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작품은 리네이밍작입니다.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1. 작품 소개

“쓰레기, 너 같은 걸 써주는 회사가 있을 것 같아?”

“……있는데요. 저 써주는 회사, 있더라고요. 여기, G&B그룹 비서실이요. 덕분에 취직됐어요. 그럼 잘 부탁드려요. 사장니임!”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인성쓰레기 사장에게 해고당했지만, 그로 인해 사장에게 엿 먹이는 게 주업무인 비서로 채용됐다. 연봉 높은 땡보직을 나 변태영이 어찌 마다하리오.

어이, 갑! 너 어디 한번 싸구려 을에게 제대로 당해봐라!

“현대판 노예라, 멀리 갈 것도 없잖아?”

원하는 답을 듣고 싶어? 개인비서 시켜줘! 그럼 노예 해줄게!

“어머나, 그게 누굴까요?”

“몰라서 물어? 말이 좋아서 비서지, 조선시대로 치면 노비 아냐? 천민. 안 그래? 싸구려.”

“에이, 그런 식으로 치면 사장님도 시대를 잘 타고난 거죠. 조선시대로 치면 상인이잖아요. 상놈!”

2. 작가 소개

한을

양수를 그리는 새

▣ 출간작

힐 미

3. 차례

1. 싸고 좋은 것

2. 현대 노예, 조선 상놈

3. Oh! My God!

4. 잘릴 여자와 자를 남자

5. 그 여자의 만행

4. 미리 보기

「와우, 저 인성쓰레기!」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머릿속에서 같은 장면이 끊임없이 재생됐다. 솔직히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불쾌했던 통화를 잊어버릴 정도로. 투명한 느낌이 드는 하얀 피부,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긴 생머리, 선한 눈매, 모양 예쁜 코, 도톰한 입술, 거기에 샨티느와 고유의 투피스 유니폼 때문인지 우아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 꽤 괜찮은 첫인상이었다. 비록 ‘싸고 좋은 게 왜 없어요? 똥!’ 했을 때 완전히 박살나버렸지만.

‘참나.’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찼다. 사람 겉모습만 봐선 알 수 없다더니. 그 미친 여자의 이름은 변태영이라고 했다. 귀에 쏙 들어오는 첫 두 음절 때문에 잊고 싶어도 잊히지도 않아 짜증나는 이름. 그래도 이제 다신 마주칠 일 없으니까. 더 이상 성가신 일은 없겠지. 그래, 더 이상은. 그게 당연한 거잖아.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유난히 일진 사납던 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는 김연석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사장님, 선박 화재 때문에 이번에 홍콩 오픈계획이 불투명해졌답니다.”

긴급상황이었다. 하필 내 라인이었던 물류 운송에 악재가 터졌다. 출장으로 나와 있어서 회의장으로 돌아갈 수 없어, 휴대전화에 깔려 있던 사내 앱을 통해 화상회의에 접속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어져.”

“접속이 불안정한 것 같습니다.”

“평소에 점검 제대로 안 하지? 이런 데서 그룹의 평가가 갈리는 거라고. 사소한 것도 허술한 그룹하고 큰 건을 같이하고 싶겠어?”

“죄송합니다. 시정토록 하겠습니다.”

겨우겨우 연결했을 땐, 정박해 있었기 때문에 화재는 금방 진압되었지만 컨테이너 속 자체 브랜드 물류들이 무사할까가 관건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만약 판매에 부적합한 상태라면 전소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는 바.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느라 회의는 늦도록 이어졌다. 현지 책임자와도 긴밀하게 계속 화상으로 보고를 받던 중, 기다리던 희소식이 화면에 전송됐다.

[다행히 90퍼센트 이상 보전했답니다! 오픈일정에 맞춰 차질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하아…….”

겨우 한숨 돌렸다. 비록 화면상이지만 저마다 자축하는 모습에 나도 정중하게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느라 잠시 시선을 돌린 상태였다.

“다들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스피커가 조용했다. 다들 화답으로 한두 마디씩 할법한데. 연결이 끊겼나. 무심코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본 순간, 뒷골이 서늘해졌다.

[사장님 좃ㅗ]

“이런 미친…….”

저게 뭐야. 누가 감히. 상스러운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지금 이 화상회의를 지켜보고 있는 눈만 몇 갠데. 차 안인 것도 잊고 벌떡 일어서다가 차 천장에 머리를 부딪쳤다. 차마 신음도 못 내고 이를 악물었다. 일순 조용해진 한국 측 임원들과 다르게 해외 현지 임원들에게서 갑자기 질문이 쏟아졌다.

- 저게 무슨 뜻입니까?

- 맨 뒤에 기호는 뭐지요?

봇물처럼 터진 질문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얼어 있던 손을 움직여 화상 연결을 끊자마자 번호를 확인했다. 누구야,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인데. 잘못 보낸 건가. 왜 하필. 아니, 잘못 보낸 게 아니야. 분명히 사장님이라고 했잖아? 순간 어떤 이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설마, 설마.’

의심하면서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설마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 여보세요, 사장님.

지체 없이 통화 버튼을 누른 저 너머에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할 말 없으시면 전화 끊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여전히 뻔뻔한 그 여자의 목소리가.

“지금 그쪽이 무슨 짓 한 건지 알기나 해? 내일 내 사무실로 와.”

지금 당장 눈앞에 있었다면 목을 졸랐을지도 모르겠다. 간신히, 정말이지 간신히 숨을 골랐을 때, 달갑지 않은 인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작은아버지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 적을 만들지 말라고 내 그리 누누이 말했거늘. 그래도 이번 일을 본보기 삼아 배우는 게 있길 바라네.

충고를 가장한 비웃음이었다. 갑작스레 터진 사고였지만 어찌 보면 중요한 기회였다. 가뜩이나 애송이 사장이라고 공공연하게 무시하는 시선들을 잠재울 수 있는 기회.

모처럼 신의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만약의 사태를 위한 플랜도 구비되어 있었고, 그에 따른 대처도 나쁘지 않았다. 별다른 간섭 없이 묵묵히 지켜보던 회장님의 반응이 그 증거였다. 그랬는데, 다 된 밥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 여자가 시원하게 재를 뿌려버렸다.

그렇게 남의 밥상 엎어놓은 사람치곤 변명이 조금 부실했다.

“그게요, 사실 오타인데요.”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무슨 오타가 그렇게 의도적으로 날까. 인성쓰레기라고 길길이 날 뛸 땐 언제고 갑자기 사과가 하고 싶어졌다고? 이제 와서 꼬리 내릴 심산인가 본데 내리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닌가? 하나하나 따지고 들자 아주 점입가경이었다.

“원래는 1인 시위를 하려고 했는데…….”

“1인 시위.”

반복해 들려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주제에 무슨 1인 시위.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어디 한번 그 장한 목적이나 듣자 싶어서 물으니 당치도 않은 이유가 들어왔다.

“사장님이 저를 블랙리스트에 올렸잖아요. 취업이 안 돼서, 항의하려고…….”

기도 안 차서 진짜. 블랙리스트에 올리라곤 했지만 김연석이 그대로 실행에 옮길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물었다.

“김 실장, 저거, 블랙리스트 올렸어?”

“아니요.”

역시나. 뭐 같은 문자의 그야말로 뭐 같은 전후사정을 알게 되니 더욱 기분이 뭐 같아졌다. 무능력의 표본, 몰상식의 표본, 민폐의 표본. 탓하려면 못난 자신을 탓해야지 왜 애꿎은 데 화살을 돌린단 말인가. 원망도 적당히 했었어야지, 국제적으로 망신살 뻗치게 만들어?

“블랙리스트는 무슨. 그쪽 버러지 같은 밑바닥 인생, 내가 신경이나 쓸 것 같아?”

말이야 바른말이지, 저런 인간을 채용하는 회사가 있을 리가. 그런데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그런 회사 있다고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었다. 보나 마나 뻔하지. 회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허섭스레기. 어딘데. 고갯짓으로 묻자 변태영의 어깨가 자랑스럽게 쫙 펴졌다.

“여기, G&B그룹 비서실이요.”

“……뭐?”

우리 회사인 것도 믿을 수 없는데 더더군다나 비서실이라니.

“사실이야? 말해봐. 김 실장.”

“네. 오영빈 사장님께서…….”

김연석이 채 말을 맺기도 전에 작은아버지의 저열한 속내에 쌍욕이 튀어나갔다.

“……김 실장.”

“네, 사장님.”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저거 내보내.”

“그건…….”

“안 그럼 너 먼저 그만두게 될 줄 알아. 알지? 나 한번 돌면 눈에 뵈는 거 없잖아.”

“사장님.”

“저거 내 눈에 안 띄게 하라고.”

“죄송합니다만 그건…….”

오늘따라 김연석까지 성질을 긁지?

“죄송하면.”

“…….”

“죄송할 짓을 안 하면 되잖아!”

지난번 던졌던 화분보다 더 묵직한 난 화분이었다. 그만큼 더 힘이 실렸다. 이런 데 익숙한 김연석이 민첩하게 몸을 틀었다. 그 바로 뒤에 변태영이 있었다. 어리둥절하게 나와 김연석을 구경하고 있는. 깜박이는 눈꺼풀 위에 골절로 드러누운 강 비서가 겹쳐졌다. 이번엔 골절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짧은 찰나에도 긴장으로 손이 축축이 젖어왔다.

그때였다. 변태영이 가젤같이 펄쩍 뛰어오른 건. 동시에 허리를 굽혀 충격을 흡수하며 화분을 받아 안은 건. 워낙 안정적이라 화분이 아니라 공을 받은 것 같은 착각에 잠시 빠졌다. 멍한 느낌은 환호성과 함께 깨져버렸다.

“워후! 나이스 캐치!”

뭐 저런 게 다 있어. 의기양양하게 화분을 들어 보이는 변태영을 본 순간, 완전히 질려버렸다. 상종 못 할 인간. 다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대라 생각했는데, 김연석은 아직도 상황이 파악 안 됐나 보다. 통칭 섀도라 불리는 개인비서에 배정하겠다고. 의심스러웠다. 제정신인가. 무려 비서실장이라는 작자가.

“저거 쳐다보다가 화병 걸려 돌아가실 일 있어?”

앓느니 죽지. 보고만 있어도 열불이 나는데 종일 붙어 있는 개인비서라니. 딱 질색이었다.

물론 김연석의 설득도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비밀유지계약이 이중으로 체결되기 때문에 작은아버지한테 이쪽 일이 새어나갈 일이 원천봉쇄된다는 점, 회사기밀을 개인의 이득을 위해 이용하지 않을 거라는 점, 스스로 그만두지 않을 거라는 점.

그렇다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백 가지 장점이 있으면 뭐해. 한 가지 단점이 모든 걸 덮어버리는데. 물론 변태영은 백 가지 단점에 한 가지 장점이 있을까 말까지만.

“첫째도 충성, 둘째도 충성, 그게 기본 아냐? 봐. 저게 어딜 봐서 나한테 충성하려는 태도야.”

지금도 봐. 개인비서로 배정하겠다는 말 나오기가 무섭게 뭐 씹은 표정으로 돌변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