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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경 지음로망띠끄2015.06.29979-11-258-1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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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258-1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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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이름의 전자책 모음  (전권 구매시 3,500원)


태어나면서부터 환씨 일족의 주인으로 키워진 서른둘의 남자 환이한. 열 살 때부터 산속에서 혼자 자라난 스무 살의 여자 천진. 십 년 전에 천진의 아버지와 한 약속으로 스무 살이 된 천진을 집에 데려오는 이한. 일족에 대한 책임감과 주인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감을 벗어날 수 없는 이한과 달리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아름다운 천진. 두 사람의 솔직하고 꾸밈없는 사랑이야기.


-본문 중에서-

아침 식사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묘했다. 이상하다는 말로 정의하기는 부족했다.
“곧장 갈 거냐?”
“네.”
이한의 피곤해 보이는 눈이 진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빛이 날 정도로 건강해 보이는 진은 잘 웃지 않던 얼굴에 미소를 진하게 달고 이한의 말에 대답했다.
“일찍 갔다가 일찍 돌아올 생각입니다.”
진의 대답에 이한의 반응이 남달랐다. 좋아하거나 담담하게 넘기거나 둘 중 하나일 줄 알았는데 불만과 감동을 넘나들었다.
“조심해.”
“네. 다치지 않고 돌아오면 다시 같이 잘 수 있는 겁니까?”
땡그랑,
현석이 놀라서 수저를 놓쳤다. 이 씨의 질책의 눈을 곧바로 받으며 현석은 얼른 수저를 찾아 들고 눈을 내렸다. 이한은 진의 질문으로 매우, 많이, 엄청나게 힘들었던 지난밤을 떠올리느라 현석과 이 씨의 말없는 대화를 신경 쓰지 못했다.
“이한, 안 되는 겁니까?”
“돌아와서 다시 이야기하지.”
“알겠습니다.”
실망한 표정으로 진은 식사를 마쳤다. 현석은 다시 잡은 수저로 밥을 떠먹지 못했고 이한은 다시 불만과 감동을 넘나드느라 식사를 마치지 못했다.
“준비하고 내려오겠습니다.”
진은 평소대로 가볍게 몸을 움직여 이층으로 올라갔다. 출근하려고 준비한 이한은 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예전엔 진과 어떤 사이로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오늘밤은 대체 어떤 자세로 진과 함께 해야 하는 걸까? 차라리 지난밤이 나은지도 모르겠다. 잠들어버린 진을 어찌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욱 간단했기 때문이다. 오늘 밤은 진이 쉽게 잠들지 않을 것이다. 그럼 정말 복잡해진다. 몸과 마음은 학수고대하던 일이 분명한데 정신이 여러 가지 문제들을 늘어놓아 힘이 들었다. 그의 머리는 막 시작하는 사이로 진행되는데 그의 몸과 마음은 진의 몸과 마음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진과, 그러니까 진과 내가, 휴, 아니다.”
현석에게 전에는 자신이 진과 어떻게 지내는 사이였는지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잠깐 본 이 씨는 웃음을 꾹 참고 있었다. 알아도 문제 몰라도 문제였다.
“준비 다 됐습니다.”
쌀쌀해진 날씨에 맞게 도톰한 겉옷과 움직이기 편한 운동화를 신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녀의 복장으로 그녀가 가게 되는 곳이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 다시 확인되었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주시면 됩니다.”
진은 평소처럼 다시 이한의 옆에 앉았다. 진이 옆에 앉아 좋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이한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손을 잡을까? 안고 있어도 되나? 그냥 이렇게 다녔는지도 몰라. 이런저런 생각으로 불편해진 이한이 한숨을 흘렸다.
“이한, 다시 절 잊으시면 안 됩니다.”
“물론이야.”
이만큼 지낸 걸 또 잊고 다시 시작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지금은 그래도 키스는 마음대로 하는 사이니까. 이한은 진의 허리를 감아 품으로 당겼다. 따지며 조심하고 싶지 않았다. 진은 그녀의 마음을 확실하게 드러냈으니까. 품에 안긴 진이 자연스럽게 그의 입술을 기다렸다. 역시 따지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한은 마음으로 웃으며 진의 입술을 가졌다.

미리보기

진은 답답해서 언뜻 본 테라스 문을 열고 나왔다. 신을 신지 않아 나무 바닥을 지나자 바로 땅을 느낄 수 있었다. 잔디의 부드러움과 땅이 주는 따뜻함을 느꼈다. 어두워지는 하늘과 답답한 마음이 어울렸다. 집처럼 넓은 잔디가 끝나는 곳에 작은 정자와 연못이 있었다. 큰 산속에서 살던 탓에 작은 것에 익숙하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담 안쪽으로 서 있는 나무들이 제법 크고 굵었다.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만지자 기분이 좋아졌다. 좋은 냄새. 산에서 맡던 냄새는 아니지만 나무 냄새다. 눈을 감았다. 어스름한 하늘 아래, 나무 그늘이 주는 포근함과 향기에 잠시 현실을 잊었다.
부스럭,
더 오래 현실을 잊고 싶었지만 방해가 있었다. 소리는 등 뒤에서 났다. 아주 조심스러운 접근이 내는 소리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위험한 어떤 것을 경고했다. 등줄기에 전기를 맞은 것처럼 통증을 내기는 오랜만이다. 더 생각하고 조심할 것도 없었다. 나무를 발로 차며 다가오는 위험을 향해 튕기듯 돌진했다.
“읏!”
손이 단단한 근육에 닿은 순간 남자의 절제된 신음소리가 들렸다. 선제공격이 먹히지 않은 걸 알고 얼른 몸을 남자에게서 떨어뜨리려 했지만 늦었다. 남자가 더 빨리 자기 가슴에 있던 진의 손을 잡아끌어 당겼다. 진은 남자의 손에 호락호락 딸려가 줄 생각이 없다. 몸을 말며 복부에 무릎을 꽂으려 했다. 그러나 그 남자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릎이 남자의 손바닥에 밀쳐지며 남자의 품에 완전히 몸이 밀착되었다. 진의 허리는 남자의 팔에 점령당했다. 한 손은 남자의 손에 잡혀 위로 들려 올라가 있었다. 남은 한 손은 어이없는 상황에 놀라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앞으로 할 일을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군.”
내려다보는 남자의 얼굴이 어스름한 빛으로 드러났다. 빈틈이라곤 없는 날카로운 눈빛이 찌를 듯 진을 내려다보고 있다. 몰아치는 공격으로 숨을 크게 쉬는 진과 달리 남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온몸이 잡혀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 패배감이 들었다. 지고 싶지 않았는데.
“밖으로 나올 때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상식을 지켜라.”
손은 놔주었지만 허리는 여전히 꽉 잡힌 그대로였다. 이젠 떨어지고 싶은데 남자가 허락하지 않는다. 몸을 비비적거리며 애원하기 싫어 가만히 있었다. 눈빛을 피하려고 잡혔던 손목을 만졌다. 그리 아프지는 않았지만 지금 할 일이 그것뿐이었으니까. 
“사장님.”
진을 데려왔던 남자가 다가왔다. 진은 자존심이 더 상했다. 패배를 여러 사람에게 들켰으니까.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알았어. 이런.”
현석에게 대답하고 내려다본 그의 눈에 진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손목을 문지르는 것에 속이 상했는데 입술까지. 엄지손가락으로 진의 턱을 눌러 아랫입술을 뺐다. 불만 가득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진의 눈에 분노와 수치가 가득했다.
“내려주세요.”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었다. 사장님이란 남자가 안아 올려 움직였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지는 안다. 그래서 서둘러 입을 열었다. 첫 싸움에서 진 것도 억울한데 이런 패잔병의 몰골로 잡혀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공짜론 안 돼.”
남자는 현관문 앞에서 멈추었다. 힘을 주어 품에서 벗어나려 하는 진을 단단히 다시 고쳐 안았다.
“말하세요.”
힘으로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걸 다시 알게 돼서 화가 났다. 힘이나 주지 말 것을. 
“머리카락 정도는 잘라 줘야지.”
“좋아요.”
이한은 골려줄 생각에 탐스런 머리카락을 보며 말했다. 그러나 진은 단 일초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곤란하다. 순간적인 당황으로 힘이 살짝 빠진 것을 계약 성립으로 알았는지 진이 재빨리 바닥에 내려섰다. 진이 빠져나간 품이 허전하다.
“내일 외출에서 자르고 오겠습니다.”
“외출? 누구 마음대로?”
당장 내일 자르다니. 허락하고 싶지 않다.
“속옷이 없습니다. 벗고 살 수는 없잖아요?”
“얼마간은 버틸 수,”
“없습니다. 이 남자 분이 짐은 하나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해서 그냥 왔습니다. 지금도 속에 아무것도 못 입어서 불편해요.”
현석은 진의 말에 대답도 없이 가만히 있는 이한을 보았다. 표시나진 않지만 놀라고 당황해서 할 말을 잊은 것이 분명했다.
“제가 내일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해.”
이한은 현석의 대답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진은 분한 얼굴을 숨을 내쉬며 감추더니 현관문을 열었다.


유수경

고단하고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시작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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