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우리……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나요?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리움 같은 게…….”

수천 년 동안 반복된 운명의 고리를 끊어내고자 했던 그 남자. 하지만 기억의 봉인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전생의 인연들이 환생하고 말았다! 이제 그들은 전생에 못다 한 사랑을 다시금 이루고자 하는데…….

환생화(還生話)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 ‘7천 년 뒤의 그대에게’!

“세상 참 각박하게 사시네. 우연으로 이뤄진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거 못 들어봤어요? 원래 현실이 더 영화 같은 거라고요. 우리도 오늘 이렇게 우연찮게 만났잖아요.”

“네가 작정하고 기다린 거겠지.”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기다린다고 만나지나요? 이런 것도 우연 아니겠어요?”

“그런 걸 우연이라고 한다면 이 클럽 안에 있는 사람들도 죄다 우연인가?”

“저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지만 난 아는 사람이잖아요.”

※ ‘가하 에픽’은 다양한 시대, 색다른 소재, 독특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출판 가하의 새로운 브랜드입니다. 로맨틱한 판타지가 가득한 가하 에픽, 지금 만나보세요!

2. 작가 소개

청화(聽樺)

저질 체력인 탓에 산보다 바다를 좋아해서 항상 바다 근처에 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물 공포증이 있어 해수욕을 절대 할 수 없는 일인.

가슴 벅찬 감동과 눈물을 쏙 뽑아내는 애절함이 공존하는 작품을 써보는 것이 

생의 목표인 은둔형 외톨이. 

▣ 출간작

7천 년 전의 그대에게(환생화(還生話) 시리즈 1부)

얼음 왕자의 사랑(환생화(還生話) 시리즈 2부)

그대입니다(환생화(還生話) 시리즈 3부)

3. 차례

#프롤로그 1

#1. 파편(1)

#2. 좌천

#3. 악연

#4. 천적

#5. 파편(2)

#6. 작야(昨夜)

#7. 악몽

#8. 혼돈

#9. 수난

#10. 파편(3)

#11. 꽃뱀

#12. 노킹

#13. 운명

#14. 파편(4)

#15. 실수

#16. 온기

4. 미리 보기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던 모습. 행복이 묻어나던 그 미소가 머릿속 한 귀퉁이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쩌면 그녀의 미소가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착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마저 들자 여지없이 짜증이 밀려들었다. 잠들어 있는 자신의 감정이 누군가에 의해 흔들린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난 불필요한 의혹이 생기는 건 질색이야.”

“완벽주의자신가 보네요? 아니면 결벽증 환자든지.”

“결백이라고 해두지.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서 조사해보려는 것뿐이니까. 네 친구의 사고가 나와 무관한 일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곧 나올 테니, 정중히 사과할 준비나 해.”

지환은 빈 잔을 내려놓으며 부산하게 칵테일을 만들어가는 바텐더의 손길에 시선을 두며 아령에게 말했다.

“흥! 그야 두고 봐야 알 일이죠? 아! 내 가방도 잊지 마요.”

“명품도 아닌 그런 누더기가 뭐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나한텐 인생을 좌우할 물건이 들어 있는 소중한 거라고요!”

“좋아. 하루 정도 여유면 충분하니까, 모레 저녁 7시. 여기서 다시 보는 걸로 하지. 정말 네가 꽃뱀이 아니라면 가방 값은 갖고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물론이죠!”

잔을 들어 올리며 자신 있게 대답하던 아령은 색상에 마음을 뺏긴 듯 찰랑이는 칵테일을 멍하니 바라다보았다.

“근데 이 칵테일, 이름이 뭐라고 했어요? 색깔이 너무 예쁘네요. 마시기 아깝다. 자자! 어쨌든 이런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니까, 한잔 하죠!”

“악연이겠지.”

“원래 매사에 그렇게 삐딱해요? 정말 재미없는 조폭 아저씨네.”

“난 지극히 정상이고 현실적이야.”

아령은 딱딱한 분위기를 만들며 쪼잔하게 구는 지환이 못마땅한지 입술을 쑤욱 내밀었다.

“원리 원칙만 따지고 계획한 대로만 살면 심심하진 않겠네요. 스케줄 꽉꽉 들어차 있어서.”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는 법이니까.”

아령은 기분을 내며 그에게 잔을 부딪치려던 생각을 훌훌 털어버렸다. 그러고는 혼자 칵테일을 두어 모금 더 마셔버린 후 한심하다는 듯이 지환을 흘겨보며 물었다.

“우연도 겹치다 보면 필연이 된다는 거 알아요?”

“아직도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있나? 우연 같은 건 없어. 다 짜고 치는 조작일 뿐이지.”

“세상 참 각박하게 사시네. 우연으로 이뤄진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거 못 들어봤어요? 원래 현실이 더 영화 같은 거라고요. 우리도 오늘 이렇게 우연찮게 만났잖아요.”

“네가 작정하고 기다린 거겠지.”

융통성이라곤 모기 눈알만큼도 없고, 개그라곤 개미 발바닥만큼도 없는 고리타분한 그에게 천상의 외모를 선사한 신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웬만한 여자들이라면 그의 빌어먹을 성격마저도 용서하며 감사히 여길 테니 말이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기다린다고 만나지나요? 이런 것도 우연 아니겠어요?”

“그런 걸 우연이라고 한다면 이 클럽 안에 있는 사람들도 죄다 우연인가?”

“저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지만 난 아는 사람이잖아요.”

“아는 사람?”

“그렇잖아요. 이미 몇 번이나 봤는데.”

“보통은 그런 걸로 안다고 말하진 않지. 네 논리로 따지자면 호텔의 벨 보이는 나와 절친이겠군.”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일까. 아령은 반쯤 마신 칵테일 잔을 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조아령.”

“……?”

“내 이름이에요.”

아령은 초롱초롱한 두 눈을 빛내며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서?”

“원래 그렇게 시비조로 말해서 사람 성질 돋우는 게 버릇이에요?”

“신경 꺼.”

역시나 참으려고 해도 참 밉상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부대끼며 잡초처럼 살아온 아령에게는 한 수 접어야 하지 않을까?

“조아령.”

“……?”

“내 이름이에요.”

“방금 말했잖아.”

“그건 들으라고 한 거고. 이번 건 기억하라고 한 거예요.”

“내가 왜 그래야 되지?”

“혹시 알아요? 다음번엔 진짜 우연처럼 만나질지도? 경험을 못해봤으니 못 믿는 거잖아요?” 

말이 통하지 않는 그녀였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로맨스를 진리인 양 떠들면서 웃고 있는 그녀는 사차원의 별세계 인종이 틀림없었다. 지극히 정상인 자신을 성격파탄자 취급하며 남아 있던 칵테일을 툭 털어놓은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일어났다.

“이 칵테일 값은 그쪽이 계산해요. 가방 안에 지갑이 있어서 그러니까.”

당당하게 술을 사라고 말하는 아령을 바라보면서 지환은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지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령은 바텐더에게 메모지를 받아 들고 뭔가를 열심히 적었다.

“여기 머무는 동안에 임시로 쓰고 있는 휴대전화 번호예요. 그쪽이 살인마라는 증거자료가 더 빨리 구비되면 연락 줘요. 나 역시 꽃뱀이라는 오명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하지 않겠어요? 가방도 돌려받아야 하고.”

지환은 아령의 메모지를 받아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에게 자신의 번호를 넘겨준 아령은 홀가분한 마음이 된 듯 손을 탁탁 털었다. 왠지 이 사람이라면 절대 약속을 어기지는 않을 거라는 알 수 없는 믿음 덕분에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물론 의심을 다 지울 순 없지만 그를 몰아세울 증거도 망가진 마당에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모레 여기서 만날 땐 망가진 카메라까지 물어주는 거 잊지 말아요. 친구 거니까. 그럼 난 약속이 있어서 이만 실례.”

아령은 덥수룩한 자신의 옷매를 매만지며 이리저리 훑어보곤, 빙그레 웃으며 장난스런 손 인사를 하더니 가벼운 발걸음으로 칵테일 바를 벗어났다. 모자란 듯 보이는 그녀의 행동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환은 못마땅한 얼굴로 바텐더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이를 갈며 한마디 내뱉었다.

“심가, 이 자식 오기만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