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녀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누구에게도 숙이지 않을 것 같은 당당함도, 미리 그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는 철저함도 그는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거기다 예쁘고 스펙과 재력까지 훌륭하니 좋은 아내가 되어 줄 것 같았다. 마음을 다해 사랑을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원하는 평범한 삶을 꾸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혹시 기술의 힘을 빌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 기술의 힘이라니요?”
“음……. 혹시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를 보셨어요?”
“예.”
“그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의료기술의 힘을 빌려 예쁘진 여자와 결혼 할 수 있냐고 묻고 있는 거예요.”
“예?”
“사실, 전 제가 아닌 엄마의 재산만 바라보고 나와 결혼하려고 하는 남자들과 21번이나 선을 보았어요. 그리고 22번째 맞선 상대가 바로 석강민 씨고요.”
“아, 예.”
“그래서 더 이상 이런 자리에 나오기 싫어서 손을 좀 봤어요. 사실은 좀이 아니라 꽤 많이. 제 얼굴이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작품이라는 말이죠. 어때요? 이런 나와도 결혼 할 수 있을까요? 이런 나와도 사랑의 행위를 할 수 있을까요?”
“저어……그게…….”
“대답을 못하시는군요. 그럴 줄 알았어요.”


-본문 중에서-


술이 고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전화도 받지 않고 회사에 출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술을 마시게 했다. 비겁하게 술에 의지하느냐고 영호가 윽박을 지르고 이제 그만 하자고 달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술잔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비겁하다고 해도 좋았다. 맨 정신으로는 그 스스로가 견딜 수가 없었다.
회의를 끝내고 달려가 그녀에게 모든 얘기를 해 주려고 했던 그는 그녀가 보낸 문자에 그의 가슴에 생채기가 생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 그 순간 그는 긴급 회의장을 빠져 나왔고 그녀에게 달려갔었다. 그러나 그녀는 회사에 없었다. 그녀의 비서인 선애도, 최도형도 없었다. 언론에 날아든 투서가 누구의 짓인가를 밝혀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은 이미 그에게는 소용없는 말이었다.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그것이 누구이든 상관없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처음 그녀를 다시 만난 순간 이미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는 용서 할 수 없다고 했다. 적어도 자신과 하나가 되기 전 말했어야 했다고. 그것이 인간으로서 해야 하는 도리라고. 그렇게 그녀는 말했고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야, 너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기업인의 윤리문제라고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한국금융 주가가 폭락하고 그 여파가 건설 쪽까지 미치고 있는 상황이야. 회장님 혼자 수습해 보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잖아? 네겐 그 여자가 전부니? 넌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남자야?”
“…….”
“적어도 난 네게 그런 말 따위는 하는 여자 때문에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네가 귀국하기 전에 계획되어 있던 일 따위 때문에 네가 왜 그 여자에게 오해를 받아야 하는데? 너와 연애를 하기로 마음먹었었던 여자라면 네게 스스로를 변호할 기회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아냐?”
“그녀 입장에서는 날 믿을 수 없는 것이 정상이야.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바보 같은 자식아! 아무리 여자에게 미쳤어도 아닌 것은 아닌 거야. 널 믿지 못하는 여자와 무슨 미래를 꿈 꿀 수 있다는 거야? 응?”
“……제발 가라. 네 말 듣고 싶지 않다.”
“그래, 간다. 간다고! 자식아, 넌 아들도 아냐. 여자에게 버림받은 것보다 아버지가 평생을 바친 회사가 먼저여야 해. 적어도 그래야 한다고 난 생각해.”
“…….”
그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그녀가 보낸 문자나 보며 앉아 술이나 먹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러나 오늘 하루는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술이라도 먹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달려가 보았자 아버지와 한숨이나 나누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내일 아침 업무 시간 전에는 아무도 그들의 전화를 받아 주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을 만나 주지도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 그는 술이 자신을 집어 삼켜서 그녀를 기억조차 하지 못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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