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떡, 5시간 전에 내가 만든 떡으로 아는데요?”
“응, 알지. 그래도 지금은 내가 주는 떡이야. 예민 낭자도 먹어 봐.”
“자꾸 예민 낭자라고 부를 거예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떡집 옆에 빵집이 들어섰다.

“나 곧 나갈 테니까 시원히 볼일 보라고. 그게 뭐야 소심하게.”

아침마다 화장실과 욕실을 같이 써야 한다니. 하루도 속편할 날이 없다.



“벌레 무서워해. 피 두려워해. 당최 믿을 구석이 없는 그 남자. 당신은 마마보이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 완전 깔끔, 완전 꼼꼼, 예민 낭자 가인.

“자 들고 가만히 있는 떡 줄이나 맞추고, 하루 종일 문지르고 닦아대는 여자. 세상에 예민 낭자보다 성격 까칠한 사람은 없을 거야!” - 철천지원수, 빵집 남자 재원.


아무리 생각해도 악연이 분명했다.
빵집 아저씨가 회장님 아들이더니, 교수님에, 건물주에 다음에는……?


[미리보기]

“근데 예민 낭자.”
떡을 찍어 먹으며 쇼윈도를 통해 공사현장을 바라보던 부인이 우물거리며 가인을 불러 세웠다.
“네?”
“내가 미리 말을 안 했는데 말이야.”
질리지도 않을까. 매번 먹는 가래떡이 무슨 맛이 있다고 언제나 그토록 맛있게 먹는 것인지 가인도 가끔 뜯어 먹던 떡이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떡을 먹는 부인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초등학생의 천진난만한 소박함이었다.
“화장실이랑 욕실.”
가인은 부인이 바라보는 쇼윈도를 함께 바라보았다. 진열대가 들어서는 것을 보아하니 우려했던 커피숍은 아닌 모양이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냐고 몇 번을 물어도 부인은 그저 딴청만 피울 뿐, 여태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속히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공사가 마무리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가인이 아니던가.
“저쪽도 혼자 여기서 숙식을 한다고 그러거든. 내가 안 된다고 내내 뜯어 말렸는데도 어디 들어야 말이지.”
가인은 진열대 공사가 한창인 가게 반대편을 바라보느라 열중이었다. 부인의 무심한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을 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총각 혼자 지낼 테니까, 시간대 조절만 잘하면 크게 부딪칠 일 없을 거야.”

공사는 보름이 좀 넘게 걸렸다. 부인의 무성의한, 하지만 뭔가를 암시하는 것 같은 말의 뜻을 진즉에 깨달았어야 한다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를 해봤자 이미 모든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떡집 옆에 빵집이 뭐야!”
음식점은 절대 안 된다더니 자신도 그 룰을 깨고 떡 카페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바로 옆에 빵집은 절대로 말이 안 된다고 울부짖은 것은 공연한 투정은 아니었다.
“오랜만이야, 아가씨. 우리 잘 지내보자고.”
7,000원 거스름돈의 찜찜함이 이렇게 악연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선우베이커리]라는 촌스러운 간판이 [예랑]의 간판 옆에 나란히 올라갔을 때도 설마하니 그 선우재원의 ‘선우’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 남자가 떡하니 앞에 버티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친한 척, 은근히 말까지 놓는 것에 가인은 얼굴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저기요!”
“난 저기요가 아니라 선우재원이라고 해.”
그때 마침 재원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벨소리만 듣고 액정을 확인하지도 않고 재원은 입술 먼저 씰룩거렸다.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내내 울려대는 벨소리에 재원은 눈썹을 치켜뜨며 휴대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엄마, 내가 어린애야? 알아서 한다니까!”
잠시 잊고 있었다. 지난 번, 재원이 통화를 하면서 집 나가버린다는 협박을 하고, 어떻게 어르고 달랬는지 금방 헤벌쭉 웃으며 사라졌던 모습이 순간 다시 떠올랐다.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마마보이라니, 가인은 헛웃음만 치며 전화를 끊기만을 기다렸다.
그냥 쌩하니 돌아설 수도 있었지만 불렀던 이유가 다시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에, 가인은 전화를 끊는 재원을 향해 대뜸 눈을 흘겼다.
“내가 왜 그쪽이랑 잘 지내야 해요?”
“몰라서 물어? 우린 이제 이웃이라고. 뭐 그다지 내키지 않으면 취소하도록 하지.”
“이봐요!”
돌아서서 자신의 빵집으로 들어가려던 재원을 가인은 다시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이름을 가르쳐 주어도 여전히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3인칭 호칭으로 자신을 불러 세우는 것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는 양, 재원은 입맛을 다시며 다시 가인을 바라보았다.
가인은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주섬거리더니 돈을 세 번이나 꼼꼼하게 세어 재원에게로 다가섰다. 대뜸 재원의 손을 잡고 그의 손 안에 센 돈을 쥐어주며 다부진 목소리로 또박또박 이야기 했다.
“전에 거스름돈이에요.”
“그냥 팁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내가 그 쪽한테 팁을 왜 받아요?”
“덕분에 상권 분석 제대로 하고, 뭐 나도 그냥 빵만 만들어 파는 것보다 이렇게 카페 하는 게 낫겠다 커닝을 할 수도 있게 해줬고. 겸사 겸사지.”
“뭐라고요?”
처음 볼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은 남자였다. 가만히 재원이 처음 예랑을 왔을 때를 떠올려 보자니 그제야 그의 시커먼 속이 보이는 것 같아서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다. 가인은 빵집을 들여다보았다. 이제 곧 오픈을 할 것처럼 빵집 안의 전경은 완성되어 보였다.
“상권 분석에, 카페 아이디어까지. 고작 7,000원을 지불한 빵집이 잘될 턱이 있겠어?”
말은 그리 내뱉으면서도 내심 불안한지 가인은 여전히 빵집 앞에서 기웃거렸다. 예랑의 쇼 케이스보다 두 배는 넉넉해 보이는 것과, 엔틱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테이블, 그리고 그 테이블이 너무도 고급스럽게 보이는 벽면 장식까지.
가인은 조잡스럽거나 복잡하거나 무거워 보이는 분위기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예랑을 인테리어 하면서 무조건 심플하고 모던한 분위기를 내내 요구했었다. 테이블도, 장식품들도, 거기에 어울리는 작은 소품들까지도 모두 가인이 직접 선택을 하고 배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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