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 하늘은 멀고

은빛 한강은 가까워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과 사람이 사는

그곳,

달맞이봉.

아카시아 입에 물고

고무줄 깡충깡충

딱지 치는 소리 딱딱딱.

쌀푸대 썰매는 들썩 들썩

하얗던 연탄재는 푹푹 눈 소리를 내는

그곳,

달맞이봉에서 아이들은 자랐다.

[본문 내용 중에서]

8살, 남루한 옷차림을 한 계집아이가 그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동네에서 가장 소문이 안 좋은 집 사람들이라고 한 가족이었다. 춤바람이 난 애엄마가 있는 돈 다 말아먹고 그의 집 작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했다. 남루한 계집애는 다름 아닌 같은 반 차이현이었다. 희상과는 매번 1, 2등을 다투는 아이였지만 집안이 반에서도 가장 어려운 아이로 알고 있는 그 차이현이었다.

사내애처럼 짧게 깎은 머리에 너덜너덜한 티와 실밥이 터져 나온 바지 차림인 이현은 이사 온 첫날 희상을 보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반에서도 말 한마디 나눈 적 없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같이 살게 되었는데도 외면한 것이 미웠다.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작은 주제에 자존심이 얼마나 센지 일부러 곁을 맴돌아도 절대로 눈 한번을 마주치질 않는 아이가 이현이었다. 동네 아이들과 몰려왔는데 집안에 온갖 맛난 냄새가 나서 보면 희상의 집에서 나는 것이었고 이현은 절대로 방 안에서 나오질 않았다.

이현의 자존심과 슬픔을 알게 된 것은 동사무소에서 준 라면과 학용품 때문이었다. 이현은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가난한 집 아이들 중에서도 대표급으로 받았다. 그날 자신도 모르게 희상은 이현의 뒤를 따라갔다. 달맞이봉으로 그 무거운 것을 들고 올라가서는 라면박스를 뜯고 라면들을 하나하나 부셔서 강을 향해 던지고는 학용품도 던지고 찢고 하면서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서럽고 슬프던지 희상은 뛰어가 이현을 안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내려와서는 집 밖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늦은 밤에서야 돌아온 이현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 눈이 희상은 예쁜 유리구슬처럼 마음에 들었다. 여윈 얼굴에서 그나마 부어 통통하게 보이는 것이 예뻐 보였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본 이현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이현은 울지 않았다. 울지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 흔하디흔한 인사말도 나누지 않는 아이가 이현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닌데, 희상과는 정반대의 길을 이현은 선택한 것이었다. 동네에서 악덕 일수쟁이를 하는 어머니와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방 장사를 하시는 아버지. 사람들은 앞에서는 꾸벅거리고 뒤에서는 손가락질을 해대었다.

희상의 귀는 매일같이 그의 부모를 욕하는 소리로 들끓었다. 돈을 안 갚으면 집을 빼앗고 그 집을 또 세를 놓고 해서 재산을 늘려갔지만 그만큼 온갖 악담과 욕설의 대상이 되는 그의 부모였다. 그래서 희상은 선택하고 만 것이었다.

집에서도 착한 아들, 학교에서든 동네에서든 앞서서 착한 일만 하고 아이들을 이끌며 집안의 돈을 쓰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입에서 적어도 그 집 아들은 잘 뒀어 소리가 나올 때마다 마음은 얼어갔지만 대신 주변생활은 편해졌다. 이현과는 질리도록 다른 정반대의 선택이었다.

[프로필]

윤혜인

사랑하는 사람의 성으로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 출간작

장미의 사실, 마리아, 8년 후에, 이어폰, 월애, 당신의 식탁, 사랑이 선택하다

[목차]

일장. 이름을 부르다, 차이현

이장. 그의 선택, 그녀의 선택

삼장. 그녀, 눈물을 듣고 싶다

사장. 그의 웃음엔 없는 진실

오장. 이어폰을 벗다, 그를 위해……

육장. 그의 진실, 노래로 울어주다

칠장. 차이현, 용서받고 싶은 이름……

종장. 끝나지만 행복한 이야기

작가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