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녀를 다시 보았습니다.
지난 5년 동안 한시도 잊지 못하던 그녀가 다른 남자와 다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더군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그 시절에, 그녀가 느꼈을 고통이 이렇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나란 놈은 내가 생각해도 진짜 나쁜 놈입니다. 4년 가까이나 그녀에게 이 큰 아픔을 주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인 그날 아침 이후로 그녀는 5년을 넘게 내가 준 상처 때문에 가슴 아파했을 테니
까요.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본문 중에서>


종빈의 손이 머뭇머뭇 너무도 조심스럽게 정현을 향해 다가왔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몇 올이 귀 뒤로 넘겨지고, 긴장한 턱선을 따라 뜨거운 손가락들이 미끄러졌다. 그 순간 그녀의 버썩 마른 입술을 가르며 얕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러자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 위를 그의 검지와 중지가 부드럽게 쓸고 지났다.

그녀의 숨결이 빠르게 흔들렸다. 그에 맞춰 그의 손가락들도 파르르 진동했다. 힘들게 손길을 거두어들이는 그의 타는 듯 따가운 시선 속에 짙은 갈망이 어렸다.

“잘 자.”

종빈은 탁하게 갈라진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정현이 뭐라 대답할 사이도 주지 않고 현관문을 닫았다. 잠시 후, 그의 나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문을 타고 넘어왔다.

“정현아?”

“네?”

정현은 현관문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한껏 달아오른 몸을 차가운 철제문에 기댔다. 그러나 피부를 식혀주는 냉기보다 그의 뜨거운 열기가 더욱 절실했다.

“우리 결혼하자! 나 너랑 같이 살고 싶다.”

또 다른 속삭임이 절규하듯 그녀의 가슴을 커다랗게 울렸다. 손잡이를 움켜쥔 두 손에 시퍼런 핏줄이 섰다. 정현은 한껏 까치발을 하고서 그의 뜨거운 입술이 있음직한 위치에 자신의 것을 가져다 댔다. 사무치도록 그리운 열기 대신 싸늘한 냉기가 입술을 덮었다.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 역시 입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종빈은 차가운 현관문에 입술을 겹쳤다. 잠시 전 손가락 아래서 느껴지던 부드러운 숨결 대신 가슴 저릿한 침묵이 입술을 파고들었다. 그녀의 온기가 그지없이 그리웠다.

“사랑해!”

    

대학에서 국제경제학을 공부하였으나

전공과는 아무 상관없는 연애소설을 쓰면서

10년 넘게 글쟁이로 살고 있음

오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얼마 전 귀국

현재 경기도 모처에 은둔

역사 로맨스 [바람서리]를 끄적거리며 허송세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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