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사업이 기반인 도현 그룹의 차남, 도우진.

그가 가지고 있는 기괴하고도 무서운 취미.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던 이경이 그런 그의 표적이 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너 정말 도우진 맞아? 내가 알고 있던 도우진이 맞느냐고!”

“난 너 사랑해. 사랑해서 그랬던 거야.”

왜, 왜 행복하지 않을까.

왜 너의 사랑이 따뜻하지 않고 따갑기만 한 걸까.

“……네가 무서워, 우진아.”

“헤어지자는 말만 하지 마. 난 너 없으면 안 돼.”

지금은 잠시 쉴 틈을 주는 거지, 영영 놓아주는 게 아니야.

난 널 놓아줄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제발 오래 걸리지 마.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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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작

[너를 거닐다]

[어느새, 어쩌다 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너와 내가 사랑을 한다는 일]

[손끝의 마호가니]

[갑의 조건]

[본문 중에서]

“너 정말 도우진 맞아? 내가 알고 있던 도우진이 맞느냐고! 아니, 아니야.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야.”

정말 모를 일이었다. 제가 여태 쌓아 왔던 게 있는데 어째서 이경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지, 어째서 이렇게까지 저와의 사이에 타격이 있을 수 있는 건지 말이다. 저는 굉장히 오래 기다려 왔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제 나름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가면서, 제게로 향해 있던 방해의 시선들을 혹독히 견뎌 가면서 얻어 낸 건데 왜 이렇게 모조리 비난과 비수의 눈길만 받아야 하는 걸까.

“사랑해서 그랬다는 거야, 지금?”

그게 어떻게 변명이 돼?

“이경아, 제발.”

또 풀이 죽는 눈초리. 잔뜩 아이 같은 눈망울이 참 순하게도 꼬리를 내리는 것 같았다. 어느 얼굴이 진짜 얼굴인지 모를 정도로 단숨에 또 제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투정과 애원이 섞인 그 눈으로 계속 응? 이라며 무언의 보챔을 동반했다.

불안하게 하지 마, 이경아. 날 불안하게 만들지 말라고.

“……네가 무서워, 우진아.”

나한테 사랑한다 말하고, 매일 그렇게 속삭이고. 그런 진실들을 다 감추고 있었으면서도 꼭 다른 사람인 것처럼 여태.

“진심이었어.”

“뭐?”

“내가 너한테 했던 사랑한다는 말, 너한테 보여 줬던 내 애정들 진심이었고…… 아니, 계속 진심이야. 사랑해서 그랬던 거야. 너무 궁금해서 미쳐 버릴 것 같으니까 그랬어. 하나하나 죄 알고 싶고, 나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그런 거 다 그냥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

“나는…… 잘 모르겠어. 난 이해를 할 수가, 그럴 수가 없어.”

“헤어지자는 말만 하지 마. 난 너 없으면 안 돼, 정말로.”

“…….”

“약속했잖아, 너.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옆에 있어 주기로 약속했었잖아. 지켜야지, 응? 지켜야 하는 거잖아.”

애초에 그림은 죄 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제집에 들여다 놓을 구실. 그렇게 천천히, 아주 옛날부터 시작되었을 그의 취미.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하고 기괴한 기분이 저를 덮치고 들었다. 왜,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가 내리쬐는 애정의 빛이 따뜻하지 않고 따갑기만 한 걸까.

“나도 너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했어. 그런데, 그런데 이런 식은 아니야.”

이런 무서운 기분으로 어떻게 지나칠 수가 있겠어. 어떻게 또다시 널 보면서 사랑한다고 그럴 수가 있겠어.

“……미안해.”

난 정말 못 하겠어. 지금 나는, 너를 똑바로 보고 있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 믿어지지 않아서, 도무지 다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나중에 내 얼굴 볼 수 있겠으면 연락해. 생각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지 않으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일단은 여기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우진은 계속해서 붙들고 있던 이경의 양 손목을 놓았다.

“꼭 돌아왔으면 좋겠어, 나한테.”

난 널 놓아줄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제발 오래 걸리지 마. 내가 무슨 수를 쓰기 전에 그냥 얌전히 돌아오는 게 좋아.

[목차]

프롤로그

1. 날아갈까 두려워서

2. 발끝부터 천천히,조심스럽게

3.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4. 머무르기 시작하는

5. 미소 안의 그늘,그늘 안의 미소

6. 착각의 씨는 보라는 듯 열매를 맺었다

7. 일각 아래 빙산

8. 태풍의 눈

9. 그러나 비껴가는 해

10. 언제나 머물렀던 검은 실루엣

11. 복병을 맞이하는 자세

12. 약이 될 수 없는 시간

13. 비로소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