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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기린왕의 상아 3
깡다케이 지음가하에픽2014.11.04
| 판매정가 | : |
|---|---|
| 판매가격 | : 2,500원 |
| 적 립 금 | : 0원 |
| 파일용량 | : 483 KByte |
| 이용환경 | : PC/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타블렛 |
| 독자평점 | :  [참여수 0명] |
| 듣기기능 | :  TTS 제공 |
| ISBN | : 979-11-295-0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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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우리 정말, 혼례 올리는 거예요?”
나투 제국 사하 기(麒) 가문의 당주, 세이란. 어느 날 세이란은 황제의 모략으로 거의 죽은 목숨으로 쫓겨나 예국 선왕의 아들 류아신을 만나 그와 마음을 나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하룻밤 동안 꾼 꿈이 아닌가! 게다가 그 꿈은 바로 세이란 가문 당주만이 미래를 예견하며 꾼다는 예지몽이었다.
황후가 된 여동생까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불길한 예지몽. 결국 세이란은 예지된 미래를 제 힘으로 바꾸기 위해 쿠혼 산맥 너머 예국 땅으로 꿈속의 남자 아신을 찾아 길을 나서는데…….
“네가 달려드니까 그렇지.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꿈인가? 아니지. 이 손에 남는 더러운 감촉이 꿈일 리 없지. 그럼 네가 진짜 세이란이냐?”
자리에서 일어나고 이 잠깐 동안 완전히 정신이 들었는지 테이가 방금 세이란과 닿았던 손을 내려다보며 몸서리치곤 세이란을 향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래, 나 세이란이야. 이제 정신이 좀 드니, 사하 린 테이? 그리고 이쪽은 내 정혼자인 아신이야. 인사해.”
이 와중에 아신에 대한 소개도 잊지 않는 세이란이 기특하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면 좋을지 모르겠다.
“류아신이다.”
“사하……. 아니, 린 테이입니다.”
※ ‘가하 에픽’은 다양한 시대, 색다른 소재, 독특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출판 가하의 새로운 브랜드입니다. 로맨틱한 판타지가 가득한 가하 에픽, 지금 만나보세요!
2. 작가 소개
깡다케이
반짝거리고 예쁜 로맨스가 좋아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현재 조아라(www.joara.com)에서 연재 활동 중입니다.
▣ 출간작
템페스트
야만과 이체
기린왕의 상아
3. 차례
#15. 재연 - 예고인연
#16. 테이 - 나투기담
#17. 대화 - 예국생활
#18. 嫁娶 - 화촉지전(華燭之典)
#19. 정인 - 심심상인(心心相印)
#20. 전조 - 나나지성(儺儺之聲)
#21. 대치 - 금의야행(錦衣夜行)
#22. 기린 - 왕의상아
#23. 終場 - 마지막 꿈
4. 미리 보기
장원각 별채에 테이를 옮겨 눕히고 나자, 방 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림, 이제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해줘.”
세이란이 무거운 목소리로 이림을 부르자 이림이 불안한 눈으로 사위를 살피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른 분들 계신 곳에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이란 님.”
“믿을 수 있는 분들이니 말해도 괜찮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위험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삼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림의 대답에 말문이 막힌 세이란이다. 위험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가 상당해 세이란이 조심스레 양화 부인과 리인에게 자리를 피해줄 것을 눈짓하자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섰다. 아신만 세이란의 곁에 남자 이림의 시선이 오롯이 아신에게 머물렀다.
“내 정혼자인 아신이야.”
누구인지 살피는 이림에게 아신을 소개하자 이림이 안 그래도 큰 눈을 커다랗게 치켜뜨고 아신과 세이란을 번갈아 바라보다 급히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테이 님을 모시는 이림이라고 합니다. 세이란 님의 정혼자인 줄 알았으면 진작 인사를 드렸을 것을요. 인사가 늦어 송구합니다.”
약혼에 대한 축하인사를 하는 이림이 이 상황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지만 축전을 하는데 되었다 사양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다시 천천히 테이의 이야기로 화제를 돌린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기(麒) 가문의 어르신을 뵈었습니다.”
“아버님 말이냐?”
“예. 세이란 님은 예국으로 가셨다고. 예국으로 가서 장 행수를 찾으면 세이란 님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하시기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세이란이 어디로 향했는지 다른 이들에게는 부디 비밀로 해달라 당부하고 떠나온 세이란이다. 그런데 어찌 이림에게 세이란의 행방을 말해준 것인지 고개를 갸웃하며 정말 아버지가 그리 쉽게 대답해주더냐고 되묻자 다시 조개처럼 입을 다문 이림이 풀 죽은 강아지마냥 테이를 한번 바라보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의지할 데가 세이란 님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당장 세이란 님이 계시지 않아서……. 상황이 급박하여 어르신도 대답해주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몇 번인가 모른다고 대답한 연후, 간절히 부탁하는 이림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따로 불러 조용히 세이란의 행방을 전했다고 하니 도대체 나투 상황이 어찌 돌아간 것인지 의문만 증폭되어갔다.
불길한 예지몽을 피해 예국으로 건너온 세이란인데 그녀를 좇아 테이까지 예국으로 왔다. 꿈과 관계가 있는 걸까? 세이란이 피했다고 생각한 예지몽은 피한 게 아니었던 걸까?
“혹시 아버님이나 우리 가문도 위험한 것이냐?”
“세이란 님의 가문이요? 어찌 위험하냐 물으십니까, 해(害) 입을 만한 일이 없는 것을요. 하물며 에이린 님이 황후의 좌에 오르시고 안정적으로 지위를 유지하고 계신데 무엇을 걱정하시어 그리 물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에이린이 황후가 되긴 하였나 보다. 세이란의 예지몽은 시간이 흐를수록 틀리는 법도 없이 하나씩, 하나씩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그럼 테이의 집안은? 린가(麟家)는 어떠하냐. 누가 테이를 저리 만들었지?”
테이의 집안도 괜찮다고 답하며 오직 테이만이 조화(遭禍)한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든 이가 누구냐는 질문엔 잠시 대답을 망설인다. 그러나 재촉할 수 없었다. 이림의 눈에 서리는 불안과 두려움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세이란에게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이림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손에서 땀이 났다. 그리고 이림이 입을 열었을 때 그의 입을 통해 나온 이의 존재가 세이란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폐하께서. 황제 폐하께서 그리하셨습니다.”
불길했던 꿈은 세이란을 피해 테이에게 닥쳤던 모양이다. 저를 죽이려 했던 황제였다. 세이란이 나투에 없다면 당연히 현실이 되지 못할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는지 세이란이 맞아야 했을 재앙이 그녀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친우에게 향했으니 심장이 덜컥하고 멎는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묻고 싶은 말이 많은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세이란이 나투를 떠나 있던 동안 나투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테이와 황제 폐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세이란이 나투를 떠난 것이 옳은 선택이 아니었던 걸까?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테이 앞에 자신의 선택에 처음으로 불안을 느끼는 세이란이었다. 테이가 이리된 것이 자기 탓 같았다. 아니, 세이란의 탓이리라.
지금의 테이 모습을 꿈에서 보지 않았던가. 꿈속에서 자리에 누워 이처럼 창백하게 죽어가던 이는 세이란이었다. 결국 예지몽이란 바뀔 수 없는 것이기에 예지몽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사람과 상황을 바꿔 조금 틀어졌을 뿐 꿈속의 일들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세이란의 앞에 수라(修羅)의 형상을 하고 나타났다.
팔부(八部) 야차(夜叉)의 모습으로 세이란을 재물 삼으려던 예지몽이 탐욕스럽게 다른 재물을 집어삼키는 것이 재앙처럼 두려워 세이란은 당장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이 악물고 참았다.
“이림……. 피곤할 테니 여긴 내게 맡기고, 가서 쉬도록 하렴. 테이는 내가 돌볼게. 앞으로를 생각하면 네 몸도 돌봐야지.”
“아니요, 저는 괜찮…….”
“부탁이다, 이림.”
자리를 비켜달라는 세이란의 완곡한 청이었다. 그 간곡한 목소리에 결국 이림이 방을 나섰고 방 안엔 세이란과 테이, 아신만이 남았다.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테이의 손을 잡으며 세이란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테이는 나랑 한날한시에 태어난 사람이에요.”
“형제, 같은 건가?”
“비슷해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닮았어. 생김새라든가 분위기가.”
이렇게 색소 옅은 사람은 세이란 이후 처음이라고 아신이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테이와는 생김새나 분위기가 많이 비슷했다. 동생인 에이린보다 더. 모르는 사람 눈에는 테이가 더 세이란의 형제처럼 보일 정도로 닮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테이가 잘못된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깨어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사하 린(麟) 테이.
세이란과 나란히 나투 제국 최고 권위의 귀족가의 당주로 있는 분신 같은 존재. 이란성 쌍둥이 형제처럼 외모가 꼭 닮았지만 성격은 정반대였다. 은발에 조각 같은 외모를 한 테이는 여자아이 부럽지 않은 곱상한 외모의 소유자였지만 담백하고 털털한 성격의 세이란과는 달리 깐깐하고 예민한 성미에 결벽증까지 있어 사람을 꺼려했다.
그래도 세이란에게만큼은 너그러운 편이라 가까이 지냈는데, 예지몽을 꾸고 나투를 떠나면서도 차마 꿈 이야기를 하지 못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야기를 하고 올걸 그랬다고 침대 머리맡에서 내내 생각했다.
며칠이 흘러도 좀처럼 테이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날로 걱정만 가중되어가는 중, 세이란이 곁에 있기 때문인지 이림은 처음 그녀를 찾아왔을 때보다 많이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이곳의 분들은, 다들 좋은 분들인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 은혜를 어찌 갚으면 좋을까요?”
“그건 테이가 깨어난 다음에 생각해보자.”
이림과 대화를 나누며 테이 이마 위에 올려둔 물수건을 갈았다. 눈에 띄는 외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깨어나질 못한다. 의원을 불러 진맥도 해보았으나 콕 집어 무슨 병이다, 무슨 증상이다 설명하지도 못했다. 좀 더 정확히 살피고 싶어도 그의 몸에 손을 댈 수가 없으니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테이는 전담하는 의원이 따로 있을 정도니까. 그만큼 타인과의 접촉에 민감했다.
세이란과 집안과 마찬가지로 테이의 집안도 그 내력이 독특하다 보니 사람을 가려 받았다. 시중을 드는 시동조차 엄격하고 까다롭게 선별해 뽑을 정도였다. 세이란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세이란 님은 언제 약혼하신 겁니까?”
“좀 됐어.”
“그간 연락이 없으셔서 테이 님이 걱정하셨어요. 근데 세이란 님은 이 먼 나라에 와서 정혼을 하셨군요. 저는 틀림없이 테이 님과 혼인하게 될 줄 알았어요.”
이림의 말에 세이란이 어깨를 으쓱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나와 테이를 내내 지켜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니?”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두 분 잘 어울리시니까.”
이림의 순진한 대답에 헛웃음이 나온 세이란이다.
“나는 도저히 테이가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구나, 이림. 그건 테이도 마찬가질걸?”
테이와는 어릴 때부터 구두(口頭)로 혼담이 오갈 만큼 가까운 사이였지만 진짜로 혼담을 넣은 사이는 아니었다. 양가 어르신들이 진지하게 혼담을 진행시켰다 하더라도 세이란과 테이가 펄쩍 뛰며 싫어라 했을 것이다. 차라리 에이린과 테이를 엮으려 했다면 엮이지 않았을까?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의 관계란 테이와 세이란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한참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신이 기척을 내고 방으로 들어왔다. 화들짝 놀란 세이란이 이림과 나눈 대화에 대해 먼저 나서 해명하려 하는데, 별로 관심도 없다는 얼굴을 한 채 오해하지 않는다 말한다. 오해 안 하는 건 좋은데 어쩐지 그 모습이 불만스러운 세이란의 시선을 슬쩍 피하고 테이의 상태를 살피기에, 세이란은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테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몸 상태는 좀 어때? 여전히 차도가 없나?”
“매일, 그냥 똑같아요.”
벌써 일주일째다. 처음 하루, 이틀은 걱정이 됐지만 그 상태로 악화되는 것도 없이 그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모습으로 누워 있을 뿐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냥 잠이 든 것처럼 보일정도로 표정은 평화로웠고, 숨소리도 가벼웠다.
“간병은 너랑 이림밖엔 할 수 없는 건가?”
“지금으로선 그래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워낙에 섬약해서.”
테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특히 더 조심해야 했다. 함부로 닿지 않도록 말이다.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기린(麒麟) 가문의 적자임에도 세이란과 테이는 능력을 씀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일회적이고, 스스로 가지고 있는 능력을 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세이란과는 달리 테이는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그가 원할 때 쓸 수 있었다. 역대 린가의 가주들 역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런저런 특이행동을 보였다고 하지만 테이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나 그 반작용이 심한 축에 속했다.
나투 제국의 건국과 함께 황제 곁을 지키던 기린의 후예들. 건국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그들의 선조가 이형의 신수(神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세이란과 테이는 분명 거기에서 기인한 이름을 쓰고 있었다. 거기서 뿌리를 둔 힘을 발현하는 자가 당주가 되는 것인지, 당주가 되어서 그 힘이 발현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두 가문의 영험한 능력 때문에 귀족들 중에서도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 그들이다. 나이가 어림에도 무시를 받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런 특수성 때문이었다.
세이란이 꿈을 통해 미래를 본다면, 테이는 접촉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읽었다. 물론 다수를 상대로 발현되는 힘은 아니었다. 그건 세이란도 테이도 마찬가지다. 오직 황제 한 사람에 국한된 힘. 세이란이 황제를 중심으로 꿈을 꾸듯 테이도 오직 황제의 마음만을 읽을 뿐이었다.
예지(豫知)와 관심(觀心).
그런 이유로 기린 양 가문에서, 특히 린의 가문에선 걸출한 재상이 많이 배출되었다. 황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그런 탓이리라. 물론 그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듯한 힘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세이란은 모두가 꾸는 꿈이라는 것을 꾸지 못했고, 테이는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테이에 비하면 세이란의 부작용이라는 것은 부작용이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테이는 그가 가진 힘을 극도로 싫어했다. 눈물 흘리지 못하는 것도 남의 마음을 훔쳐본 데 대한 신의 단죄라고 말할 정도였다. 거기에 슬픔을 눈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자신이 괴물같이 느껴진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테이가 때때로 불쌍하게 느껴지는 세이란이었다.
손이 닿는다고 모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제 힘을 싫어하는 탓인지 누군가와 손가락이라도 조금 닿는 날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져선 반나절을 앓아눕기도 했고, 두드러기가 나서 약을 먹기도 했다.
그 정도다 보니 누가 섣불리 간병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 상황이 그러하니 지금 당장은 이림과 세이란이 번갈아가며 테이의 상태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언제 병세가 악화될지 알 수 없어 곁을 떠날 수도 없었고, 크게 하는 일은 없지만 낮밤을 가리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근래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그런지 밤이 깊어갈수록 피로감이 눈꺼풀 위로 무겁게 내려앉아 세이란을 괴롭혔다. 이림과 교대할 시간까지도 한참 남았는데 잠이 쏟아지니 큰일이었다.
‘아, 지금 잠들면 안 되는데.’
그러나 안 된다고 되뇌는 순간에도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다. 그때를 나란히 해 방문이 열리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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