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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김 도령의 은밀한 사생활 2권 (완결)

글쟁이소녀 지음로망띠끄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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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으로 은밀하고 야릇하게 퍼지기 시작한 발칙한 소설! 특히나 규방가 규수들의 억눌린 욕망을 자극하는 아찔한 내용에 밤낮할 것 없이 후끈거리며, 속을 들었다, 놨다 하는 조선 운종가 최고의 베스트 소설! 하지만 이 발칙하고 앙큼한 소설가의 존재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니! 그저 필명 김 도령이라, 알고 있을 뿐이었다.
-본문 중에서-
운종가에 즐비한 책방 안으로 갓을 깊이 눌러쓴 한 도령이 들어섰다. 눅눅한 책 냄새와 함께 여러 선비들이 점잖게 책을 살피고 있었고, 간간이 여인들이 수줍은 시선으로 지나가는 도령을 살폈지만, 그는 그런 시선이 꽤 익숙한 듯 태연하게 책방 아주 구석진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아주 작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도령은 소리를 따라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갔고, 이내 그의 시선으로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무언가에 열중하며 온갖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책방 주인 박씨가 보였다.
“자색 빛이 휘늘어지게 떨어지며, 그 사이로 수줍게 비춰오는 여린 살결위에 작은 바람이 조금씩, 조금씩! 크!”
“흠흠흠!”
“마침내, 흔들리는 고름을 움켜쥐고서 조심스럽게 스르르르!”
“어허허흠!”
“어, 어이쿠!”
읽고 있던 책에 정신 팔려 있던 책방 주인은 바로 귓가에서 헛기침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화들짝 놀라며 마치 금덩이라도 숨기듯, 책을 숨기고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자 갓을 깊게 눌러쓴 한 도령이 스르르 미소를 그리며 살며시 입을 열었다.
“무엇에 그리 정신이 빠져서 손님이 왔는데도 보는 척도 하지 않는가?”
“아, 아닙니다요. 한데 무슨 일로?”
“소리까지 내어가면서 읽던데. 그게 대체 뭔가? 응?”
한참 중요한 부분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자꾸 귀찮게 치근대는 낯선 도령의 모습에 박씨는 손님이라는 사실도 망각한 채 미간을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어렵게 구한 비색 고름의 마지막 권인데. 지금이 가장 중요한 장면인데!
“찾으시는 서책이 있으신…….”
얼른 쫓아버릴 요량으로 목소리를 높이려던 박씨의 목소리가 그냥 쏘옥 들어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깊게 눌러썼던 갓의 그림자가 살며시 사라지면서 사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내가 살포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웬만한 여인만큼이나 여리고 가는 선을 지닌 얼굴과 박씨를 향해 서늘하게 접힌 눈매는 부드러움을 머금고서 휘어져 있었고, 붉은 입술 너머로 흘러드는 목소리는 굉장히 고운 음성을 띠고 있었다. 별다른 무늬 없이 그저 새하얀 도포가 단정하게 떨어졌고, 야무지게 묶은 상투 위로 조금 큰 것 같은 갓이 그의 하얀 얼굴 위로 살짝 그림자를 지게 만들었다. 사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곱디고운 그야말로 꽃 도령이었다.
“저, 저, 저기…….”
“무슨 책이냐니까? 응?”
마치 교태를 부리듯, 커다란 눈망울을 살짝 찡그리며 재차 물어보는 통에 박씨는 눈앞에 있는 도령이 사내라는 사실도 망각한 채, 침을 꿀꺽 삼키고선 아까와는 달리 굉장히 상냥한 목소리로 뒤로 숨겼던 책을 슬그머니 내놓았다. 겉으로는 평범한 책인 듯 보였지만, 박씨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이게 그 유명한 비색 고름의 마지막 권입지요. 도성에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요. 이름 높은 규방가에서도 구하려고 난리이지만, 헤헷. 제가 오늘 새벽에 아주 어렵게 구해왔습죠.”
“오호, 그런가? 헌데. 비색 고름이 뭔가?”
꽃 도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박씨는 마치 자신이 모욕을 당한 것처럼 성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김 도령의 신작. 비색 고름을 모르는 것입니까요? 이 얼마나 대단한 책인 것을! 요즘은 양반댁 도령들께서도 다 알고 있습니다요. 게다가 궐 안까지 얼마나 파다한데. 혹, 조선 분이 아니십니까?”
박씨는 묘한 시선으로 꽃 도령을 힐끔 쳐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꽃처럼 어여쁜 도령이었다. 만약 도성 사람이라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을 터. 혹시 명에서 온 것인가? 명은 워낙 넓으니. 저런 미색을 가진 도령이 있을 지도 모르지.
“그렇게 대단한 책인가?”
“대단하다 뿐이겠습니까? 다음 작품은 언제 나오느냐며 규방 아씨들이 아주 난리입니다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문장력에 기가 막히고도 대담하기까지 한 묘사력! 저절로 온몸이 후끈거리면서, 마지막엔 감동이 절로 밀려옵죠.”
박씨는 책을 꼭 끌어안고선 저도 모르게 눈물을 찍어냈다. 꽃 도령은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짐짓 모른 척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책을 쓴 자가 김 도령이라고?"
“예. 아주 대단한 분이십니다요. 하지만 누구도 본 적이 없습지요. 풀리는 책 모두가 필체가 전혀 다른데다가, 출처도 불분명하고. 그저 김 도령이란 필명만 알고 있습니다요.”
“그런가? 대단한 사람인가 보군.”
“예! 정말 죽기 전에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습니다요.”
그러자 꽃 도령은 다시금 피식 웃으면서 쓰고 있던 갓을 좀 더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고운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면서 박씨는 저도 모르게 아랫도리를 움켜쥐었다. 대, 대체 뭐야. 아무리 곱다하여도 사내인 것을! 요즘 홍와여림에 좀 뜸했다고, 이놈이 정신을 못 차리고 미쳤나!
“실컷 보았는가?”
“예, 예?”
“허면 책 많이 파시게. 그 비색 고름은 마지막 장의 시 구절이 일품이니, 놓치지 말고.”
꽃 도령은 다시금 갓을 깊숙이 쓰고서 유유히 책방을 빠져나갔다. 박씨는 마치 꿈을 꾸듯, 꽃 도령이 지나간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 도령이 한 말이 생각나 서둘러 비색 고름의 마지막 장을 확인했다.
‘일장춘몽 [一場春夢] 한바탕 덧없이 꾸었던 꿈처럼. 그대가 남긴 비색의 옷고름만이 눈물자락의 흔적을 남기며, 내 손 끝에서 아련히 떠나갔네.’
“일장춘몽이라. 정말 한바탕 꿈을 꾼 것 같군. 설마, 저 도령이 김 도령?”
에이, 그럴 리가. 박씨는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부분을 읽기 위해 서둘러 걸음을 뒤로 돌렸다.
<미리보기>
“괜찮소?”
겸은 웃음을 꾹 누르고서 짐짓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사실 그녀가 맥을 짚은 그 순간부터 그는 깨어있었다. 단지, 이렇게 빨리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었고, 또 그녀가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기에 모른 척 하고 있었을 뿐. 그런데 그녀의 시선이 뜨겁게 와 닿았다 이내 떨어지니, 겸은 저도 모르게 눈을 번쩍 뜨고야 말았다.
언지는 그의 짧은 한마디에 집 나간 정신이 다시 그녀를 붙잡았다. 세상에! 설마, 날 알아본 건가? 들킨 건가? 들켰나! 아니야.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시치미를 떼야 해. 그래, 막 나가자!
“어찌 그리 빤히 보십니까?”
보기는 제가 먼저 봤으면서, 언지는 오히려 겸에게 뒤집어씌우기 시작했다. 겸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얼씨구? 이 여인이 또 무슨 꿍꿍이속인 건지.
“왜요? 혜민서 의녀로 썩기엔 너무 아까운 외모다, 그리 생각하고 계십니까?”
“뭐?”
너무 황당한 나머지 겸은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언지는 얼굴에 제대로 철판을 깔고서 당돌하게 밀어붙였다. 이 사내의 넋을 쏙 빼놓은 뒤 재빨리 도망쳐주겠어!
“뭐, 물론 그렇겠지요. 한 나라를 휘어잡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인데. 그러니 도련님은 아침부터 참 운이 좋으십니다. 허나 계속 이리 빤히 보시면 제가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수줍게 얼굴까지 붉히면서 고개를 돌리는 품새에 겸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 살다 살다 이런 여인은 처음이었다.
“보통 그리 말하면 사내들이 전부 넘어가오?”
하지만 언지는 끝까지 제 눈앞에 사내를 처음 본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순진무구한 눈빛을 띠었다.
“무슨 말씀이온지?”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럼 그냥 묻겠소. 혹, 우리 어디서 만나지 않았소?”
하지만 언지는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절대로. 무조건 못 본 거야. 당신은 지금 어제 본 그 여자와 날 착각하는 거라고!
“글쎄요, 전혀요.”
“정말이요?”
“정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내가 제게 그리 물어보시지만, 제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정말 도련님을 처음 뵙는 것입니다.”
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시치미를 떼어보시겠다? 물론 복색은 어제와 달랐지만, 확실히 그녀가 맞았다. 이 쌉싸름한 약초 향과 더불어, 저렇게 능청스럽고 앙큼한 계집이 조선 팔도에 흔한 것이 아니니. 하지만 그는 꽤나 능청스런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런 미색의 여인을 내가 착각할 리가 없는데. 분명 그대와 닮은 여인을 내가 어제 이렇게 쑤욱.”
그는 어제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서 확 끌어당겨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허리를 끌어안았다. 뭐, 뭐 이런 호색하고 가벼운 자가 다 있어!
“어찌 이리도 무례하십니까!”
“아, 정말 미안하오. 이리 가까이에서 보니, 아닌 것 같소. 어제 그 여인이 훨씬 더 어여뻤거든.”
겸은 순순히 손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언지는 재빨리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는 화끈거리는 두 볼을 움켜쥐었다. 김 도령으로 온갖 남녀상열지사를 써보았지만, 그건 그저 상상일 뿐. 이렇게 사내와 가깝게 붙어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속아 넘어간 것 같지? 물론 살짝 기분 나쁘긴 했지만. 지금 내 미모가 뭐가 어때서!
언지는 애써 불쾌한 내색을 감추고서 짐짓 무거운 목소리로 그를 향해 약간의 감정을 실어 앙칼지게 외쳤다.
“귀한 댁의 도령 같으신데, 대낮에 이리 의녀를 희롱하시다니.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이쯤에서 언지는 얼른 이 자리를 뜨려고 했다. 더 이상 얼굴 마주 보고 있어봤자 좋을 것도 없고, 또 지금 그녀는 교육당으로 얼른 가봐야 했다. 분명 새 의학교수께서 이미 도착을 했을 터인데! 하지만 몇 발자국 걸어갔던 언지는 이내 미간을 찡그리며 다시 겸에게로 돌아왔다. 겸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뭐지?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맥은 정상인데. 숙취가 아직 몸 안에 남아 있는 듯합니다. 숙취엔 헛개나무가 좋으니, 꼭 달여 마십시오.”
그리고는 이번엔 정말로 과감하게 몸을 돌렸다. 젠장! 얼른 피하지는 못할망정, 쓰러져 있던 모습이 눈에 밟혀서 결국엔 이런 오지랖을 떨고야 말았다. 망할 오지랖! 망할 양반의 신념!
겸은 잠시 멍하니 그녀의 말을 되새기다 이내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훗, 푸하하하하!”
무슨 말을 하나, 싶었더니. 쓰러져 있던 제가 그리도 신경에 쓰였단 말인가? 다른 건 몰라도 의녀로서 책임감 하나는 대단한 것 같았다. 어제 홍와여림의 일도 그러하고. 물론 겸은 쓰러져 있던 것이 아니었다. 언지의 말대로 숙취 때문에 머리가 울려 좀 누워 있었던 것 뿐. 어젯밤, 홍와여림을 나와 이영의 집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하필이면 이영의 둘째 형님을 만나 아주 거하게 또 한 잔을 하고야 말았다. 아마 영이도 지금쯤 머리가 깨지고 있을 것이다.
겸은 느긋한 표정으로 한 손으로 턱을 괴고선 허겁지겁 사라지고 있는 언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으로 그녀의 한 손에 끼워진 의생교육서를 보고선 입술 위로 음흉하고 위험스런 곡선이 스윽 올라갔다. 이제야 좀 한숨을 돌리고 있을 터인데. 정녕, 진심으로.
“지지리 복도 없는 여인일세. 훗!”
1권
-시작-
1장. 화제의 문장가 김 도령
2장. 잘나고 귀하신 의학교수
3장. 자칭 혜민서 절세가인
4장. 살인 사건
5장. 자꾸만 아른 아른
6장. 홍와여림
7장. 일장춘몽
8장. 일촉즉발
2권
9장. 한성애사
10장. 자색을 품다.
11장. 기억의 파편
12장. 연판장
13장. 양귀비 휘날리다
14장. 지키려 하는 검
15장. 새벽이 떠오른다
16장. 마지막 장
-본문 중에서-
운종가에 즐비한 책방 안으로 갓을 깊이 눌러쓴 한 도령이 들어섰다. 눅눅한 책 냄새와 함께 여러 선비들이 점잖게 책을 살피고 있었고, 간간이 여인들이 수줍은 시선으로 지나가는 도령을 살폈지만, 그는 그런 시선이 꽤 익숙한 듯 태연하게 책방 아주 구석진 곳으로 걸음을 옮기며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아주 작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도령은 소리를 따라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갔고, 이내 그의 시선으로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무언가에 열중하며 온갖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책방 주인 박씨가 보였다.
“자색 빛이 휘늘어지게 떨어지며, 그 사이로 수줍게 비춰오는 여린 살결위에 작은 바람이 조금씩, 조금씩! 크!”
“흠흠흠!”
“마침내, 흔들리는 고름을 움켜쥐고서 조심스럽게 스르르르!”
“어허허흠!”
“어, 어이쿠!”
읽고 있던 책에 정신 팔려 있던 책방 주인은 바로 귓가에서 헛기침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화들짝 놀라며 마치 금덩이라도 숨기듯, 책을 숨기고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자 갓을 깊게 눌러쓴 한 도령이 스르르 미소를 그리며 살며시 입을 열었다.
“무엇에 그리 정신이 빠져서 손님이 왔는데도 보는 척도 하지 않는가?”
“아, 아닙니다요. 한데 무슨 일로?”
“소리까지 내어가면서 읽던데. 그게 대체 뭔가? 응?”
한참 중요한 부분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자꾸 귀찮게 치근대는 낯선 도령의 모습에 박씨는 손님이라는 사실도 망각한 채 미간을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로 어렵게 구한 비색 고름의 마지막 권인데. 지금이 가장 중요한 장면인데!
“찾으시는 서책이 있으신…….”
얼른 쫓아버릴 요량으로 목소리를 높이려던 박씨의 목소리가 그냥 쏘옥 들어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깊게 눌러썼던 갓의 그림자가 살며시 사라지면서 사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내가 살포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웬만한 여인만큼이나 여리고 가는 선을 지닌 얼굴과 박씨를 향해 서늘하게 접힌 눈매는 부드러움을 머금고서 휘어져 있었고, 붉은 입술 너머로 흘러드는 목소리는 굉장히 고운 음성을 띠고 있었다. 별다른 무늬 없이 그저 새하얀 도포가 단정하게 떨어졌고, 야무지게 묶은 상투 위로 조금 큰 것 같은 갓이 그의 하얀 얼굴 위로 살짝 그림자를 지게 만들었다. 사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곱디고운 그야말로 꽃 도령이었다.
“저, 저, 저기…….”
“무슨 책이냐니까? 응?”
마치 교태를 부리듯, 커다란 눈망울을 살짝 찡그리며 재차 물어보는 통에 박씨는 눈앞에 있는 도령이 사내라는 사실도 망각한 채, 침을 꿀꺽 삼키고선 아까와는 달리 굉장히 상냥한 목소리로 뒤로 숨겼던 책을 슬그머니 내놓았다. 겉으로는 평범한 책인 듯 보였지만, 박씨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이게 그 유명한 비색 고름의 마지막 권입지요. 도성에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요. 이름 높은 규방가에서도 구하려고 난리이지만, 헤헷. 제가 오늘 새벽에 아주 어렵게 구해왔습죠.”
“오호, 그런가? 헌데. 비색 고름이 뭔가?”
꽃 도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박씨는 마치 자신이 모욕을 당한 것처럼 성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김 도령의 신작. 비색 고름을 모르는 것입니까요? 이 얼마나 대단한 책인 것을! 요즘은 양반댁 도령들께서도 다 알고 있습니다요. 게다가 궐 안까지 얼마나 파다한데. 혹, 조선 분이 아니십니까?”
박씨는 묘한 시선으로 꽃 도령을 힐끔 쳐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꽃처럼 어여쁜 도령이었다. 만약 도성 사람이라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을 터. 혹시 명에서 온 것인가? 명은 워낙 넓으니. 저런 미색을 가진 도령이 있을 지도 모르지.
“그렇게 대단한 책인가?”
“대단하다 뿐이겠습니까? 다음 작품은 언제 나오느냐며 규방 아씨들이 아주 난리입니다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문장력에 기가 막히고도 대담하기까지 한 묘사력! 저절로 온몸이 후끈거리면서, 마지막엔 감동이 절로 밀려옵죠.”
박씨는 책을 꼭 끌어안고선 저도 모르게 눈물을 찍어냈다. 꽃 도령은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짐짓 모른 척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책을 쓴 자가 김 도령이라고?"
“예. 아주 대단한 분이십니다요. 하지만 누구도 본 적이 없습지요. 풀리는 책 모두가 필체가 전혀 다른데다가, 출처도 불분명하고. 그저 김 도령이란 필명만 알고 있습니다요.”
“그런가? 대단한 사람인가 보군.”
“예! 정말 죽기 전에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습니다요.”
그러자 꽃 도령은 다시금 피식 웃으면서 쓰고 있던 갓을 좀 더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고운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면서 박씨는 저도 모르게 아랫도리를 움켜쥐었다. 대, 대체 뭐야. 아무리 곱다하여도 사내인 것을! 요즘 홍와여림에 좀 뜸했다고, 이놈이 정신을 못 차리고 미쳤나!
“실컷 보았는가?”
“예, 예?”
“허면 책 많이 파시게. 그 비색 고름은 마지막 장의 시 구절이 일품이니, 놓치지 말고.”
꽃 도령은 다시금 갓을 깊숙이 쓰고서 유유히 책방을 빠져나갔다. 박씨는 마치 꿈을 꾸듯, 꽃 도령이 지나간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 도령이 한 말이 생각나 서둘러 비색 고름의 마지막 장을 확인했다.
‘일장춘몽 [一場春夢] 한바탕 덧없이 꾸었던 꿈처럼. 그대가 남긴 비색의 옷고름만이 눈물자락의 흔적을 남기며, 내 손 끝에서 아련히 떠나갔네.’
“일장춘몽이라. 정말 한바탕 꿈을 꾼 것 같군. 설마, 저 도령이 김 도령?”
에이, 그럴 리가. 박씨는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부분을 읽기 위해 서둘러 걸음을 뒤로 돌렸다.
<미리보기>
“괜찮소?”
겸은 웃음을 꾹 누르고서 짐짓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사실 그녀가 맥을 짚은 그 순간부터 그는 깨어있었다. 단지, 이렇게 빨리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었고, 또 그녀가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기에 모른 척 하고 있었을 뿐. 그런데 그녀의 시선이 뜨겁게 와 닿았다 이내 떨어지니, 겸은 저도 모르게 눈을 번쩍 뜨고야 말았다.
언지는 그의 짧은 한마디에 집 나간 정신이 다시 그녀를 붙잡았다. 세상에! 설마, 날 알아본 건가? 들킨 건가? 들켰나! 아니야.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시치미를 떼야 해. 그래, 막 나가자!
“어찌 그리 빤히 보십니까?”
보기는 제가 먼저 봤으면서, 언지는 오히려 겸에게 뒤집어씌우기 시작했다. 겸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얼씨구? 이 여인이 또 무슨 꿍꿍이속인 건지.
“왜요? 혜민서 의녀로 썩기엔 너무 아까운 외모다, 그리 생각하고 계십니까?”
“뭐?”
너무 황당한 나머지 겸은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언지는 얼굴에 제대로 철판을 깔고서 당돌하게 밀어붙였다. 이 사내의 넋을 쏙 빼놓은 뒤 재빨리 도망쳐주겠어!
“뭐, 물론 그렇겠지요. 한 나라를 휘어잡을 경국지색[傾國之色]인데. 그러니 도련님은 아침부터 참 운이 좋으십니다. 허나 계속 이리 빤히 보시면 제가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수줍게 얼굴까지 붉히면서 고개를 돌리는 품새에 겸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 살다 살다 이런 여인은 처음이었다.
“보통 그리 말하면 사내들이 전부 넘어가오?”
하지만 언지는 끝까지 제 눈앞에 사내를 처음 본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순진무구한 눈빛을 띠었다.
“무슨 말씀이온지?”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럼 그냥 묻겠소. 혹, 우리 어디서 만나지 않았소?”
하지만 언지는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절대로. 무조건 못 본 거야. 당신은 지금 어제 본 그 여자와 날 착각하는 거라고!
“글쎄요, 전혀요.”
“정말이요?”
“정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내가 제게 그리 물어보시지만, 제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정말 도련님을 처음 뵙는 것입니다.”
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시치미를 떼어보시겠다? 물론 복색은 어제와 달랐지만, 확실히 그녀가 맞았다. 이 쌉싸름한 약초 향과 더불어, 저렇게 능청스럽고 앙큼한 계집이 조선 팔도에 흔한 것이 아니니. 하지만 그는 꽤나 능청스런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런 미색의 여인을 내가 착각할 리가 없는데. 분명 그대와 닮은 여인을 내가 어제 이렇게 쑤욱.”
그는 어제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서 확 끌어당겨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허리를 끌어안았다. 뭐, 뭐 이런 호색하고 가벼운 자가 다 있어!
“어찌 이리도 무례하십니까!”
“아, 정말 미안하오. 이리 가까이에서 보니, 아닌 것 같소. 어제 그 여인이 훨씬 더 어여뻤거든.”
겸은 순순히 손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언지는 재빨리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는 화끈거리는 두 볼을 움켜쥐었다. 김 도령으로 온갖 남녀상열지사를 써보았지만, 그건 그저 상상일 뿐. 이렇게 사내와 가깝게 붙어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속아 넘어간 것 같지? 물론 살짝 기분 나쁘긴 했지만. 지금 내 미모가 뭐가 어때서!
언지는 애써 불쾌한 내색을 감추고서 짐짓 무거운 목소리로 그를 향해 약간의 감정을 실어 앙칼지게 외쳤다.
“귀한 댁의 도령 같으신데, 대낮에 이리 의녀를 희롱하시다니.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이쯤에서 언지는 얼른 이 자리를 뜨려고 했다. 더 이상 얼굴 마주 보고 있어봤자 좋을 것도 없고, 또 지금 그녀는 교육당으로 얼른 가봐야 했다. 분명 새 의학교수께서 이미 도착을 했을 터인데! 하지만 몇 발자국 걸어갔던 언지는 이내 미간을 찡그리며 다시 겸에게로 돌아왔다. 겸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뭐지?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맥은 정상인데. 숙취가 아직 몸 안에 남아 있는 듯합니다. 숙취엔 헛개나무가 좋으니, 꼭 달여 마십시오.”
그리고는 이번엔 정말로 과감하게 몸을 돌렸다. 젠장! 얼른 피하지는 못할망정, 쓰러져 있던 모습이 눈에 밟혀서 결국엔 이런 오지랖을 떨고야 말았다. 망할 오지랖! 망할 양반의 신념!
겸은 잠시 멍하니 그녀의 말을 되새기다 이내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훗, 푸하하하하!”
무슨 말을 하나, 싶었더니. 쓰러져 있던 제가 그리도 신경에 쓰였단 말인가? 다른 건 몰라도 의녀로서 책임감 하나는 대단한 것 같았다. 어제 홍와여림의 일도 그러하고. 물론 겸은 쓰러져 있던 것이 아니었다. 언지의 말대로 숙취 때문에 머리가 울려 좀 누워 있었던 것 뿐. 어젯밤, 홍와여림을 나와 이영의 집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하필이면 이영의 둘째 형님을 만나 아주 거하게 또 한 잔을 하고야 말았다. 아마 영이도 지금쯤 머리가 깨지고 있을 것이다.
겸은 느긋한 표정으로 한 손으로 턱을 괴고선 허겁지겁 사라지고 있는 언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으로 그녀의 한 손에 끼워진 의생교육서를 보고선 입술 위로 음흉하고 위험스런 곡선이 스윽 올라갔다. 이제야 좀 한숨을 돌리고 있을 터인데. 정녕, 진심으로.
“지지리 복도 없는 여인일세. 훗!”
1권
-시작-
1장. 화제의 문장가 김 도령
2장. 잘나고 귀하신 의학교수
3장. 자칭 혜민서 절세가인
4장. 살인 사건
5장. 자꾸만 아른 아른
6장. 홍와여림
7장. 일장춘몽
8장. 일촉즉발
2권
9장. 한성애사
10장. 자색을 품다.
11장. 기억의 파편
12장. 연판장
13장. 양귀비 휘날리다
14장. 지키려 하는 검
15장. 새벽이 떠오른다
16장. 마지막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