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다는 거 얼마나 지독한 병인지 모르지?”

은소의 독백
“난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의 주변이 온통 가시밭이어서 내 몸에 온갖 상처를 만들어 낸다 하여도
언제나 그는 내 사랑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그는 내게 다른 여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날 아프게 하여도.....
난 여전히 그를 너무 사랑합니다.
그를 다른 여자에게 주고 싶지 않습니다."

태진의 독백
“난 그녀를 사랑합니다.
나 때문에 상처받고 항상 울고 있는 그녀지만
내 마음속은 온통 그녀뿐이고
그녀가 아니면.... 싫습니다.
그녀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예전의 그녀처럼 울고불고 화를 내며 그녀 앞에 날 꿇어앉히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더 화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난, 정말 그녀를 다른 남자에게 주고 싶지 않습니다."


<깃털처럼 가볍게 중에서>
노크소리가 들리자 준혁이 고개를 들었다.
“들어와요.”
문이 열리고 화장기 없는 은소의 얼굴이 보였다. 직원하나 잘라내는 일도 저렇게 힘든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만은 그렇게도 냉정한 것인지…….
준혁은 짧은 미소로 인사를 건넨 후 앞에 앉은 태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말씀하신 권 팀장입니다.”
은소가 가까이 다가와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공태진입니다.”
고개를 들던 은소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다.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묘한 분위기였다. 준혁은 그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느낌에 헛기침을 하였다.
“오늘 우리 회사에 회원가입을 하고 싶으시다는데 권 팀장이 매니저를 맡아주었으면 하셔서…….”
준혁의 설명에 은소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앉아서 얘기할까요?”
태진이 먼저 자리에 앉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은소가 준혁의 옆자리에 앉자 태진의 시선이 이내 불편함을 드러내었다.
“회원가입 양식은 작성하셨습니까?”
은소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들려왔다.
“아직 안 했습니다. 필요하면 지금 하죠.”
딱딱한 태진의 목소리에 준혁의 마음 속 불편함이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둘이 처음 보았을 때의 태도는 그의 머릿속에 붉은 신호등이라도 켜 놓은 듯 불안하고 조바심이 나게 하더니 곧이어 들려오는 두 사람의 형식적인 목소리는 그의 불안을 조금씩 가라앉게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은소는 쥐고 있던 빨간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리고는 사이에 끼워져 있던 검은빛 볼펜을 딸깍 거리며 눌렀다.
“권은소 씨와 둘이서만 했으면 좋겠는데요.”
태진이 준혁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잠시 은소를 바라보던 준혁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키지 않는 걸음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이기에 사장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나이랑 직업 먼저 말씀해 주시죠.”
문틈사이로 들려오는 은소의 목소리에 준혁은 딸각 사장실 문을 닫았다. 문 뒤의 상황이 계속 신경에 거슬렸다.
“이젠 나이도 까먹었나?”
태진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에 은소가 고개를 들었다.
“형식적인 거니까요.”
다이어리에 쓱쓱 적어가는 은소를 보며 태진이 코웃음을 지었다.
“성형외과 닥터. 나이 서른셋.”
“특별히 원하는 사항이 있으세요? 가령, 키라든지 생김새라든지…….”
“없어.”
그저 간결하고 짧은 대답을 내뱉으며 은소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상대방의 희망 직업은요?”
“없어.”
“집안 배경은…….”
“그건 좀 고려를 해야겠군. 잘 알고 있겠지만.”
은소가 입술을 깨물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한숨을 푹 내쉰 그녀가 다음 질문을 하였다.
“종교는요?”
“다 알고 있지 않나? 새삼스럽게…….”
태진의 목소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은소가 한숨을 내쉬며 볼펜을 다이어리 사이에 끼워 놓았다. 고개를 든 은소의 얼굴이 피곤해보였다. 핏기까지 사라져 버린 은소의 얼굴을 바라보는 태진의 마음이 아파왔다. 아니,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냥 신경이 쓰인다고만 해두자. 이런 여자를 위해 아파할 만큼 자신의 감정이 순수했던 시절은 다 지나갔을 테니까…….
“여긴 어떻게 알았어?”
은소의 목소리가 잠시 흔들렸다.
“서울에 있다면 찾는 건 식은 죽 먹기지.”
“찾아서 뭘 하게?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질 거라고…….”
은소의 목소리에 태진이 비웃음을 머금은 입술로 내뱉었다.
“웃기는군. 난 이 회사에 중매를 부탁하러 온 것뿐이야. 오버하지 말라고.”
“그래?”
은소가 사늘하게 웃었다.
“아직도 무언가가 남아서 당신을 찾아 왔다는 생각 따위를 하는 걸 보니 자만심이 대단하군.”
“중매, 그것만이 목적이라면 다른 사람이 해줘도 상관은 없겠네?”
“아니, 꼭 당신이 해 줘야겠어.”
당당하기까지 한 그의 모습에 은소가 실소를 터트렸다.
“어째서?”
“당신이 내 스타일을 제일 잘 알잖아. 같이 살아봤으니까!”
“…….”
“살아보고 버렸으니까!”
태진의 싸늘한 대답에 은소의 입가에서도 미소가 사라져 버렸다.

71년생, 게자리, 자유분방한 B형
2006년 로망띠끄에서 겨울나비라는 닉넴으로 <등 뒤에서 너를 안으면>을 연재
2007년 <봄엔비> 연재중
로맨스소설 읽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던 것이 결국은 직접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됨.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로맨스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얘기쟁이.
현재, 두 아이의 엄마이며, 온고을 옆 보석동네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표준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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