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는 천천히 눈을 떴다. 늦은 아침, 주름진 커튼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빛에 정신이 몽롱하여 눈을 깜빡거렸다. 머리가 아프고 멍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우울한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가 힘들었다. 시커먼 구름 떼가 천천히 해를 가렸다. 휘트니는 얼굴을 찡그렸다. 쓰디쓴 고독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지난밤 서재에서 있었던 일이 흐릿한 의식 속에 뚜렷이 떠올랐다.
휘트니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채, 불길한 마음을 떨쳐내려 애쓰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 불길함은 좀처럼 털어낼 수가 없었다.
휘트니는 일어나 앉아 베개들을 등 뒤에다 차곡차곡 쌓은 다음 몸을 기댔다. 방향을 정하고 계획을 세우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 그녀는 알고 있는 사실을 찬찬히 따져보기 시작했다.
우선 핫지 가의 별장을 세낸 사람은 ‘행방불명된’ 클레이모어 공작인 클레이튼 웨스트모어랜드였다. 그녀가 별생각 없이 무심하게 넘어갔던 그의 고급스런 옷들과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뻣뻣한 하인들의 태도도 이제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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