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그쪽한테 책임지라고 할까 봐 겁나요? 그쪽 같은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 아이가 절대로 모르게 할 거야.”

기억에도 없는 하룻밤으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생겼다. 지우라는 협박도 통하지 않는 스물네 살의 아이 엄마는 좋은 아빠가 될 게 아니면 책임질 생각도 말라고 한다. 난 좋은 부모를 가져본 적도 없고, 아빠는 처음인데……. 그게 가능할까?

“내가 언제 같이 살면서 애를 책임지겠다고 했어?”

“그러니까 다 필요 없다고요. 왜 내 아이가 당신 호적에 들어가고 당신 성을 따라야 하는데요?”

“기껏 생각 바꿔서 미혼모 딱지 떼어주고 애도 내 자식으로 인정해주겠다는데 거절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쪽은 생각을 바꾼 게 아니라 변덕을 부리고 있는 거죠. 나는 내 인생을 걸고 이 아이를 지키기로 했어요. 당신 인정 같은 거 없어도 나랑 아이,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요.”

2. 작가 소개

현아진

건강하고 느린 삶을 지향.

겨울과 여행, 바다 속 동물을 사랑한다.

3. 차례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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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장

4. 미리 보기

“넌 애 엄마로서 선택할 거 다 했잖아.”

어째서인지 연고가 발린 피부 곳곳이 화끈거리는 기분에 재하는 고개를 기울였다.

“나도 애 아빠로서 선택할 수 있는 거 선택한 것뿐이야.”

“그 기사가요?”

연은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애 아빠라는 말을 뻔뻔하게 내뱉는 재하를 기가 차서 바라봤다.

“변덕이든 뭐든 이제라도 당신 아이라고 인정하고 싶으면 속으로 하면 되지, 기사까지 내는 것도 모자라서 나한테 예비신부라고 지칭한 건요?”

“절차라고 생각해.”

“무슨 절차요.”

“인정만 하면 내 자식이 아니라 사생아라고 말하는 꼴밖에 안 돼.”

재하는 턱 끝으로 연의 둥근 배를 가리키며 정색했다.

“내가 너하고 잠깐이라도 법적부부가 돼야 진짜 내 자식이라는 인정을 받으니 어쩌겠어. 위자료는 두둑하게 얹어서 깔끔하게 이혼해줄 테니까 걱정 마.”

강 회장은 재하의 자식이 재하 호적에 말끔하게 올라가기를 바랐다. 애초에 혼외자식이라는 흠집이 있음에도 재하는 가원그룹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혼담이 끊이지 않았다. 이혼 한 번 정도야 괜찮다는 판단을 내린 게 틀림없었다.

“넌 미혼모 딱지도 떼고 일석이조지.”

“필요 없으니까 기사 정정부터 하세요. 아니면 내가 직접 정정해달라고 언론사에 말하겠어요.”

재하는 안심하거나 좋아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이 불쾌하기만 한 연의 표정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뭘 어쩐다고?”

“나는 그쪽이 책임 안 져주는 게 다행이라고 분명히 말했었어요.”

모서리 부분마다 푹신한 보호캡을 씌운 책상에 팔꿈치를 댄 재하는 지끈거리기 일보 직전인 관자놀이에 엄지손가락을 눌렀다.

“내가 언제 같이 살면서 애를 책임지겠다고 했어?”

“그러니까 다 필요 없다고요. 왜 내 아이가 당신 호적에 들어가고 당신 성을 따라야 하는데요?”

“기껏 생각 바꿔서 미혼모 딱지 떼어주고 애도 내 자식으로 인정해주겠다는데 거절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재하에게는 매정한 그녀의 거절이 아이를 기어이 미혼모 자식과 사생아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하겠다는 결심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쪽은 생각을 바꾼 게 아니라 변덕을 부리고 있는 거죠.”

질근 눈을 감았다 뜬 연은 한 손으로 책상을 짚고 일어서서 인상을 쓰고 있는 재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내 인생을 걸고 이 아이를 지키기로 했어요.”

그녀의 작은 손바닥이 둥글게 나온 배를 어루만졌다.

“당신 인정 같은 거 없어도 나랑 아이,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요.”

연에게 재하의 결정은 깃털보다 가벼운 변덕에 불과했다. 손바닥 뒤집듯 의견 한번 나누지 않고 기사부터 낸 것만 해도 그랬다. 아이를 지우라고 했을 때부터 억지를 쓰더니 인정하겠다는 건 떼를 쓰는 것 같았다. 재하는 현실적이지 않은 생명이 존재하고 있는 연의 배를 가만히 바라보다 일어섰다.

“정정할 거면 기사 같은 거 애초에 내지도 않았어.”

이미 기사는 나갔고 기사 하나에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세계에서 기사는 절대 함부로 내지 않았다. 재하는 익숙지 않은 포근한 기운이 감도는 면회실을 슬쩍 둘러보며 말했다.

“거처부터 옮겨.”

“이봐요.”

“계속 여기 있겠다는 거야?”

가원그룹 막내아들의 예비신부라고 기사에 이름이 올라간 그녀가 미혼모 시설에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하겠지만 어디서 어떻게 냄새를 맡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거 보이지?”

재하는 허리를 살짝 숙이며 손가락으로 퇴근길에 주먹으로 맞은 왼쪽 턱을 가리켰다.

“때린 사람이 누군지 알아?”

“누군데요.”

“대전지방검찰청 형사 1부 서윤 검사.”

너무 놀라 벌어지는 입까지 틀어막은 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아는 오빠 윤은 폭력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재하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단순하게 풀 수 있는 일을 가지고 폭행죄로 고소하게 만들지 마.”

기사도 건드리지 말고 거처도 옮기라는 재하의 협박을 알아들은 연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고소하고 싶으면 해요.”

“뭐……?”

“마음대로 해봐, 어디.”

당연히 먹힐 줄 알았던 협박은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그렁그렁한 두 눈이 재하를 있는 힘껏 노려보다 차갑게 외면했다. 그는 숨이 턱하고 막혀오는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