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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희 지음도서출판 가하201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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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그런 기분 알아요? 그 사람을 제외한 눈앞의 모든 것들이 딱 멈춰버리는 거.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에 그 사람하고 나하고만 있는 그런 느낌.

 

 

대한민국 최고 남자 배우 서태현. 새로운 작품을 선택하기 전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첫사랑 그녀의 이름이었다. 스승과 제자에서 이제는 작가와 배우로 재회한 두 사람. 하지만 둘의 사랑이 순탄하지만은 않은데…….

 

 

첫사랑?”

3 때 교생으로 와서 처음 만났는데……. 하아. 대표님, 그런 기분 알아요? 그 사람을 제외한 눈앞의 모든 것들이 딱 멈춰버리는 거.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에 그 사람하고 나하고만 있는 그런 느낌이요.”

그거야 네 말대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십 대 때나 가능한 거지. 근데 이제 그럴 나이는 아니잖아.”

순진하지도 않고, 그럴 나이도 아니죠.”

잠시 말을 멈추고 힐끗, 승언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자 느긋하게 소파 뒤로 몸을 젖히고 있던 그가 몸을 바로 했다.

…… 인사할 때 꼭 처음 만난 사람들 같았잖아.”

날 못 알아보니까 아는 척을 안 했던 거예요. 어쨌든 10년 만이었으니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영화배우 서태현이 예전에 교복 입고 교실에 앉아 있던 그 태현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하겠어요.”

 

 

2. 작가 소개

 

한승희

 

출간작

 

청혼의 순서

절대적인 몇 가지

사랑을 누리다

데이드림

매듭

연애의 맛

그 남자의 사전

 

3. 차례

 

#프롤로그

#1.

#2.

#3.

#4.

#5.

#6.

#7.

#8.

#9.

#10.

#11.

#12.

#에필로그

#외전

 

 

4. 미리 보기

 

기자회견을 마치고 내려온 두 사람을 회견장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승언이 악수로 맞이했다. 태현이 소속된 제이 넷의 대표이며 지구 인간의 제작자로 나섰던 그에게도 이번 수상은 의미가 컸다.

어우어우.”

인사를 나누자마자 대기실의 의자에 풀썩 주저앉은 윤제가 양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정말…….”

기껏 큰 상 받고 와서 왜 그래?”

늘 그렇듯 유유자적한 승언이 핀잔을 주듯 묻자 윤제는 고개를 발딱 들었다.

당신이 한번 당해봐. 뭐라도 하나 건질 거 없나 하고 여기저기서 눈에 불을 켜고 덤비는데. 나 원, 마음대로 콧구멍을 후빌 수가 있기를 해, 가렵다고 머리를 긁을 수가 있어. 그리고 같은 말은 대체 왜 자꾸 물어보는 건지. 상 받으면 당연히 좋은 거 아냐? 근데 이놈도 저놈도 똑같이 소감 얘기하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되냐고. , 정말 같은 말을 수천 번은 한 것 같아.”

인터뷰라는 게 다 그렇지. 처음도 아니잖아.”

게다가 태현이 팬들은 또 얼마나 억척인지. 오로지 쟤하고 같은 비행기 타겠다고 LA에서 여기까지 몇 사람이나 날아왔는지 알아?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 하는 얘기 잠깐 들으니까 LA에 사는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이나 다른 나라 팬들도 미리 LA에 가서 대기하고 있었다더라고. 승무원들이 그렇게 지키는데도 어찌나 귀신같은지. 무슨 소리라도 난다 싶어서 돌아보면 어김없이 숨어 들어와서 태현이 등짝 찍고 있더라고. 덕분에 내 얼굴만 몽땅 팔렸지 뭐.”

푸념처럼 길게 늘어지는 윤제의 말은 태현과 동행했던 소속사 직원들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 있는 일도 아니라 윤제를 제외하면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그럴 줄 모르고 동행한 거 아니잖아.”

출국할 때 공항에 몰려든 거 보고 대충 짐작은 했지만 설마 그 정도일 줄이야 알았나. 너 진짜 스타더라.”

새삼스러운 윤제의 말에도 태현은 씩 웃고 말았다. 쑥스러운 듯 웃고 있지만 그 모습 한켠에는 오디션을 보러 온 무명의 모델을 선뜻 주연배우로 발탁하게 했던 강한 자신감과 당당함이 몸에 밴 것처럼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태현을 보는 승언의 얼굴에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서렸다. 옥석을 구별하는 데는 본능적인 감을 가진 그였다. 6년 전, 윤제의 영화에 오디션을 보러 왔던 태현을 발견하자마자 그는 한눈에 될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마실 물도 새로 씻어오랄 정도로 까다롭기 짝이 없던 조연급 여배우의 로드매니저로 시작해서 연예계의 미다스로 불리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인간들을 겪어온 그였지만 태현은 처음부터 워낙 남달랐다.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187센티미터의 키는 확실히 눈에 띄기는 하지만 180센티미터 넘는 애들이 즐비하게 모인 곳이니 크게 자랑할 거리는 되지 않는다. 키와 비례해 쭉쭉 뻗은 균형 잡힌 팔다리와 훌륭한 비율로 타고 난 신체조건, 근육으로 다져진 날렵한 몸매도 작정하고 찾자면 수두룩했다.

하지만 생니를 뽑아서라도 치아 교정을 하고 눈과 코, 광대뼈는 물론 턱과 이마까지 기본적으로 만지고 나오는 여느 애들과 달리 개성적인 독특함이 살아있는 잘생긴 얼굴은 인색한 그라도 후한 점수를 주기에 충분했다. 카메라를 받기에 가장 적당한 농도의 피부색과 남자다운 이목구비는 설사 그가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 해도 승언의 눈에 처음 띈 순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쪽으로 끌어들이고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승언을 사로잡았던 것은 태현이 가진, 쏘는 듯 사람을 사로잡는 특유의 눈빛이었다. 태현의 눈빛은 카메라 밖에서 그를 보고 있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부모가 이혼한 뒤 사촌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손에 크며 어려서부터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서인지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웠다. 하지만 지금도 간혹 보이는 소년 같은 모습은 스물여덟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순수하기도 했다. 세상 물정에 도통한 듯 약삭빠른가 싶으면 전혀 의외의 상황에서 허방다리 짚는 모습을 보여 노련하기로 소문난 그가 약 오를 만큼 헷갈리게 했다.

그만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요. 파티 참석해야 하잖아요.”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려던 찰나 태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며칠간 장거리 비행과 연달아 진행된 언론사 인터뷰 등 빽빽한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강행군을 했음에도 그의 얼굴에서는 전혀 피로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수면 부족으로 눈이 다소 충혈되고 양 볼이 핼쑥하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한 모습이었다. 살인적인 스케줄에 치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가 되어서도 절대 지친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 그였다.

그 때문에 태현을 영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제이 넷 안팎에서는 김승언이 저와 똑같은 독종을 물어 와서 호되게 키우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어쨌든 노감독의 말마따나 생긴 것과 어울리지 않게 지독한 녀석임은 분명했다.

 

축하드립니다.”

강 감독 축하해.”

고오맙습니다.”

뒷말을 길게 늘이는 윤제의 말과 함께 세 개의 잔이 부딪쳤다. 남실거리도록 따른 술이 찰랑이며 흘러 손가락을 적셨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태현, 승언, 윤제 세 사람은 윤제의 말에 의하면 세상에서 가장 끝내주는 국물을 판다는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었다. 영화진흥공사 주최로 열린 아카데미 수상 기념 파티장에서까지 도무지 끝이 날 줄 모르는 돌림노래처럼 사람만 바뀔 뿐 똑같은 말로 반복되는 축하인사에 결국 진저리를 치고 만 세 남자는 의기투합해서 차례차례 파티장을 탈출했다.

분위기가 한창 흥에 올라 다들 거나하게 취한데다 모처럼 영화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라서, 판에 박힌 인사말을 건넨 뒤에는 다들 여기저기 눈도장 찍기에 바쁜 것이 그들에게는 다행이었다.

1, 2차를 거치느라 얼큰히 취해 있는 포장마차의 다른 손님들은 여자 없이 남자 셋만 덩그러니 앉아 있는 자리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들 모두 턱시도는 벗어던지고 평소 차에 두고 다니는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터라 위화감도 없을 뿐더러,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유명 배우 서태현이 이런 곳에서 술을 마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소박한 장소이기도 했다.

이 녀석 보면 배우도 할 짓은 아니야.”

소주 몇 잔을 비워낸 윤제가 태현을 향해 혀를 끌끌 찼다.

그렇지?”

듣고 있던 승언이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그들 모두 나이 차를 떠나 막역한 사이로 지내는지라 가리고 감추는 것 없이 서로에게 직설적인 충고를 날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물론 스물여덟의 나이로 그들 중 가장 어린 태현이 충고의 대상일 때가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배우가 왜요?”

천직으로 알고 있는 직업을 못할 짓이라는 단 두 마디 말로 평가하는 윤제에게 태현이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이야 결혼을 하든지 연애를 하든지. 마흔이 훨씬 넘도록 마누라가 있든지 말든지, 일흔이 넘은 우리 모친 빼고는 아무도 신경 안 쓰거든. 근데 너는 여자하고 밥 한 번만 먹어도 다들 벌떼처럼 몰려들어서 대체 누구냐, 어떤 사이냐, 결혼할 거냐 물어대니. 아까 기자회견장에서도 봐. 내가 김 대표랑 손잡고 영화를 찍든, 아니면 다른 제작자와 일을 하든 누가 신경이나 써? 그런데 봐. 태현이는 소속사하고 계약 끝나는 것 갖고도 얼마나 말들이 많은지.”

낮의 기자회견에서 태현의 거취와 관련한 질문들이 지나치게 쏟아졌던 탓인지 윤제의 말에는 보이지 않는 미묘한 가시가 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맨날 놀리잖아. 어항 속에서 산다고.”

무심한 듯하지만 계산이 빤한 승언의 말에 단순하게도 윤제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항이라, 그거 말 되네.”

기자들의 지나친 질문세례에 기분이 나빴던 것이지 태현이나 승언에게 딱히 감정이 있던 것이 아니어서인지 윤제의 마음은 금세 풀렸다.

한창 피가 끓는 젊은 애가 마음 놓고 연애를 할 수가 있어, 풀어져서 제대로 놀 수 있기를 해. 그러니 어항 속 인생이라고 하는 거지. 내 입장에서 보면 고마운 일이지만 말이야.”

얘 연애 못 하는 거야 김 대표 때문이지.”

코웃음을 치는 윤제의 대꾸에 승언은 말도 안 된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못 하게 막아도 하는 놈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하고 싶은 짓 다 해. 학교 다닐 때 조퇴 못 하게 하면 가방이고 신발이고 다 내버려두고 실내화 신은 채로 학교 담 넘는 놈들 못 봤어?”

이번에 작업하면서 보니까 정말 재미없게 살긴 하더라. 어떻게 된 애가 손에 들고 있는 거라곤 시나리오 아니면 덤벨뿐이더라니까. 6년 전에 서쪽 하늘작업할 때는 워낙에 파격적인 캐스팅이니 뭐니 언론에서도 말이 많으니까, 저도 부담 되고 긴장해서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아니야. 이번에도 그때랑 안 변한 거 하나 없이 똑같더라고. 한창 피가 끓는 젊은 놈이 맞나 싶더라니까. 내가 저 나이였을 땐 지나가는 여자 발목만 힐긋 봐도 불뚝불뚝했는데 말이지. 스치면서 눈웃음만 한번 살랑 날려도 어떻게 쟤를 꼬드겨서 한번 해보나, 자나 깨나 그 궁리뿐이었는데. 인마, 네가 그러니까 여자가 없는 거야.”

마지막 말은 태현을 향한 것이었다. 하지만 태현은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한창 좋은 나이에 왜 그러고 살아.”

혀를 끌끌 차는 윤제에게 승언이 한마디 툭 던졌다.

누구는 너무 안 그러고 살아 문제면서 뭘 그래.”

안 그러고 사는 사람이 어디 나만 있나. 누구누구도 그러면서.”

난 최소한 한 번에 한 명이야.”

나도 그래, ……뭐 요즘은. 휴우, 이젠 힘이 달려서 전처럼 하재도 못 하겠어. 이제 슬슬 조강지처를 찾을 때가 된 건가 싶기도 하고.”

지금까지 악 소리 나게 놀고 이제 와 기운 떨어지니까 조강지처 찾는다고? 양심이 좀 있어봐라, 인간아.”

나이와는 도통 걸맞지 않는 주제로 한동안 투닥거리던 사십 대의 두 남자는 결국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라는, 주제와는 한참 동떨어진 결론을 내고는 들고 있던 잔을 기분 좋게 비웠다. 윤제야 원래 주는 술 마다않고, 오는 여자 안 막는 한량으로 소문이 자자하지만,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승언이 격의 없이 실없는 농담과 함께 술잔을 비워내는 모습은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쉽게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태현도 늘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 있던 몸의 힘을 슬쩍 내려놓았다. 배우 서태현에게 승언과 윤제는 부모 같은 존재였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서태현은 없었다.

지금 기획하고 있는 영화, 경은주 거라며?”

무심코 던진 윤제의 물음에 술잔을 막 비워낸 태현의 몸이 뻣뻣이 굳었다. 그녀다.

 

◇ ◆ ◇

 

넌 나를 너무 힘들고 괴롭게 해. 너하고 있으면 꼭 무슨 일이 터질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 날 좀 놔주면 안 되겠니?

사랑 없이 오로지 책임감 때문에 평생 억지로 네 곁에 붙어 있길 원해? 네가 바라는 게 내 불행이야?

네 옆에서 말라 죽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그만 포기해. 나 그동안 너한테 넘칠 만큼 했어. 네가 나를 보는 눈이 어떤지 알아? 너희 부모님이 당한 교통사고가 마치 나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항상 그런 눈으로 보고 있다고. 허구한 날 집구석에 처박혀서 눈물 질질 짜고 있는 너 위로하는 것도 이젠 짜증나서 못 해먹겠어. 대체 왜 내가 너한테 죄 지은 사람처럼 미안해해야 하는 건데?

더 솔직히 말할까? 너 만나고 나서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우리 아버지, 거의 확정된 거나 다름없었던 진급에서 밀려나더니 나중에는 거의 떠밀리다시피 제대했고 미국에 있던 형은 박사 학위도 못 받고 귀국했어.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은주의 입술이 앙다물린다 싶더니 이내 이를 으드득 갈았다. 원고를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떠올린 기억이긴 하지만 경은주의 세상이 박준석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절을 떠올릴 때면 자동적으로 나오는 반응이었다.

나쁜 새끼!

지 아버지가 군수업체에서 뇌물 받은 게 들통 나서 별 못 달고 불명예제대 한 것도 내 탓이고, 미국에서 계집애들 끼고 마약 들이마시며 흥청망청 놀던 지놈 형이 학교에서 쫓겨난 것도 내 죄야?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주먹을 꼭 쥔 채로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그란 두 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갓 대학에 입학했던 열아홉부터 스물셋까지, 정확히 47개월 동안 박준석 하나면 세상 그 무엇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마치 정해진 절차처럼 첫사랑인 준석에게 청혼을 받고 그대로 그와 결혼해 아이 낳고, 자신의 부모님이 그랬듯 남은 인생 평범하게 살게 될 줄 알았었다. 하지만 상견례를 위해 집을 나섰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세상을 뜬 후 그녀의 인생은 통째로 바뀌었다. 가족을 모조리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약혼자였던 준석은 너무도 당연한 절차인 듯 파혼을 통보해 왔고, 그녀는 세상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인간은 자신이 버틸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닥친 슬픔에는 오히려 무감각해진다는 것을 은주는 그때 알았다. 무엇보다 그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특히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부모님의 부재는 그녀를 끝 간 데 없는 고독의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외로움이라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녀의 주위를 빈틈없이 채운 채 마치 공기처럼 떠다니고 있는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것이 글쓰기였다. 부모님의 사고 직후 짧은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집 안에 칩거하던 중,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생각들을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라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면 사는 게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고, 또 한 편, 다시 한 편. 이렇게 써나가다 보니 어느새 작가가 되어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그녀는 글 쓰는 것이 좋았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디리리리리.

모니터 옆에 둔 휴대전화의 알람 소리에 은주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떠올린 기억에 너무 먼 곳까지 가버린 것 같다. 깍지를 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스트레칭을 하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느라 굳었던 몸을 푸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 뭐 하고 있었니?

정혜 이모, 엄마의 막내 여동생이다. 작업시간이 좀 길어진다 싶을 때마다 귀신처럼 전화를 해서 컨디션을 묻는 걸 보면 작업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했거나 아니면 정말 신기가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일하다 잠깐 몸 푸는 중이야. 저녁에는 약속 있어서 나갈 거고.”

부모님의 장례 절차가 끝나고 당연한 수순처럼 찾아왔던 준석과의 이별 뒤, 정혜 이모는 그녀에게 함께 살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세상 누구와도 섞여 살 자신이 없었던 은주의 거절을 그녀는 지금까지도 서운해했다.

- 너 또 그놈 괴롭히는 거에 필 꽂혀서 잔혹극 쓰고 있었던 거 아냐?

학교 관두고 신당 차릴 생각 없어? 내가 매니저 해서 손님 왕창 끌어올게.”

- 계집애, 실없기는.

작품마다 상황과 이름은 전부 다 달랐지만 그녀의 소설에서 가장 험한 꼴을 당하는 인물은 전부 준석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후, 은주는 준석을 목 졸라서 한 번, 물에 빠뜨려 세 번, 강도의 칼에 찔러 두 번을 죽였다. 죽음 이외의 방법으로는 세 번의 무기징역, 목만 겨우 가눌 수 있는 전신마비 두 번에 식물인간이 한 번, 성기 절단이 한 번 있었다. 지나가던 단역으로 출연해 길바닥에 나뒹굴거나 뺨을 맞고 뭇사람들의 발길질에 차인 것은 미처 셈에 넣을 수도 없다. 이를테면 그녀 나름의 소심한 복수인 셈이다. 물론 가상이긴 해도 성기 절단을 소심한 복수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역시 평생 남자구실 못 하게 확! 잘라버린 거였지만 너무 자극적인 설정이라서 아쉽게도 두 번은 쓰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차선으로 고환을 터뜨려 아예 대를 끊는 방법을 생각해놓고는 있지만 아직 실행에 옮길 만한 인물과 설정을 찾지 못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비참하게 버림받았던 기억은 그 어떤 것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미워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지만, 맹렬한 증오의 대상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살기에 가까운 분노를 느끼게 한다. 갑작스럽게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고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준석만을 의지하고 있을 때 알게 된 그의 배신은 차라리 죽음이 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를 괴롭혔다.

- 점심은 먹었고?

다시 들려오는 말에 은주는 고개를 저으며 상념에서 벗어났다.

냉동실에 있는 된장국 데우고 명란젓하고 같이 먹었어.”

빠른 대답 한 번으로 다음에 나올 질문까지 효과적으로 처리한 은주는 장난스럽게 혀를 쏙 내밀며 눈을 찡긋했다.

사실은 느지막이 일어나 우유 한 잔 마신 게 전부지만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앞으로 석 달 열흘 동안 이모의 잔소리에 밥을 말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도록 이모가 얼려서 갖다 준 몇 가지 국들은 여전히 냉동실에서 단단한 얼음으로 굳어 있었고 밀폐용기에 담긴 반찬들은 뚜껑이라도 열어본 지가 오래였다.

때가 되면 열심히 해다 나르는 이모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히 식욕도 별로 일지 않았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적당히 우유나 과일로 대충 해결했고 제대로 된 끼니는 사나흘에 한 번 챙길 때도 허다했다.

- 엊그제도 된장국 먹었다면서.

. 요번 게 유난히 맛있더라고.”

묘하게 말끝을 늘이는 것을 가볍게 넘기며 은주는 산뜻하게 대답을 마쳤다.

- , 경은주! 너 죽을래? 저번부터 어쩐지 수상하다 싶어서 이번엔 된장국 아예 안 넣었거든? 요 콩알만 한 게 감히 나한테 뻥을 쳐!

하아, 초등학교에서 2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모의 말은 가끔씩 이렇게 아름다울 때가 있었다. 학부모들이 들을까 두려울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키 160센티미터 넘는 콩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속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이모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은주는 재깍 엎드리기부터 했다.

미안해. 저녁 약속이라서 나가면 어차피 밥 먹을 테니까 그냥 토스트에 우유 한 잔 마셨어. 이모 걱정할까 봐 거짓말한 거니까 용서해주라.”

- 누구 만나는데?

저번에 말했잖아. ‘Deep Inside’ 영화 제작 제의 들어왔다고. 그 일 때문에.”

- 확실해?

그러엄!”

전화기 저편에서 보일 턱이 없건만 은주는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강조했다.

- 저녁 약속이라 이거지?

.”

- 그럼 이따가 일행 중 하나하고 통화하게 해줘. 같이 있는 사람 누구하고든 통화해서 확인할 수 있게.

, 이모……. 그건 좀.”

이렇게까지 하는 정혜 이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었다.

혼자 살겠다고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밥을 밀어 넣는다는 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보름이 넘도록 밥 한 숟갈 안 먹고 버티다가 결국에는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간 이후 그녀의 식사 여부에 대한 정혜 이모의 감시는 상상을 초월했다.

음식 솜씨가 유난히 좋았던 어머니 덕에 입맛이 까다롭게 길들여진 그녀를 생각해서 직접 만든 국과 반찬들을 한 달에도 몇 번씩 직접 나를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이모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은주는 어떤 것을 먹어도 별다른 맛을 느끼지 못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았던 식탁을 잃어버린 후 그녀에게 음식이란 그저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우리 애들 사인회만 아니면 내가 당장 발 벗고 뛰어갔어. 어떡할래? 너 약속 있다는 데로 내가 갈까, 아님 일행하고 통화하게 해줄 거야? 참고로 우리 애들 이번 공개 행사를 내가 열 달이나 기다린 건 알지?

무시무시한 엄포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모가 우리 애들이라고 부르는 건 다름 아닌 2PM이다. 오빠, 오빠 하는 아이들보다 이모들의 팬심이 무섭다더니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그들의 무대를 한번 본 뒤로 이모는 아예 그들의 폐인이 되어버렸다.

작년 겨울에는 일본에서 열리는 2PM의 새 앨범 쇼케이스 겸 콘서트 무대를 직접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탔을 정도였으니 그 열성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가히 알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열 달 만의 사인회를 만일 그녀 때문에 거르게 된다면 그 뒷감당을 어찌해야 할지 얼핏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이모.”

한번 한다면 죽어도 하는 성격을 잘 아는지라 은주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 거 약속장소를 아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사인회 끝날 무렵이면 그녀도 집에 돌아와 있을 테니.

- 되지도 않는 꼼수 썼다가는 죽을 줄 알아. 당장 쫓아가서 멱살을 끌어서라도 분당 집으로 데려와 버릴 테니까.

머릿속 생각을 들여다보고 하는 말 같아 한편으로는 뜨끔했지만 일단은 큰소리부터 치고 보았다.

결혼도 안 한 이모, 조카가 한집에서 마주 보고 늙어가는 거 너무 청승맞아.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겠어?”

- 남들이 무슨 상관이라고. 그리고 말은 바로 해야지. 결혼을 안 한 건 너지, 난 한 번 했었다고. 남편이란 자식이 마마보이에 바람꾼이라 일찌감치 눈에 콩깍지 풀고 잽싸게 빠져나와서 그렇지. 아예 결혼도 안 한 너하고는 차원이 다른데, 이게 감히 어디서 비교질이야.

글쎄, 썩 자랑할 거리는 아닌 것 같지만 일단은 화제에서 벗어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결혼하셨던 이모님. 제 걱정 마시고 사인회나 가세요. 저도 이만 나갈 준비해야 하거든요.”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로 겨우겨우 전화를 끊은 은주는 전화기를 쥔 채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노트북 하나만 달랑 안은 채로 끌려 갈 뻔했다.

가끔 지나치다 싶은 간섭에도 정혜 이모의 말에 군소리 없이 따르는 이유는 단 하나, 정혜 이모는 그녀가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혈육이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하늘과 땅이 맞붙어 내일 아침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랄 정도로 뼛속까지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그녀의 손을 잡아준 유일한 사람이 바로 정혜 이모였다.

, 늦겠다.”

잠시 감상에 빠져 있던 은주는 눈동자를 가득 채우는 뜨거움을 느끼고는 손가락으로 쓱쓱 문질러냈다. 이런 감상 따위 하나도 쓸모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어찌 된 일인지 가끔씩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목구멍을 뜨겁게 채울 때가 있었다. 못나게 눈물 찔끔거리는 걸 그나마 다른 사람에게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후우, 정신 차리자. 몇 번이나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길 반복하고 욕실로 향했다. 눈물 흘린 흔적 따위, 거울을 통해서라도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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