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그래세이 섬의 좌측에 면한 웨일즈 서부 해안에서 몇 마일 가면 협소한 개간지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그 마을의 한편에는 가파른 언덕이 우뚝 솟아 있으며 그 정상에는 위풍 당당한 회색 석조의 영주관이 새끼를 지키는 어미처럼 오두막 촌을 굽어보고 있다.
마을 전체가 한여름 태양의 열기를 담뿍 들이켜 나른한 평화가 감도는 것과 달리, 언덕의 영주관은 회색 외벽에 내리쪼이는 햇살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러하듯 배타적이고 차가운 분위기를 풍겼다.
한 낯선 남자가 연신 영주관을 힐끔거리며 조심스런 걸음으로 마을에 들어섰다. 하지만 사람의 살가운 냄새가 짙은 마을 한가운데 이르자, 사내는 경계심을 풀었다. 오랜 고생 끝에 드디어 운이 터졌구나. 열 두어 채 가량의 오두막과 평화로운 정적, 놀이에 정신이 팔린 천진난만한 아이들 그리고…… 여자들까지! 사내의 거친 눈매에 야릇한 빛이 감돌았다. 집 안팎을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여인네들 가운데 반반한 얼굴이 대여섯 명 포착되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허름한 바지의 허리춤과 꾀죄죄한 늑대 가죽 망토를 추스르며 이리저리 살폈다. 이럴 수가! 남자는 한 명도 없잖아. 여기가 전설 속의 아마존 마을인가? 하지만 저기 아이들을 보면 그럴 리 없는데…… 아마 남정네들은 큰길 반대쪽에 있는 동쪽 들녘으로 나갔겠지.
「도움이 필요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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