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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가을, 만나다 1권
최수현 지음도서출판 가하2021.12.21
| 판매정가 | : |
|---|---|
| 판매가격 | : 3,000원 |
| 적 립 금 | : 0원 |
| 파일용량 | : 707 KByte |
| 이용환경 | : PC/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타블렛 |
| 독자평점 | :  [참여수 2명] |
| 듣기기능 | :  TTS 제공 |
| ISBN | : 979-11-300-52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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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저 교수님 안 좋아해요.”
맑고 예쁜 눈으로 조곤조곤 할 말은 다 하는 조교 윤희민.
“……그거참 다행이군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늘 화제가 되어버려 혼자가 좋은 화학과 교수 서지혁.
지혁은 혼자가 편하지만 뭐 하나 흠잡을 구석 없이, 시키기도 전에 조용히 모든 걸 준비해놓는 윤 조교를 마다할 구실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교수실 생활.
사람이 둘이나 있는 공간임에도 귀가 먹먹한 고요가 내려앉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인다.
마음이 쓰이고 눈길이 간다.
“교수님은 무슨 말이든 다 그럴듯하고 멋지게 하시잖아요.”
“…….”
“아, 저기 혹시 오해하실까 봐. 저, 교수님…….”
“알아, 싫어하는 거.”
일부러 표현을 조금 고쳐 말한 지혁이 그제야 턱을 들었다.
……쟤가 아니라고도 안 하네.
2. 작가 소개
최수현
필명은 연하늘빛.
다시 생각나고, 또 읽고 싶어지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blog. http://m.blog.naver.com/sparklingcho
▣ 출간작
기다려줄래
그 여름, 나는(2016 리디북스 로맨스 대상 수상)
당신의 자리
취향의 문제
겨울, 또다시
기억하나요
그곳에, 네가
비 내리는 밤
베이비 키스
가을, 만나다
현실의 그대
애인의 조건
결혼할까요?
하트 크러시
라이언 하트
처음 같은 너
3. 차례
#1
#2
#3
#4
#5
4. 미리 보기
“서 교수, 표정 좀 풀지. 누가 보면 큰일 당한 줄 알겠네, 뭐.”
“신 교수님.”
“농담일세, 농담. 어이구, 재미없어라.”
지혁에게 말을 붙여보던 중년의 교수가 도저히 안 되겠단 듯 물러났다. 다른 교수들이 몇 마디 더 했지만 지혁은 일관되게 무뚝뚝했다. 이 압도적인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기척을 감추기만 하는 것이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다.
“저게 다 여자들한테 너무 데어서 그렇지. 그래도 젊고 미혼인데 예쁜 조교 오면 좋지 뭐가 어때서.”
“우리 희민이는 놔둬. 다들 말조심하라고.”
“학과장님.”
가만히 지켜보던 노교수가 엄한 목소릴 내자 싱글거리던 교수들이 몸을 사렸다. 사실 타 학부 학생이니 그들도 궁금하긴 한가 보다.
“교수님 따님이라도 되십니까? 아들만 있으신 거 뻔히 아는데요.”
“뭘 그렇게 알려고 들어. 술이 모자라 그러나?”
노교수가 잔을 들며 분위기를 띄우니 그 후론 알아서들 바빠졌다. 웃고 떠드느라 정신없는 이들을 피해 노교수가 지혁을 쿡 찔렀다.
“서 교수, 자네가 궁금하다면 살짝 말해줄 수 있는데.”
“괜찮습니다.”
지혁은 노교수의 은근한 제의를 딱 잘라 거절했다. 못 이기는 척 희민이 누구인지 흘려놓고 경고와 보호의 말을 동시에 날렸던 노교수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잔을 들었다.
“그래도 우리 희민이가 얼마나 성실하고 겸손한데. 절대 정도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는 애라고. 자넨 정말로 궁금한 게 없나?”
“궁금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툭, 팔을 뻗은 지혁이 학과장과 잔을 부딪쳤다. 다시 말해 길게 볼 일 있겠냐는 뜻이지만 나름 예의를 갖췄다.
“그리고 제가 알아야 할 건 이미 모두 안 것 같은데요.”
“응? 자네가 뭘 알아?”
“학과장님 말씀대로 성실하고 정도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면, 제가 걱정할 필요 없을 테니까요.”
지혁은 술을 단번에 들이켜곤 쓴웃음을 지었다. 한 번은 어쩔 수 없이 당했다지만, 두 번은 아니다.
“만약 아닐 경우에는, 교수님의 신용을 위해서라도 제 뜻대로 해도 된다는 말씀인 줄 알겠습니다.”
식사에 이어 노래방까지, 회식 코스는 따분하고 전형적이었다. 주로 이런 데 취미가 많은 교수들이 앞장서면 나머지가 호응하는 식이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우가 지혁이다.
“…….”
한쪽에 앉아 조용히 술잔만 드는 그를 아무도 말리거나 참견하지 않았다. 원래 저런 인간이니까, 학부 시절부터 보아온 선배 아니면 스승이 대부분인지라 알아서 포기해주는 점들이 고맙긴 했다.
저리 좋을까. 아무리 보고 들어도 그는 공감이 가질 않았다.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이를 지켜보고 있던 지혁의 시선이 문득 그 뒤편으로 향했다.
“……희민 씨, 한 잔 더 해. 환영회 겸 해서 마셔야지.”
“감사합니다.”
한구석에 조교들과 앉아 있던 작고 하얀 얼굴이 그새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주는 술을 거절도 못 하고 전부 들이켜는 것을 보니 요령이 없는 모양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학과장님이 소개를 했으니 그 성품을 의심할 마음은 없다. 하기야 언제 누구를 의심했던가. 그저 성별을 막론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인지라, 신물이 났다. 그러니 겉보기로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
그런데도 어쩐지 눈이 갔다.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끌벅적한 공간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느꼈던 먹먹한 고요함이 떠올랐다. 웃고는 있지만 적응하긴 힘들겠지. 어쩌면 그녀도 저와 비슷한 부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
무슨 얘길 들었는지 웃으며 고개를 젓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일순간의 일이라 피할 수도 없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가 예의 냉담한 눈빛으로 응수하자 희민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보통 학생들이나 조교들이 제게 지나치게 웃어대는 것에 비하면 새롭긴 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반응도 아니다.
취한 듯 어색한 입가. 그러면서도 희민은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그 눈길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모를 리 없지만 지혁은 최대한 모른 척 술을 따랐다. 어쩌면 노교수에게 했던 선전포고를 생각보다 더 일찍 실행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아, 희민 씨. 가서 다시 한 번 인사드려. 내일부터 매일 봐야 하는데 어색하면 어쩌려구.”
“아, 네에.”
누가 학과장님 조교 아니랄까 봐, 오지랖 넓은 혜진의 목소리가 멀리 지혁의 귀에까지 닿았다. 취해서 떠드는 이들 사이에서 희민의 심각한 대답 또한 선명했다. 테이블을 빙 둘러 다가오는 가만가만한 발소리가 어느새 귀에 익단 생각을 하다, 그런 스스로가 어이없어 지혁은 피식거렸다.
“……저어, 교수님.”
“앉아.”
“네?”
“거기 계속 서 있단 부딪칠 텐데.”
아, 그의 말에 뒤돌아본 희민이 취기에 비틀대는 교수를 피해 덥석 그의 옆에 앉았다. 그래놓곤 너무 가까이 앉았다 싶었는지 한발 늦게 화들짝 어깨를 좁혔다.
“…….”
숨결에 녹은 서로의 취기가 느껴질 만한 거리. 바로 눈앞에서 시끌벅적 노래를 불러대는데도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지혁 쪽에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으니 그녀 혼자 우물쭈물한다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교수님,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
드디어 그가 흘끗 고개를 돌렸다. 가까이서 마주한 희민의 얼굴은 멀리서 볼 때보다 더 하얗고 작았다. 뭐랄까, 꽉 쥐면 부스러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교수님, 괜찮으시면…….”
“말해.”
그가 눈썹을 꿈틀거리자 희민이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커다란 갈색 눈동자도 같이 흔들리다 몇 번 숨을 들이켜더니 잠잠해졌다. 누군가의 감정변화를 이토록 지근에서 본 적은 처음인지라 지혁은 헛웃음을 지으며 한쪽 머리를 괴었다.
잡아먹는 줄 아나 보네. 상대편이 그리 생각한들 나쁠 건 없지만 그의 입장에선 억울하기도 했다. 대체 내가 뭐랬다고 저렇게까지.
그녀가 할 말이 다른 의미로 기대되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잘 부탁한다는 인사 정도겠지만 거기서 더 나가면 무슨 얘길 하든 그걸로 작별인사가 될 것이다.
“…….”
지혁은 테이블 아래 꼭 포개어 맞잡혀 있는 그녀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떨리는 것을 꾹 참는 것 같은 모양새에서 나름대로 각오가 느껴졌다.
“……교수님, 제가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음성도 얼굴만큼이나 자그마하다. 저 속닥이는 소리가 어찌 아까는 또렷하게 들렸는지. 고성 내지르기로 유명한 장 교수의 노랫소리까지 겹쳐지자 지혁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말하라고.”
“저 교수님 안 좋아해요.”
“…….”
스르륵, 지혁이 이마에서 손을 뗐다. 속닥이듯 작긴 해도 확실히 잘못 들은 것은 아니다. 한번 입술을 떼고 나자 희민의 눈망울이 더 큰 간절함을 담고서 강아지의 그것처럼 커다래졌다.
“저 진짜 교수님 안 좋아하거든요.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그 이야기를 왜.”
“걱정하실까 봐요. 진짜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된다구요.”
“…….”
“저, 저는 그 말씀 꼭 드리고 싶어서.”
영혼까지 끌어모은 용기가 슬슬 바닥났나 보다. 테이블 아래에서 누르고 있던 두 손도 어느새 가슴께까지 올라왔다.
제 대답을 기다리듯 간절한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지혁은 남은 술을 쭉 들이켰다.
“그거 다행이군.”
하아, 안도하듯 가슴을 누른 희민의 뺨에 조금 전까지 없던 깊은 보조개가 파였다. 몇 번이고 감사하다 고개를 조아리고 돌아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거기까지 지켜보던 지혁이 쓱, 다른 쪽 머리를 괴었다.
“…….”
조용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한 아가씨는 아니다. 수줍지만 마냥 얌전한 아가씨도, 그렇다고 저와 비슷한 부류도 아니다. 고로 제 오판을 인정해야 하는 그의 심경이 사뭇 복잡했다. 급격히 입이 썼다. 새 술이 있었다며 신이 난 학과장이 그의 빈 잔을 채워주고서야 지혁은 입술을 열었다.
“……그거참 다행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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