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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그 남자의 사전

한승희 지음도서출판 가하201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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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이름의 전자책 모음  (전권 구매시 3,500원)

1. 작품 소개

이 밤 그에게 달려온 그 마음만큼이나 따뜻한 연인의 온기를 남김없이 모조리 제 것으로 만들겠다고 작정한 남자의 입맞춤은 길고 깊었으며 뜨거웠다.


미국에서 갓 건너온 너무나 멋진 그 남자, 그렉 로빈슨. 한국에 온 순간 달라지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발랄하게 인생을 즐기는 여자, 송손희. 그녀가 갑자기 얌전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남들 눈에는 심심하지만 당사자들은 좋아 죽는 아이러니 로맨스, ‘그 남자의 사전’!


“그렉.”
“응?”
“우린 어떤 사이예요?”
“좋아하는 사이.”
무슨 말을 들을까 싶어 그녀를 보던 그렉이 다시 책상 위로 눈을 돌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사귀는 사이.”
“또요.”
“비슷한 말을 얼마나 빨리 찾아서 대답하나, 이런 거 하는 거야?”
“빨리요.”
“키스한 사이.”
“더 없어요?”


2. 작가 소개

한승희

변방 한구석에서 조용히 쓰고 읽는 데 전념
지금은 ‘무심’과 ‘달의 심연’ 등을 쓰는 중.

▣ 출간작

절대적인 몇 가지
사랑을 누리다
데이드림
매듭
연애의 맛 外


3. 차례

#1. 대박! 공공재 출현
#2. 빼어난 미모는 결정적 한 방이 되기에 충분하다
#3. 알고 보니 소문난 쌈닭
#4. 말도 안 되는 사다리의 대용품
#5. 뒷담화의 세계란
#6. 셀럽의 힘은 위대하다
#7. 얼음마녀 무너지는가
#8.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9. 인물값도 나름 경쟁력이다
#10. 우연은 반드시 필연을 동반한다
#11. 완벽한 낭만 파괴자
#12. 키스는 동영상으로
#그리고 어느 날의 풍경 하나


4. 미리 보기

아그작 아그작. 강냉이 씹는 소리가 낮게 틀어놓은 음악 사이로 파고들었다. 쟁반으로 하나 가득 부어놓은 강냉이는 잠깐 사이에 벌써 절반 넘게 사라지는 중이었다. 마주 앉은 채로 누가 많이 먹나 내기라도 하듯 손바닥에 하나 가득 강냉이를 쥐고 입 안에 털어놓고 있는 사람은 손희와 그녀의 동갑내기 고모 이영이었다.
PMS 때문에 우울해서 죽을 지경이라며 징징대던 이영은 막상 그녀가 오자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먹고 얘기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어차피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짐작했던 터라 손희도 별말 없이 푹신한 침대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군것질에 넋을 놓고 있는 참이었다.
무릇 여자라면 먹는 입과 수다를 떠는 입이 따로 있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먹는 중에도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끊기는 법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수 누구는 근육을 너무 키워 둔해 보이더라, 걘 미소년 콘셉트일 때가 훨씬 나았다. 바람피운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회계학과 강사 모 씨가 여자랑 모텔에서 나오다가 처남한테 딱 걸렸다더라, 그런데 하필 처남도 같은 입장이라 눈물을 머금고 눈감아주다가 마누라한테 걸려 둘 다 작살이 났다더라. 바람꾼 성준영이 또 여자친구를 바꿨다더라, 걘 원래 그런 애니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영국으로 유학 갔던 오 교수님 아들 강윤이 곧 들어온다더라, 대한민국 미남지수가 급상승하겠구나, 잘생긴 오빠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물이 앞으로 가린다, 앞으로 한동안은 눈이 호강하겠구나.
대본을 들고 읽는 듯 죽이 잘 맞는 대화 중에 손희가 낮의 일을 꺼냈다.
“거짓말!”
손발이 착착 맞아 들어가던 조금 전까지와 달리 이영이 단박에 끊어냈다.
“백부님이 보시는 앞에서 네가 남자, 그것도 외국인하고 손을 잡았다고?”
“악수라니까, 악수. 잡는 거하고 악수하고 구분 못해?”
어림없는 소리 말라는 듯 콧방귀를 뀌는 이영에게 질세라 손희는 코웃음으로 답했다.
“요게! 감히 고모한테 코웃음을 날려?”
가소롭다는 얼굴로 응수하는 손희를 향해 이영이 짐짓 눈을 부라렸다. 곧장 뻗어나간 손희의 검지 끝이 그런 그녀의 이마를 꾸욱 눌렀다.
“어쭈! 송이영. 오냐오냐 봐줬더니 소금쟁이 염전에 빠져 꼬르락거리는 소리 하고 계신다. 나보다 생일도 한참이나 느린 주제에 고모는 개뿔이 고모야? 너는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는 말도 못 들어봤어? 스마트폰으로 게임질만 하지 말고 공부 좀 해, 이 계집애야! 찾아보면 사전 어플도 잘 나온 거 많으니까 하다못해 속담 사전이라도 꾸준히 읽으라고.”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어른 노릇을 하려고 드는 게 아니꼬워서 손희는 일부러 더 면박을 줬다.
자신처럼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이영은 공부에 별다른 흥미도 취미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건 학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그해 이영이 지원한 학과가 경쟁률이 유독 낮았는지 명문 소리를 듣는 대학에 같이 입학을 하기는 했지만, 4년간 전액 장학금을 보장받은 손희와 달리 이영의 학점은 내내 바닥을 기었다. 그런데도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건 순전히 취업 준비를 하기 싫어서였다.
“히이잉. 너 자꾸 이러면 큰아버지한테 가서 너 했던 짓 고대로 이를 거야.”
아니나 다를까,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 애교와 어리광이 차고 넘치는 이영이 코맹맹이 소리로 우는 척을 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곧장 손희의 한심하다는 시선이 날아갔다.
이게 어디서 우는소리야.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 송손희에게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그만 알 때도 되었건만. 어찌 된 게 저놈의 레퍼토리는 스무 해가 넘도록 도무지 바뀔 줄을 모르니. 이러니 대응하는 방법도 식상할 수밖에 없는 거다.
“일러라, 일러! 응? 응?”
한마디씩 할 때마다 이영의 이마를 톡톡 누르는 손끝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요 계집애랑은 자그마치 생일이 아홉 달이나 차이가 난다. 한두 달 차이로도 태어난 해가 바뀌기 예사인데 어찌 된 게 이 재수 좋은 계집애는 그녀보다 아홉 달이나 늦게 태어나고도 동갑내기가 되어 같은 해에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어디 그뿐인가. 손희에게는 한없이 어렵기만 한 조부님을 얘는 무려 큰아버지라고 부른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이 아이는 조부님의 아우님, 그러니까 손희에게는 종조부 되시는 손철 옹이 쉰 살을 목전에 둔 연세에 얻은 귀하디귀한 따님 되시겠다. 늘그막에 얻은 하나밖에 없는 딸을 종조부는 더할 수 없이 아꼈고 그래서인지 동갑이라고 해도 이영은 손희에 비해 철이 심하게 없는 편이었다.
아무런 목적의식이 없으면서도 고민 한번 하지 않고 손희를 따라 덜컥 대학원을 선택한 것도 턱없이 낙천적인 그녀의 성격이 큰 몫을 차지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어마무시한 대학원 학비와 함께 묵직한 용돈을 눈 한번 꿈쩍 않고 턱턱 내놓는 종조부님의 영향도 컸겠지만.
더없이 보수적이고 한없이 고지식한 손흥 옹의 영향 아래 늘 묵직한 기운이 감도는 손희의 집과는 달리, 이영의 집 분위기는 제법 개방적이어서 꽤나 밝은 편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두 분 형제의 성격 차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젊어서 세상을 떠난 손희의 부친, 조부님께는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영향이 더욱 클 것이다.
손희의 부친은 그녀의 동생 손걸이 태어난 지 채 백일도 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선대부터 대대로 명망 있는 학자를 배출하여 명문가로 손꼽히던 집안에서도 그 존재감이 뚜렷해서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외아들을 하루아침에 잃은 후 송흥 옹은 한동안 말문을 닫았다고 했다. 요절한 아들은 송흥 옹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 최대의 목표이자 목적이었다고 하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던 어머니가 바늘을 들고 자신의 일을 찾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시아버지를 모시고 남편의 수발을 들며 자식을 건사하는 것밖에 모르던 어머니는 침선을 시작하며 집안일에서 완벽하게 손을 떼었다. 동시에 자식들에 대한 관심도 거두어들이는 바람에 그녀와 걸이는 조부님과 이모인 혜옥의 손에서 컸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었다.
별채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며칠 가야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어머니, 지금과는 딴판으로 당시에는 낯설기만 하던 혜옥 이모, 엄한 조부님 사이에서 아직 어렸던 손희는 한동안 제 갈피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젖먹이라 손이 많이 가는 걸이 때문에 채 열 살이 되지 않았던 그녀는 더더욱 관심 밖일 수밖에 없었다. 혼자 뒤뜰에 쪼그리고 앉아 눈으로 별채를 더듬으며, 어머니가 바느질을 하고 있을 자리를 짐작해 한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면 어깨 위로 느껴지던 기괴스러울 만큼 무거운 침묵과 막막함이라니.
진저리쳐지도록 싫었던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간혹 어둠과 침묵에 둘러싸여 주저앉아 있는 악몽을 꿀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어렸다고 해도 아버지를 잃었다는 상실감을 느낄 겨를도 없었을 정도였다.
그 무렵 귀찮을 정도로 말을 걸고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며 곁에 있어준 사람이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 입술을 삐죽이고 있는 이영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당연히 고마워해야 하는 게 옳지만, 문제는 얘가 지금처럼 되지도 않게 사람 속을 긁는 데도 재주가 탁월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함께한 세월만큼 정도 깊고 원한도 맺힌 사이랄까. 굳이 따지고 든다면 공존하는 애증 사이에서 그나마 애(愛) 쪽이 조금 더 우세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근데 정말 그렇게 잘생겼어? 뻥 아니고?”
불퉁거리던 것이 언제였나 싶게 이영이 다가들며 물었다.
그새 눈빛이 초롱초롱해진 걸 보니 티격태격하는 동안에도 내내 궁금하긴 했던 모양이었다.
남자 인물 따지는 건 손씨 집안 여자들의 기나긴 내력. 그러니 고모든 조카든을 떠나서 잠깐 사이에 두 여자의 관심사는 곧장 한 남자에게로 향했다.
“무지 잘생겼더라. 실사로 저 정도의 인물을 내가 언제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흐음.”
뭐야. 심드렁하기 짝이 없는 저 반응은.
기대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이영의 표정에 손희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이 정도 말이 나왔으면 키, 이목구비 등의 기본 옵션은 이미 체크를 끝내고 바디 라인이며 목소리 같은 디테일까지 물 흐르듯 파고들어 가는 게 순서 아니었어?
“정말이라고. 이 언니, 남자 인물 같은 중요한 문제 갖고 장난치고 그러는 실없는 사람 아니다.”
농담까지 섞어가며 재차 강조해 말해봤지만 역시나 고개만 한 번 까딱하고는 그만이었다.
하아, 송이영. 얘가 또 오랜만에 사람 성격 나오게 만드네. 이래서 애증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니까.
“뭐냐? 그 시원찮은 반응은?”
“생각해보니까.”
몰랐다. 송이영이 생각 같은 걸 하고 사는 인종인 줄은.
“너 남자 보는 눈이 바닥이잖아.”
“뭐어?”
하아! 대체 뭐냐, 이 사라진 어이는.
바닥이라는 건 구멍 난 학점 때워 제때 졸업하기 위해 매 방학마다 어영차 소리가 나게 계절학기를 들어야 했던 송이영의 성적 따위를 가리키는 것일 뿐. 절대 그 남자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누가 들어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보란 말이야. 소지섭 정도다, 송중기 과다. 뭐 그런 식으로.”
“못할 것도 없지.”
호기롭게 입을 떼기는 했지만 막상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다. 잘생긴 거 보고 감탄할 줄만 알았지, 누구 딴사람에게 대입을 할 생각은 미처 못 했던 탓이다. 머릿속 얄팍한 인물 사전을 뒤적이고 있는 그녀를 향해 이영이 거봐란 듯 자신감 충만한 코웃음을 날렸다.
“제대로 말 못하는 거 보니까 뭐, 대강 알겠네.”
미적거림을 망설임으로 착각한 이영이 이죽거리는 사이, 이내 엄지와 중지를 힘 있게 튕겨내며 손희가 탄성을 질렀다.
“미스터 맥기니스!”
“하여튼.”
혹시나 싶어 잠시 들떴던 이영의 표정이 금세 가라앉았다.
“당최, 아는 외국 배우라고는 맥기니스밖에 없으니까. 어떻게 된 게 모든 잘생긴 남자의 기준이 무조건 맥기니스야.”
빈정거리는 말에 심정이 상한 손희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왜 맥기니스뿐이야? 톰 아저씨도 있고, 그…… 그 누구야. 누구였지?”
이럴 때는 자신 있게 툭! 치고 나가줘야 스타일이 사는 건데 말이지. 빈약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인물 사전이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이영이었다.
“누구? 존 말코비치? 리암 니슨? 쯧쯧, 어째 아는 배우들이라는 게 하나같이 얼굴에 다리미질 필요한 올드한 아저씨들뿐이야. 조카님, 그럴 바에는 하다못해 로다주 정도라도 불러줘야 하지 않겠어요? 연세는 짱짱하지만 명색이 액션 히어로신데.”
“로다주?”
생전 처음 듣는다는 듯 혼잣말처럼 되묻는 손희를 향해 이영이 혀를 끌끌 찼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아이언맨. 어휴우 님하, 톰 아저씨가 케이티 언니하고 이혼한 건 알고 계세요?”
송손희를 약 올릴 기회라는 게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이영은 아주 신이 났다.
“설마 님하라는 말도 너 전공 따라서 ‘아소 님하’, 이런 걸로 알고 있는 건 아니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대체 언젠데. 이런 참새 대가리. 이영이 고려가요의 구절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랍긴 했지만, 이 상황에서 괜히 딴죽을 걸었다가 말이 더 길어질 것 같아 손희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혼자 신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이영의 모습이 귀여워 조금 더 봐주자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는 건 혼자만의 비밀.
“시끄럽고. 멀쩡한 남의 이름을 왜 맘대로 고쳐들 부르는 거야.”
투덜거리는 손희를 향해 이영이 혀를 끌끌 찼다.
“그런 걸 두고 애칭이라고 하는 거다. 이 무식한 조카님아. 근데 진짜 맥기니스 과였어?”
“그렇더라고.”
난데없이 앞으로 내밀어진 손에 당황스럽던 기억을 떠올리며 손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좀처럼 보기 힘든 큰 키도, 뚜렷한 이목구비도, 얼굴 생김새와 좀처럼 동화되지 않는 완벽한 한국어 인사도 모두 그녀에게는 낯설기만 했다. 
그래도 조부님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잊은 채 이내 악수에 응했던 건 다름 아닌 그의 손 때문이었다. 다른 곳의 생김새와 마찬가지로 크긴 하지만 그의 손에서는 위압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손에도 표정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그의 손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모범생 같은 거라는 생각이 순간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근데 아아, 맥기니스……. 쫌 약하지 않니? 난 별로거든. 그냥 키 좀 큰 아저씨 타입인 거 아니야?”
생각에 잠겨 있는 그녀를 향해 이영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발사했다.
“뭐어? 아저씨이?”
발끈한 손희가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더니 금방이라도 한 대 쥐어박을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요게 귀엽다 귀엽다 해줬더니 이젠 막 기어올라. 얻다 대고 누굴 감히 아저씨래?”
기실 이영은 맥기니스를 가리켜 하는 말이었지만 손희의 귀에는 꼭 그렉을 지칭하는 것처럼 들려 더욱 파르르 떨었다.
“너 자꾸 이딴 식이면 정말 큰아버지한테 이른다!”
발끈한 이영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아마도 말이 트였을 무렵부터 지치지도 않고 계속된 협박이었다. 연식이 오래된 만큼 하는 쪽이나 듣는 쪽 모두 약발이 떨어진 지는 이미 오래전이지만, 그래도 송이영이 궁지에 몰렸다 싶으면 어김없이 빼 드는 카드들 중 하나였다.
“놀고 계신다. 뭐라고 이를 건데? 내가 때렸다고? 아님 너를 고모라고 안 불렀다고?”
그 정도야 눈 동그랗게 뜨고 ‘세상에, 제가 어떻게 감히 고모한테 그럴 생각이나 했겠어요.’라며 가증 한번 떨면 끝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상황 파악이 안 된 이영은 제법 손가락까지 접어가며 꼽기 시작했다.
“어디 그것뿐이야? 툭 하면 불러들여 제가 할 일 나한테 떠맡기고, 틈만 나면 이 계집애, 저 계집애 욕하고. 제 맘에 안 들면 손부터 날아오고. 내가 정말 그동안 너한테 당한 걸 생각하면 억울해서 잠도 안 와.”
집안 내력으로 성격이 급한데다 어휘력까지 달린 편이라, 평소 특히나 달변인 손희 앞에서는 되도록이면 길게 말을 하지 않으려 드는 걸 감안하면 꽤나 장광설이었다. 물론 그나마도 손희의 코웃음에 곧장 날아가고 말았지만.
“잠이 안 오긴. 어떤 상황에서든 일단 베개에 머리가 닿기만 하면 코까지 골면서 잘만 자면서. 너처럼 크게 코 골고 자는 애는 아직까지 보지를 못했어, 내가.”
“야! 그 얘기 그만하랬지!”
그예 얼굴이 빨개진 이영이 덤빌 듯 달려들었다.
제 스스로 생각하기를 완전무결에 가까운 인간 송이영에게 딱 아쉬운 점 한 가지가 바로 그 죽일 놈의 코골이였다.
165센티미터에서 살짝 아쉬운 키에 50킬로그램이 넘을까 말까 한 날씬한 체격과 팔다리가 유독 날씬하고 긴 비율 좋은 몸매. 여기까지는 송씨 집안의 내력이라고 치더라도,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사람처럼 대놓고 허여멀겋기만 한 손희와 달리 옅은 구릿빛이 감도는 건강한 피부 빛깔이며, 한 달이면 서너 번씩 단골 미용실에 들러 수시로 만지고 바꾸는 헤어스타일은 염색 한번 하는 법 없이 몇 년째 허리께까지 닿는 긴 머리를 고수하는 손희와는 애초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손희가 학부시절 내내 공부를 잘해서 교수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기는 했지만, 그깟 공부 좀 한답시고 연애는커녕 묘묘한 분위기에서 남자와 마주 앉아 커피 한 잔 제대로 마시는 꼴을 못 봤다. 일 년에 거의 한 번 꼴 정도로 눈이 뒤통수 아래쪽에 달린 놈이 수작을 부릴 때도 있지만, 그나마도 눈이라도 마주칠라 치면 송손희 기에 눌려서 제대로 된 말 한마디 꺼내보지도 못하고 어버버거리다 끝이었다.
반면 자신은 그런 손희와 달리 그녀는 중학생 때부터 좋다는 녀석들이 줄을 이었었고, 대학에 입학한 후로는 수업 듣는 시간보다 남자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바꿔 말하면 송손희는 책이나 들입다 팔 줄 알지 매력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찾아볼 수 없는 성질머리 더러운 연애 맹탕이었고, 송이영은 어딜 가나 인기가 발끝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화제의 중심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녀이지만 애석하기 그지없게도 남들 다 가는 MT나 야유회는 기를 쓰고 빠져야만 했으니, 그게 다 그놈의 코골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소 거칠다고 할 수 있는 잠버릇 - 순전히 이영이 자신의 입장에서 최대한 순화한 표현이다 - 은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송이영도 결국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임을 보여주는 작은 틈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인정머리라고는 병아리 콧구멍만큼도 없는 송손희는 인생 막장 행 고속철에 탄 중늙은이가 술독에 빠져 뻘겋게 된 콧구멍 하늘 향해 쳐들고 가르랑거리고 자는 꼴이라는 말로 가차 없이 폄하를 했다.
이유야 여하튼,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가능한 한 영원히 감추고 싶은 그녀의 ‘인간적인 틈’을 손희는 지금처럼 시시때때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무 때나 입에 걸고 흔들어댔으니. 대외적으로는 초인간적인 면만 보여주고픈 이영으로서는 이가 부득부득 갈리도록 약이 오를 일이었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고등학생 때 공부하느라 며칠 밤새고 피곤해서 코 살짝 곤 거 가지고 벌써 몇 년을 우려먹냐?”
벌게진 얼굴로 이영이 왈칵 목소리를 높였다.
“그으래? 난 또 엊그제 내 옆에서 다리 사이에 베개 끼고 널브러져 드글드글 코 골고 잔 게 넌 줄 알았지. 혼자 자기 무섭고 심심하다고 내 방에 제 베개까지 두고 수시로 자러 오는 인간은 송이영 도플갱어였나 보구나. 그래앴구나. 그럼 앞으로 출입 금지시켜야겠네. 그럴 게 아니라 집에 가면 당장 베개부터 치워버려야겠다.”
대(對) 송손희 전(戰)에서 무승전패라는 치욕스러운 기록을 가졌으면서도 틈만 보이면 덤비는 건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이영의 머리를 손희가 쓱쓱 쓰다듬었다.
“아유, 우리 고모님. 화나쩌요? 그러게 착하디착한 조카님을 왜 건드리니, 이 못된 고모야. 가만히 있는 조카님 자꾸만 화나게 하면 나쁜 고모 되는 거야. 알겠지?”
“저리 치워!”
눈을 흘기며 이영이 그녀의 손을 털어냈다. 하지만 일단 재미가 들린 손희가 순순히 따를 리 없었다.
“우리 이영이, 자꾸 이런 식으로 언니 맘 상하게 하면 종조부님 카드로 아이돌 애들 선물 긁어서 보낸 거 확 까발린다?”
“헥!”
삽시간에 이영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휴대전화를 온통 꽃돌이 아이돌의 사진으로 도배를 했을 만큼 이영의 아이돌 사랑은 유별났다. 고등학교 가면 덜하겠지, 대학교 졸업하면 그만두겠지 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오히려 요즘 들어는 점점 더 빠져들기만 하는 눈치라 내심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당장 이번 달만 해도 백화점 해외 브랜드 화장품 매장에서 겁도 없이 옴므 라인을 한꺼번에 열 세트도 넘게 사들이는 걸 보고 식겁을 했으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애들 안 서운하게 각자 하나씩 갖게 해줘야 한다나, 뭐라나. 그러는 저는 정작 로드숍에서 저렴이 미스트 하나를 사면서도 샘플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악착을 떠는 주제에 말이다. 문제야, 문제.
용돈 떨어지면 쓰라고 쥐어준 카드를 그렇게 긁어댔으니. 모르긴 몰라도 다음 달 청구서에 모 백화점에서 일시불로 결제된 금액을 보면 딸 사랑에 눈이 먼 종조부님은 우리 딸이 큰맘 먹고 마음에 든 명품 가방이라도 하나 장만했나 싶어 뿌듯해하실 거다. 그럼 얘는 옷장 안에 모셔둔 애들 중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고 요번에 업어 온 아이라며 가증을 떨 테고.
“치사한 년.”
대뜸 나오는 욕설에도 손희는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새삼스러운 말씀을.”
“그래도 절대 너랑은 딜 안 해.”
딜은 생각도 안 했는데 먼저 덤비니 응하지 않을 수도 없고, 이것 차암.
“하게 될걸. 내가 알기로 카드 청구서가 아마 월초에 날아오지? 오늘이 며칠이더라? 그러고 보니 말일도 며칠 안 남았네.”
벽에 걸린 달력을 힐끗, 한번 쳐다보자 이영이 다급하게 달려들었다.
“책 열 권.”
“스무 권에 커피 서른 번.”
“열다섯 권. 커피는 스무 번.”
“열여덟 권.”
“후아, 아예 거덜을 낼 셈이야? 못된 것. 열일곱 권으로 해. 커피는 그대로 살게.”
“할 수 없지 뭐.”
손희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꼬리를 내렸다.
책값이 만만치 않은데도 이영이 딜의 조건으로 먼저 외쳤던 건 제 부친에게 이런저런 경로로 들어오는 문화상품권이 끊이질 않는 탓이다. 당연히 그 상품권들은 고스란히 이영의 수중으로 떨어졌으니, 그녀로서는 손해를 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책이었다. 다행히 손희가 책이라면 환장하기도 했고.
말 몇 마디로 손쉽게 한 달간 마실 커피와 읽을 책들을 손에 넣은 손희는 희희낙락이었고, 이와는 반대로 이영의 표정은 소금을 한 움큼 입 안에 털어 넣은 듯 짜게 식어갔다. 재수가 넘치는 년은 짬뽕을 처먹다가도 진주를 찾는다더니.
그나마 큰 출혈 없이 커피 스무 잔으로 해결했으니 이영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쨌든 다행이었다. 어차피 매일 마시는 커피이니 한 잔쯤 더 산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아빠 카드’라는 천하무적 만능 해결사가 있지 않은가!
“대신에 비밀은 확실하게 지켜줘야 한다.”
“대신에 너도 한 번만 더 그따위로 허투루 카드 긁어대면 그땐 무조건 종조부님한테 그동안 뭐 하느라 카드 썼는지 싹 다 고해바칠 거다.”
“협박이 전공이냐?”
“부전공이 치사하게 걸고넘어지기다. 몰랐냐?”
촌수로는 고모와 조카 사이지만 사실 세상 그 어떤 사이보다 절친한 두 친구 사이에 사흘이 멀다 하고 오가는 설전의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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