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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백아절현

조이혜 지음조은세상201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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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한경쟁시대.
사법연수원도 예외는 아니다. 전국의 수재들을 모아 줄을 세우는 지옥의 마두고등학교.
제XX회 사법연수원생 중 가장 가방끈 짧은 독종 정현수.
부모도 없고 참혹할 정도로 돈도 없고 머리도 평범하다.
있는 거라고는 무식할 정도로 질긴 끈기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악바리 기질뿐.
그래도 고졸에 평민에 독종인 정현수는 7번의 낙방 끝에 붙었다.
인생을 건 목표이기에 오늘도 검사 임용을 향한 그녀의 수레바퀴는 끈덕지게 돈다.
서을대 최고의 남신(男神), 우아한 백작 류지환.
부모도 있고 지겨울 정도로 돈도 많고 두뇌도 뛰어나다.
없는 거라고는 누군가에겐 넘쳐흐르는 끈기와 진한 목표뿐.
그래서 우아한 백작은 자신과 태생부터 다른 독종이 신기했다.
자존심과 경쟁심을 무던히도 건드리던 그녀.
하지만 똑바로 마주본 순간 가슴이 진동했다.
알아 가면 알수록 아프다는 걸,
어느덧 독종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 소개★
조이혜
필명 미갈
글을 통해 사람을 봅니다.
사람의 사랑과, 그리고 저를 봅니다.
<출간작>
아찔한 만남
연의국
작가 연합 <줄리엣의 발코니> 상주
목차
프롤로그
1. 경쟁, 그 살벌한 지옥
2. 7반 B조 첫 MT
3. 연대책임의 덫
4. 달라지는 시선
5. 엿 같은 세상에도 사람은 있다
6. 백아와 종자기
7. 너를 알아갈 때마다 나는 아프다
8. 운명을 거슬러
9. 전쟁 속에서도 질투의 꽃은 핀다
10. 고졸의 반란
11. 보이지 않는 곳에도 사람은 있다
12. 불발탄을 가슴에 안고
13. 끊을 수 없는 마음
14. 사랑보다 어려운 것
15. 행복을 찾아서
16. 질투해도 괜찮아
17. 사랑을 멈추고
18. 다시 한 걸음 더
19. 사랑보다 깊은 상처
20. 부끄럽지 않은 우리
21.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22. First Love
에필로그Ⅰ
에필로그Ⅱ
<본문 발췌>
2. 7반 B조 첫 MT
“빠진 사람 있나요?”
“없습니다.”
공부에 대한 부담 때문에 반 MT는 회식으로 대신했지만 조 MT까지 그럴 수는 없다며 이청연 교수가 강경하게 1박 2일 여행을 주장했다. 연수원은 특히 조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21명의 조원들의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자, 그럼 출발하죠.”
현수는 제일 먼저 렌트한 봉고차에 올라 맨 뒤에 앉았다. 교수님이 함께 가시지만 않았어도 절대 이런 자리에 끼지 않았을 그녀였다. 이미 조원들 대부분 상당히 가까워진 듯 보였지만 현수는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피곤해 죽을 것 같았다.
털썩.
커다란 몸집이 옆을 차지하자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류지환, 또 그였다.
“좁을 텐데. 지환아, 자리 바꿔줄까?”
“아니. 괜찮아.”
12인승 봉고차가 이렇게 좁았었나. 키 큰 류지환이 중간에 앉자 몸집이 잡은 현수와 반대쪽 창가에 앉은키 작은 박윤보는 바짝 찌그러져 왜소해 보였다.
“정현수, 안녕?”
박윤보가 현수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7반 B조에 정현수가 둘이기 때문에 그녀는 박윤보가 자신에게 인사한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졸려 죽을 것 같아 눈만 껌뻑거리는데, 지환이 현수의 팔을 툭 쳤다.
“……?”
“아, 헷갈렸나보다. 현수B야, 안녕?”
현수는 조금 머뭇거렸다. 상대까지 유순하게 만들 것 같은 박윤보의 선한 눈매가 수줍게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 이름 알아?”
조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만 보여서 그런지 그는 조금 멋쩍은 듯 보였다. 혼자만의 세상을 구축한 그녀는 이미 조 내에서도 섞일 수 없는 기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1인 1총무가 원칙인 연수원에서 현수는 아무런 직함도 가지고 있지 않아 총무들 회식에도 가지 않았고 대학 동문 회식, 대학 법대 회식 같은 자리에도 갈 수 없었기에 처음부터 누군가와 어울릴 수가 없었다.
“알아요. 박…….”
이름을 막 부르기엔 그의 나이가 세 살이나 많았다. 현수는 이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박윤보 오빠잖아요.”
“어, 정말 아네.”
천진한 대답이었다. 현수는 전에 없이 표정을 부드럽게 풀었다. 지환은 현수가 순순히 ‘오빠’라는 단어를 꺼내자 새삼스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숙사에서도 찬바람 쌩쌩 분다는 사람답지 않게 그녀는 냉랭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선을 단단히 지키고 있을 뿐.
“요즘……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차만 타면 멀미한다며 윤보가 창에 머리 박고 잠이 들자 지환이 조용히 읊조렸다. 조금씩 졸음에 잠식당하던 현수는 속삭이듯 갑작스런 그의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굳혔다.
“발야구 예선연습도 하면서 새벽까지 공부하던데. 그러다 쓰러진다.”
언제부터 그와 충고하는 사이가 되었던가?
현수는 당혹스러우면서도 갑자기 반말로 툭 내뱉는 그의 간섭에 싸하게 얼굴을 굳혔다.
“유별난 건 아니지.”
“…….”
“여기에 들어오면서 그 정도 각오도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조금 전 박윤보에게는 제법 살갑게 오빠 소리도 해놓고 보기 위태로워서 건넨 그의 조언에는 어김없이 싸늘했다. 지환은 현수의 대꾸에 매끈한 입매를 뒤틀었다.
아아. 내 일이니, 상관하지 마시라?
MT 간 지가 언제였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는 조원들의 수다에도 현수는 지루하게 창밖만 내다보았다. 창에 지환의 얼굴이 뿌옇게 보였다. 얼마 동안 그녀를 쳐다보다가 나른히 숨을 쉬며 자세를 고쳐 앉는 게 느껴졌다.
‘방 에어컨이 고장 난 것 같은데요.’
‘아……. 오늘 중으로 A/S…….’
‘저기, 뭐 알아갈 생각 같은 거 없으니까 그럴 필요 없어요.’
끈덕지게 들러붙은 잠에 빠져들 무렵 가물가물 예전의 일이 생각났다. 에어컨이 고장 났다며 총무실로 온 류지환이 연습 중이던 답안을 볼까 봐 급히 책으로 덮었던. 그때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코웃음까지 쳤었다. 기분 나쁘게…….
“그런 말은 이렇게 졸면서 하는 게 아니지.”
창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든 현수의 말간 얼굴을 보며 지환은 가늘게 웃었다. 차가 덜컹덜컹할 때마다 박윤보가 머리를 찧는 소리와 엇박으로 그녀도 몇 번이나 머리를 퍽퍽 부딪쳤다. 잠조차도 편하지 못하게 잔뜩 움츠리고서.
양평 펜션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이미 저물어 있었다. 난생처음 MT라는 걸 와서 현수는 솔직히 조금 얼떨떨했다. 서둘러 고기를 구워 배를 채우고 나자 이청연 교수가 병권(폭탄주를 제조하고 발사하는 권한)을 잡고 폭탄사를 했다.
“나는 여러분이 편파적인 법조인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사회라는 것이 그렇듯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객관적으로 법을 바라보느냐 주관적으로 바라보느냐 또한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늘 부끄럽지 않은 법조인이 됩시다. 위하여!”
“위하여!”
와! 함성을 지르며 건배를 했다. 현수는 끝없이 터지는 폭탄들을 보고 입을 반쯤 벌렸다. 맥주잔 안에 소주잔을 집어넣은 기본 폭탄주는 명함도 못 내밀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았다.
맥주잔 안에 스트레이트 잔을 띄어놓고 그 안에 양주를 조금씩 부어 침몰시키는 타이타닉, 스트레이트 잔을 뒤집혀 내리꽂힌 채 부르르 떨게 만드는 딸깍주…….
“자자, 정현수B. 받아.”
“아, 네에…….”
이청연 교수가 맥주잔 위에 젓가락을 올렸다. 현수는 뭘 하려 하나 긴장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젓가락 위에 스트레이트 잔이 수줍게 올라섰다.
“뭐하나? 안예상, 박아!”
“넵!”
뭘 박아?
현수는 갑자기 안예상이 상체를 팍 숙이자 움찔했다. 그는 별안간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서 쿵 찧었다.
“!”
퐁당.
충격으로 흔들린 나무젓가락이 쩍 벌어졌다. 그 사이로 위태롭게 서 있던 스트레이트 잔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맥주잔 안으로 투신했다. 이청연 교수가 깔깔 웃으며 외쳤다.
“자, 받게! 내가 주는 ‘충성주’야.”
“가, 감사…….”
그녀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었다. 오오오, 하는 때아닌 환호가 이질적으로 쏟아졌다.
“술 못하나?”
“뭐……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술자리 가져본 적 없나?”
“네.”
이청연 교수는 으음, 하는 기묘한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 가져본 적 없으면 이제 가지면 되는 일이고, 이런 술을 마셔본 적 없으면 지금 마시면 되는 일이지! 안 그런가, 제군들?”
“맞습니다!”
주변의 응원에 힘입어 현수는 쭈욱 술을 들이켰다. 강하고 오묘한 맛이 식도를 찔렀다. 독하고 쓰지만 분위기라는 향기를 업은 짜릿함이 온 혈관을 일제히 수축시켰다. 제법 나쁘지 않았다.
“으으…….”
“뭐하나? 처음인 우리 정현수B를 위해 충성주 한 잔 더!”
“옛썰!”
교수의 주도 하에 거절도 못 하고 억지로 술을 마시는 그녀를 쳐다보다 지환은 설핏 인상을 썼다. 버틸 수 있을까. 아무런 직함을 갖지 않는 대신 체육대회 여자 발야구 경기에 반강제로 나가게 된 현수는 요즘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혹사하고 있었다.
“정현수B.”
“네.”
“자네 몇 번 낙방했나?”
“1, 2차 합쳐서 총 7번 낙방했습니다.”
“그럼 사법시험을 보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나?”
그녀가 살짝 웃자 지환은 비뚤게 기울였던 고개를 치켜세웠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사법시험을 볼 겁니다.”
“그 말은 떨어졌다면 지금도 사시 공부를 하고 있을 거라는 뜻?”
“예.”
“우으으으으, 꾸으으으, 독하다아!”
이미 얼큰하게 취한 동기들이 늘어진 야유를 퍼부었다. 현수는 의외로 멀쩡하게 앉아 관광버스 춤을 추기 시작하는 이청연 교수를 담담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환은 왠지 그 흐트러짐 없는 자세가 그녀가 어떻게든 버티려 안간힘을 쓰는 단면처럼 느껴졌다. 억지로 붙들고 있는 발악같이.
“우리 모두 진실게임 어떤가? 앙? 그동안 서로에게 궁금했는데 못 물어본 것들 물어보자고!”
“좋습니다, 좋아요오!”
“좋아, 그럼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질문해. 진짜 곤란하면 패스하고 벌주로 딸깍주 석 잔 원샷이다!”
어디서 형수님을 만났느냐, 어떻게 프러포즈했느냐는 다소 소녀 같은 질문부터 형수님 이전에 여자 몇 명이나 만나봤느냐, 첫 키스는 어디냐는 짓궂은 물음들도 쏟아졌다. 조금씩 수위가 노골적으로 변해가자 모두들 흥미진진하게 불타올라 술이 바짝바짝 깨고 있었다. 특히 순서가 지환에게 닿자 모두들, 특히 여자 조원들의 눈이 총기로 충만해졌다.
“여자친구 되게 많이 만나봤죠?”
“그랬죠.”
“지금은 여친 있어요?”
“없습니다.”
“서을대 다닐 때부터 그런 소문 돌았다고 그러던데……. 진짜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야?”
“아니요.”
어쩐지 현수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재혼을 했다고 하니 지환이 둘러댄 아버지는 생부가 아니라 ‘새’아버지일 것이었다. 순간 그와 시선이 부딪혔지만 조용히 술잔으로 눈을 돌렸다.
“연수원에 관심 가는 여자 있어요?”
“음……. 패스.”
“악, 그런 게 어딨어요!”
“자자, 딸깍주 석 잔이랍니다, 교수님!”
얼굴 찡그리는 법 하나 없이 우아한 손놀림으로 딸깍주를 비워내는 지환을 보며 여자 조원들의 눈이 다시 한 번 하트로 범벅이 되었다. 그 핑크빛 관심들이 배가 아픈 노총각 연수생들은 일부러 이청연 교수를 채근해서 더 독하게 딸깍주를 섞었다.
돌고 돌아 현수까지 차례가 왔다. 호기심 반, 못마땅함 반 뒤섞인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현수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음, 연애 안 해봤지?”
조심스러운 윤보의 물음에 소리 없는 웃음을 흘려보냈다.
“네.”
“좋아한 남자도 없었어요?”
“없었어요.”
“왜요? 그냥 막 마음이 안 가고 그래요? 저는 저한테 조금만 잘해 주면 완전 넘어가거든요.”
현수보다 두 살 어린 조원이 시무룩하게 중얼거리자 이청연 교수가 엄하게 끼어들었다.
“박혜리. 그런 일급 정보는 흘리지 마. 누가 껄떡대면 어쩌려고 그래?”
“우우우, 너무하신다, 교수님. 저희도 보는 눈이 있거든요?”
남자 연수생들이 격렬히 항의하자 혜리의 눈이 찢어져라 세모꼴이 됐다.
“저도 보는 눈이 있거든요? 늙다리들은 줘도 싫어요!”
“캬악! 늙다리래! 흑흑.”
“넌 천년만년 안 늙을 것 같다 이거지? 어디 두고 보겠어! 넌 성형외과 금지다!”
지성을 갖출 대로 갖춘 이들의 유치한 말싸움에 왁자지껄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혜리 옆에 앉아 있던 송은서가 다소 쌀쌀맞은 어투로 찬물을 끼얹었다.
“좀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그냥 궁금해서요. 처음부터 고아였어요?”
아아, 왜 안 나오나 싶었지.
주변 분위기가 싸해졌다. 여기서 그녀가 대답을 안 하거나 언짢은 기색을 보인다면 더 엉망이 될 것 같았다. 현수는 굴곡 없는 목소리로 가볍게 대꾸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아버지랑 살았어요.”
“어머니는요?”
“어릴 때 이혼했다고 들었어요.”
지환은 옆에서 팔을 톡톡 건드리며 안주 먹으라고 속삭이는 여자 연수생들의 부름에도 현수를 조용히 응시했다.
“대학교는 왜 안 갔어요?”
“갈 형편이 안 돼서요.”
“성적 잘 나오면 임용 뭐 받고 싶어요? 판사?”
다분히 깔보는 의중이 들어 있는 질문이었다. 고졸이면서 우리 같은 엘리트들과 경쟁해서 임관할 수 있겠느냐는, 교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조 회식 자리에도 절대 끼는 법이 없는 현수를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다.
“검사요.”
“만약 판사 임용 성적이 되면요?”
“그래도 검사하고 싶어요.”
“되게 열심히 해야겠네요.”
그때까지도 잠자코 듣고 있던 이청연 교수가 별안간 싹 정색을 했다.
“여러분, 지금 뭐하는 거죠? 진실게임 하면서 친목을 다지라고 했더니, 어째 점점 이상해지는군요.”
싸늘한 꾸지람에 현수를 조롱했던 몇몇 연수생들이 급히 긴장했다. 교수에게 인격적인 부분에서 부족하다고 찍히면 교수평가학점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가 없게 된다. 감히 대꾸할 생각도 못하고 우물우물 서로 눈치를 보았다.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법조인은 반편이에 불과해요. 아무리 인성이나 인생 교육을 스스로 해야 하는 나이라지만 아직 유아적인 습관을 못 버린 것 같아 실망스럽군요.”
“죄송합니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현수는 곤혹스러웠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으레 사람들의 눈이 그런 것일 뿐인데 그녀 때문에 좋은 분위기를 망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차라리 오지 말 걸 하는 뒤늦은 후회까지 들었다.
“안 되겠어요. 조원들 간에 전혀 단합이 되지 않고 있군요. 여러분, 조 분위기에 따라서 성적 차이도 큽니다. 지난 기수에서는 말이죠, 조 분위기가 좋아서 조원들 모두가 100등 안에 든 조도 있었지만 난장판인 데는 100등은커녕 200등에 든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조도 있었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피드게임 해요.”
불편해진 분위기를 뒤집으려 모두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청연 교수가 스케치북에 문제를 적고서 현수를 지목했다.
“정현수B와 이유정 연수생이 문제를 말하면 한 사람씩 맞추는 거예요. 진 팀이 내일 아침 식사 준비하기!”
“에엑.”
현수 팀부터 문제를 맞히기로 했다. 현수는 혜리가 보여주는 스케치북을 보고는 눈을 빛내고 있는 윤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친고죄에 있어서 고소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에 대한 원칙.”
“고소 불가분의 원칙!”
두 번째는 재간둥이 수범이었다.
“음, 민법 제406조.”
“앙? 뭐야, 그게?”
“우하하하!”
어지간한 현수도 천연덕스런 되물음에 더 견디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아, 아, 채권자 취소권?”
“딩동댕! 다음!”
류지환의 차례였다. 현수가 막 입을 열려는데 곁에서 심판을 보며 웃던 이청연 교수가 돌연 현수를 타박했다.
“정현수B, 좀 재미나게 설명해봐! 유머러스하게!”
유머러스…….
갑자기 엄청난 과제를 떠안은 현수가 난감한 얼굴로 눈썹을 모았다.
“술 취한 연수원생 시체를 찾아다니며 뽀뽀한 죄.”
“아,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아냐!”
포복절도하며 난리도 아니었다. 아까 관광버스를 추면서 술 취해 뒹굴던 연수생들 볼에다 쪽쪽 뽀뽀를 하고 돌아다녔던 이청연 교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건 죄가 아니라고 열심히도 엑스 자를 그렸다.
“형법 159조 사체오욕죄.”
“느헉!”
“어떻게 그걸 맞힐 수가 있냐고? 이게 말이 되냐고?”
모두들 말 그대로 ‘발광’을 했다. 현수 또한 단번에 맞힌 그의 대답에 내심 깜짝 놀랐다. 찌르듯 박혀오는 지환의 시선이 느른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속을 낱낱이 읽힌 것만 같아 불현듯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건 사기예요! 류지환만 다시 해요, 교수님!”
“나도 수상쩍다. 류지환, 다시 해봐!”
이청연 교수가 스케치북에 다시 문제를 냈다. 조원들 모두 말똥말똥 호기심 어린 얼굴로 현수의 입술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수는 어디 해보라는 듯한 지환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안예상 오빠가 바람을 폈다.”
“이야, 세다. 킬킬.”
지환이 잠시 현수를 쳐다보았다. 날카롭지만 세심한 눈길이 머릿속을 헤집듯 맴돌고 있었다.
“형법 307조, 명예훼손죄.”
“캬악! 이럴 순 없어!”
“으헝. 나 소름 돋았어. 허엉…….”
아까는 일부러 ‘시체’라는 단어를 써서 우연히 때려 맞힌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환은 그녀의 의중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이수범이 조원들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한다.”
지환이 씩 웃었다.
“상습협박죄.”
“…….”
돌아갈 때도 그는 현수 옆에 앉았다.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는 그녀를 보며 지환은 실소를 머금었다. 모두들 술에 푹 절어 해장국 대신 먹은 라면을 욱욱 게워내곤 차에 올라타 금세 픽픽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어떻게 알았어?”
“뭘?”
지나가듯 그에게 물었다. 지환은 전혀 모르겠다는 말투로 반문했지만 희미하게 걸린 웃음으로 봐선 이 상황을 꽤나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현수는 그 앞에서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어 파르르 입술을 깨물었다.
“보통 그렇게 말하면 다른 생각들을 하잖아. 그렇게 대답하는 게 아니라.”
“아아, 그거?”
안예상의 코 고는 소리가 병풍처럼 둘러쌌다. 지환은 피식 웃었다. 짙은 피로에 물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이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그냥.”
“…….”
“그냥 왠지 알겠더라고. 정현수B의 생각이.”
너의 그 이기적인 생각들도 말이야.
어쩐지 그런 말이 뒤따른 것만 같았다. 현수는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류지환이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뒤통수가 근질근질 불쾌해졌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자자. 죽겠다…….
처음 먹어 본 술에 속이 부대끼고 계속해서 쌓여온 피로감이 눈꺼풀 위로 푹 내려앉았다. 조금씩 현수의 몸이 노곤하게 풀어졌다. 헝겊인형처럼 흔들흔들 거리던 그녀의 고개가 땅으로 떨어질 듯 옆으로 푹 꺼졌다.
지환은 어깨 위로 와 닿는 말랑한 느낌에 뚫어져라 앞만 보았다. 다행히 깨어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청연 교수까지도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는 걸 확인한 그는 등을 좀 더 파묻고 자세를 낮추었다. 현수가 가볍게 입맛을 다시며 그의 어깨에 편안히 머리를 기대었다.
글쎄.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이상하게 정현수가 말하는 게 뭔지 바로바로 파악이 되더란 말이야. 쓸데없이.
굳이 정현수가 ‘연수생 시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어도 답을 알았을 것이다. 그것보다 더 난해하게 표현했어도 알아맞혔을 것이었다. 그가 눈치가 빠르거나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그 순간 묘하게 정현수의 머릿속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는 낮게 한숨 쉬고는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입을 반쯤 헤벌리고 기절한 수범의 머리통을 붙잡아다가 어깨 위에 척 얹었다. 같은 남자한테 어깨 빌려주는 취미 같은 건 없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3. 연대책임의 덫
드디어 마지막 시간, 죽음의 형사재판실무였다.
현수는 뻑뻑하다 못해 쇳소리가 날 것 같은 눈을 억지로 치켜떴다. 감기도 아닌데 토하고 싶을 정도로 온몸이 무겁고 욱신욱신 아팠다.
빌어먹을 발야구.
이게 다 체육대회 때문이다. 어차피 연수원을 수료하고 나면 약해지는 인간관계인데 지금 아무리 친목을 다져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떤 반에서는 지도교수가 대충 해서 예선 떨어지고 공부나 하라고 한다는데 7반 교수들은 잔꾀 쓰지 말라며 도리어 우승을 독려하고 있었다. 절대 복습을 밀리지 말자는 각오로 발야구 연습과 과제, 수업, 예습 복습을 넘치게 하다 보니 현수는 몸이 점점 견뎌내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갑과 을 두 여자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을은 세 살 난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감정이 격해져서 갑에게 달려들었죠. 몸을 들이대며 어깨를 밀어대는 을을 감당하다 못해 갑이 을을 떠밀었는데, 을이 그만 안고 있던 아이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머리부터 떨어진 아이가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경우 갑은 무슨 죄일까요?”
이청연 교수가 현수를 지목했다.
“형법 262조, 폭행치사죄입니다.”
“갑은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았는데 말인가요? 송은서 연수생, 어떻게 생각하죠?”
“저는 형법상 폭행이라는 것은 신체에 직접 물리적 힘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을이 먼저 갑에게 위협 행위를 한 것도 참작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정당방위로 볼 수 있다는 말인가요?”
“과잉방어로 볼 수 있지만 고의성이 없고 아이를 떨어뜨리는 것까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수는 이청연 교수와 시선이 마주쳤다. 반박을 해보라는 무언의 눈빛에 그녀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아이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하지만 을을 밀면 아이에게도 영향이 미칠 거라는 걸 예측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을이 넘어졌다면 아이도 당연히 넘어졌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이에게도 폭행을 한 것이 될 것입니다.”
“좋은 반박이에요, 정현수B 연수생.”
뒤에서 송은서가 자존심 상해하며 숨을 씨근덕거렸지만 이청연 교수의 칭찬에 피로에 절어 있던 현수의 눈은 총기를 머금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도 갑을 폭행치사죄로 기소했습니다. 을을 떠다밀었는데 아이만 허공에 떠 있거나 할 수 없잖아요? 당연히 예측 가능한 일이지요. 따라서 갑은 결과적 가중범인 폭행치사죄가 성립되는 겁니다.”
이래서 몸이 힘들어도 공부를 쉴 수 없었다.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 난다 긴다 하는 수재들 틈에서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확신을 받을 때마다 조금 더,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고픈 조바심에 몸이 달았다. 바닥난 체력이 아우성을 쳐도 현수는 그러한 쾌감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 정현수B.”
저녁시간,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이청연 교수가 현수를 향해 손짓했다.
“예, 교수님.”
“들어와서 나 좀 도와줘.”
“예……?”
“여기까지 나와봤는데 어째 다들 코빼기들을 안 비춰? 교수실로 좀 따라와봐.”
“예.”
두터운 판례집들을 층층이 쌓아 옮기던 걸 보다 못해 현수가 이청연 교수가 든 종이 뭉텅이를 절반쯤 덜어내었다. 열람실로 돌아가 봐야 할 복습 내용들이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애써 접어두었다.
“팔에 근육 생기세요.”
이청연 교수는 고운 눈매를 반달로 접었다. 볼수록 혼자서도 참 잘 자랐다 생각이 들었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제자리를 고집스레 지키며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한결같음이 보기 좋았다.
“인권법학회 회원들에게 보여줄 판례들이야. 많지?”
“네에. 그런데 이건 보통 회원들이 준비하지 않나요? 왜 교수님이 준비하세요?”
“다 죽어가는 소릴 하더라고. 이번만 양보해 주기로 했지. 자네도 들어오지 그래? 잘할 것 같은데.”
“잘하긴요. 연수원 공부만 따라가기도 벅차서요.”
모퉁이에서 교수실 안으로 따라 들어가는 현수를 노려보던 인영이 휙 몸을 돌렸다.
지환은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8시 반. 웬일인지 정현수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두 시간째 닌자 거북이 쌕만 입을 다물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환 오빠.”
같은 조 박혜리였다. 지환은 현수의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려는 그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 자리 있어.”
“알아요. 잠깐 메뚜기 뛰려고요. 어차피 금방 가봐야 하거든요.”
남자 연수생들이 메뚜기를 뛰는 경우는 꽤 있었지만 여자 연수생들은 각자 공부 방식들이 뚜렷해서 잠깐이라도 남의 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걸 싫어했다.
박혜리는 제 책을 펼치려다 책상 구석에 놓인 책을 보고는 지환을 향해 속삭였다.
“여기 현수 언니 자리예요?”
“그래.”
나쁘지는 않지만 좀 쌀쌀맞고 거리감 드는 현수의 자리라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지환은 저도 모르게 혜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잠시 망설이더니 호기심 어린 눈으로 현수의 민사재판실무 책을 들춰보려고 하는 것을.
탁.
“……안 나갈래? 바람 쐬고 싶은데.”
“아…….”
현수의 책이 속살을 드러내기 전 지환이 일어서며 혜리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혜리는 그의 스킨십과 은근한 속삭임에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슬그머니 붉혔다.
“지, 지금요?”
“커피 사줄게. 가자.”
“네, 네.”
벌떡 일어나 텀블링을 해서라도 따라 나갈 태세였다. 지환은 침을 꼴깍 삼키고 있는 혜리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가방 챙겨 나와야지.”
“아, 맞다.”
혜리가 후다닥 가방 속에 책을 쑤셔 넣고 얼른 다가왔다. 종종걸음으로 지환의 뒤를 따라가는 그녀를 보며 지나가던 1년 차 연수생들이 저마다 수군거렸다. 우아한 백작에게 여자가 생긴 것인지 눈을 번뜩이며 궁금해 하고 있었다.
젠장. 또 소문 한번 거나하게 나겠군.
둘이 밥만 같이 먹어도 다음 날 스캔들이 퍼지는 좁은 이 바닥에서 먼저 손을 내밀다니. 좀 짜증스러웠지만 지환은 커피를 사서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혜리에게 다가갔다.
“마셔.”
“고맙습니다.”
나란히 앉긴 했지만 애초에 박혜리에게 목적이 있던 게 아니라서 할 말도 없고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지환은 무표정하게 커피만 마시며 정의의 여신상을 응시했다. 한 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에 천칭저울을 든 여신은 눈가리개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오빠. 저기…….”
“왜?”
“저한테 왜……. 뭐 할 말 있으세요?”
가로등 아래에서도 수줍어 붉어진 볼이 선명했다. 역시나 이럴 줄 알았지. 자조적인 한숨을 삼키며 지환이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남자한테 금방 넘어가지 마라. 남자, 별로 안 믿는 게 좋아.”
“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는 그녀의 기대감에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다.
“아무 뜻 없었다고. 혼자는 심심하니까 나오자고 한 겁니다, 박혜리 연수생.”
“아, 네에…….”
그럼 그렇지, 시무룩하니 중얼거리는 폼이 비에 쫄딱 젖은 강아지 같았다. 지환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커피를 머금었다. 혜리도 기대감이 무참히 좌절된 후 조용히 커피만 홀짝거렸다.
“나 좀 전에 뭐 본 줄 알아? 하, 참 나. 고졸 말이야.”
“고졸이 왜?”
짜증어린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지환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고졸이 이청연 교수님 방에 가더라고. 세상에 얼마나 착한 척 웃으면서 교수님한테 아양을 떠는지, 진짜 어처구니가 없더라. 잘 보이려고 아주 혈안이 됐더라니까.”
“진짜?”
“이상하게 난 고졸만 보면 기분이 나빠. 왜 이렇게 꼴 보기가 싫지?”
아까 형사재판실무 수업 시간에 정현수와 비교당한 것이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었다. 실상 비교라고 할 수도 없는, 수업 때 교수들이 으레 하는 질문이고 흔히 하는 멘트였지만 ‘겨우’ 고졸인 그녀보다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에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송은서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현수 언니 말이에요.”
이번엔 혜리가 정의의 여신상을 보고 있었다.
“처음엔 되게 무서웠거든요. 표정도 별로 없고 말수도 없고. 동기들도 막 수군거리고.”
“…….”
“근데 MT 갔을 때……은서 언니가 현수 언니더러 처음부터 고아였냐고 물었을 때 진짜 내가 다 미안했어요. 누가 고아 되고 싶어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공부한 건 아니지만 현수 언닌 정말 힘들게 여기까지 온 건데, 사람들은 노력은 안 보고 고졸이라고 현수 언니 무시하고.”
여기에 들어오면서 그 정도 각오도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정현수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흩어졌다.
“그때 현수 언니가 웃는데,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뭐랄까……되게 처연하게 웃는 거 있잖아요. 세상사 해탈한 사람처럼.”
“……그랬던가.”
늘 흔들림이 없어서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는 그 초연함. 익숙하니까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던 그 웃음. 입소식 첫날, 그의 어머니 앞에서도 그랬고 동기들 앞에서도 그랬다. 공공연한 비웃음 앞에서도 끝까지 버티려 안간힘 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입 안이 씁쓸해져 온다.
“저는요, 현수 언니가 꼭 검사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돈 없고 빽 없고 부모조차 없지만 할 수 있다고, 좋은 대학 수두룩하게 나온 동기들한테 꼭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
“그래도 되는 곳이잖아요. 오로지 실력으로만 할 수 있는.”
어둠 속에서 지환은 미소 지었다.
정현수B, 그 아일 볼 때마다 생각한다. 불공평한 세상이지만 죽으란 법은 없다고. 가방끈 짧고 배경 없지만 그렇기에 그 아일 버티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그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정현수가 검사 되면 표정들 아주 볼만하겠는데.”
“으흥흐. 그렇겠죠?”
지환은 담배를 빼 물려다가 그만두었다. 몸에 담배 냄새 배어 가면 미미하게 인상을 찡그리던 우리의 고졸이 생각났다. 대신 지환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혜리의 뒤통수를 툭툭 쳤다.
“앞으로 메뚜기 뛸 때 내 자리 써라. 물론 나 없을 때만.”
“어, 진짜요?”
“내 책에 낙서는 말고. 포스트잇 떼어 가면 혼난다.”
“에이, 안 그래요.”
이제는 돌아왔을까.
미련한 정현수 옆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다시 갔을 땐 닌자 거북이가 주인을 만났길 지환은 내심 바라고 있었다.
송은서가 입이 가벼운 건지 사람들의 심보가 그런 것인지 현수가 교수들에게 예쁨 받으려 수작 부린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더불어 우아한 백작이 박혜리와 둘이 티타임을 즐기더라 하는 스캔들도 함께 돌았다.
현수가 1층 로비를 지나가자 여기저기서 힐끔거리며 수군거렸다. 그 뒤를 따라 2층으로 가던 지환은 누군가 속삭이는 목소리에 얼굴을 굳혔다.
“어딜 가나 꼭 저런 애들이 있다니까. 앞에서는 고고한 척 뒤에서는 호박씨 까고. 하긴 고졸 주제에 교수님들한테 안 비비면 어쩌겠어?”
“교수님 참석 안 하시면 조 활동에도 전혀 참여 안 한다며? 완전 속 보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더 쌀쌀맞고 차가워서 동기들은 노골적으로 그녀를 피하기 시작했다. 발야구 본선을 결정짓는 마지막 예선경기 때에만 마지못해 몇 마디를 주고받았을 뿐, 현수는 조금씩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지환은 경판실에 가서 앉는 현수를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수척한 안색이 떨어져 있어도 뚜렷이 보였다. 요사이 부쩍 살이 빠져서 코피를 한 바가지나 되게 쏟던 때보다도 더 위태로워 보였다.
무슨 심보인지 연수원 내 도서관 자리는 200여 석밖에 되지 않았다. 그건 판검사에 임용되는 수와 비슷해서 위치별로 이름까지 따로 있었다. 정현수가 매일 맡아온 좋은 자리는 경판실, 그 다음 자리를 향판실, 그 다음이 검찰실. 사이좋게 함께 모여 공부하면 로펌, 집에서 혼자 하면 개업변호사.
경판실을 맡을 정도의 성실성이면 너끈히 서울 지역 판사로 임용될 수 있는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우스개 이름들이었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 번도 경판실을 놓친 적이 없는 정현수의 독한 정신력이 새삼 돋보였다. 그리고 오늘도 지환은 현수 옆에 자리를 맡아두었다.
웬일인지 현수가 책상 위로 엎어져 있었다. 힐끔 보니 손등 위에 핸드폰을 묶어놓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중이었다. 지환은 손 안에 들고 있던 캔 커피를 조용히 그녀의 머리맡에 놓아두었다.
‘현수 언닌 정말 힘들게 여기까지 온 건데, 사람들은 노력은 안 보고 고졸이라고 현수 언니 무시하고.’
남 욕할 처지는 아니었다. 고졸에 독종이라고 혀 찬 사람은 비단 그들뿐이 아니니까.
많이 자봤자 삼십 분이 고작일 것이다. 발야구 연습을 제외하고 현수는 내일이 체육대회인지 알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공부하니까. 오래지 않아 또 일어나 치열하게 부딪히려 들 것이다.
“……?”
역시나 삼십 분 뒤 손등 위에 묶어 놓았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오 분 동안 징그럽게 울렸다. 지환은 적어도 이 분 전에는 일어났어야 할 현수에게서 아무런 반응도 없자 흠칫 미간을 좁혔다.
불길한 느낌에 슬며시 어깨를 흔들어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지환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현수?”
잠이 든 게 아니었다. 정신을 잃고 축 처지는 몸을 받아 안고 지환은 다급히 손을 이마에 대보았다.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다들 제 공부에만 신경 쓰느라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았다. 아직도 진동하는 핸드폰에 밀려 그녀의 손이 툭 떨어졌다. 지환은 곧바로 그녀를 등에 업었다.
“류지환, 무슨 일이야?”
그 광경을 본 7반 C조 박은호 교수가 깜짝 놀라 뛰어왔다.
“아무래도 탈진을 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않아서요.”
“어서 의무실로……아, 아니, 내가 차를 가져오지. 지금 강의동 앞으로 나오게.”
“예.”
그제야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안예상이 허겁지겁 달려와 자꾸 미끄러지는 현수의 팔을 지환의 어깨 위로 올려주었다.
“야 이게 무슨 일이냐? 아직 시험 기간 오지도 않았는데.”
핏기 없는 얼굴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는 안예상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비수처럼 날아왔다.
“체육대회 빠지고 그 시간에 공부하려고 꾀병 부리는 거 아냐? 매년 그런 일 심심찮게 일어난다는데.”
“야, 야…….”
안예상이 말렸지만 이미 눈이 세모꼴이 된 송은서는 연신 코웃음만 치고 있었다.
“왜? 뭐 내가 아닌 말이라도 했어? 오빤 좀 유별나더라. 사람이 의심도 못해? 거기다 정현수는 조 활동도 맨날 빠지잖아. 전적이 있으니까 해보는 소리야.”
정문으로 가려던 지환은 현수를 업은 채 성큼성큼 송은서 앞까지 걸어갔다. 갑자기 방향을 트는 그를 따라 모두 길을 터주었다. 송은서는 지환이 싸늘한 얼굴로 제 앞까지 와 서자 긴장하며 볼을 붉혔다.
“사람이 쓰러졌어. 아픈 사람 두고 그따위 말밖에 못 하냐?”
“뭐, 뭐?”
그의 시선에 어린 경멸을 보며 송은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주위에서 지환과 그녀를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는 칼날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함부로 입 놀리고 다니지 마라. 뒤에서 남의 험담하고 다녀봤자 네 인격 바닥이라는 걸로밖에 안 보이니까.”
“내가 언제…….”
“모를 거라고 생각해? 네가 다른 조원들에게 험담하고 다니는 걸 내가 직접 들었는데 아니란 말이지?”
“나, 나는…….”
“류지환! 뭐하나! 얼른 나오라니까!”
박은호 교수가 큰 소리로 부르자 지환은 송은서를 싸늘히 응시하고는 뛰다시피 정문으로 향했다. 무슨 소란인가 해서 다른 반 연수생들까지 여기저기서 내다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인가요?”
정현수가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 급히 나온 이청연 교수와 윤승혁 교수는 얼굴이 새빨개진 송은서와 곁에서 어쩔 줄 모르는 안예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수님. 박은호 교수님이랑 지환이가 응급실로 방금 현수 데리고 갔습니다.”
하지만 이청연 교수의 시선은 송은서에게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송은서 연수생. 내 방으로 좀 와.”
“교, 교수님…….”
“혼내려는 게 아니야. 그저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모두들 이제 제 할 일들 하고.”
안예상이 지환이 사라진 정문 쪽과 이청연 교수 뒤를 따라가는 은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조 내의 분열은 조장의 능력 문제였다. 어린 여자애들 사이에서 도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는 한숨만 푹푹 쉬었다.
“수면 부족이 심각했어요. 과로가 겹쳐서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은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반 병동으로 옮겨진 그녀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수납을 하고 돌아온 지환은 담당의와 이야기를 나누는 박은호 교수를 두고 병실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너무 무리한다고 했잖아.”
각오로만 버티기엔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연수원의 죽음의 레이스를 완주하려면 완급 조절을 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정현수는 처음부터 너무 스퍼트를 올렸다. 아무도 챙겨주는 이가 없으면 스스로라도 제 몸을 아낄 것이지 미련하게 이게 무슨 꼴이지 모르겠다.
드르르륵. 드르르르륵.
다시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 알람이 거슬렸다. 그가 조용히 핸드폰을 집어 드는 순간, 현수가 번쩍 눈을 떴다.
“윽.”
벌떡 상체를 일으켰지만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지환은 마저 핸드폰을 죽이고 가만히 다리를 꼬았다.
“무리 안 하는 게 좋아. 며칠 후에 또 병원 신세 지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나, 왜 여기 있어?”
처음엔 지환이 옆에 있다는 것에 놀라고 두 번째로는 언제 어떻게 병원에 왔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놀랐다. 왼쪽 팔목에 꽂힌 링거 바늘을 멍하니 쳐다보는 그녀의 뇌리에 내일 있을 체육대회 발야구 본선과 형사재판실무와 검찰실무 복습들이 줄줄이 참혹하게 지나갔다.
“말해 두지만, 체육대회 못 나가. 내일까지 여기서 쉬어야 해.”
“그럼 발야구는…….”
“대기 선수가 나갈 거야. 설령 나갈 사람이 없더라도 넌 안 돼.”
문이 벌컥 열리고 박은호 교수가 들어오자 현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체를 바로 세웠다. 박은호 교수는 몸을 일으키려는 그녀를 만류하며 허리에 두 손을 척 얹었다.
“일어나지마, 일어나지마.”
“죄송해요, 교수님.”
“안 그래도 너 너무 무리한다 싶었어. 새벽까지 책 보고 체육대회 연습하고……. 인마, 체력 관리가 결국엔 실력으로 나오는 거야. 체력 안 돼서 막바지에 나가떨어지면 지금 잘 해놓은 거 아무 쓸모도 없게 돼.”
“예…….”
“너 인마, 류지환.”
묵묵히 옆에서 같이 혼나고 있던 지환은 박은호 교수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연수원 내에 헬스장 좋은 거 있잖아. 네가 책임지고 정현수 운동시켜. 알았어?”
현수는 박은호 교수의 명령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환이 대답할 틈도 없이 끼어들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교, 교수님. 제가 알아서 할게요. 류지환까지는…….”
“시끄러 인마. 알아서 한다는 녀석이 몸이 그 지경이 되도록 혹사하고 다녀?”
“아니, 저…….”
“알았어, 류지환? 너희 둘, 둘 중 하나가 나가떨어지면 연대책임이다. 이청연 교수한테도 말 해둘 테니까 제대로 신경 쓰라고. 알겠나?”
왜 하필 연대책임을 류지환이 지느냔 말이다. 차라리 안예상만 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현수는 이제 그만 쉬라며 휙 병실을 나가는 박은호 교수에게 인사도 못하고 입을 멍하니 벌린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갖다 줄 테니까.”
“…….”
“없으면 일단 자라. 필요한 거 생기면 전화하고. 간다.”
그의 등 뒤로 현수의 껄끄러운 목소리가 맴돌았다.
“교수님한테는 내가 다시 잘 말씀드릴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지환은 잠시 현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숨을 삼키느라 가녀린 어깨가 무겁게 들썩이고 있었다.
“연대책임이라잖아. 이미 박 교수님 이청연 교수님한테도 전화하셨을 거다. 판검사 임용에 목숨 걸고 있으면 괜히 교수평가학점만 깎아먹을 수 있다는 거, 모르지 않을 텐데.”
“…….”
“자라, 그만.”
현수가 다급히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녀답지 않은 의외의 반응이라, 지환이 천천히 현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저기 미안한데……나 민재책이랑 형재책 좀…….”
“너 여기 왜 있냐?”
“…….”
“입원 기간 늘리고 싶지 않으면 오늘은 그냥 제발 자라.”
뿌리치려 했지만 현수는 손에 힘을 주고 끈덕지게 들러붙었다. 지환은 시선을 바닥에 내리꽂은 채 난처해하는 현수의 얼굴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환에게 또 병원에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수고를 시키는 게 미안해서 평소의 까칠함마저 내던지고 다시 한 번 작게 부탁했다.
“없으면 불안해서 그래.”
“…….”
“부탁할게.”
졌다, 정현수.
수면 부족에 과로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내내 배어 있던 짜증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독종인 줄은 알았어도 이렇게 지독할 줄은 몰랐다.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저 못 말릴 고집을 꺾기엔 그토록 냉랭하고 무심하던 눈빛이 너무도 필사적이었다.
“갖다 놓을 테니까 일단은 자.”
얌전히 고개를 끄떡끄덕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코 아래까지 이불을 끌어당기는 것까지 보고서야 그는 병실을 나섰다.
“연대책임이라…….”
연수원으로 돌아와 경판실 정현수의 자리에 놓인 민사재판실무 책을 챙기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잠시 뚫어져라 그것들을 내려다보다 천천히 표지를 들추고 첫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사람 정말 건드리네. 못 견디게.”
딱 정현수다운 다짐을 읽어 내리는 그의 입가가 미끈하게 휘어졌다. 온통 공부할 것만 잔뜩인 무거운 닌자 거북이 쌕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등에 메었다.
지환은 그런 웃긴 모습으로 당당히 강의동 안을 걸었다. 우아한 백작이 웬 이상한 가방을 짊어졌지만 그 마저도 한편의 그림 같은 광경을 모두가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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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좋아하는 감정 묘사가 긴데, 그런부분을 별로 안좋아하신다면 별로지만 저는 흐름이 끊기지 않고 좋았습니다 my*** |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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