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와 지내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이별은 눈이 내리는 날, 상처 난 손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냥 돌아설 수 없었던 이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연고를 그의 상처에 발라준다.
전학 간 첫날, 배정받은 반에서 약국 앞에서 만난 남자를 다시 만난 이별은 반가움에 인사를 했지만, 유하는 차갑게 반응을 한다. 그런 두 사람은 짓궂은 아이들에게서 강아지를 구하게 되면서 한결 가까워지게 된다. 이별은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유하를 꼭 졸업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그를 찾아 수업에 참여를 시키면서 유하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간다.
조용하던 학교가 들썩이는 만우절 날. 경후는 그동안 많이 변한 유하의 모습에 이별을 시켜 장난고백을 하게 하지만, 이 이별과 유하는 이 일을 계기로 사귀게 된다. 경후의 방해에도 굳건하던 두 사람은 이별이 유하의 출생비밀을 알게 되면서 멀어지게 된다. 급기야 이별과 경후가 자신을 속인 것과 자신의 출생비밀로 괴로워하던 유하는 도피를 택한다.
십년만의 재회. 유하는 이별이 십년동안 자신을 잊지 못한 것과, 자신 또한 이별을 그리워했음을 알게 되면서 다시 이별에게 돌아간다. 그런 유하를 받아들인 이별의 진짜 마음 그에게 받은 상처를 소독하기 위한 것 뿐. 이별은 유하를 흔들어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한다.
오랜 시간을 지나고 난 뒤에야 마주선 유하와 이별의 사랑전쟁의 결말은?

-본문 중에서-

당당하게 한 걸음을 밖으로 내 딛었지만, 추운 날씨 탓에 몸까지 밖으로 뺄 수 없었다. 앞으로 내딛었던 발을 도로 뒤로 물려 냉큼 창문을 닫았다. 양팔을 문질러 온기를 되찾으며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그때 시야에 한 남자가 포착이 되었다. 옆집이자 내 방에서 보이는 방의 주인인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등에 매고 있던 가방을 휙 던지더니 이내 옷의 단추를 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교복인 듯 했다.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지 거침없이 상의를 탈의했다.
“오우, 등 근육 좀 봐. 배에 왕자도 있는 거 아냐?”
요조숙녀라면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가렸겠지만, 요조숙녀와 거리가 먼 나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게슴츠레 떴다. 벨트를 푸는 듯한 남자가 멈칫 하더니 뒤를 돌았다. 그와 동시에 얼른 벽으로 몸을 숨겼다.

남자가 왼손에 들린 담배 입으로 가져갈 때 손등에 긁힌 자국이 보였다. 아무래도 약을 사려 했는데 약국 문이 닫혀 짜증이 났는지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던 새살이 돋아나게 한다는 연고가 생각이 났다. 남자가 서 있는 약국 앞으로 가 우산을 접고 옆에 섰다. 가방에서 연고를 찾아 꺼내 남자의 눈앞에 가져갔다. 받아 들지 않고 멍하니 쳐다보는 것이 당황한 듯싶었다. 계속 가만히 있는 남자의 손에 직접 연고를 발라주었다. 얌전히 있는 것이 다친 곳이 쓰라리긴 했나 보다. 연고를 다시 챙길까 하다가 집에 또 있기에 그냥 남자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우산을 펼쳐 들고 집으로 향했다.

“너 유하 스토커냐?”
이별을 위 아래로 훑어보며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닌데. 스토커라니. 나 여기 사는데.”
이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집을 확인 한 경후의 눈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네 방이 저기냐?”
경후의 눈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자신의 방 창문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경후가 양손을 교차해 팔짱을 끼고는 삐딱하게 섰다.
“너였냐? 그 변태가?”
“변태라니.”
“저기가 네 방이라며.”
“응.”
이별이 고개까지 끄덕이며 맞다고 하자 경후가 허리를 숙여 얼굴을 앞으로 가져다 댔다. 반사적으로 이별의 허리가 뒤로 젖혀졌다.
“옷 갈아입을 때 네가 훔쳐봤냐?”


[미리보기]

“엄마. 이거 하면 예뻐져?”
아이의 또랑또랑한 눈은 궁금증으로 반짝거렸다. 손을 꼼짝 못하는 게 영 불편한 것인지 몸을 베베꼬는 아이의 등을 살짝 다독이며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손가락에 매듭을 짓고 네 번째 손가락을 손톱만 남긴 채 밀가루 반죽으로 감쌌다. 밀가루 반죽 사이로 나온 손톱 위에 잘 다져진 봉숭아를 올린 후 아이와 눈을 맞췄다.
“봉숭아가 손톱을 빨갛게 물이 들게 할 거야.”
“그럼 평생 내 손톱은 빨개? 그럼 친구들이 안 놀아 줄 거 같은데.”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을 까 내심 걱정이 되는지 아이의 얼굴이 곧 울음을 터트리려 했다.
“아니야. 손톱은 새로 자라잖아. 다시 원래 색으로 자라니까 걱정하지 마.”
“이걸 왜 하는 거야?”
“음……. 우리 별이 손톱이 자르면 엄마가 깎아주지? 그러면 빨갛게 물들인 손톱이 점점 없어지잖아. 그런데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물들인 손톱이 남아 있으면 별이가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루어 질 수 있어.”
“엄마, 아빠처럼 결혼 할 수 있는 거야?”
“응. 별이 손톱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올리면 돼. 빨갛게 물이 드는 건 별이의 사랑하는 마음이 물이 드는 거야. 그 마음이 첫눈이 올 때까지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 별이의 마음이 기특해서 하느님이 별이가 좋아하는 사람과 서로 좋아하게 해 주는 거야.”
“우와. 그럼 별이 다음에도 또 할래.”
“우리 별이 좋아하는 친구 있어?”
여자는 혹시나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 같이 다니는 남자애 중에 마음에 드는 애가 있나 싶어 물었다.
“없는데. 그럼 이거 못해?”
“아니야. 나중에 별이가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그때는 좋아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서 하면 돼,”
“듬뿍? 많이? 그러면 별이 마음이 많으면 더 예쁘게 돼?”
“응. 별이가 정말로 많이 좋아하면 아주 빨갛고 예쁘게 될 거야.”


들어가자 문 앞에 서 있던 주원이 우리를 확인 하더니 종업원에게 고갯짓을 했다. 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양 옆으로 문을 당겨 연 종업원이 한쪽으로 물러서자 차례로 신발을 벗고 올라갔다.
“그냥 정식 삼인분이요.”
혜지가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메뉴를 가리키고 손가락 두 개를 접어 삼을 표시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메뉴를 받아 적은 종업원이 그 종이를 보여 주었다.
‘정식 3인분 맞습니까?’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자리에서 일어나는 종업원이었다.
“저기, 잠깐만요.”
종업원이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 혜지가 손을 펴 보이자 종이와 펜을 올려 주었다.
‘사장님 계시나요?’
‘계십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답장을 적은 종업원이 공손하게 인사를 한 후 방을 나섰다.
“사장님은 왜? 혹시 아시는 분이야?”
내 질문에 주원의 눈치를 보며 쩔쩔매던 혜지가 이상했다. 한참 뒤에 주원이 말을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내 눈을 피하고 입을 열었다.
“저기, 실은 말이야. 놀라지 마. 여기 사장이 유하야.”
십년 만이다. 십년 만에 유하의 이름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게 되었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유하 이야기를 피했던 우리다.
“뭐…?”
내가 잘못 들은 것인지 다시 묻자, 그 질문에 답을 하듯 방문이 드르륵 열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잘 다려진 검은색 양복이 보였다. 시선을 올리자 하얀 셔츠가 보였고, 문을 잡고 있는 단단한 팔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유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선이 더욱 굵어지고, 눈매는 깊어진 것 같다. 머리가 살짝 더 길고, 그 외에는 달라진 게 없었다. 내가 놀란 것처럼 마찬가지로 놀란 것 인지 서서 날 내려 보던 유하가 느릿한 몸짓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비어있는 내 옆자리로 와 앉았다.
“다들 오랜만이네. 반장은 변한 게 없다. 이별이 너도.”
옆에서 들리는 유하의 목소리에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었다. 손끝이 덜덜 떨렸다. 그에 봉숭아를 물들인 손톱이 심장이 뛰듯 흔들거렸다.
“어떻게 된 거야?”
내 질문에 모두가 입을 닫았다. 태연하게 인사를 하던 유하도 조용히 침묵을 했다.
“내가 여기 있는지 모르고 왔나 보네. 난 선약이 있어서 일어나봐야 할 것 같다. 주방장님께 신경 써 달라고 할 테니 맛있게 먹고 가. 내가 살 테니 계산은 하지 말고.”
일어서서 나가는 유하를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셔츠 옆 자락을 잡았다. 몸을 일으키던 유하가 멈칫 하더니 내 손을 떨쳐냈다. 어찌나 힘을 주었던 건지 셔츠가 흉측하게 구겨졌다. 유하가 문을 닫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미안, 미리 말 하고 데려왔어야 하는 건데.”
휴지를 건네주며 혜지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반면 주원은 속이 타는 지 연거푸 물은 두잔 들이켰다.
“우리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주원이도 유하랑 연락을 했던 건 아니잖아. 유하가 먼저 연락을 했어. 어떻게 알았는지, 결혼 축하한다고 연락이 왔어.”
벌떡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음식을 들이려던 것인지 종업원이 문을 열었다. 신발을 신고 미친 듯이 뛰어 나갔다.
“사장님은요?”
계산대에 서 있던 종업원이 내 입모양을 읽은 것인 지 손가락으로 밖을 향해 가리켰다. 유리문을 밀고 나오자 차가 한 대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본능적으로 유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갈길을 뛰어가며 유하를 불렀지만, 이내 차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갈에 걸려 넘어지자 스타킹이 찢어지고 무릎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그만 울지?”
언제 따라 나온 것인지 주원이 일으켜 세우더니 무릎에 손수건을 감아 주었다.
“뭐야, 너. 거짓말이지? 넌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담담한 주원의 모습이 마치 계속해서 유하와 연락을 해 왔던 것 같다. 대답이 없는 주원의 모습이 말을 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주먹을 쥐고 주원의 어깨를 내리쳤다.
“어떻게! 어떻게 나한테 이래!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면서 말 한마디 안 해 줄 수 있어!”
“그래서 지금 이렇게 너 데리고 왔잖아! 씹. 내가 미쳤지. 그냥 살게 내버려 둘 걸 왜 널 데리고 왔는지.”
고함을 친 주원이 혜지의 손목을 잡고 자동차 쪽으로 걸어갔다. 잡힌 손목을 빼내려 안간힘을 쓰던 혜지는 결국 주원의 힘에 의해 차에 태워졌고, 주원은 거칠게 차를 몰고 사라졌다. 멍하니 서 있다가 어깨를 툭툭 치는 손길에 돌아보자, 그 종업원이 연고를 건넸다. 십년 전 겨울이 생각이 났다. 그땐 내가 다친 유하의 손을 보고 연고를 건넸었는데. 고개를 설래 젓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절뚝거리며 주차장을 나섰다.

 
작가연합카페 그린나래와 로망띠끄에서 활동 중.

- 출간작
종이책 – ‘내 여자는 야하다’(청어람), ‘마침표. 쉼표,’(예원북스), ‘한여름 날의 캐럴’(청어람), ‘Love Appeal Drama’(봄미디어)
이북 - ‘나의 연인 오드아이’, ‘Only 하나’, ‘손끝에 심장’, ‘수호악마’

-출간예정작
‘숨결이 스미다’(청어람-4월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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