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너에게 미치다 2권

춘몽상 지음로망띠끄201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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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 979-11-258-429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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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사랑스런 여자, 진해윤.
배신당해 가슴이 최악으로 막막하던 날에 지독하게 오만한 남자를 만났다. 처음에는 악연인 줄 알았던 그가 서서히 열병의 시작이 되어 운명처럼 그녀를 사로잡았다. 독선적인 성격 탓에 허구한 날, 고함을 질러도, 징그럽게 강한 수컷 본능으로 느물거려도 그녀에게 있어 그라는 존재는 세상이었고, 진실이었으며 맹목이었다. 그 거칠 것 없는 대리석 같이 차가운 남자에게 매혹되어 질척이는 수렁에 발을 담그고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
집요한 소유욕과 강인함을 가진 남자, 강지혁.
우연하게 들른 나이트클럽에서 제 귀싸대기를 오지게 후려갈기는 조막만한 여자를 만났다. 섹스로 표현하는 사랑이 아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정체도 모르는 사랑을 해줘야만 애인이 되어 주겠다는 순진한 맹물 같은 여자에게 홀려 남자의 허기진 심장에 박아 넣었다. 눈물 많고 착해 빠진 여자였다가 어느 때는 발톱을 세운 살쾡이가 되기도 하고, 남자의 수컷을 안달 나게 만드는 색스러운 도발을 낯 뜨겁게 잘도 감행하는 여자를 갖기 위해 툭하면 길길이 날뛰었다. 그는 비틀어지고, 냉랭했던 심장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여자로 인해 비로소 세상이 밝아보였고, 그녀에게 미쳐갔다. 한편, 주인 있는 여자를 탐하려는······.
<본문 중에서>
하루 종일을 전국의 스키장이라는 스키장은 다 수소문했었다. 사라진 발칙한 여자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펄펄 뛰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한 밤중 썰렁한 국도를 150킬로로 밟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었다. 그리고 리조트 전체를 헤매고 다니다가 칵테일파티가 한창인 이곳까지 땀으로 범벅이 되어 해윤을 찾아왔다. 생글거리며 웃음을 흘리는 저 여자의 목을 꺾어버리고 싶었다. 저 여자가 잡놈 품에서 버둥거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감히 인간 강지혁을 제 발톱 사이에 낀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걷어 차버리다니……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존심에 쩍쩍 금이 갔다. 여자를 걷어차는 것도 제 몫. 실컷 가지고 놀다가 버리는 것도 제 몫. 저 겁도 없이 까부는 앙큼한 여자를 짓이겨 놓고야 말겠다. 너의 주인이 누구라는 것을 잔혹하게 가르쳐 주겠다. 제 소유물을 빼앗긴 짐승의 눈에서는 잔인한 살의가 넘쳐났다. 제가 얻는 가장 안락한 품을 잃어버린 망연함이 독기로 뿜어져 나왔다.
해윤이 빠른 걸음으로 지혁에게 다가갔다.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그의 난폭한 눈빛에 겁먹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진정하려고 어금니를 꽉 물었다.
“나하고, 얘기 좀 해.”
남의 것에 손대는 개자식은 죽게 때려 눕혀야 정의라 말할 수 있겠다. 그 다음 순서가 너라는 앙큼한 여자가 되겠지. 지혁의 눈동자가 살기로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한쪽 입 끝이 달려 올라가며 낮고도 섬뜩한 목소리를 냈다.
“먼저 해결할 일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저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는데? 바람둥이는 너잖아? 스캔들을 만든 것도 너였고, 날 외면하고 달아난 것도 너였잖아? 해윤은 긴장으로 입안에 고였던 침이 꿀꺽 넘어갔다. 기어코 험악한 꼴을 보게 생겼다.
“점장님은 아무 잘못도 없어. 나하고 해결 해.”
“저 자식을 싸고도시겠다? 그 입 닥치고 기다려.”
진해윤이 잘 봐라. 너하고 뒹군 놈이 어떻게 되는지. 날 열 받게 하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지혁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걸렸다.
저 잔인한 조소. 해윤은 지혁의 표정에 소름이 끼쳤다. 그는 필시 주먹질로 영문도 모르는 사람을 가해 할 것이 뻔했다. 테이블이 엎어지고, 유리잔들이 깨지는 아수라장이 눈앞에 그려졌다. 저 살기등등한 남자는 남의 여자나 탈취하는 오명을 정효에게 뒤집어씌우고 망신살을 뻗치게 할 것이다. 저 사람이 무슨 죄라고 봉변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울고 싶은 여자, 웃게 해 준 것도 죄가 될까? 난 저 사람을 또 어떻게 봐야 하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늪에 발을 들였던 게 맞았다. 열병이 결국엔 최악의 비참함을 불러오고야 말았다. 해윤은 자신이 점점 미쳐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발, 그러지 마! 내가 잘못했어.”
배신감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간악하게 친구라고 나불거리던 입으로 뭐가 어쨌다고? 잘못? 그 당당하던 콧대는 어디로 간 거냐? 쥐뿔도 모르고 칵테일이나 마시고 있는 잡놈을 바들바들 떨며 감싸다니. 해윤의 저 가느다란 목을 당장 졸라버리고 싶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여자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벅벅 고함치고 싶은데 그래야만 강지혁이다운데 이놈의 목소리는 맥을 못 추고 목구멍으로 기어들어 갔다. 빌어먹게도 간신히 짜내 입 밖으로 시들시들 불러냈다.
“너, 저 자식이 그렇게 좋으냐? 하룻밤 만리장성에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쳤어?”
해윤이 쥐어짜듯 하는 지혁의 말을 듣고는 멍해졌다. 다리가 꺾여 풀썩 이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취직도 더러운 자리에 시켜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넌 날 모른다. 나도 널 모르겠다. 그래,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있다.
“나 그런 짓 안 했어. 우리 그런 관계 아니야.”
해윤은 너무나 허탈하고, 기가 막혀서 비척거리며 객실로 올라왔다.
한참을 소파에 파묻혀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문 밖에서 질투에 눈이 멀어 반은 미쳐있던 남자가 문을 두드렸다. 소리도 질렀다. 그 소란을 무시하고 짐을 챙기다가 정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간단한 메모를 남겼다. 문을 열고나오며 무서운 남자를 외면했다. 그의 광기에 가까운 소유욕이 무서웠다. 열정과 끌림은 이상하게 변형되어 집착으로 바뀌어 버렸다.
지혁이 해윤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다.
“얘기 좀 하자.”
“너하고 할 얘기 없어.”
“난 있어.”
지혁이 잡힌 손을 뿌리치려고 버둥거리는 해윤을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그는 로비로 내려가는 줄 알고 있던 그녀를 최상층에서 강제로 끌어 내렸다.
“이거 놔. 싫단 말이야.”
해윤이 거부하는 것 따위는 아랑곳도 없는 지혁이 카드키를 눌러 꽂았다. 객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버티는 해윤의 가방을 빼앗아 방 안에 던지고, 그녀 역시도 억지로 밀어 넣었다. 노려보는 해윤이 가소롭다는 듯이 지혁이 픽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땀으로 얼룩진 셔츠를 벗어던지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발리라고 생각해라.”
뻔뻔하기 그지없는 지혁을 향해 해윤이 공허하게 웃었다.
“넌 미쳤어.”
“맞아. 너한테 전화 받고 눈이 홱 돌아서 내가 지금 이 꼴이다.”
“넌 내가 쓰레기같이 보이니? 그렇게 헤픈 여자로 보여? 만리장성? 그건 너하고 그 여자가 쌓은 거잖아. 나한테 왜 이러는데?”
지혁이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다 헛소리야. 신경 쓸 거 없어.”
“그래, 그럴 거야. 너란 인간한테 신경 쓰는 것조차도 귀찮아. 그만 하자.”
“그만 하다니? 뭘?”
“모든 것. 널 알고 지냈다는 내 기억조차도 지워버리고 싶어.”
지혁이 해윤을 힐끔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소파에 푹 눌러앉으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이리 와서 앉아. 누구 마음대로 그만 해? 내 손에 들어온 이상, 그만 두고 말고는 내가 결정해. 알아들어?”
“네가 뭔데?”
“나 진해윤이 애인.”
“애인? 너한테 애인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니?”
“내 꺼…….”
“흥! 물건? 네가 갖고 노는 장난감? 네 눈에는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네 노리갯감으로 밖에는 안 보이니?”
“쓸데없이 흥분하지 말고 이리 와.”
“나 말고 다른 애들한테 그런 말은 지껄여. 구역질나는 네 애인 난, 이제 안 할 거야.”
“그만 해라.”
“내가 뭘 했는데? 등 돌린 건 너잖아! 난 등 돌리는 남자 한 번이면 족해. 왜 내 인생에 들어와서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왜 그러는데? 왜 그러냐구? 이 나쁜 자식아…….”
아무리 성질내고 팔팔 뛰어도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남자, 자신을 제 소유라고 손아귀에 틀어쥐고 거드름을 피우는 남자, 느물느물 유들거리는 남자. 해윤이 혼자 악을 쓰다가 제 풀에 지쳐 가방을 집어 들고 객실 문 쪽으로 향했다.
“거기 서지 못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지혁의 성난 목소리에 해윤이 잠시 움찔 섰다가 그대로 묵살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지혁의 그악스러운 손이 달려들어 그녀의 팔을 비틀며 문짝에 돌려세웠다. 그녀를 밀어붙여 양팔로 문을 집고 지혁이 숨을 몰아쉬었다. 단단한 가슴 안에 가두는 남자에게서 해윤은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검붉은 욕망이 타는 그의 눈동자가 숨도 못 쉬게 내려다보고 있어서 긴장으로 굳었던 몸뚱이가 더 경직됐다. 그의 흰자위에 선명하게 그어진 충혈 된 실핏줄이 꿈틀대는 것만 같아서 두려워 반항의 말도, 미약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그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만을 보았다.
겁먹었으면서도 빤히 올려다보는 그녀가 사랑스러워 지혁은 주저 없이 얼굴을 내려 제 여자의 달큰한 입술을 빨았다. 벌어지지 않으려고 앙다문 입술을 거칠게 물어뜯어 입안에 숨어있는 고집 센 그녀의 혀를 빼앗아 핥았다. 비릿한 피 맛이 나는 새침한 그녀의 타액. 며칠 동안 죽어있던 모든 세포와 끈적끈적한 욕구가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입술을 물면서 산소가 공급되고 피가 돌아 마침내 수컷의 욕정이 깨어났다. 꾹꾹 눌렀던 짐승의 발기, 소유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집착, 그 모든 것이 합쳐져 그녀를 그윽한 눈길로 응시하게 했다. 저 자신도 모르게 반쯤은 미쳐서 의심했던 제 여자에게 미안해져서 지독하게도 은근한 목소리를 냈다.
“진해윤, 난 너에게 등 돌리지 않아. 죽어도…….”
“넌 이미 돌렸어.”
“내 생애 최초로 여자라는 족속을 위해 한다고 한 배려가 널 화나게 했구나!”
비록 오만과 집착이 담긴 눈일지라도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진 않았다. 그럴싸하게 둘러대며 변명을 하지 않더라도 그의 진실은 가슴으로 느껴졌다. 소유욕에 제 정신이 아닌 채로 의심하고, 닦달하며 이틀을 보냈을 그가 안쓰러워 마음에 치였다. 단지 배려가 되었던 무신경이 되었던 등 돌렸다는 그의 행위 자체를 용서할 수 없었다. 다시는 등 돌리는 남자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끔찍한 기억을 다시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다시는 내 눈에 네 등, 보이지 마. 죽여 버릴 거야.”
해윤이 그의 목에 덩굴처럼 팔을 둘러 매달렸다. 발끝으로 서서 그의 입술을 찾아갔다. 자신을 홀리는 수컷의 짙은 페로몬. 거부할 수 없이 그에게 딸려가는 인력. 미치도록 보고 싶던 그를 안았다. 잔인함에 중독된 자신을 깨닫게 된다. 갈구하던 그의 입술을 마음껏 물었고, 또 가졌다.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려 이 남자가 흐리게 보였다.
배신당해 가슴이 최악으로 막막하던 날에 지독하게 오만한 남자를 만났다. 처음에는 악연인 줄 알았던 그가 서서히 열병의 시작이 되어 운명처럼 그녀를 사로잡았다. 독선적인 성격 탓에 허구한 날, 고함을 질러도, 징그럽게 강한 수컷 본능으로 느물거려도 그녀에게 있어 그라는 존재는 세상이었고, 진실이었으며 맹목이었다. 그 거칠 것 없는 대리석 같이 차가운 남자에게 매혹되어 질척이는 수렁에 발을 담그고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
집요한 소유욕과 강인함을 가진 남자, 강지혁.
우연하게 들른 나이트클럽에서 제 귀싸대기를 오지게 후려갈기는 조막만한 여자를 만났다. 섹스로 표현하는 사랑이 아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정체도 모르는 사랑을 해줘야만 애인이 되어 주겠다는 순진한 맹물 같은 여자에게 홀려 남자의 허기진 심장에 박아 넣었다. 눈물 많고 착해 빠진 여자였다가 어느 때는 발톱을 세운 살쾡이가 되기도 하고, 남자의 수컷을 안달 나게 만드는 색스러운 도발을 낯 뜨겁게 잘도 감행하는 여자를 갖기 위해 툭하면 길길이 날뛰었다. 그는 비틀어지고, 냉랭했던 심장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여자로 인해 비로소 세상이 밝아보였고, 그녀에게 미쳐갔다. 한편, 주인 있는 여자를 탐하려는······.
<본문 중에서>
하루 종일을 전국의 스키장이라는 스키장은 다 수소문했었다. 사라진 발칙한 여자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펄펄 뛰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한 밤중 썰렁한 국도를 150킬로로 밟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었다. 그리고 리조트 전체를 헤매고 다니다가 칵테일파티가 한창인 이곳까지 땀으로 범벅이 되어 해윤을 찾아왔다. 생글거리며 웃음을 흘리는 저 여자의 목을 꺾어버리고 싶었다. 저 여자가 잡놈 품에서 버둥거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감히 인간 강지혁을 제 발톱 사이에 낀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걷어 차버리다니……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존심에 쩍쩍 금이 갔다. 여자를 걷어차는 것도 제 몫. 실컷 가지고 놀다가 버리는 것도 제 몫. 저 겁도 없이 까부는 앙큼한 여자를 짓이겨 놓고야 말겠다. 너의 주인이 누구라는 것을 잔혹하게 가르쳐 주겠다. 제 소유물을 빼앗긴 짐승의 눈에서는 잔인한 살의가 넘쳐났다. 제가 얻는 가장 안락한 품을 잃어버린 망연함이 독기로 뿜어져 나왔다.
해윤이 빠른 걸음으로 지혁에게 다가갔다.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그의 난폭한 눈빛에 겁먹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진정하려고 어금니를 꽉 물었다.
“나하고, 얘기 좀 해.”
남의 것에 손대는 개자식은 죽게 때려 눕혀야 정의라 말할 수 있겠다. 그 다음 순서가 너라는 앙큼한 여자가 되겠지. 지혁의 눈동자가 살기로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한쪽 입 끝이 달려 올라가며 낮고도 섬뜩한 목소리를 냈다.
“먼저 해결할 일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저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는데? 바람둥이는 너잖아? 스캔들을 만든 것도 너였고, 날 외면하고 달아난 것도 너였잖아? 해윤은 긴장으로 입안에 고였던 침이 꿀꺽 넘어갔다. 기어코 험악한 꼴을 보게 생겼다.
“점장님은 아무 잘못도 없어. 나하고 해결 해.”
“저 자식을 싸고도시겠다? 그 입 닥치고 기다려.”
진해윤이 잘 봐라. 너하고 뒹군 놈이 어떻게 되는지. 날 열 받게 하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지혁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걸렸다.
저 잔인한 조소. 해윤은 지혁의 표정에 소름이 끼쳤다. 그는 필시 주먹질로 영문도 모르는 사람을 가해 할 것이 뻔했다. 테이블이 엎어지고, 유리잔들이 깨지는 아수라장이 눈앞에 그려졌다. 저 살기등등한 남자는 남의 여자나 탈취하는 오명을 정효에게 뒤집어씌우고 망신살을 뻗치게 할 것이다. 저 사람이 무슨 죄라고 봉변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울고 싶은 여자, 웃게 해 준 것도 죄가 될까? 난 저 사람을 또 어떻게 봐야 하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늪에 발을 들였던 게 맞았다. 열병이 결국엔 최악의 비참함을 불러오고야 말았다. 해윤은 자신이 점점 미쳐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제발, 그러지 마! 내가 잘못했어.”
배신감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간악하게 친구라고 나불거리던 입으로 뭐가 어쨌다고? 잘못? 그 당당하던 콧대는 어디로 간 거냐? 쥐뿔도 모르고 칵테일이나 마시고 있는 잡놈을 바들바들 떨며 감싸다니. 해윤의 저 가느다란 목을 당장 졸라버리고 싶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여자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벅벅 고함치고 싶은데 그래야만 강지혁이다운데 이놈의 목소리는 맥을 못 추고 목구멍으로 기어들어 갔다. 빌어먹게도 간신히 짜내 입 밖으로 시들시들 불러냈다.
“너, 저 자식이 그렇게 좋으냐? 하룻밤 만리장성에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쳤어?”
해윤이 쥐어짜듯 하는 지혁의 말을 듣고는 멍해졌다. 다리가 꺾여 풀썩 이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취직도 더러운 자리에 시켜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넌 날 모른다. 나도 널 모르겠다. 그래,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있다.
“나 그런 짓 안 했어. 우리 그런 관계 아니야.”
해윤은 너무나 허탈하고, 기가 막혀서 비척거리며 객실로 올라왔다.
한참을 소파에 파묻혀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문 밖에서 질투에 눈이 멀어 반은 미쳐있던 남자가 문을 두드렸다. 소리도 질렀다. 그 소란을 무시하고 짐을 챙기다가 정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간단한 메모를 남겼다. 문을 열고나오며 무서운 남자를 외면했다. 그의 광기에 가까운 소유욕이 무서웠다. 열정과 끌림은 이상하게 변형되어 집착으로 바뀌어 버렸다.
지혁이 해윤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다.
“얘기 좀 하자.”
“너하고 할 얘기 없어.”
“난 있어.”
지혁이 잡힌 손을 뿌리치려고 버둥거리는 해윤을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그는 로비로 내려가는 줄 알고 있던 그녀를 최상층에서 강제로 끌어 내렸다.
“이거 놔. 싫단 말이야.”
해윤이 거부하는 것 따위는 아랑곳도 없는 지혁이 카드키를 눌러 꽂았다. 객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버티는 해윤의 가방을 빼앗아 방 안에 던지고, 그녀 역시도 억지로 밀어 넣었다. 노려보는 해윤이 가소롭다는 듯이 지혁이 픽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땀으로 얼룩진 셔츠를 벗어던지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발리라고 생각해라.”
뻔뻔하기 그지없는 지혁을 향해 해윤이 공허하게 웃었다.
“넌 미쳤어.”
“맞아. 너한테 전화 받고 눈이 홱 돌아서 내가 지금 이 꼴이다.”
“넌 내가 쓰레기같이 보이니? 그렇게 헤픈 여자로 보여? 만리장성? 그건 너하고 그 여자가 쌓은 거잖아. 나한테 왜 이러는데?”
지혁이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다 헛소리야. 신경 쓸 거 없어.”
“그래, 그럴 거야. 너란 인간한테 신경 쓰는 것조차도 귀찮아. 그만 하자.”
“그만 하다니? 뭘?”
“모든 것. 널 알고 지냈다는 내 기억조차도 지워버리고 싶어.”
지혁이 해윤을 힐끔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소파에 푹 눌러앉으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이리 와서 앉아. 누구 마음대로 그만 해? 내 손에 들어온 이상, 그만 두고 말고는 내가 결정해. 알아들어?”
“네가 뭔데?”
“나 진해윤이 애인.”
“애인? 너한테 애인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니?”
“내 꺼…….”
“흥! 물건? 네가 갖고 노는 장난감? 네 눈에는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네 노리갯감으로 밖에는 안 보이니?”
“쓸데없이 흥분하지 말고 이리 와.”
“나 말고 다른 애들한테 그런 말은 지껄여. 구역질나는 네 애인 난, 이제 안 할 거야.”
“그만 해라.”
“내가 뭘 했는데? 등 돌린 건 너잖아! 난 등 돌리는 남자 한 번이면 족해. 왜 내 인생에 들어와서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왜 그러는데? 왜 그러냐구? 이 나쁜 자식아…….”
아무리 성질내고 팔팔 뛰어도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남자, 자신을 제 소유라고 손아귀에 틀어쥐고 거드름을 피우는 남자, 느물느물 유들거리는 남자. 해윤이 혼자 악을 쓰다가 제 풀에 지쳐 가방을 집어 들고 객실 문 쪽으로 향했다.
“거기 서지 못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지혁의 성난 목소리에 해윤이 잠시 움찔 섰다가 그대로 묵살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지혁의 그악스러운 손이 달려들어 그녀의 팔을 비틀며 문짝에 돌려세웠다. 그녀를 밀어붙여 양팔로 문을 집고 지혁이 숨을 몰아쉬었다. 단단한 가슴 안에 가두는 남자에게서 해윤은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검붉은 욕망이 타는 그의 눈동자가 숨도 못 쉬게 내려다보고 있어서 긴장으로 굳었던 몸뚱이가 더 경직됐다. 그의 흰자위에 선명하게 그어진 충혈 된 실핏줄이 꿈틀대는 것만 같아서 두려워 반항의 말도, 미약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그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만을 보았다.
겁먹었으면서도 빤히 올려다보는 그녀가 사랑스러워 지혁은 주저 없이 얼굴을 내려 제 여자의 달큰한 입술을 빨았다. 벌어지지 않으려고 앙다문 입술을 거칠게 물어뜯어 입안에 숨어있는 고집 센 그녀의 혀를 빼앗아 핥았다. 비릿한 피 맛이 나는 새침한 그녀의 타액. 며칠 동안 죽어있던 모든 세포와 끈적끈적한 욕구가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입술을 물면서 산소가 공급되고 피가 돌아 마침내 수컷의 욕정이 깨어났다. 꾹꾹 눌렀던 짐승의 발기, 소유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집착, 그 모든 것이 합쳐져 그녀를 그윽한 눈길로 응시하게 했다. 저 자신도 모르게 반쯤은 미쳐서 의심했던 제 여자에게 미안해져서 지독하게도 은근한 목소리를 냈다.
“진해윤, 난 너에게 등 돌리지 않아. 죽어도…….”
“넌 이미 돌렸어.”
“내 생애 최초로 여자라는 족속을 위해 한다고 한 배려가 널 화나게 했구나!”
비록 오만과 집착이 담긴 눈일지라도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진 않았다. 그럴싸하게 둘러대며 변명을 하지 않더라도 그의 진실은 가슴으로 느껴졌다. 소유욕에 제 정신이 아닌 채로 의심하고, 닦달하며 이틀을 보냈을 그가 안쓰러워 마음에 치였다. 단지 배려가 되었던 무신경이 되었던 등 돌렸다는 그의 행위 자체를 용서할 수 없었다. 다시는 등 돌리는 남자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끔찍한 기억을 다시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다시는 내 눈에 네 등, 보이지 마. 죽여 버릴 거야.”
해윤이 그의 목에 덩굴처럼 팔을 둘러 매달렸다. 발끝으로 서서 그의 입술을 찾아갔다. 자신을 홀리는 수컷의 짙은 페로몬. 거부할 수 없이 그에게 딸려가는 인력. 미치도록 보고 싶던 그를 안았다. 잔인함에 중독된 자신을 깨닫게 된다. 갈구하던 그의 입술을 마음껏 물었고, 또 가졌다.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려 이 남자가 흐리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