)
불안해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아버지는 조용히 내 옆으로와 내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넌 충분히 능력이 있어, 내가 내 딸이어서 너를 샤일로 추천한 줄 아느냐? 네가 보기에는 내가 그리 만만한 사람이었더냐?”
“아니요, 아버지를 믿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믿어주시는 저도 믿을게요.”
어느새 훌쩍 커버렸구나 하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아버지도 많이 늙으셨구나. 괜히 마음이 찡해지는데,
“아참, 아버지 황제폐하께서 쉬이 아버지를 물러나게 해주셨나요?”
아버지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였다던 황제폐하, 아버지를 곱게 보내주시지 않았을 텐데, 뭔가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내가 말 안 했나. 황제폐하는 황위를 황태자전하께 물려주시고는 여유롭게 제국여행을 하신다는군.”
“네? 그럼 전.”
“네가 모셔야 할 분은 황제폐하가 아니라 황태자전하인 거지.”
오, 어머니. 언젠간 모시게 될 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내 기억 속의 그는 천사 같은 얼굴을 한 악마였다.
‘황제의 유혹’은 판타지로맨스로 세일리안 제국의 최고의 기사인 스윈과 세일리안 제국의 황제인 제이얀이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황제와 그런 그를 지키는 여기사 스윈. 강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약해지는 여자와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 두 사람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입니다.
-본문 중에서-
정원에 혼자 남은 스윈은 한참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한곳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얀 꽃들이 가득한 꽃밭 위에 그 꽃들보다 더 빛나는 금발을 가진 한 아이였다. 스윈의 또래로 보이는 그 소년은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그곳에 서 있는 스윈을 쳐다보았다. 그 소년과 눈이 마주친 스윈은 소년의 요정 같은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본적은 없지만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정령왕에 관한 서적들에서 묘사되는 얼음의 정령왕의 외형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흘러내릴 것 같은 꿀을 머금은 허니 골드의 금발과 고개를 돌린 작은 얼굴에는 커다란 눈과 함께 오뚝한 코와 하얀 피부에 대조되는 빨간 입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조각을 해놓은 듯한 얼굴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얼굴에 스윈은 실례를 범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뚫어져라 그 소년을 바라보았다.
“넌 누구지?”
제 또래의 소년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차가운 목소리였다. 항상 광장에서 제 또래의 남자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며 유난스럽게 놀던 스윈이었지만 왠지 이 소년에게는 부끄러운 마음에 쉽사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스윈이 우물쭈물 대고 있자 소년은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 천천히 스윈에게 다가왔다.
“아무 말이 없는 걸 보니 더 수상하군, 바른대로 말해라, 난 그렇게 자비가 넘치지 못하니.”
소년은 천천히 자신에게 꼭 알맞은 길이의 장검을 허리춤에 있는 검 집에서 스르르 뽑으며 싸늘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제야 스윈은 정신을 차리고는 황급히 말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잠깐만요! 전 수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어린 소년임에도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에 스윈은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 넌 누구지? 여긴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전, 그게.”
“삼 초 주지, 그 안에 말하지 못하면 난 여기서 널 베겠어.”
어린 소년이 들고 다니는 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날카로운 검 날이었다. 스윈은 조금 질린 얼굴로 소년에게 대답했다.
“아버지를 따라서 들어오게 됐어요.”
“아버지? 어느 귀족의 아들이지? 내가 모르는 귀족 아이가 있었나?”
아들? 스윈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콧방귀를 끼고는 칼이 목 가까이 닿아 있단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조금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소년에게 대답했다.
“리안 샤이안르 샤일의 이름을 계승할 스윈 제이윌르에요.”
삐죽삐죽거리며 스윈이 당차게 대답하자 그 소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살짝 웃으며 칼을 거두었다.
“리안 샤일의 아들이었단 말이지? 소문 속의 그 아들이 너였나?”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고! 내가 어딜 봐서 남자애 같다는 거야!”
스윈이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빽 지르며 반말을 하자 소년은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스윈을 보며 킬킬대며 웃었다.
“네가 어딜 봐서 여자애 같은데?”
그 말에 스윈은 조심스럽게 자기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의 훈련을 받을 때면 늘 땀으로 범벅되어 달라붙는 긴 머리카락이 귀찮아 자기가 아무렇게나 대충 자른 푸석푸석한 짧은 은발머리에 아버지를 몰래 따라오느라 여기저기 얼굴이나 옷에 묻은 흙들. 말끔한 얼굴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예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소년이 자신보다 더 여자애 같아 보였다. 그것을 깨달은 스윈은 조그마한 입술을 꼭 깨물고는 표독스럽게 소년을 째려보았다. 소년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자기를 노려보는 스윈이 너무 웃겨 배를 잡고 킬킬대며 더욱 놀려댔다.
“너 내가 키우는 토토보다 못생겼어, 여자애가 그렇게 생긴 거 처음 봐. 나는 귀족 여자애들은 다 예쁜 줄 알았는데 넌 뭐…….”
소년은 더 웃으며 말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스윈이 소년에게 달려들어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너 가만 안 둘 거야!”
스윈은 악을 지르며 이리저리 매운 주먹을 휘둘렀고, 소년은 생각보다 빠른 스윈의 몸놀림에 당황한 나머지 이리저리 얼굴을 내 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자기도 울컥해 같이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엎치락뒤치락했을까? 우악스럽게 자신을 잡아끄는 손길에 스윈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자기를 잡은 사람이 누군지 쳐다보고는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
서러운 마음에 아버지에게 총총 뛰어가 안기려는데,
“황태자전하! 괜찮으십니까!”
아버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소년에게 달려갔다. 스윈은 그대로 울음 뚝. 황태자전하? 아무리 어린 스윈이라도 황태자전하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덩달아 새파란 얼굴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소년이 입가에 고인 침을 퉤 뱉어내며 리안의 손을 밀어냈다.
“됐습니다, 리안 경.”
“죽여주십시오, 황태자전하. 제가 자식을 다 잘못 키운 탓입니다.”
“아버지! 전 잘못한 게 없어요!”
억울한 마음에 스윈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아버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표정으로 스윈을 쳐다보며 말을 했다.
“스윈, 입을 열지 말거라.”
“괜찮습니다. 제가 먼저 그런 걸요.”
소년은 아까의 표독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가녀린 모습을 하고서는 살짝 비틀거리며 리안의 옷소매를 잡았다. 예쁜 얼굴이 얼룩덜룩해서는 입술에 핏방울까지 머금고 있자 리안은 레드 드래곤과 흡사한 무서운 얼굴로 스윈을 내려다보았다.
“스위인!”
리안이 무서운 얼굴로 스윈을 내려다보자 스윈은 마지못해 고개를 푹 숙이면서도 터져버린 입술로 비웃음을 머금고 있는 소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꿈을 꿨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쓸데없는 꿈을 꾸느라 늦잠을 자버리다니.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때의 그 끔찍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짜증스러운 기분에 아침부터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자꾸 짜증만 내면 뭐해, 이런 건 빨리 잊어버리는 게 편해, 고개를 세차게 저은 뒤 기지개를 한번 쭉 폈다. 거추장스러운 긴 머리를 높게 올려 묶고 가볍게 씻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에 수련을 하기 위해 뒷마당으로 향했다. 마당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아침부터 바지런한 유모가 여전히 인심 넘치는 몸으로 나에게 통통 뛰어왔다.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응, 로웬. 좋은 아침이야.”
싱긋 웃는 얼굴로 로웬을 꼭 껴안자 그녀는 통통한 볼에 홍조를 띠더니 나를 토닥여주고는 살짝 떼어냈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가씨. 아, 그건 그렇고 지금 리안 님께서 급하게 아가씨를 모셔오라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꽤나 급한 일이었는지 로웬이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내 손을 잡고는 급하게 아버지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뒷마당에서 아버지의 서재까지 그렇게 짧은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도착한 나는 숨 고를 새도 없이 빠르게 노크를 한 그녀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의 앞에 섰다.
“아휴, 아버지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하게 부르셨어요.”
“로웬 수고했네, 나가서 일 봐도 좋아.”
로웬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나갔고 아버지는 대답도 없이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바쁘신지 황궁에 들어가 계시느라 사흘 동안 보지 못한 딸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으시고 서류더미에 몸을 파묻고 계셨다. 그런 아버지를 재촉하지 않고 느긋하게 아버지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서류 넘기는 소리와 사각거리는 펜의 소리를 얼마나 들었을까? 그리 길지 않은 침묵 끝에 아버지의 입이 살짝 열렸다.
“밤새 잘 잤느냐, 오늘은 별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잠을 좀 설쳤어요, 그러는 아버지는 많이 핼쑥해지셨어요.”
“마무리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 일을 급하게 처리하다 보니 피로가 쌓였구나.”
피곤한 듯 펜을 놓고 얼굴을 쓸어내리는 아버지께 고개로 살짝 양해를 구하고는 차를 타기위해 티 세트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잘 말린 찻잎을 찻잔에 넣고는 가져다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자기 주전자의 물을 찻잔으로 천천히 따랐다. 어느 정도 우러나자 은은하게 향을 풍기는 찻잔을 천천히 아버지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향을 음미하고는 한 모금 마셨다. 그런 아버지를 한번 흘끔 쳐다보고는 소파로 가서 살짝 엉덩이를 걸쳤다.
“잘 마시마.”
“로웬도 아버지가 많이 피곤해 보였나 봐요,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차예요. 드시면 그나마 좀 나을 거예요.”
“음.”
아무 말 없이 차만 들이켜는 아버지를 보자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어 보였다. 반쯤 마신 차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성격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 건지. 아무래도 가만히 기다리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
“아버지,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거죠?”
“녀석, 성격도 급하기는. 기다리면 어련히 말해 주지 않을까, 근데 그렇게 티가 났느냐?”
“아버지 알아온 게 벌써 얼만 줄 아세요?”
“그중에 몇 년은 네가 기억도 못할 때가 아니더냐.”
원래 이렇게 잡다한 말이 많으신 아버지가 아니었는데, 지금 하려는 말이 꽤나 중요한 말이긴 한가보다. 자꾸 이야기를 질질 끄는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이제 그만 본론으로 넘어가시죠? 아침수련을 방해하면서까지 하실 그 중요한 이야기가 도대체 뭐냔 말이에요!”
참다못한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아버지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태연스레 아무것도 묻지 않은 손가락을 후후 불며 말했다.
“쯧쯧, 넌 인내심이 부족해. 그래가지고 어떻게…….”
“아버지!”
“최고기사가 되겠느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말을 하는 아버지의 말씀에 덩달아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자 그제야 아버지는 진지하게 이야기하실 마음이 생기셨는지 책상에서 일어나 나의 맞은편 소파로 걸어와 앉으셨다.
“이제 난 너무 늙었다. 후임을 세워야 돼.”
“아버지 아직 팔팔하신 거 세상이 알고 제가 다 알거든요?”
“콜록, 난 너무 늙고 병들었어. 콜록.”
여전히 장난스러운 아버지의 행동에 스윈은 더 이상 맞춰가지 않겠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아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흠흠, 지난 며칠간 내가 황성에 들어가 있었던 건 알고 있지?”
“네.”
“그동안 네가 샤일의 이름을 받을 절차를 모두 다 처리해 놓았다. 이제 황성으로 입궁하여 폐하께 이름을 받으면 돼.”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이제 내 나이도 벌써 쉰이다. 슬슬 은퇴할 때도 되지 않았니?”
“선대의 샤일들은 육십이 넘은 분들도 있었어요.”
“그 분들은 너무 오래 하신 거야, 적당히 때가 되면 늙은이들은 물러서 줘야지, 그래야 떠오르는 태양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거야.”
진지한 아버지의 눈빛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직은 나는 샤일이란 이름을 받아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그것을 아버지는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 전 솔직히…….”
“널 믿는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하고 있던 변명거리도 그리고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했던 핑계 거리도 머릿속에 있던 모든 말들을 입 밖에 꺼내 볼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진지한 표정과 무한한 신뢰감이 담긴 그 눈과 마주 친 순간. 그냥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휴, 아버지는 저에게 항상 넘을 수 없는 벽이에요.”
“허허, 그럼 당연하지. 넌 수억 년이 지나도 날 뛰어 넘지 못한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버리자 아버지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셨다.
“부디 최선을 다해서 샤일의 이름을 뺏기지 않도록 하여라.”
(* ‘샤일’은 샤일의 후예가 이름을 계승 받았을 시에 무작위로 ‘샤일의 시험’을 보게 된다. 몇 년에 걸쳐져서 시험을 보는지, 몇 번의 시험을 보게 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샤일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샤일은 그 이름을 박탈당하게 된다.)
불안해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아버지는 조용히 내 옆으로와 내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넌 충분히 능력이 있어, 내가 내 딸이어서 너를 샤일로 추천한 줄 아느냐? 네가 보기에는 내가 그리 만만한 사람이었더냐?”
“아니요, 아버지를 믿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믿어주시는 저도 믿을게요.”
어느새 훌쩍 커버렸구나 하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아버지도 많이 늙으셨구나. 괜히 마음이 찡해지는데,
“아참, 아버지 황제폐하께서 쉬이 아버지를 물러나게 해주셨나요?”
아버지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였다던 황제폐하, 아버지를 곱게 보내주시지 않았을 텐데, 뭔가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내가 말 안 했나. 황제폐하는 황위를 황태자전하께 물려주시고는 여유롭게 제국여행을 하신다는군.”
“네? 그럼 전.”
“네가 모셔야 할 분은 황제폐하가 아니라 황태자전하인 거지.”
오, 어머니. 언젠간 모시게 될 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내 기억 속의 그는 천사 같은 얼굴을 한 악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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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 201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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