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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나 린지 지음현대문화센터201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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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이름의 전자책 모음  (전권 구매시 4,800원)

1878년, 미국 와이오밍

날카로운 채찍 소리가 눈부신 여름날의 햇살 사이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대여섯 잔디밭에 모여 있었지만, 칼란 목장엔 기분 나쁠 정도로 적막만이 감돌았다. 램지가 휘두르는 채찍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심지어는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채찍의 명수’로 불리는 소몰이꾼 램지는 종종 자기의 재능을 사람들 앞에서 뽐내 보였다. 손목만 한 번 까딱해서 총잡이 손에 들린 권총을 떨어뜨리기도 했고, 말은 전혀 건드리지 않으면서 말 궁둥이에 앉은 파리를 잡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총잡이들이 총을 자기 분신처럼 휴대하듯 그렇게 채찍을 항상 지니고 다녔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때와 달랐다. 그저 자랑삼아 솜씨를 뽐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사람 등가죽을 벗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채찍질을 하기도 이미 여러 번이었다. 오늘은 목장주 칼란의 명령으로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램지는 자신의 일처럼 상당히 즐거워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일이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가슴 벅찼던 것이다.
사실 램지는 총잡이와 달랐다. 총잡이는 나름대로 공정하게 한답시고 총을 하나씩 든 상태에서 똑같이 수를 세고 나서 상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램지는 먼저 상대의 무기부터 빼앗고 나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상대를 죽음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즐기면서. 비열하다고 지탄받을 행동이었지만, 그래서 항상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릴 들었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주인의 명령인데다 희생자가 인디언 혼혈아였으므로 어느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았다.
램지는 평소 사용하는 소몰이용 채찍 대신 짧고 가느다란 말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소몰이용 채찍을 쓰면 한번 휘두를 때마다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 쇼가 너무 싱겁게 끝날 것을 걱정한 칼란의 명령이었다. 등판을 갈기갈기 찢으면서 고통도 곱절로 주고, 시간도 더 오랫동안 끌려는 의도이리라.
램지는 기꺼이 주인의 뜻을 따랐다.
팔힘만 빠지지 않으면 녀석의 생명줄이 끊어질 때까지 하루고 이틀이고 계속할 자신이 있는데……. 칼란 씨는 지금 이를 바득바득 갈며 이 잡놈을 천천히, 햇빛에 거머리를 말려 죽이듯 그렇게 천천히 죽여 주길 바랄 거야. 쯧쯧, 아마 그래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걸!
주인의 맘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램지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저런 기교를 선보이며 인디언 혼혈아를 희롱했다. 살갗이 찢겨 나가면서 선홍빛 피가 등줄기를 타고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상처는 그리 깊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성싶을 만큼 고통은 심하리라.
그런데도 인디언 혼혈아는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거칠어지지 않다니, 지독한 놈이었다. 채찍을 더욱 맹렬히 휘둘러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뭐 서둘 필요는 없었다. 시간은 충분했으니까.
램지는 칼란의 기분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자기 외동딸과 사귀는 놈이, 그것도 기회 봐서 결혼까지 허락할까 했던 그놈이 인디언 혼혈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으리라. 그놈이 백인이 아니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제니 칼란이었다. 제니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려 까무러쳤다. 하지만 지금은 정신을 추슬렀는지 아버지와 함께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채찍질 당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엔 오해라고, 그럴 리 없다고 자기 애인을 두둔했겠지만, 지금은 속은 걸 생각하며 분을 삭이고 있으리라.
예쁜 아인데 불쌍하게 됐군. 이 일로 한동안 사람들 입길에 수없이 오르내릴 텐데……. 불쌍한 것, 이젠 시집가긴 완전히 글렀지. 어떤 남자가 인디언 놈과 놀아난 아일 거들떠보겠어? 걸려도 아주 더럽게 걸렸다니까. 그런데 참, 이 자식 체이스 씨의 친구잖아? 어떻게 인디언 혼혈아가 체이스 씨의 친구일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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