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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선(소나기) 지음로망띠끄201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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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 979-11-258-137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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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짓을, 아니 지금 자신이 어디에, 민경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고 입을 틀어막았다. 며칠 전 기환에게 경고를 받았을 때 도망쳐야 했을까. 아니, 이 남자가 여기까지 올 거란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두려움이 온몸을 감싸 안았고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와 처음으로 나눈 키스도 아니었고 마지막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 무섭고 두려웠다. 도망쳐야 했다. 어디든 멀리, 그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 하지만 미처 행동을 옮기기도 전에 시동이 걸리더니 이내 차가 출발했다.
무엇이든 물어야 하는데 목이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자신은 멍청이가 아닌데…… 이렇게 이 남자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 되는데,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은 민경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대었지만, 이내 거친 손길에 제지당하고 말았다.
“얌전히 있어.”
“지금 당장 차를 세워요.”
힐끔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싸늘한 냉기만이 가득했다. 해볼 테면 어디 해보라는 듯 그는 전방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빛을 따라가던 민경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순간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조수석 문을 열면 그럴 틈도 없이 반대차선으로 질주해버릴 거라는 것을. 그런 무언의 말이 더 무섭고 소름끼치게 했다.
“당신 정신병자야.”
큭 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차가 주택단지로 들어가더니 이내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내려.”
운전석을 돌아 조수석 문을 잡아당겼다. 등을 세우고 꼿꼿하게 앉아 그가 무슨 말을 하던 신경 쓰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강제적으로 내리게 하더니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본론만 얘기하자. 기환이한테 떨어져. 그럼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지.”
“무엇이든 주겠다…… 지금 그 말씀을 하신 건가요?”
왼쪽 눈썹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민경은 소리쳐 웃고 싶은 것을 참았다. 처음 예감대로 기환을 친구로 하는 게 아니었다.
“약혼을 하겠다고 하던데.”
“네. 설마 반대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는 온몸으로 반대 입장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에 있어 보았자 피차 좋은 말을 듣기 어렵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기환이보다 나는 어때?”
이게 무슨…… 갑자기 쿵하며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난 것 같았다. 그게 테이블에 놓여 있던 컵이 바닥에 떨어져 나는 소리라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실어 걸음을 옮긴 순간, 그의 손이 어깨를 세게 내리눌렀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감추며 거칠게 손을 쳐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진그룹의 총수 부인이라면 상당히 유혹적인 제안일 텐데.”
“상당히 더러운 제안이죠. 설마, 동생의 여자에게 관심 있는지 몰랐는데요.”
“관심 있어. 그 무엇보다도 더 많이.”
어린아이가 신기한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 떼를 부리는 것처럼 한순간의 호기심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물건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에 있는 남자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제게 향한 관심 다른 분을 위해서 아껴두시죠. 바빠서 가봐야 할 것 같으니까 이제 그만 보내주시겠어요.”
“집까지 데려왔다면 순순히 보내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 텐데…….”
그가 하는 말이 괜한 엄포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그렇다고 속절없이 그에게 끌려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오늘 이 집에 오는 게 아니었다.
“절 강제로 갖기라도 하시겠다는 건가요?”
“방법이 없다면 그 방법도 괜찮겠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그의 말투에 민경은 목이 조여지는 듯해 숨을 힘겹게 조절했다.
“그럼 그게 강간이라는 것도 알고 계시겠네요.”
비릿한 냄새와 함께 집 안 공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그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는 충분히 알아차렸다. 그리고 지금 그가 있는 서 있는 위치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민경은 알 수 있었다.
“상관없어. 난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쪽이거든.”
“그럼 본인이 아주 삼류 저질이라는 것도 알고 계시겠네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웃고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이 없자 민경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올려 그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얼마나 때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 손이 얼얼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한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배를 때리고 발로 차고 별짓을 다해 보았지만, 제지하지 않았다.
민경이 너무 지친 나머지 털썩 주저앉자 그제야 한마디 내뱉을 뿐이었다.
“충분히 분이 풀린 것 같은데, 그럼 이제부터 내 차례군.”
[미리보기]
윤석환…… 그를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 차가움이 온몸을 감쌌다. 어느 한 군데 온기라고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남자. 그런 그가 자신의 남편이 된다니…… 갑자기 죄여오는 숨을 조절하려 했지만, 누군가 숨구멍을 막고 있는 것처럼 눈을 뜰 수 없었다.
막 의식을 잃으려는 찰나, 시야로 민경이 그토록 증오하는 남자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언제 그랬나 싶게 의식을 되찾았다.
아주 천천히 그의 시선이 온몸을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얀 드레스 안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 손길을 뻗쳐 얼굴을 쓰다듬으려는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그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는가 싶더니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양이도 얌전해야 귀여운 법이야. 적당히 해.”
“개자식.”
얼굴에 침을 뱉자 그는 태연하게 장갑 낀 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나는 원래 적이 많은 사람이야.”
그의 말은 민경이 겁을 먹기에 충분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가냘픈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이제 그만 나가지.”
“언젠가 당신을 꼭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 말 거야.”
“농담도 적당히 해야 재미있어.”
성큼 앞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옆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잡아끌었다. 드레스의 앞자락을 밟아 넘어지려는 순간, 그가 잽싸게 민경을 끌어당겼다. 그의 손길에서 벗어나려 몸을 잡아 빼려 했지만, 용납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너에 대한 내 흥미는 늘어날 뿐이야. 그리고 난 네게서 얻을 수 있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어.”
민경은 아무 말도 없이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죽어도 안 줘.”
“흥, 과연 그럴 수 있나 보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 안으로 밀어 넣더니 바로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두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이 차가 출발하자 본능적으로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손을 뻗치면 닿을 정도로 맑은 파란 하늘처럼 날씨는 무척이나 깨끗하고 맑았다.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그런 그녀의 마음을 하늘이 알기라도 한 것처럼 뭔가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엄청난 파열음이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사고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누군가 그녀를 세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