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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마음이 머무르는 곳

엘리자베스 로웰 지음현대문화센터201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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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리 와일드는 금박과 벨벳으로 둘러싸인 고객의 저택에서 케인 레밍턴과 같은 남자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이 저택이 불란서 골동품의 전시장이 되어버린 것은 셸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었다. 셸리는 조오린이 이 저택을 완전히 망쳐놓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것만 제외하고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었으니까. 셸리는 태평양에 면해 있는 절벽 위의 우아한 부지에 걸맞도록 집을 장식해야 한다고 골백번도 넘게 주장했다.
저택 부지는 훌륭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게 빛나는 하늘과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향해 가파르게 치닫고 있는 언덕. 언덕 위에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햇살에 빛이 바랜 잔디가 쉴새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태평양의 파도와 조화를 이루어 금빛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 서 있는 호화로운 저택들도 물과 바람, 대지가 어우러진 장관을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 집을 지은 건축가는 경치를 보는 안목이 있었던 것 같다고 셸리는 생각했다. 단순한 선을 사용해서 공간미를 충분히 살리고 있어.
내 고객이 이런 경치를 이해하는 눈이 없다니, 안타까운 일이야.
정화와 냉방을 거쳐 무취의 상태로 만들어진 저택 내부의 공기는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한 호텔방의 공기 같았다. 그러나 뜨겁고 생동감이 넘치는 외부의 바람은, 떡갈나무 덤불 향기와 건조한 야생의 대지가 품고 있는 자연의 비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셸리는 두꺼운 커튼을 젖히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삼나무 발코니로 통하는 문을 열고 싶은 충동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저택을 마음대로 장식할 수 있는 권한이 셸리에게 주어졌다면, 저택의 경치를 원색적인 색깔과 야성의 힘이 느껴지는 한 폭의 살아 움직이는 그림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셸리는 두 손이 묶여 있었다. 그녀의 고객은 이 임대주택을 일정한 스타일로 장식해야 한다고 우겼다. 이색적이거나 특이한 구석없이 누구에게나 칭송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고급스런 취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저택이어야 한다고.
조오린은 라벨이 붙어 있지 않은 물건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난감해하는 조오린을 보며, 인간의 막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은 대지와 바다가 만나는 옷의 솔기와 같은 곳에 어떤 디자이너의 상표도 붙이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셸리는 속으로 웃었다.
셸리였다면 엘스워스 켈리의 등잔과 사리넨 가구를 선택했겠지만, 조오린은 여러 층으로 되어 있는 초현대식 저택을 루이 14세 풍의 소용돌이 장식이 있는 가구들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택의 다른 장식도 마찬가지였다. 두꺼운 벨벳 커튼을 달아 시원스레 펼쳐진 경치를 가려버렸고, 식당의 눈부신 자연광이 들어오는 천장에 인위적인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달았다.
대들보를 하얀색 아니면 금색으로 칠하도록 집주인이 허가해야만 조오린의 직성이 풀릴 것은 뻔한 일이었다.
가벼운 욕설과도 같은 한숨을 내쉬며 셸리는 공책을 한쪽으로 치웠다. 고객의 개성이 명백히 혹은 슬쩍 엿보일 때마다 기록을 해놓고 저택의 마무리 장식을 위한 자료로 사용해왔지만, 이 경우에는 메모가 전혀 필요 없을 듯했다. 조오린에게도 개성이 있다면, 그것은 교묘히 감춰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저택의 인테리어 장식이 고급스런 취향임에는 틀림없지만, 독창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름다운 저택에서는 조오린 커밍스라는 인간을 만들어낸 교육, 경험, 희망, 공포, 꿈, 절망 등이 어우러진 독특한 조화를 느낄 수 없었다.
셸리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조오린이 무언가 간과한 것이 없나 살펴보았지만 불행히도 눈에 띄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조오린의 겉모습 속에 숨겨진 불안감만이 느껴질 뿐이야. 그녀가 브라이언에게서 임대한 물건들은 박물관 복제품 카탈로그에서 막 빠져나온 것 같아. 다음 방은 좀 다를지도 모르지. 아마 루이 14세 풍에서 벗어난 장식이 있을 수도…….
그러나 다른 방들도 개성이나 독창성이 배제된, 일관된 화려함뿐이었다.
이 방 저 방, 복도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완벽했다. 심지어 가정부 방까지도 우아한 금박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저택의 파랑과 흰색, 금색장식이 숨통을 조여오는 듯했다.
가구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브라이언이 부유한 고객들에게 대여하는 다른 가구들과 다를 바 없이 완벽했으니까.
그러나 지나치게 완벽한 장식으로 박물관 같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곳에,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줄 수 있는 악센트를 주고 싶어 셸리는 몸이 근질거렸다.
셸리는 하품을 하며 조오린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서 깨어났다. 브라이언이 창조한 완벽한 세트에 손을 댈 만큼 조오린이 개성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연했다.
조오린과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다루기 쉬우면서도 일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부류의 고객이었다. 그녀가 가장 최근에 관람한 박물관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방을 장식해주면, 아마 내가 천재라고 칭찬할 걸. 셸리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봤다.
개성과 모험심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지루함에, 하품이 날 지경이었다. 셸리는, 그래도 임무를 다할 때까진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할 텐데 하며 걱정을 했다. 적어도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는 해야 할 테니까.
셸리는 어깨 너머로 시선을 돌려봤지만, 지루할 정도로 완벽한 실내장식을 개선시킬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브라이언과 조오린은 아직 정원에서 잔디밭에 놓을 가구와 대리석 계단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정원에 놓일 가구들도 하얀색 일색이겠지. 아니면 금박을 입힌 천사들의 동상을 아직도 팔던가? 그런 생각을 하자 몸서리가 처졌다.
정말 금박 천사를 팔까봐 셸리는 걱정스러웠다.
셸리는 거친 바다 경치를 왜곡시키는 벨벳과 시폰 커튼이 쳐진 넓은 거실을 가로질렀다. 응접실에도 역시 흠잡을 데 없는 가구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셸리는 별다른 기대를 품지 않고 저택의 나머지 부분으로 향했다.
이 저택이 불란서 골동품의 전시장이 되어버린 것은 셸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었다. 셸리는 조오린이 이 저택을 완전히 망쳐놓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것만 제외하고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었으니까. 셸리는 태평양에 면해 있는 절벽 위의 우아한 부지에 걸맞도록 집을 장식해야 한다고 골백번도 넘게 주장했다.
저택 부지는 훌륭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게 빛나는 하늘과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향해 가파르게 치닫고 있는 언덕. 언덕 위에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햇살에 빛이 바랜 잔디가 쉴새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태평양의 파도와 조화를 이루어 금빛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 서 있는 호화로운 저택들도 물과 바람, 대지가 어우러진 장관을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 집을 지은 건축가는 경치를 보는 안목이 있었던 것 같다고 셸리는 생각했다. 단순한 선을 사용해서 공간미를 충분히 살리고 있어.
내 고객이 이런 경치를 이해하는 눈이 없다니, 안타까운 일이야.
정화와 냉방을 거쳐 무취의 상태로 만들어진 저택 내부의 공기는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한 호텔방의 공기 같았다. 그러나 뜨겁고 생동감이 넘치는 외부의 바람은, 떡갈나무 덤불 향기와 건조한 야생의 대지가 품고 있는 자연의 비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셸리는 두꺼운 커튼을 젖히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삼나무 발코니로 통하는 문을 열고 싶은 충동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저택을 마음대로 장식할 수 있는 권한이 셸리에게 주어졌다면, 저택의 경치를 원색적인 색깔과 야성의 힘이 느껴지는 한 폭의 살아 움직이는 그림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셸리는 두 손이 묶여 있었다. 그녀의 고객은 이 임대주택을 일정한 스타일로 장식해야 한다고 우겼다. 이색적이거나 특이한 구석없이 누구에게나 칭송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고급스런 취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저택이어야 한다고.
조오린은 라벨이 붙어 있지 않은 물건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난감해하는 조오린을 보며, 인간의 막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은 대지와 바다가 만나는 옷의 솔기와 같은 곳에 어떤 디자이너의 상표도 붙이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셸리는 속으로 웃었다.
셸리였다면 엘스워스 켈리의 등잔과 사리넨 가구를 선택했겠지만, 조오린은 여러 층으로 되어 있는 초현대식 저택을 루이 14세 풍의 소용돌이 장식이 있는 가구들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택의 다른 장식도 마찬가지였다. 두꺼운 벨벳 커튼을 달아 시원스레 펼쳐진 경치를 가려버렸고, 식당의 눈부신 자연광이 들어오는 천장에 인위적인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달았다.
대들보를 하얀색 아니면 금색으로 칠하도록 집주인이 허가해야만 조오린의 직성이 풀릴 것은 뻔한 일이었다.
가벼운 욕설과도 같은 한숨을 내쉬며 셸리는 공책을 한쪽으로 치웠다. 고객의 개성이 명백히 혹은 슬쩍 엿보일 때마다 기록을 해놓고 저택의 마무리 장식을 위한 자료로 사용해왔지만, 이 경우에는 메모가 전혀 필요 없을 듯했다. 조오린에게도 개성이 있다면, 그것은 교묘히 감춰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저택의 인테리어 장식이 고급스런 취향임에는 틀림없지만, 독창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름다운 저택에서는 조오린 커밍스라는 인간을 만들어낸 교육, 경험, 희망, 공포, 꿈, 절망 등이 어우러진 독특한 조화를 느낄 수 없었다.
셸리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조오린이 무언가 간과한 것이 없나 살펴보았지만 불행히도 눈에 띄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조오린의 겉모습 속에 숨겨진 불안감만이 느껴질 뿐이야. 그녀가 브라이언에게서 임대한 물건들은 박물관 복제품 카탈로그에서 막 빠져나온 것 같아. 다음 방은 좀 다를지도 모르지. 아마 루이 14세 풍에서 벗어난 장식이 있을 수도…….
그러나 다른 방들도 개성이나 독창성이 배제된, 일관된 화려함뿐이었다.
이 방 저 방, 복도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완벽했다. 심지어 가정부 방까지도 우아한 금박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저택의 파랑과 흰색, 금색장식이 숨통을 조여오는 듯했다.
가구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브라이언이 부유한 고객들에게 대여하는 다른 가구들과 다를 바 없이 완벽했으니까.
그러나 지나치게 완벽한 장식으로 박물관 같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곳에,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줄 수 있는 악센트를 주고 싶어 셸리는 몸이 근질거렸다.
셸리는 하품을 하며 조오린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서 깨어났다. 브라이언이 창조한 완벽한 세트에 손을 댈 만큼 조오린이 개성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연했다.
조오린과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다루기 쉬우면서도 일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부류의 고객이었다. 그녀가 가장 최근에 관람한 박물관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방을 장식해주면, 아마 내가 천재라고 칭찬할 걸. 셸리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봤다.
개성과 모험심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지루함에, 하품이 날 지경이었다. 셸리는, 그래도 임무를 다할 때까진 멀쩡한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할 텐데 하며 걱정을 했다. 적어도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는 해야 할 테니까.
셸리는 어깨 너머로 시선을 돌려봤지만, 지루할 정도로 완벽한 실내장식을 개선시킬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브라이언과 조오린은 아직 정원에서 잔디밭에 놓을 가구와 대리석 계단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정원에 놓일 가구들도 하얀색 일색이겠지. 아니면 금박을 입힌 천사들의 동상을 아직도 팔던가? 그런 생각을 하자 몸서리가 처졌다.
정말 금박 천사를 팔까봐 셸리는 걱정스러웠다.
셸리는 거친 바다 경치를 왜곡시키는 벨벳과 시폰 커튼이 쳐진 넓은 거실을 가로질렀다. 응접실에도 역시 흠잡을 데 없는 가구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셸리는 별다른 기대를 품지 않고 저택의 나머지 부분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