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살아서 이 작은 천국을 얻고자 죽어서 지옥에 갈 것을 선택했다.”

아일 에드가 클레이모어.

그리고 그의 기억을 가진 남자, 서정현.

“만약에 아니라면요……. 제가 그녀가 아니라도 이렇게 잘해주실 건가요?”

라야 윈터스.

그리고 모두가 그러하듯 천칙(天則)에 의해 기억을 묻어버린 여자, 한지은.

전생의 기억과

현세의 추억이 교차하는 곳,

나달의 언덕.

그곳을 넘어 다시 만난 정현과 지은의 새로운 이야기.

2. 작가 소개

아드소

여름에 태어났지만 더위에 약합니다. 여름밤은 좋아합니다.

제가 활자로 옮긴 인물과 세계가 다른 이들에게도 잠깐의 재미, 또는 오랜 즐거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3.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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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외전 1. 놀아야 할 시간

#외전 2. 특권

#외전 3. 엄마가 아니야

#외전 4. 예감

#외전 5. 칭찬이 필요해

#외전 6. 바쁜 저녁

#외전 7. 언덕 위에서

#외전 8. 기시감

#외전 9. 폭풍우 치는 밤

#외전 10. 그리고 봄

4. 미리 보기

새로운 땅을 점령해가는 전쟁이 아니었다. 정치력을 무기로 그들의 조국 위에서 벌어지는 땅따먹기 게임에 가깝다. 어느 쪽도 길을 지나는 상단을 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쿠스친은 그렇게 판단했다. 용병의 호위를 받으며 움직이는 건 오히려 눈길을 끌 것이다. 라야도 동의했고, 일단 마음을 먹은 이상 그를 전적으로 믿기로 했다.

일행은 다섯 명이었다. 라야와 쿠스친, 호슨, 록사나, 그리고 라렌시.

라야는 라렌시를 데려가길 바랐다. 쿠스친은 이스칸 페렐에 머무는 동안 라렌시를 임시 일꾼으로 고용한 터였다. 라렌시는 일이 필요했고, 라야는 믿을 수 있고 위안이 되는 친구가 필요했다.

“으음, 남자가 한 명 더 있어도 나쁘지 않겠지.”

쿠스친은 라렌시에게 수정된 임시 근로 조건을 일러주었다. 보수는 라렌시가 극단을 관둔 뒤 번 돈을 모두 합친 액수보다 많았다. 너무 후한 조건이라 놀란 걸까? 잠시 주저하는 것 같았지만 라렌시도 결국 동행에 응했다.

되도록 성은 거치지 않기로 했다. 성마다 출입구의 검문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페렐에서 모뤄로 갈수록 경계는 더욱 삼엄해졌다. 세 번째로 들른 성에서는, 록사나의 없던 관심도 불러일으키는 호들갑스러운 연기 때문에 라야의 정체가 거의 들통 날 뻔했다. 그 뒤로는 쭉 야영을 했다.

밤이 되면 마차에서 잠을 자고 낮이 되면 이동했다.

록사나는 셋째 날까지 태교에 좋다는 노래를 쉬지 않고 불러댔다. 라야는 록사나가 자신에게 복수를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식사를 남기고, 방을 어지럽히고, 짜증을 부리고, 식사 시간 전에 도망친 것에 대한 복수구나.

라렌시는 가끔 기분이 내키면 1인극을 보여주었다. 록사나를 잠시 입 다물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는 구원과 같았다. 물론 연극이 끝나면 록사나의 노래가 다시 시작됐다. 참다못한 쿠스친이 닥쳐달라고 부탁한 뒤에야 마차는 평화를 찾았다.

잠이 많아서 못 미더운 록사나를 제외하고 네 사람이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쿠스친은 라야를 혼자 불침번으로 두기 마음에 걸렸던지 그녀가 불침번을 설 때면 같이 잠을 자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밤새 대화를 나누었다.

쿠스친은 그동안의 잘못을 사과하려는 것처럼 라야가 흥미를 가질 만한 이야깃거리를 계속 내놓았다.

고위층 인사들의 뒷말, 은밀한 소문, 괴벽 같은 것. 나이대도, 성별도 다른 두 사람이 동시에 재밌다고 느낄 만한 이야기는 한계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부모 없이 컸던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나왔다. 한심한 첫사랑 이야기도. 상인이 되면서 겪어야 했던 고생담도.

말에도 가속도가 붙는 건지 절대 누구에게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이야기까지 나왔다. 부인을 어디서 만났고 그가 어떻게 부인을 붙잡았고 청혼은 어떤 식으로 했으며 그가 그녀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부인이 잠든 채로 숨을 거두기 전 그가 어떤 사과를 했는지도. 사과가 너무 늦은 거 같다는 후회도 털어놓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라야가 측은한 얼굴로 손수건을 건네고 있었다. 쿠스친은 어색하게 손수건을 건네받아 눈물을 닦았다.

쿠스친은 조심스럽게 에드가에 대해 물었다. 라야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일을 어떻게 만났는지 얘기해주었다. 아일 에드가는 두말하면 입 아픈 유명 인사였고 쿠스친도 당연히 그에 대해 들은 말이 많았다.

클레이모어가의 가장 빛나는 영광과 가장 참담한 비극이 깃든 이름.

메마른 표정, 상대를 가리지 않는 가혹한 태도 - 심지어 자신에게도.

피로 얼굴을 씻어내는 데 중독된 악귀처럼 적을 도살한다는 얘기도 들었던 거 같다.

다이런의 역사, 크롬헬의 자부심, 인간들의 노골적인 기대와 경계도 아일 에드가를 질식시키지는 못했다. 신이 그에게 죽음을 무기로 주었기에 어떤 두려움과 고통도 그를 황폐화시키지 못한다. 쿠스친에게 아일 에드가는 생명력 없이 박제된 영웅이었다.

하지만 라야의 눈으로 본 에드가는 달랐다. 숨을 쉬고, 달리면 지치고, 화내고, 웃었다. 에드가도 슬픔을 느꼈다. 그도 쿠스친과 같은 인간이었다.

몇 날 며칠 대화가 계속됐다. 그러는 동안 쿠스친은 에드가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