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널 다시 사랑해도 될까?

치즈케잌27 지음로망띠끄201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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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 979-11-5760-2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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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 바라보겠다던 그녀가 말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그는 5년 만에 다시 찾았다.
그녀를 만나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 듯 마음의 날을 갈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앞에 선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 했다.
그녀… 유서영.
스무 살 이후의 기억을 모두 잃었다. 마치 레테의 강을 건넌 것처럼…
그런 그녀 앞에 어느 날 한 남자가 운명처럼 나타났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 남자가 낯설지 않았다. 그 남자의 눈이 그녀처럼 아프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강민수.
-본문 중에서-
서영의 하루는 단조로웠다. 책을 읽거나 애완견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가게에 있는 시간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니라서 거의 집 안에서 생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게에 나가 손님이 주문한 꽃을 손질해서 두고 종업원에게 가게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영은 늘 그렇듯이 애완견 쎄미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섰다. 쎄미에게 뭐라 얘기를 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민수가 바라보고 있었다.
인디언 핑크의 카디건을 가볍게 걸치고 칠 부 정도의 진에 캔버스 운동화를 신은 서영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게다가 머리도 하나로 묶어 올린 서영은 더 아름답고 생기가 있어 보였다. 달라져 보이는 건 예전보다 더 성숙해진 아름다움이었다.
‘서영아.’
민수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순간 서영의 시선이 민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찰나였다. 민수와 서영의 시선이 하나로 얽힌 것은. 그러나 서영은 민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서영은 시선을 거둬들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공원으로 향했다. 민수는 그런 서영을 보며 자신의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정우의 말을 들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었다. 그런데 사실이었나 보다. 하지만 민수는 인정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니가 나를 잊어?’
민수는 자신도 모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먹을 꽉 쥐고 화를 삭이고 있었다.
‘내가 널 잊을 순 있어도 넌 날 잊어선 안 되는 거잖아?’
민수는 혼자 나직이 그렇게 읊조렸다. 그 소리엔 분노뿐만 아니라 안타까움도 함께 묻어 있었다.
처음 서영이 없어진 걸 알았을 때 민수는 어머니가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어지던 어느 날 서영에게서 짤막하게 자신의 심경을 담은 편지를 받고 나서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음을 알았다. 그 편지를 보면서도 민수는 믿을 수가 없어서 한동안 자신의 삶을 버렸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분노했고 그도 자신을 다스리지 못함에 절망 했었다. 그러나 그 절망과 분노 속에서 결론을 얻은 건 서영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서영을 되찾아와 자신이 느낀 절망을, 분노를, 똑같이 느끼게 해 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 했었다.
‘넌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하지만 난 그 약속을. 너와 한 약속을 지킬 거다. 그리고 내 자신과 한 나만의 약속도 꼭 지킬 거야. 널 내 품 안에 다시 되돌아오게 할 거야. 그리고 네가 내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네게 돌려 줄 거야. 내가 느껴야 했던 고통, 슬픔, 배신감, 그리고 내 분노도 고스란히 네가 느낄 수 있게 해 줄 거다. 아마 너와 똑같은 기분을 내 어머니도 알게 되시겠지.’
[미리 보기]
인후에게 다녀온 후 민수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똑같이 지냈다. 서영과 하루를 함께 시작하는 아침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똑같은 아침을 두 사람은 함께 열고 있었다. 서영은 커피를 내려 주고 그 커피 향을 음미하며 마시던 민수는 문뜩 생각났다는 듯 그러면서 아무 의미 없는 말인 것처럼 한마디 툭 내뱉었다.
“블루마운틴…… 커피의 쓴맛, 신맛, 단맛이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신이 인간에게 준 지상 최고의 선물이라고 한다죠. 영국 왕실 커피라고 알려지면서 더 유명세를 탔고요.”
“네. 전 돌아가신 제 이모의 환자가 선물로 준 블루마운틴을 처음 마시고 그 맛이 너무 좋아 커피광이 돼 버렸어요. 제 이모가 간호사셨거든요.”
“전요…….”
갑자기 민수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표정도 좀 전과 다르게 조금은 우울한 낯으로 변한 것 같았다.
“전…… 이 커피 제가 사랑하는 아니 사랑했던 사람 때문에 좋아하게 됐어요.”
“…….”
서영은 민수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조금씩 민수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편안해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서먹함이 있는 서영이었다. 느닷없는 민수의 얘기는 의구심만 일어나게 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마치 고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사랑했던 사람? 그럼 지금은 헤어진 사람이네. 이 사람이 많이 아팠겠다. 서영은 지금 민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민수가 마음을 다쳤을 생각에 그가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처음으로 마음을 준 사람이었습니다.”
“네? ……그랬군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서영의 표정엔 그저 민수의 지나간 버린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의 눈빛이 찰라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 표정조차도 민수가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그런 순간이었다. 민수는 자신이 그렇게라도 얘기하면 혹시라도 서영이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일부러 흘리듯 한마디 툭 내뱉었다. 그러나 서영의 얼굴에선 그 어떠한 반응도 살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왜 다 놓아 버린 거야? 왜, 무엇 때문에? 혹시라도 내 어머니 때문인 거니? 넌 그때 분명히 내 옆자리가 싫어져서 떠나는 거라고 했어. 그런데 왜 지금 내 앞에 있는 넌 행복하지 않은 건지. 서영아…….’
마음이 아프다 못해 저려왔다. 서영으로 인해서 이런 감정이 일어나리라곤 민수는 예상하지 못 했다. 그녀를 잊지는 않았어도 그녀에 대한 감정은 모두 죽여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서영을 찾아 자신이 아팠던 만큼 똑같이 아니 그 몇 배로 서영이 힘들어 하게 만들어 줄 작정이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서영이 무작정 미웠다. 그러나 아무리 미워하고 증오했던 서영일지라도 막상 매일 그 모습을 앞에 대하며 함께 식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며 지내다 보니 그런 생각들은 어느새 저 멀리 던져 버려진 듯했다. 아니 자신의 기억도 할 수만 있다면 서영이처럼 지워 버리고 새로운 기억으로 서영과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점점 서영에 대한 미움이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았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서영의 모습이 그렇게 마음을 바꾸게 하는지 모른다. 여전한 그 심성과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의 향에 민수는 또다시 자신을 취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혹시, 서영 씨는 그런 사람 없었어요?”
“네? 무슨 말인지.”
“사랑했던 사람이요.”
“아!”
갑작스런 민수의 질문에 서영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하지 말아요. 안 해도 되요.”
민수는 그렇게 물었지만 이내 후회가 되었다. 서영의 입에서 어떤 말이 흘러나올지 몰라 불안했다.
“…….”
“그런데 원래 이렇게 일찍 일어나나요?”
“아니요, 네.”
“무슨 대답이 그래요?”
서영은 뭔가 말을 못 하는 표정이었다. 민수는 뭐라 더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미안해요, 제가 서영 씨 마음을 여러 가지로 불편하게 한 거 같군요. 오늘 아침에.”
“아니에요.”
“커피도 잘 마셨고 오늘 저녁은 밖에서 저랑 같이 할래요?”
“그러실 필요 없으세요.”
“그렇게 한 번에 거절하지는 말아 주지.”
민수가 서영을 바라보는 눈빛은 간절해 보였다. 그 눈빛 때문에 서영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면…….”
“참! 거절 못 하게 아예 못을 박으시네요.”
“그럼 허락한 거죠? 제가 이따가 가게로 데리러 갈게요. 그리고 쎄미 걱정은 말아요. 조금 이따 제가 산책도 시켜 놓을 테니까, 저 녀석이 저를 아주 조금 좋아하거든요.”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요, 그리고 쎄미가 민수 씨 아주 많이 좋아해요, 조금이 아니라. 제 친구 조안 다음으로 잘 따를걸요.”
“그래요?”
민수가 무척 기분 좋은 모습으로 쎄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이에요. 쎄미가 낯선 사람을 따르는 거.”
‘저도 처음이에요. 낯선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거. 그리고 낯선 당신이 싫지 않은 거, 또 그런 당신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거.’
서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나쁜 놈이 아니라고 생각되나 본데요. 그러니?”
민수가 쎄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서영을 향해 물었다.
“다행이다. 혹시 서영 씨도 그래요?”
“네?”
민수의 물음에 서영은 좀 전에 혼자 한 생각을 읽힌 것 같아 얼굴이 발개졌다. 그렇게 놀라며 반문하는 서영을 보며 민수는 농담이라고 얼버무리고 서영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민수는 쎄미의 산책까지 도맡고 나서며 서영을 가게로 내보냈다. 그런 민수가 서영은 고마웠다. 그렇게까지 해서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애쓰는 민수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서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민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민수는 서영과 저녁 약속을 하고 난 후 자신이 들떠 있음에 놀랐다.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 만에 느끼는 것이었다. 서영을 잃은 뒤로 민수는 기쁨에 젖어 희열을 느낀 적이 없었다. 포춘지에 미래의 주목 받는 세계의 젊은 경영인 100인 안에 뽑혔을 때도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너만이 나를 웃게 할 수 있어. 너만이 내 전부였던 거야. 그런데 넌 그걸 내게서 빼앗아 갔지. 왜? 왜 그랬니? 아니야, 강민수! 정신 차려, 지금의 상황이 다가 아니야, 갈 길이 아직 멀잖아.’
민수는 자신의 마음이 흔들릴까 봐 다잡고 또 다잡았다. 서영이 자신을 버린 배반에 대한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갈 수는 없었다.
그녀를 만나면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 듯 마음의 날을 갈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앞에 선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 했다.
그녀… 유서영.
스무 살 이후의 기억을 모두 잃었다. 마치 레테의 강을 건넌 것처럼…
그런 그녀 앞에 어느 날 한 남자가 운명처럼 나타났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 남자가 낯설지 않았다. 그 남자의 눈이 그녀처럼 아프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강민수.
-본문 중에서-
서영의 하루는 단조로웠다. 책을 읽거나 애완견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가게에 있는 시간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니라서 거의 집 안에서 생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게에 나가 손님이 주문한 꽃을 손질해서 두고 종업원에게 가게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영은 늘 그렇듯이 애완견 쎄미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섰다. 쎄미에게 뭐라 얘기를 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민수가 바라보고 있었다.
인디언 핑크의 카디건을 가볍게 걸치고 칠 부 정도의 진에 캔버스 운동화를 신은 서영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게다가 머리도 하나로 묶어 올린 서영은 더 아름답고 생기가 있어 보였다. 달라져 보이는 건 예전보다 더 성숙해진 아름다움이었다.
‘서영아.’
민수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순간 서영의 시선이 민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찰나였다. 민수와 서영의 시선이 하나로 얽힌 것은. 그러나 서영은 민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서영은 시선을 거둬들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공원으로 향했다. 민수는 그런 서영을 보며 자신의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정우의 말을 들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었다. 그런데 사실이었나 보다. 하지만 민수는 인정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니가 나를 잊어?’
민수는 자신도 모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먹을 꽉 쥐고 화를 삭이고 있었다.
‘내가 널 잊을 순 있어도 넌 날 잊어선 안 되는 거잖아?’
민수는 혼자 나직이 그렇게 읊조렸다. 그 소리엔 분노뿐만 아니라 안타까움도 함께 묻어 있었다.
처음 서영이 없어진 걸 알았을 때 민수는 어머니가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어지던 어느 날 서영에게서 짤막하게 자신의 심경을 담은 편지를 받고 나서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음을 알았다. 그 편지를 보면서도 민수는 믿을 수가 없어서 한동안 자신의 삶을 버렸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분노했고 그도 자신을 다스리지 못함에 절망 했었다. 그러나 그 절망과 분노 속에서 결론을 얻은 건 서영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서영을 되찾아와 자신이 느낀 절망을, 분노를, 똑같이 느끼게 해 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 했었다.
‘넌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하지만 난 그 약속을. 너와 한 약속을 지킬 거다. 그리고 내 자신과 한 나만의 약속도 꼭 지킬 거야. 널 내 품 안에 다시 되돌아오게 할 거야. 그리고 네가 내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네게 돌려 줄 거야. 내가 느껴야 했던 고통, 슬픔, 배신감, 그리고 내 분노도 고스란히 네가 느낄 수 있게 해 줄 거다. 아마 너와 똑같은 기분을 내 어머니도 알게 되시겠지.’
[미리 보기]
인후에게 다녀온 후 민수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똑같이 지냈다. 서영과 하루를 함께 시작하는 아침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똑같은 아침을 두 사람은 함께 열고 있었다. 서영은 커피를 내려 주고 그 커피 향을 음미하며 마시던 민수는 문뜩 생각났다는 듯 그러면서 아무 의미 없는 말인 것처럼 한마디 툭 내뱉었다.
“블루마운틴…… 커피의 쓴맛, 신맛, 단맛이 환상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신이 인간에게 준 지상 최고의 선물이라고 한다죠. 영국 왕실 커피라고 알려지면서 더 유명세를 탔고요.”
“네. 전 돌아가신 제 이모의 환자가 선물로 준 블루마운틴을 처음 마시고 그 맛이 너무 좋아 커피광이 돼 버렸어요. 제 이모가 간호사셨거든요.”
“전요…….”
갑자기 민수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표정도 좀 전과 다르게 조금은 우울한 낯으로 변한 것 같았다.
“전…… 이 커피 제가 사랑하는 아니 사랑했던 사람 때문에 좋아하게 됐어요.”
“…….”
서영은 민수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조금씩 민수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편안해지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서먹함이 있는 서영이었다. 느닷없는 민수의 얘기는 의구심만 일어나게 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마치 고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사랑했던 사람? 그럼 지금은 헤어진 사람이네. 이 사람이 많이 아팠겠다. 서영은 지금 민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민수가 마음을 다쳤을 생각에 그가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처음으로 마음을 준 사람이었습니다.”
“네? ……그랬군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서영의 표정엔 그저 민수의 지나간 버린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의 눈빛이 찰라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 표정조차도 민수가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그런 순간이었다. 민수는 자신이 그렇게라도 얘기하면 혹시라도 서영이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일부러 흘리듯 한마디 툭 내뱉었다. 그러나 서영의 얼굴에선 그 어떠한 반응도 살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왜 다 놓아 버린 거야? 왜, 무엇 때문에? 혹시라도 내 어머니 때문인 거니? 넌 그때 분명히 내 옆자리가 싫어져서 떠나는 거라고 했어. 그런데 왜 지금 내 앞에 있는 넌 행복하지 않은 건지. 서영아…….’
마음이 아프다 못해 저려왔다. 서영으로 인해서 이런 감정이 일어나리라곤 민수는 예상하지 못 했다. 그녀를 잊지는 않았어도 그녀에 대한 감정은 모두 죽여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서영을 찾아 자신이 아팠던 만큼 똑같이 아니 그 몇 배로 서영이 힘들어 하게 만들어 줄 작정이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서영이 무작정 미웠다. 그러나 아무리 미워하고 증오했던 서영일지라도 막상 매일 그 모습을 앞에 대하며 함께 식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며 지내다 보니 그런 생각들은 어느새 저 멀리 던져 버려진 듯했다. 아니 자신의 기억도 할 수만 있다면 서영이처럼 지워 버리고 새로운 기억으로 서영과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점점 서영에 대한 미움이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았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서영의 모습이 그렇게 마음을 바꾸게 하는지 모른다. 여전한 그 심성과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의 향에 민수는 또다시 자신을 취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혹시, 서영 씨는 그런 사람 없었어요?”
“네? 무슨 말인지.”
“사랑했던 사람이요.”
“아!”
갑작스런 민수의 질문에 서영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하지 말아요. 안 해도 되요.”
민수는 그렇게 물었지만 이내 후회가 되었다. 서영의 입에서 어떤 말이 흘러나올지 몰라 불안했다.
“…….”
“그런데 원래 이렇게 일찍 일어나나요?”
“아니요, 네.”
“무슨 대답이 그래요?”
서영은 뭔가 말을 못 하는 표정이었다. 민수는 뭐라 더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미안해요, 제가 서영 씨 마음을 여러 가지로 불편하게 한 거 같군요. 오늘 아침에.”
“아니에요.”
“커피도 잘 마셨고 오늘 저녁은 밖에서 저랑 같이 할래요?”
“그러실 필요 없으세요.”
“그렇게 한 번에 거절하지는 말아 주지.”
민수가 서영을 바라보는 눈빛은 간절해 보였다. 그 눈빛 때문에 서영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면…….”
“참! 거절 못 하게 아예 못을 박으시네요.”
“그럼 허락한 거죠? 제가 이따가 가게로 데리러 갈게요. 그리고 쎄미 걱정은 말아요. 조금 이따 제가 산책도 시켜 놓을 테니까, 저 녀석이 저를 아주 조금 좋아하거든요.”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요, 그리고 쎄미가 민수 씨 아주 많이 좋아해요, 조금이 아니라. 제 친구 조안 다음으로 잘 따를걸요.”
“그래요?”
민수가 무척 기분 좋은 모습으로 쎄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이에요. 쎄미가 낯선 사람을 따르는 거.”
‘저도 처음이에요. 낯선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거. 그리고 낯선 당신이 싫지 않은 거, 또 그런 당신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거.’
서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나쁜 놈이 아니라고 생각되나 본데요. 그러니?”
민수가 쎄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서영을 향해 물었다.
“다행이다. 혹시 서영 씨도 그래요?”
“네?”
민수의 물음에 서영은 좀 전에 혼자 한 생각을 읽힌 것 같아 얼굴이 발개졌다. 그렇게 놀라며 반문하는 서영을 보며 민수는 농담이라고 얼버무리고 서영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민수는 쎄미의 산책까지 도맡고 나서며 서영을 가게로 내보냈다. 그런 민수가 서영은 고마웠다. 그렇게까지 해서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애쓰는 민수의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서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민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민수는 서영과 저녁 약속을 하고 난 후 자신이 들떠 있음에 놀랐다.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 만에 느끼는 것이었다. 서영을 잃은 뒤로 민수는 기쁨에 젖어 희열을 느낀 적이 없었다. 포춘지에 미래의 주목 받는 세계의 젊은 경영인 100인 안에 뽑혔을 때도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너만이 나를 웃게 할 수 있어. 너만이 내 전부였던 거야. 그런데 넌 그걸 내게서 빼앗아 갔지. 왜? 왜 그랬니? 아니야, 강민수! 정신 차려, 지금의 상황이 다가 아니야, 갈 길이 아직 멀잖아.’
민수는 자신의 마음이 흔들릴까 봐 다잡고 또 다잡았다. 서영이 자신을 버린 배반에 대한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흔들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갈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