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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5권

에클레어 지음도서출판 가하2021.01.06

판매정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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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가격 | : 3,600원 |
적 립 금 | : 0원 |
파일용량 | : 1.22 MByte |
이용환경 | : PC/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타블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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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기능 | : ![]() |
ISBN | : 979-11-300-47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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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왜 살리셨어요?”
“죽지 않길 원해서.”
“……제가 왜 죽지 않길 원하시는데요?”
“내가 너를 원하니까.”
첫 번째 삶에서 나를 죽인 건 루페르트였다. 이번 생에서 나를 죽이려 든 건 나였고, 그런 나를 살린 건 그였다. 가문에 등 돌릴 수도, 그의 등에 칼을 꽂을 수도 없다. 그의 것이라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면, 그와의 연을 끊어야 한다. 칼날처럼 잔인한 말이 그를 향한다.
“부디 저를 사랑하지 마세요.”
“사랑하지 않아.”
“원하는 걸 말씀하라 하셨죠?”
“그래.”
“죽지 않을게요. 다만 폐하를 보고 싶지 않아요. 평생, 폐하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요. 연을 맺고 싶지 않아요. 꿈에도 나오지 마세요.”
2. 작가 소개
에클레어
쓰고 싶은 글을(만) 씁니다.
3. 차례
#12. 비밀
#13. 절망 속의 당신
#14. 숨바꼭질
#15-1. 언제쯤 날 좋아할 것 같아
4. 미리 보기
나는, 너를 원해.
루페르트는 담담히 인정했다. 뼈아픈 인정이었다. 수백, 수천의 부정과 혼란이 오갔다. 단순히 온전한 제 사람이라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여야 했다. 제대로 된 이유조차 없었다.
그는 잠시 휴식이라도 취하듯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지.”
그를 향한 시선에 경멸이 깃들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괜찮았다. 그러나 도망가는 것은 도무지 괜찮지 못했다. 그녀가 그의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설사 그 도망이 망자의 강을 건너는 것이더라도.
루페르트는 주어진 게 많지 않았지만, 일단 제 손에 들어온 것을 쉬이 놓아주는 이가 아니었다. 언뜻 황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신의 어머니를 탐했던 것처럼. 그가 왜 죽지도 살지도 못한 인형을 껴안고 있었는지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실낱같은 이해만으로도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네가 어찌 그를 이해할 수 있나. 모든 것을 망가뜨려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금수만도 못한 괴물이었는데.
그러나 자신도 라리에트가 지금 당장 죽어버리면 어찌할 도리가 없겠구나 싶었다. 억지로라도 살려내고 싶지 않을 리 없다. 이토록 누군가의 삶을 바라본 적은 처음이니까.
이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감히 정의를 내릴 수도 없을 만큼 생소하다. 에바가 죽었을 때는 그저 안도했었다. 그저 그녀가 너무 가여워서. 그녀의 삶이 너무 고통뿐이라 외려 끝나 다행이라고 여겼다.
“내가 너를 원해 죽고 싶은 건가.”
완전한 정답은 아니겠지만, 아주 틀린 것도 아니리라. 루페르트는 침대에 얹은 팔에다 고개를 파묻었다. 자각도 없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가 너를 망쳤다. 자신은 황제와는 다르리라 생각했는데, 오만이질 않았나. 비겁했다. 황제처럼 될까 무서웠지만, 그녀가 없어지는 것이 더 무서웠다.
하지만 너는 나보다도 교활하다.
루페르트는 아주 느릿느릿 눈을 뜨는 라리에트를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햇볕이 투명한 눈꺼풀 위에 내려앉는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그 새하얀 얼굴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그 마음이 더 견고해졌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양 무구한 눈으로 자신을 제대로 속인 탓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너는 교활해, 라리에트 이사벨 드 벨루아.
그녀는 그 생애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비겁하고 저열한 방식으로 그를 조종했다. 마음을 빼앗았다. 어떠한 위협이나 위해에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인가.
라리에트는 벨루아의 무력과 권력을 앞세워 황위를 위협하지도 않고, 도망을 가지도 않고서 오로지 본인의 목숨을 내세워 그를 겁박했다.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협박인가 싶으면서도, 그는 실제로 그게 무서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실과 득만 따지자면 라리에트가 죽는 것은 기실 그에게 아무런 해가 없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전 황제의 딸 따위가 그에게 무슨 쓸모가 있으리라고. 그녀가 아칸의 딸인 것을 차치하고라도 그녀는 유용한 시녀조차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리에트가 없어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세상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만 같은 두려움.
“라리에트.”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일어날락 말락 움찔하는 주홍빛 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일어나, 이제.”
평소에 그의 명령이라고 제대로 듣는 법이 없었으면서 라리에트는 마법처럼 그가 일어나라고 말하자마자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루페르트는 그녀가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곧 후회했다.
“저를 놔주세요.”
적어도 몸은 성한 것 같아 다행이다 안심하기도 전이었다. 왜 목숨을 끊으려고 했느냐 제대로 된 추궁도 하기 전에 제 마음을 산산이 부수려 들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하는 말은 자신을 놔달라는 것이었다. 죽게 내버려달라고 빌었다.
벨루아로 돌아가게 해달라곤 하지 않는다. 얼마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탁인지는 본인도 아는 것처럼. 그러나 그녀가 죽게 내버려두라는 말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 자신이 절대 그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지켜볼 수 없으리란 사실을 알고 이용하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했고, 정말 자신을 믿지 않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했다.
“……죄송해요.”
“사과하지 마.”
라리에트가 울먹이며 거듭해 사과했지만 루페르트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잔인해, 저런들 전혀 안쓰럽지 않다. 그러나 그는 제대로 움직여지지도 않는 팔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자꾸 울면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가 말라버릴 것처럼 보였다. 툭 건들면 사라지고 말 신기루처럼. 원래 이토록 색이 옅은 사람이었나.
“울지 마.”
“전하, 아니 폐하나 울지 마세요.”
“내가 언제 울었어.”
루페르트는 피식 웃었다. 작은 바람 소리가 잇새로 빠져나온다. 이렇게 웃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웃음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의 입안이 파삭 말라들었다.
“저를 사랑하세요?”
“……사랑이 뭔데?”
아이 같은 질문이었지만 진심이었다. 루페르트는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없었다.
“너는 모르는 것을 할 수 있나?”
“당연히 할 수 있어요.”
라리에트의 표정은 모호했다. 웃는 것도,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얼굴. 눈물이 뺨을 적시고 있었지만, 그녀는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폐하는 죽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시나요?”
“…….”
“죽음을 모르신다고 영원히 사실 수 있으신가요?”
그녀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진다. 속삭이듯 노래하는 목소리였다.
“세상엔 그런 것들도 있어요. 겪어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말이에요. 사랑은 그런 것 중 하나예요. 저에게는 그래요.”
“그런데.”
“부디 저를 사랑하지 마세요.”
“사랑하지 않아.”
루페르트의 단호한 대답에 그녀는 안심하는 것 같았다.
“원하는 걸 말씀하라 하셨죠?”
“그래.”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건가요?”
라리에트의 목소리는 제법 또랑또랑해졌다. 크고 둥근 연갈색 눈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루페르트는 원인 모를 불안에 휩싸였다. 또 무슨 소릴 하려고.
“죽지 않을게요. 벨루아로 돌아가지도 않을 거니까 역모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걱정한 적 없어.”
“다만 폐하를 보고 싶지 않아요.”
“…….”
“평생, 폐하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요.”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연을 맺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악연이에요.”
루페르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제게 얼마나 잔인하게 굴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자신의 말에 숨도 쉬지 못하는 그를 앞에 두고 그녀는 빠르게 제 할 말만 이어나갔다. 심장을 꺼내 꽁꽁 얼어버린 겨울 호수에 담근 듯 서늘하다.
“왜.”
루페르트가 작은 목소리로 묻자, 여태 잘만 조잘대던 라리에트가 입을 다물어버린다. 큰 눈으로 그를 훑고는 바닥을 본다. 그녀는 다시 울고 있었다.
“너무 괴로우니까요.”
“뭐가 괴로워?”
“폐하를 기만하게 되는 게요. 제가 폐하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게 하지 마세요.”
“괜찮다고. 상관없다고 했잖아.”
루페르트는 제 턱을 쓸며 얼굴을 찌푸렸다. 라리에트는 잠시 움찔했지만, 변함없이 단호했다.
“폐하가 괜찮다고 하셔도 죄책감이 저를 좀먹을 테니까요. 저는 너무 이기적이라 그걸 견디고 싶지 않아요.”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괜찮은 거잖아.”
“아뇨, 폐하. 이것조차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저에겐 방도가 없어요.”
“왜 없어.”
“……못되게 굴어서 죄송해요. 하지만 폐하의 곁에 머무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라리에트.”
“폐하, 그러지 않으면 저 정말 힘들어서 죽고 싶어질 것 같아요. 도망가고 싶어요.”
루페르트는 말문이 막혔다.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쭉 빠져서, 저 가냘픈 목소리가 무어라고 입을 열 힘조차 앗아가는지. 원망할 기운도 없었다. 가슴은 먹먹하고 시야는 막막했다.
“……죽지 마. 미안해.”
“폐하, 저를 가지려고 하지 마세요.”
아.
루페르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에바에게서. 죽어가는 제 어미의 마지막 발악 같던 외침. 저를 끌어안는 황제를 뿌리치고 통곡처럼 외치던. 가지려 들지 마라. 그러나 라리에트는 허락했었다.
“가져도 된다고 했잖아.”
“이제는 안 될 것 같아요.”
이랬다저랬다 하는 라리에트 때문에 화가 났지만, 결국 에바와 같은 마음이겠거니 싶었다. 이해할 만한 절박함이다. 도망가고 싶을 테지. 한곳에서 숨을 쉬고 싶지도 않을 테니까.
루페르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인과였다. 그녀처럼 평범한 사람이 목적도 없이 그의 옆에 남아 있고 싶을 리 만무했다. 그녀는 벨루아를 보호하고 싶었고, 그는 이미 벨루아를 보호하겠다 약속했다.
루페르트는 그녀를 제 어머니처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오도 가도 못하게 발목을 꺾어 가두고, 새장 안의 새처럼 오롯이 저만 보도록.
그러나 그럴 수 없다.
황제처럼 굴고 싶지 않은 것보다는 라리에트가 에바처럼 될까 두려웠다. 마음부터 새까맣게 죽어 살아 있어도 산 것처럼 살지 못할 테니까. 들꽃을 보아도 예쁘다 말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
네가 싫다면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살겠다.
“꿈에도 나오지 마세요.”
칼날처럼 잔인한 말.
귓가를 타고 들어와 한 줌 남김없이 찢어발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