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중에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마법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인간의 눈에 그것은 멀 해협의 소용돌이치는 회색 바다에서 불어온 악마의 숨결 같은, 소나기를 동반한 위협적인 스코틀랜드 폭풍일 뿐이었다. 번개가 한밤의 하늘을 동강내고 천둥이 울렸다. 하늘에서 비가 퍼붓듯 내리고 거센 파도가 해안의 거대한 화강암에 부딪히면서 일으킨 하얀 물보라가 듀어트 성(城)이 서 있는 가파른 낭떠러지로 치달아 올랐다.
듀어트 성은 그 600년 역사 중 500년 동안 매클린 가문의 본거지였고, 그들과 사촌지간인 매쿼리 가문도 그 성에 머물렀다. 그러나 큘러덴 무어 전투(1746년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조와 잉글랜드의 하노버 왕조 사이의 전투로 스코틀랜드가 대패)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67년 전쯤 많은 스코틀랜드 가문들은 자신들의 완고한 고집 때문에 그 어둡고 습한 황무지와 함께 주거지를 잃게 되었다. 매클린 가문도 자신들의 근거지를 잉글랜드 인종들에게 빼앗겼다. 그러나 그들은 그 훌륭하고 웅장한 성의 관리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성은 이제 음산하고 버림받은 채 텅 비어 있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하늘이 우르르 쾅쾅거리고 바다가 으르렁거렸다. 보통 사람의 눈에 그것은 단지 폭풍우에 불과했지만, 그곳에 얽힌 전설을 아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하늘과 대지의 싸움 이상의 것이었다.
마녀가 깨어나고 있었다.
이제 그곳에 마녀가 있다. 아니, 마녀들이 있다. 그리고 매쿼리가 있다.
매쿼리 가문에 얽힌 슬픈 전설이 있다.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다. 매쿼리 가문의 어느 선조가 지금의 잉글랜드 남부에서 열린 춘분(春分) 축제에 참가했다. 광대한 평야에 거대한 석조 전당이 있는 그곳에 마녀들과 마법사들이 모여들어 서로 힘을 겨루고는 했다. 그 특별한 초봄, 매쿼리 마법사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장미꽃을 피워낼 생각으로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다른 마녀들과 마법사들은 벌써 전당 한가운데로 나아가 겨울이 물러간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을 선보였다.
순식간에 초록 풀이 촉촉한 땅을 뚫고 피어오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계란풀과 미나리아재비, 민들레가 신비스럽게 솟아오른 풀밭을 가로질러 엷은 노란빛을 흩뿌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앙상한 자작나무가 은백색 잎이 달린 가지를 늘어뜨렸고, 키가 크고 우아한 오리나무는 기막힌 꽃봉오리를 피워냈다. 마녀들이 주문을 외거나 손가락을 퉁기거나 손뼉을 칠 때마다 참나무며 물푸레나무, 느릅나무가 소생했다. 자스민과 앵초, 금잔화와 라벤더 향기가 상쾌한 아침 공기를 가득 채우자 갑자기 완연한 봄이 되었다. 온갖 새와 곤충이 떼를 지어 몰려와 나무 위에 자리를 잡았고, 종달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벌 떼가 윙윙거리는 소리, 비둘기들이 구구 하는 소리가 오랫동안 추위와 황량함, 침묵 속에 묻혀 있던 대지에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했다.
이제 매쿼리가 나설 차례였다. 석조 전당 한가운데로 그가 걸어가자 군중이 좌우로 쫙 갈렸다. 실내는 쥐 죽은 듯 조용해서 눈을 깜박이는 소리마저 들릴 듯했다. 모든 마녀들과 마법사들이 그 특별한 순간을 숨죽이고 기다렸다. 매쿼리는 실내 한가운데 서서 한동안 고요히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천천히 육중한 천장 쪽으로 손을 들어 올리고는 손가락을 퉁겨 마법을 걸었다.
그날 장미는 피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 모인 군중들이 한번도 보지 못했을 법한 장면이 펼쳐졌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전당의 벽이며 지붕이 하늘로 날아가버린 것이었다. 먼지가 가라앉으며 공기가 투명해지고 마녀들과 마법사들이 몸을 일으킬 때는 이미 전당은 사라지고 없었다. 몇몇 둥근 석조 아치들만이 무슨 흔적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현대인들은 스톤헨지(Stonehenge, 잉글랜드 남부 월트셔 주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거대한 돌기둥, 석기시대 후기 유적)라 부르는 그 폐허를 경외심으로 쳐다보지만, 마녀들에게 그 이름을 꺼내면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매쿼리의 부끄러운 마법력을 탓할 것이다.
세월이 흘러 서기 1813년이 되자 스코틀랜드 땅 위에는 단 두 명의 마녀, 매클린 가문에서 한 명, 매쿼리 가문에서 한 명이 남게 되었다. 폭풍이 멀 섬 해안을 거세게 몰아치는 날 밤, 들쭉날쭉한 바위 곶(串) 위에 올라앉은, 한때 번영을 누렸지만 지금은 무너져내려 일부만 남아 있는 성 위로 비가 내릴 때,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난로 가에 웅크리고 앉아 하늘이 울부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매클린과 매쿼리의 마녀 둘은 마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조이어스 피오나 매쿼리는 성 꼭대기 방의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책들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혔다. 그 바람에 손목에 찬 금팔찌 열 개가 아래로 쏠리면서 썰매 방울 같은 소리를 내어 방안의 깊은 정적을 은은하게 깼다. 조이는 그 소음이 고맙게 여겨졌다. 안달이 나서 뚫을 듯 쳐다보는 매클린 숙모의 시선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이는 숙모의 시선을 뒤로한 채 다른 책을 집어 들어 옆구리에 끼면서 불평을 했다.
“겨우 한 단어 틀렸을 뿐인데.”
조이가 또 다른 책을 집어 들자 이번에도 팔찌가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 그러나 팔찌가 움직임을 멈추며 소리가 잦아들자 새로운 음향이 들려왔다. 가볍게 그러나 초조하게 두드리는 또렷한 소리.
숙모의 발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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