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그대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면서?”

“어르신, 뭘 잘못 아시는 것 같사옵니다.”

김 상궁은 입궐한 지 20년차인 수방상궁이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세영 대군 앞에서 묘한 말을 들은 김 상궁은 궐내에 자신이 희대의 명기라는 소문이 도는 것을 알게 된다. 절대 사실이 아닌 그 소문보다 더 최악은 그 소문을 들은 세영 대군마마의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경멸을 띠게 된 것이다. 심지어 김 상궁은 세영 대군의 원행에 동행하게 되는데, 사내들은 자신을 묘하게 쳐다본다. 점점 꼬여가는 상황 속에 김 상궁은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을 것인가?

“김 상궁, 김 상궁은 성격이 좋으시오?”

“네?”

“김 상궁은 혹시 다리가 예쁘오?”

“아니요.”

“그럼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오?”

“마마, 하실 말씀이 있으시옵니까?”

2. 작가 소개

임지영 (디카페)

재능은 끈질긴 인내다. 라는 말을 삶의 신조로 삼고 있는 이야기꾼입니다.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3. 차례

#1. 김 상궁

#2. 원행

#3. 개골산, 그리고 그와 그녀

#4. 한 객주라는 사나이

#5. 도대체 왜 이리 방해가 많은 것인가!

#6. 돌아온 연인들

#7. 끈질긴 한 객주

#8. 화영 공주의 혼례식

#9. 김 상궁의 은밀한 매력

#10. 궐 밖으로

#11. 북문으로 나와서 사라진 사람들

#12. 악인의 끝

#13. 어딘지 수상한 다정이라는 아가씨

4. 미리 보기

“김 상궁. 내 물어볼 것이 있네. 잠시 내 방으로 드시오.”

“네.”

김 상궁이 대군의 방으로 들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여관에서는 제일 큰 방이다. 저번에 마마께서 아프실 때 간호를 하느라 잠시 들었지만 깨끗하고 간결한 장식들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가, 아마 방을 청소하는 여종이 틀림없겠지만 방에는 작은 꽃들이 들어있는 꽃병도 있다. 작고 하얀 꽃이 바람에 산들산들 몸을 흔들었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져 마당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작은 시동들이 모기풀을 붙여서 마당마다 가져다 놓았다. 매큼한 연기가 감돌며 잠시 풀벌레 울음소리가 멈췄다가 다시 울기 시작하였다.

문이 열리고 김 내관이 들어온다. 작은 소반에 술상이다. 눈을 동그랗게 뜬 김 상궁을 바라보더니 김 내관이 한쪽 눈을 찡긋하였다.

“김 상궁이 몹시 놀란 일을 당하셨으니 위로를 하신다고 하셨소.”

멍하니 술상을 바라보던 김 상궁이 고개를 갸웃하였다. 한밤중에 대군마마의 방에서 술상 앞에 마주 앉아 말씀을 듣는다고? 갑자기 김 상궁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갔다.

‘이것이…… 이것이, 설마! 아니 이보셔요! 미리 말을 하여야 내가 목간이라도 하지. 내가 아까 세수할 때 이는 닦았던가? 아니지, 이렇게 준비도 없이. 대군마마와 첫밤을 보낼 수는 없음이다!’

김 내관이 나가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키는데 세영 대군이 들어왔다. 목욕이라도 하셨는지 반짝반짝 빛나신다. 당황해서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 김 상궁을 보더니 술상을 앞에 두고 앉았다. 김 상궁이 주춤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대군께서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아픈 곳은 없는 것이오?”

부드러운 말소리가 귀로 들어오는데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아, 너무도 상냥하게 말씀을 하시는구나.

“네.”

“한 객주는 삼일포에는 없는 듯하오.”

세영 대군이 김 상궁 앞의 잔에 붉은색의 술을 따라주었다. 김 상궁이 놀라서 술병을 자신이 잡으려 하자, 세영 대군이 그 손을 잡고 잠자코 옆으로 내렸다.

“아, 마마, 제가…….”

“아니요. 괜찮소. 어서 드시오, 어서.”

재촉하는 세영 대군의 눈빛이 빛난다. 김 상궁은 술을 들어 옆으로 몸을 틀고 조금 마셨다.

“아니, 아니, 다 마시오. 어서.”

재촉하는 세영 대군을 보다가 김 상궁이 고개를 숙이고 홀짝 들이마셨다. 세영 대군이 앞의 잔을 들어 다 마시고 나서 빙그레 김 상궁을 보면서 웃었다.

“이 술이 무슨 술인지 아시오?”

“이 술이요? 무슨…… 귀한 술인가요? 별맛은 아닌 것 같은데…….”

“이 술은 합환주요.”

“네……. 네에?”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멍하니 대답을 하다가 놀라서 뜨악한 표정의 김 상궁을 바라보며 세영 대군은 웃으며 술을 더 따랐다.

“그대가 약조를 하였으니 당장 여기서 혼례를 올리지는 못하나 합환주는 마셔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제가? 언제…… 약조를?”

“아니! 나를 희롱함이오?”

“네에?”

“내가 약조하지 않았소? 내 손을 잡는다면 그 손을 다시 놓지 않으리라 약조를 하였는데 못 믿는다 이 말이오?”

“아니 그것은 믿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언제 손을 잡았다고?”

“하! 이 사람이! 어제 내손을 잡지 않았소?”

“아! 언제 제가!”

부질없이 힘도 없는 항변을 하는데 어제 손을 잡았다는 대군의 말을 듣자 고개가 저절로 기울어진다. 엑! 배에서? 아 그거야 손을 잡고 뛰자는 것 아니었나? 기억이 나는 듯 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김 상궁을 보면서 대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쨌든 잡은 것은 잡은 것이지!”

세영 대군이 김 상궁의 작고 하얀 손을 잡고 그 끝에 입을 맞추었다.

“그럼 그때 잡은 것이 이 손이 아니라면 누구의 손이란 말이오?”

그리고 손을 잡아끌었다. 김 상궁의 얼굴을 살며시 잡고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대를 안고 싶지는 않았지만, 도대체가 그대를 탐하는 작자들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놓이지가 않소. 나를 받아들여주겠소?”

김 상궁이 뭐라고 말하려 하자 대뜸 입술을 내려 입을 막았다. 김 상궁이 놀라서 입을 열자 세영 대군의 혀가 입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김 상궁은 헉! 이것이, 말로만 듣던 설왕설래?

아. 달콤하여라……. 눈이 저절로 감기면서 정신이 아득해온다 그런데 숨도 좀 차온다. 도대체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하나? 숨이 막혀 기절하려 하는 찰나에 대군이 입술을 떼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김 상궁을 바라보며 웃었다. 미소마저 눈부시구나.

“다른 답은 듣지 않을 것이오. 손을 잡았으니 김 상궁은 이제 내 정인이오. 내 환상보다는 내 실체가 더 좋다는 것을 이제 알려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