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첫사랑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교수님, 사랑해요』 문현주 작가의 작품

비 오는 어느 날, 떨고 있는 나를 위해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뛰쳐나간 소년이 있었다. 11년 후. 우산 갖고 올 테니 꼼짝 말고 기다리라던 그 소년을 잊지 못한 나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낡은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으로 간직해온 소년을 닮은 그와 만나기 전까지는.

1995년. 진안 할아버지 댁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는 중학생 해윤은 시골의 정적을 깨는 대학생 상헌의 오토바이 소리가 거슬려 참을 수가 없다. 상헌을 혼내주려고 얼굴에 냅다 물을 끼얹어버린 일을 계기로 둘은 알게 되고, 노인밖에 없는 시골에서 이내 가까워진다. 얄미운 소리만 골라 하는 상헌과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해윤은 늘 티격태격 다투기 일쑤지만 그러는 사이 마음을 나누며 좋아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퍼붓는 비를 피해 들어간 나무 밑에서 해윤과 상헌은 꿈같은 첫 키스를 나눈다. 추위로 퍼렇게 언 해윤이 걱정스러운 상헌은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우산을 가지러 마을로 돌아간다. 하지만 마침 상헌을 데리러 온 아버지의 손에 서울로 끌려가고, 그 길로 상헌은 입대한다. 실은 병 때문에 요양 중이었던 해윤이 비를 맞고 병이 악화되어 결국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들은 건 상헌이 제대한 후였다.

2006년.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해윤은 담당의 기형에게 골수를 받고, 사주와 맞지 않는 이름을 개명, 윤주라는 이름으로 새 인생을 살게 된다. 27살이 된 윤주는 입사 3년을 채우기도 전에 대리로 승진, 포상 차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출장을 간다. 남아공 한국지사 본부장 재혁을 본 윤주는 어릴 적 첫사랑 상헌과 너무나 닮은 그를 보고 말을 잃는다.
하지만 벼락같은 첫인상도 잠시,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커피 심부름에, 골프 캐디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시켜대는 재혁 때문에 윤주는 하루에도 수십 번 참을 인자를 새긴다. 윤주가 11년간 지켜온 첫사랑마저 ‘현실도피를 위한 유치한 환상’이라며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재혁. 제멋대로에 얄미운 말만 골라 하지만 속정 깊은 재혁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 윤주는 애써 재혁이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못 말리는 바람둥이라는 것을 되뇌인다. 하지만 첫사랑 상헌이나 골수까지 나눠주며 자신을 해바라기 해온 기형보다 재혁의 존재가 커지는 것을 윤주는 막을 수가 없는데.



<인물소개>

첫사랑과의 약속을 믿고 지켜온 여자 윤주
"이 남자는 알까? 당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지."
열여섯 번째 초여름, 때 이른 장맛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나무 아래에서 나눈 오렌지 향기 가득한 첫 키스를 잊지 못하는 윤주. 우산 가져올 때까지 꼼짝 말고 기다리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윤주에게 새로운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첫사랑의 소년과 무척이나 닮은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현재의 사랑을 즐기려는 남자 재혁
"첫사랑이라는 환상에서 그만 깨어나. 그리고 현실의 나를 놓치지 마!"
어린 시절 끝내 지켜주지 못한 어느 소녀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재혁. 마음을 나누기보다 일회성 유흥으로서의 만남에 익숙해진 그에게 사랑의 유효기간은 하룻밤에 불과했다.
허황되기 짝이 없는 첫사랑과의 약속을 고집스레 지켜온 그녀를 사랑하게 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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