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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어느 날 대공이 은혜를 갚겠다고 찾아왔다 3권
솔솔 지음도서출판 가하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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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 979-11-300-520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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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은혜를 갚기 위해 왔습니다, 일레나 님.”
일레나는 만신창이의 남자를 주워다 정성껏 돌봐줬다. 치료해놓고 보니 흐뭇하게도, 남색 머리에 황금안을 지닌 엄청난 미남이었다.
제 이름이 체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 못 한다던 꽃미남은, 어느 날 편지만 한 장 남겨놓은 채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1년 뒤, 일레나는 제집을 둘러싼 시커먼 무리를 발견하는데.
“정말 대공 전하가 맞으시다구요?”
“예. 맞습니다.”
“대체 왜…… 대공 전하가 대체 왜.”
“은혜를 갚기 위해서입니다.”
돌봐줬던 꽃미남은 은혜 갚는 대공이 되기 위해 돌아왔다.
체르디에 르벤다르트, 르벤다 제국의 대공.
일레나가 한사코 거절하는데도 은혜를 갚겠다며, 물러나질 않고 버틴다.
“그러니까. 같이 갑시다. 제국으로.”
“대공님.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여길 떠날 수 없어요.”
“그럼 저도 여기 있을 텐데요?”
일주일의 실랑이 끝에, 결국 일레나는 르벤다 제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대공가에서 일레나는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서서히 제 목표를 정비한다.
그녀는 본디 로지아트 자작가의 영애, 하나 가문은 누명을 뒤집어쓰고 멸문당했다. 원수들에게 복수를.
“저는 도와드릴 수 있거든요. 일레나 님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그런데 이 남자. 뭐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왜 자꾸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모든 건 일레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왜 자꾸 흔들리는 거지?
2. 작가 소개
솔솔
꽉 닫힌 새드 빼고 다 좋아합니다.
3. 차례
#전환 (2)
#전환 (3)
#전환 (4)
#전환 (5)
4. 미리 보기
그날 저녁, 나는 식탁 앞에 앉아 체르에게 넌지시 말을 꺼냈다.
“요즘도 마물 나와요?”
“드물게 나옵니다.”
“약쟁이는 또 없고요?”
“드물게 있습니다.”
“아…….”
“다만 이전에도 말했듯 전처럼 무차별 살인 같은 건 아직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내가 탄식을 흘리자 체르가 가라앉은 눈으로 설명했다.
“아직도 불안해서 그럽니까, 일렌?”
체르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기다란 눈이 걱정으로 가늘어졌다.
“그건 아니고요. 그때와는 다른 진정한 마법사로 거듭나서 별로 무섭지 않아요.”
“그럼 왜…….”
“슬슬 털어내보려고 했었거든요.”
“……호위를 물린다는 뜻입니까?”
“한번 그래볼까 했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늘한 금지령이 떨어졌다.
“아직 안 됩니다.”
입매를 딱딱하게 굳힌 체르의 눈이 단호하게 빛났다.
꿀꺽. 마른침이 절로 삼켜졌다. 너무 엄격해…….
경직된 분위기를 피해보려 컵을 입가로 가져가던 무렵, 불현듯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내가 왜 이렇게 저자세로 나가고 있지?’
우리 아빠도 아닌데.
사실 이렇게까지 내가 벌벌 떨며 허락을 구해야 하는 사안은 아니다. 어쨌거나 내 몸인데.
그가 내게 의미 있고, 내가 그에게 의미 있는 사람인 것과는 별개로 나는 하나의 인격이고 독립적인 개체다.
문득 얻은 깨달음에 나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내 눈빛이 변한 것을 느낀 체르가 눈을 더 가늘였다.
흠칫,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미세한 몸짓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제가 다니고 싶어요. 제 몸인데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면 안 되나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일렌.”
얕은 숨을 내쉰 체르는 억울함을 내비쳤다.
“저도 알아요. 다 저 걱정해서 그런 것이란 걸. 근데 좀 답답해요. 그리고 알죠? 레이디는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에요.”
체르는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인지 한 손을 들어 셔츠 단추를 풀었다.
목을 죄는 게 사라지니 숨통이 그나마 트인 것 같았다. 그의 안색이 한결 나아졌다.
“무슨 뜻인지 이해합니다, 일렌. 하지만 아직 위험요소는 남아 있습니다. 저는 두 번 다시 그런 장면은 보고 싶지 않아요.”
“…….”
“부탁합니다, 일렌.”
체르가 간절한 얼굴로 두 손을 맞잡은 채 애원하듯 말했다.
잠시 그 모습에 마음이 크게 흔들릴 뻔했지만, 끝내 한 번만 더 묻기로 결정했다.
“음……. 체르의 걱정은 이해하는…….”
아, 잠깐.
나는 불현듯 떠오른 불길한 생각에 말을 잇지 못했다.
설마. 설마, 설마, 설마.
기사단원들끼리 멀리서도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내가 호위 없이 가는 것에도 해당하는 건 아니겠지?
문득 합리적인 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묻기도 좀 그런데.’
나 수상한 일 할 거예요, 라고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고심 끝에 정보 길드 방문은 조금 더 미루기로 결정했다.
‘과거에 딱 한 번 방문한 게 마음에 좀 걸리긴 하지만, 지금까지 별말 없는 거 보면…….’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만 나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체르에게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아, 아니에요 체르. 체르가 원하는 대로 할게요. 대신 시간이 좀 지나고 안정되었다고 느끼면 그땐 내 뜻대로 할 거예요. 알다시피 자유롭게 살아와서 호위기사를 대동하고 다니는 게 익숙지 않아요.”
“앞으로는 없는 게 더 낯설 겁니다.”
“네에.”
단정 지어 말하는 태도가 아주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대충 대꾸하고는 케이크를 한 입 떠먹으며 무심한 척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어때요? 왕국이요.”
“헤이스트 왕국 말입니까?”
“네. 고향이니까 가끔 생각나요.”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슬며시 체르의 눈치를 살폈다.
진지하게 답을 고르는 걸로 보아 다행히 미심쩍어하는 눈치는 아니다.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아직도 왕국민들만 죽어난다는 말인가요?”
“비슷합니다. 친왕파와 귀족파의 대립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고……. 그나마 왕국민들 입장에서 긍정적인 면이라면 마물이라든지 인신매매라든지 하는 것들의 발생 빈도가 줄었다는 점 정도가 있겠네요.”
“…….”
“반대로 이쪽에서는 이전보다 늘고 있죠.”
체르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확실히 수상하네요.”
“왕국민들은 키르노 공작이 나서서 해결해준 덕분이라고 믿는 것 같더군요.”
문득 가슴이 콱 막힌 듯 답답해졌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키르노 공작이 설마 왕위를 탐내는 걸까요.”
혼잣말을 가장한 질문을 던졌다. 체르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잡아낼 수 없는 평온한 표정으로.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럴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지금 움직이는 건 시기상조이고……. 만약 반란이 일어난다면, 최소 내년 제국 건국제 이후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건국제면…….”
“대략적인 앞으로의 일정이 영지 방문, 신년회, 무력대회, 건국제 정도가 되겠네요. 물론 굵직한 행사들만 고려했을 때의 일입니다, 일렌.”
“그렇군요……. 신년회 이후가 되면 아무래도 소란스러워지겠어요.”
“그렇겠죠.”
차분하게 대꾸하는 체르의 얼굴을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내게 일부러 설명해주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차근차근, 마치 이러이러한 정세가 앞으로 이렇게 변할 것 같으니 알고 있어,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우아한 손놀림으로 포도주를 마시는 체르의 모습이 문득 생경했다.
……알고 있나? 그런가?
설마…….
‘아니겠지.’
문득 등줄기가 싸했다.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
나는 고개를 모로 저으며 애써 상념을 떨쳐냈다.
“근데 체르. 저한테 이렇게 자세히 알려줘도 되는 거예요?”
속으로 노심초사하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 걱정스럽게 물었다.
체르는 들고 있던 포도주 잔을 내려놓았다. 순식간에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황금안이 나를 직시했다.
그 시선을 받아내기가 문득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늘하게 주변을 잠식해가던 체르의 청명하지만 압도적인 기운이 곧 내게 닿겠다고 느낄 때.
“일렌에게는 무엇이든지 알려줘도 괜찮습니다.”
체르가 그 아름다운 눈꼬리를 물결치며 다정하게 대답했다.
“후우…….”
동시에 내 입에서 깊은숨이 터져 나왔다.
체르는 입매를 말아 올렸다. 가뜩이나 훌륭한 얼굴이 더 환하게 빛났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그게 무엇이든 다 물어보세요. 전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일렌.”
“그러다 제가 외부로 유출하면 어쩌려고요.”
“어쩔 수 없죠.”
“……?”
내가 황당함에 눈을 크게 뜨자, 체르가 천연덕스럽게 눈썹을 들어올렸다.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다.
“말했잖습니까. 전 은인께 최선을 다해 보답하려고 모셔온 겁니다. 그러니 일렌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 들어드릴 예정입니다. 아, 최근에 예외가 하나 생겼네요. 일렌의 안전에 위해를 끼칠 만한 것들은 빼고요.”
“…….”
“그리고 방금 전 나누었던 이야기는 일렌의 모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일렌이 궁금해할 만하죠. 만약 최악의 경우 왕국 정쟁의 여파가 제국에까지 미치는 날엔 일렌, 그대의 안위에도 문제가 생길 위험이 발생합니다.”
체르의 얼굴에서 미소가 가셨다.
그는 내내 담담하지만 단호한 어투로 설명했다. 마치 하나하나 내게 알아달라는 것처럼, 그리고 나를 납득시키려는 것처럼.
“저는 그 낮은 위험성조차도 거슬립니다. 그러니 언제든 궁금한 게 생기면 제게 물어보세요. 일렌과 제가 지내던 그 마을 사람들의 안위가 궁금하다면 그것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
“물론 제가 하나하나 이렇게 다 말하지만, 일렌이 외부로 유출하진 않을 거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차분한 낯으로 주절주절 늘어놓던 체르는 돌연 장난스럽게 입매를 휘며 농담을 던졌다.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붕 떠올랐다.
‘일부러 분위기를 전환시키는데 맞장구치지 않을 수야 없지.’
내내 굳은 채로 그의 말을 경청하던 나도 이윽고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죠, 체르. 전 어차피 체르 말고 친구도 없는 거 알잖아요.”
“얼마 전에 새로 생긴 걸로 아는데요.”
“체르만큼 친한 사람은 없어요.”
“믿어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죠.”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체르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나 또한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가 무언가 알아챈 것 같단 인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지만, 그를 믿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한편, 그것과는 별개로 마음 한편에는 울적함이 생겨났다.
‘이 모든 호의가 역시 은인이라서 나오는 거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번 확인받은 느낌.
나를 그만큼이나 중요하고, 또 소중하게 여겨주는 것이 기꺼웠다. 하지만 이건 다른 의미로 특별한 이에게 보이는 호의.
그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게 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도 있는, 그런 불안정한 것.
‘조금 슬프네.’
우울함을 애써 목구멍으로 삼키고 체르에게는 배시시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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