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소개
사랑도 연애도 내가 하고 싶을 때 해야지!

남자는 도둑놈, 세상에 믿을 것은 돈밖에 없다던 스물두 살 여진의 눈앞에 열 살 연상 준현이 나타났다! 주는 거 없이 미운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어느새 여진의 마음 속 한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준현. 얼렁뚱땅 해치운 결혼과 더불어 시작된 신혼 생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살짝 엿보세요.

“여진아……. 아직 멀었어? 지금 나 너무 지친다.”
“아저씨 나 어떡해?”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에 놀라 귀를 바짝 대며 문을 잡아당겼지만 열리지가 않았다.
“여진아, 문 열어봐.”
“어떻게 해요.”
징징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문을 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 없는 그로서는 답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문을 부술 수도 없었다.
“무슨 일이야?”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눈 감아!”


* 이 작품은 서미선 작가의 ‘부부’, ‘불꽃 같은 전쟁’과 시리즈입니다.


2. 작가 소개

서미선
필명 소나기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을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세 남자와 매일 싸우는 게 하루 일과.

▣ 출간작

〈후견인〉, 〈루비레드〉, 〈잔인한 사랑〉, 〈가면〉, 〈카인과 아벨〉, 〈부부〉, 〈지독한 거짓말〉, 〈피의 베일〉, 〈넌 내게 지옥이었어〉, 〈되찾은 약혼녀〉, 〈아내〉, 〈레드 러브〉, 〈백설화〉, 〈도령〉, 〈홍분지기〉 외 다수


3. 차례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에필로그


4. 미리 보기

이제 막 신혼의 첫날밤을 보내라고 하는데, 자신의 신부인 여진이 무엇을 하는지 아직까지 욕실에서 나오질 않고 있었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방안을 지금 몇 바퀴째 도는 지 기억이 없었다. 부모님들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욕실 문으로 다가가 그는 작은 소리로 불렀다.
“여진아, 아직 멀었니?”
“네.”
들어간 지 벌써 30분이 넘었는데 아직도 멀었다니……. 그렇다고 무턱대고 안으로 들어 갈 수도 없었다.
“얼른 나와. 집에 전화 드려야 하잖아.”
여진의 대답은 들리지 않고 시원한 물줄기 소리만 들렸다.
“여진아…….”
“금방 나갈 거예요. 먼저 전화 드리세요.”
“그런 게 어디 있니. 빨리 나와.”
뭐라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숨을 쉬며 전화로 식사와 와인, 그리고 샴페인까지 주문했다. 초에 불을 붙이고 두 손을 비비며 웃음을 짓던 준현은 요란스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자신의 전화를 기다리지 못하고 기어이 어머니가 전화를 걸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안 받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후환이 두려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받았다.
“준현이니?”
“네.”
“여진이는…….”
언젠가부터 부모님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신의 여봉이었다.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런 내색은 하지 않은 채 욕실에 있다고 말하자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점잖은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지 기어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겁먹게 하지 마라.”
“뭘요?”
“어린것이 놀라서 도망가면 어떡하니.”
“엄마!”
“아직도 엄마니. 여진이가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두 손도 모자라 두 발까지 모두 들고 말았다. 준현은 거칠어진 숨결을 가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성 교육받을 때 지났거든요. 선민이 보세요. 지금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잖아요. 저도 결혼만 빨리 했으면 애 아빠거든요.”
“그러면 뭐하니. 이제 결혼했는데.”
또다시 시작될 것 같은 잔소리에 그는 한숨을 간신히 참았다. 도대체 신혼여행을 온 자식에게 이게 무슨 짓인지…….
“엄마, 여진이 샤워 끝내고 나오면 전화 드릴게요.”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또 다시 휴대전화가 울릴 것을 생각해 배터리를 빼버렸다. 어휴……. 엄마의 극성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혼잣말을 하며 그는 그때까지 욕실에서 나오지 않은 여진을 보며 문으로 다가갔다.
“여진아…….”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이미 목욕은 끝난 것 같은 데 도대체 뭘 하느라 이리 나오지 않는 지……. 마음 같아선 당장 끌어내고 싶은데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계속 뛰는 심장을 지그시 내리 누르며 또 다시 불렀다.
“여진아…….”
“…….”
“여진아……. 아직 멀었어? 지금 나 너무 지친다.”
“아저씨 나 어떡해?”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에 놀라 귀를 바짝 대며 문을 잡아당겼지만 열리지가 않았다.
“여진아, 문 열어봐.”
“어떻게 해요.”
징징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문을 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 없는 그로서는 답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문을 부술 수도 없었다.
“무슨 일이야?”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눈감아.”
그제야 여진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신의 몸으로 서 있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런 침입에 놀랐는지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배 보여.”
“아저씨!”
“여봉이라며…….”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그녀의 외침은 아예 귀담아 듣지도 않은 채 준현은 뻔뻔스럽게 고정시킨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노골적인 시선 앞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급기야 욕조 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변태, 해삼, 멍게, 삼치, 고등어…….”
“왜 말미잘은 빼먹어.”
욕조 가까이 다가온 그를 보며, 여진은 점점 몸을 움츠렸다. 가만히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가 살짝 무릎을 꿇고 앉으며 젖은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예뻐.”
그리고 드러난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휘둥그레진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에 시선을 맞추자 고개를 다시 숙여 버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못 본 척 하며 물었다.
“왜 그렇게 급하게 불렀어. 설마……. 안아서 나가라고 부른 것은 아닐 테고…….”
“반지!”
“반지?”
왼손가락을 쫘악 펼치더니 울상을 지었다. 분명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그녀의 약지 손가락에 끼어져 있던 결혼반지가 보이지 않았다.
“잃어버렸니?”
“욕실에 들어오자마자 씻는다고 빼 놓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어떡하죠. 잊어버렸나 본데……”
세면기에 놓아두었는데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여진의 말이었다.
“잘 생각해봐. 혹시 다른데 놓아두고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 아니야?”
“아니에요. 분명히 저기 세면대에 놓아두었단 말이에요.”
거짓말은 아닌 듯 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기다란 팔이 세면대 위를 가리키자 마음속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네?”
그게 무슨 뜻이냐는 눈으로 바라보는 눈에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부리고 있던 몸을 펴 여진이 알려준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여기저기 아무리 찾아도 반지는 보이지 않았다.
“없나보다.”
“안 돼요. 어머니 본인이 끼시던 것 세팅해서 주신 거란 말이에요.”
못 참으면 울 것 같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제법 넓은 규모의 욕실을 아무리 훑어보아도 반지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여진을 보며 안심시키듯 말했다.
“할 수 없잖아.”
“찾아봐요.”
떼를 쓰는 여진의 말에 준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수구까지 찾아보았는데 없잖아. 다른 데 뒀는지 다시 생각해봐.”
“아저씨 저기……. 저기! 저기 있어요.”
“어디?”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다.
“변기 속에.”
“어디?”
“변기…….”
말을 끄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에 환히 보였다.
“나더러 꺼내라고?”
“당연히 아저씨가 해야죠.”
“싫어. 네가 해.”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변기 속이라니……. 으윽 생각만으로도 싫었다. 볼일을 보고 내리지 않았는지 물 색깔 역시 맑지 않았다. 옷을 벗었다는 것을 잊었는지 여진은 몸을 욕조 밖으로 반쯤 내밀어 놓은 상태였다. 하얀 젖가슴이 눈에 들어온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정말 이럴 거예요!”
“네가 해. 볼일도 네가 봤잖아.”
투덜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도끼눈을 했다. 입술까지 뾰로통하게 삐져나온 것이 자신에 대해 화가 났다는 표시였다. 얼마나 말이 없는 가운데 서로를 마주 보았을까, 갑자기 여진이 벌떡 일어서더니 커다란 타월로 몸을 가렸다.
“첫날 밤 없어요.”
“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여기 있어요. 그리고 제가 야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죠."
정말 꺼내주지 않으면 그대로 나갈 태세였다. 저 고집을 꺾으려면 일단 지고 들어가야 하는데…… 준현은 화가 났지만 억지로 참고 그녀를 향해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만들었다.
“꼭 반지를 꺼내야 우리가 첫날밤을 보낼 수 있는 거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듯 입술을 꾹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나가 있어.”
“고마워요.”
“여우.”
“사랑스러운 여우잖아요. 여봉……. 비누로 손 깨끗이 씻고 오세요.”
날름 혀를 내밀며 나가는 여진을 보며, 준현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꼭 깨물어 주고 싶었다. 큰 게 아니라 소변이었지만 그래도 더러웠다. 어디서 고무장갑을 빌리거나, 아니면……. 일회용 장갑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더럽기는 했지만, 변기에서 반지를 꺼내 깨끗한 물로 씻어내고 여진의 말이 아니더라도 깨끗이 씻었을 손을 열 번을 넘게 닦아냈다.

서미선(소나기)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을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세 남자와 매일 싸우는 게 하루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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