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만발한 봄날.

빨개진 얼굴로 운동장을 달리던 향주를 처음 본 날 석현에게도 봄이 찾아왔다.

공부 외에는 관심도 없던 그에게 가슴 두근거리는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손잡기, 같이하는 하굣길, 짬을 내어 즐기는 그녀의 집 앞 데이트.

그리고 어설픈 첫 입맞춤.

서툴지만 그래서 더 애틋했던 어린 연인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영원할 줄 알았던 시간들.

“기다릴게, 오빠!”

3박 4일의 시험 합숙을 끝내고 돌아온 학교에 더 이상 향주는 없었다.

그렇게 첫사랑을 보내고 12년이 흘렀다.

“오랜만이다.”

그녀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건넨 인사는 우리를 다시 12년전으로 돌려놓았다.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풋풋하고 싱그러웠던 그 때 그 순간으로.

12년을 기다려 다시 만난 첫사랑의 연인들. 멈췄던 마음과 시간이 흐른다.

“너와 나를 연결하는 인연의 끈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볼래?”

[본문 내용 중에서]

제 얘기를 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향주가 하는 행동은 말과 정반대였다. 석현은 그런 향주가 귀여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근래 향주를 떠올리기라도 할라치면 석현의 얼굴엔 당연한 듯이 미소부터 자리를 잡곤 했다.

웅얼거리는 향주의 모습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워 석현이 좀처럼 짓지 않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향주를 만나면 평소 인색하기만한 석현의 표정이 다채로워졌다.

“감추니까 더 궁금해진다. 흉본 거야?”

“아아니!”

“그럼?”

“흉은 아니고…….”

“말 못하는 거 보니까 흉이네, 뭘.”

“아이참…….”

짐짓 서운하다는 듯 슬쩍 고개를 돌리자 향주의 안절부절못하는 목소리가 따라오더니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쉬었다.

“후우, 사실대로 말해도 이상하다고 놀리기 없기야?”

“안 놀려.”

“실은, 혜영이가…… 오빠도 남자라고…….”

“당연하지. 이 덩치에, 이 얼굴에 여자면 큰일이게.”

“아니, 그런 거 말고.”

그제야 향주가 말하는 것이 단순히 생물학적인 남자가 아니라 그 안에 든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깨달은 석현은 솟구치는 웃음을 참으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나 늑대니까 조심하래?”

“응? 아, 아니…….”

“향주 네가 보기에는 어때? 나 늑대니?”

“아니.”

“맞는데.”

“아니잖아!”

철석같이 믿는다는 듯 도리질치는 향주의 머리카락이 귀밑에서 찰랑거렸다. 하얀 목덜미를 드러내며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은 아이러니하게 석현을 늑대이고 싶게 만들어 버렸다. 분명 늑대가 아니라 믿는 향주가 고마우면서도, 제가 늑대임을 증명하고 싶어졌다.

그런 기분은 늘 향주와 마주섰던 이 자리를 새롭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마법과도 같은 그 기분은 항상 만나던 자리를 오늘따라 은밀하게 보이도록 만들었고, 소년과 소녀가 아닌 남자와 여자로 마주선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오빠…… 오빠?”

불현듯 말이 없어진 자신을 부르는 향주의 입 모양에 석현의 입 안이 바싹 말랐다. 마치 제 입술을 부르는 것만 같은 입술의 움직임에 석현의 고개가 천천히 향주에게로 기울었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기는 했지만 향주는 석현의 입술을 피하지 않았다.

감칠맛 나도록 살짝궁 닿았던 입술을 뗀 석현은 여전히 동그랗게 뜬 향주의 눈에 손바닥을 올렸다. 향주의 눈이 손바닥 안에서 스르르 감기는 감촉이 오롯이 전해졌다.

“눈을 감아야지, 이 아가씨야.”

[프로필]

이희정

8월 23일생.

감정기복이 심한 전형적인 B형.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은 사람.

출간작

[모전여전] [복남이 이야기] [녹우綠雨] [쎄시봉!] [사랑 뒤의 사랑] [극기에 대한 맹세]

[Till Love] [춘화연애담] [라디오 스캔들] [사돈 對 사돈] [비애妃愛] [교동연가]

[The Moment]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애루화] [선남, 선녀] [수작] [햇빛우물]

[아삼삼한 연애] [DITTO 동감] [님아恁我]

[목차]

-1권-

01. 열여덟, 열아홉……인생의 봄

02. 봄, 우연, 햇살, 그리고 설렘

03. 착각

04. 엇갈림

05. 사랑과 우정 사이

06. 고백, 그리고 질투

07. 첫 데이트

08. 가슴으로 하는 사랑, 첫사랑

09. 놓아주기

10. 소년+늑대=입맞춤

11. 어른이 되고픈 나이

12. 가족사진

13. 준비 없는 이별

-2권-

14. 사모곡……사부곡……

15. 안녕, 아름다운 나의 첫사랑

16. 4,380일 후에

17. 네가 돌아왔다

18. 재회

19. 숙제

20. 애인

21. 어른의 연애

22. 우정과 사랑의 상관관계

23. 사랑의 속도

24. The moment of love

25. 추억, 행복했던 순간들의 기억

에필로그

-합본-

01. 열여덟, 열아홉……인생의 봄

02. 봄, 우연, 햇살, 그리고 설렘

03. 착각

04. 엇갈림

05. 사랑과 우정 사이

06. 고백, 그리고 질투

07. 첫 데이트

08. 가슴으로 하는 사랑, 첫사랑

09. 놓아주기

10. 소년+늑대=입맞춤

11. 어른이 되고픈 나이

12. 가족사진

13. 준비 없는 이별

14. 사모곡……사부곡……

15. 안녕, 아름다운 나의 첫사랑

16. 4,380일 후에

17. 네가 돌아왔다

18. 재회

19. 숙제

20. 애인

21. 어른의 연애

22. 우정과 사랑의 상관관계

23. 사랑의 속도

24. The moment of love

25. 추억, 행복했던 순간들의 기억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