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사내에서 마주친 민은채라는 여자.
두드려도, 두드려도 도통 반응일랑 없다. 오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직접적으로 표현을 해도 여전히 무반응. 두꺼운 벽을 가지고 저를 막고 있는 벽을 과연 허물 수 있을까? 무채색의 담담하고 목석같은 그녀에게 끌리게 되고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한성의 감정은 점점 깊어진다.

“눈치가 느린 건가, 아니면 나를 가지고 즐기고 있기라도 한 건가?”
“무슨 말씀이신지.”

감정에 집착을 하며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방어적으로 대하는 민은채.
그런 그녀의 마음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차한성.
두 사람의 감정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본문 중에서-

“은채 씨.”
“네?”
사무적으로 전해지는 무미건조의 음성. 그녀는 어느 것 하나 예상을 빗나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예상을 빗나가지 않게끔 늘 일관적으로 행동을 한다. 불러 세운 사람이 민망하게끔 빤히 쳐다보며 얼른 용건을 말하길 기다린다.
”점심 약속 있어?”
“아뇨.”
“그럼 이따가 점심 함께하지.”
“네.”
짧게 목례를 하고 다시 미련 없이 뒤돌아 가려던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녀의 모습이 작아져 곧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점심을 함께하자는 말이 상투적이고 익숙한 구절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녀와 나 사이에서는 이례적인 말이었다. 왜 굳이 저와 함께 점심을 하자는 거지? 라는 의문의 표정도 하나 없이 그녀의 대답은 간결하고 간단했다. ‘네.’ 딱히 그것 말고 달리 대답할 거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점심 약속이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했으니 당연히 함께하자는 말에 구구절절 늘어놓을 것 없이 간결하게 ‘네.’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도 느껴지는 특유의 건조함과 딱딱함은 무엇일까. 표정하나 일렁임 없는 대답에 곧 싱거워져서 괜히 김이 샌 기분까지 든다. 몇 번째 같은 패턴. 일종의 지겨운 반복임이 틀림없다. 누가 한 말이 떠오른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거듭 증명을 거쳐서 탄생한 말일까? 의문스럽기 그지없다. 사라지고 없는 그녀의 잔영을 찾아 헤매는 본인의 모습이 어쩌면 우습기까지 하다. 이야, 차한성. 너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냐? 어이없는 물음까지 덧붙여 본다.

천천히 느리게 그러나 부지런히 한 별, 한 별 밤하늘에 총총히 소소한 일상을 수놓고 싶은.   

 
-출간작-

[어느새, 어쩌다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너와 내가 사랑을 한다는 일]   [손끝의 마호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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