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소개

지킬 수 없었던 열아홉의 여리고 어린 사랑. 긴 세월, 고통이 된 이별.

미쳤다.

아마 그 순간만은 미쳤다 해도 상관없었다.

스스로를 잊고 싶었으니까.

그것은 안아주는 여자도 안던 남자도 같은 감정이었다. 온기가 필요했으리라.

두려움 같은 것,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서로가 눈앞에서 사라질 것 같은 신기루 같아 현재가 절박했다.

2. 작가 소개

이서윤

maroooo00@paran.com

착실한 직장인에서 일탈을 꿈꾸고파 글을 시작한 소심쟁이. 

꿈은 이뤄진다(夢想成眞)라는 믿음을 가진 낭만주의자.

해피엔딩이 좋아 로맨스를 쓰는 해피엔딩 마니아.

작가연합 ‘깨으른 여자들’에서 활동. 

▣ 출간작

『안개 속에 숨다』

『왈가닥 결혼하다』

『태양의 제국』

『프레지던트』

『매화우』

『비연』

『독감』

『해후』

『그 여자, 그 남자를 만나다』

『화흔』

『효월』外 

3. 차례

프롤로그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에필로그

그리고 그 후

4. 미리 보기

다음 순간, 라윤은 숨을 멈췄다. 빠르게 다가온 입술이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머금었다. 잠시의 머뭇거림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로지 느껴지는 것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감미롭다는 느낌뿐.

“하지 마!”

“가만있어, 라윤아.”

심장을 울리는 목소리. 단숨에 몰려든 뜨거운 숨결. 마른 입술을 적신 혀끝이 감미롭다. 격렬하지도 않건만,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그녀를 옭아맸다.

“흡!”

숨결이 묶였다. 결박하듯 두 팔을 붙들고, 온몸의 체중을 그녀에게로 실은 강혁의 키스는 놀랍도록 친절했다. 가만있으라는 말은 마치 주문과 같아, 강혁은 그대로 얼어버린 라윤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왔다. 한순간 뜨겁게 그녀의 혀를 휘감았다.

키스조차 너무도 오래된 기억. 라윤은 당황했고,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강혁은 지독히도 부드러웠다. 감미롭게 혀를 빨아들이고, 서러움에 주춤대는 그녀의 여린 곳을 다독였다.

너……, 나한테 왜 이래.

모든 것은 마음이 가는 대로. 울컥 올라온 감정이 투둑, 눈물을 밀어내는 것도 모른 채, 라윤은 강혁의 입술이 움직이는 대로, 그의 혀가 움직이는 대로 자신을 놓았다.

“네 느낌……, 변하지 않았어.”

긴 입맞춤 후, 강혁이 입술을 떼어내며 씁쓸하게 웃었다. 기억을 더듬듯 눈빛이 흐려졌다. 하지만, 그와 달리 라윤의 눈빛은 한순간 화륵 불길이 솟았다. 꼭 쥔 주먹 위로 하얗게 관절이 드러났다. 몽롱한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니,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는 얼굴이 벌게졌다.

“유강혁……, 나쁜 놈.”

강혁은 피식 웃었다.

“아직도 그 정도 욕밖에 할 줄 몰라?”

손가락으로 자신의 타액이 묻은 그녀의 입술과 젖은 볼을 쓸며 강혁은 다시 한 번 그녀의 유혹적인 입술을 물었다 놓았다. 라윤이 고개를 세게 흔들어 거부했지만,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강하게 붙든 채, 강혁은 자신의 흔적을 거세게 남겼다. 발갛게 상기된 라윤의 얼굴을 보며 입술 끝을 올렸다.

“나쁘다고? 그건 내가 할 말이야.”

거친 숨결을 가다듬던 강혁이 냉정하게 내뱉었다. 동시에 라윤의 눈가로 주륵 물기가 굴렀다. 서러움이 몰려들었다.

한라윤, 왜 이래. 왜 이렇게 바보처럼 굴어!

틈도 없이 무너지는 자신에게 실망했다. 안간힘을 써 버텨온 지난 시간이 물거품처럼 한순간 무위(無爲)가 된다. 이러려고 그렇게 기를 쓴 것이 아니었는데.

“우리 개인적으로 볼 일 없어. 봐서 좋을 사이 아니잖아. 비켜!”

라윤은 강한 힘으로 강혁을 밀쳤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그녀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렇게 사라지는 라윤의 뒷모습에 강혁의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감정이 변할 수 없어. 그래 결코. 그러니 널 찾아 이렇게 왔겠지. 단숨에 널 찾아냈겠지. 이것도 우리 인연이라면.

하나도 변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10년 전 그때, 그들의 풋풋했던 십 대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아름다워진 여자. 그 뒷모습에 강혁의 눈빛이 씁쓸해졌다.

쿵!

순간 꽉 쥐었던 그의 주먹이 벽을 내리쳤다. 진득한 아픔이 손등을 타고 뇌리까지 전해졌지만, 강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희미하게 일렁이는 통증. 그곳보다는 가슴이, 그곳의 심장이 욱신거린다. 이미 10년 전 말라버린 심장이 버석거렸다. 살아난다는 증거일까. 예기치 않던, 하지만 조만간 이뤄질 것이라 기대했던 여자와의 만남은 그의 심장을 울렸다.

한라윤, 나는 결코 변하지 않았어!

여자는 여전히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밀어내던 그때처럼, 여전히 밀리고 있는 것은 자신. 곁을 맴돌고 있는 것 또한 그의 바람.

강혁은 상처 입은 들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잊은 것이……, 아니었나.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은 한라윤이라는 이름. 예상은 했어도 이렇게 완벽히 패배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녀의 숨결 하나에도 떨던 그때처럼, 지금 또한 변한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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