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어느 틈에 밤으로 변해버리면 늪지는 정겨운 장소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혹같이 생긴 뿌리로 뒤덮인 사이프러스 아래 축축하고 음침해 보이는 음지가 원시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 썩은 통나무들이나 야자수, 물가를 가득 메운 망그로브도 이런 분위기를 내는 데 한몫 했다. 끝을 모르고 자라난 넝쿨과 양치류가 얽혀 있는 나뭇가지며 벌레 우는 소리, 손전등을 비출 때마다 눈빛이 이글거리는 야행성 동물 때문에 더더욱 문명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원시적인 곳이었다. 물안개를 헤치면서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배에 몸을 맡기고 보니 과거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잘됐어. 정말 잘될 거야.
줄리 불러드는 혼자서 싱긋 웃었다. 영화감독에게 상상력이란 풍부할수록 좋은 게 아닌가. 벌써부터 영화에 써먹을 이미지들을 마음속에 구상해두었다. 한 굽이만 더 가면 주간 촬영을 위해 미리 정해둔 장소가 있었다. 야간 촬영이 하나 더 남았는데 그건 거기서 촬영할 게 아니었다. 낡아빠진 나무배를 타고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을 터였다. 오늘 저녁이야말로 최고의 건수를 챙길 것 같았다.
강둑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물 속의 통나무 비슷한 물체를 피하려다가 배의 우측이 기울면서 기우뚱거렸다. 줄리는 나무판자로 된 의자를 꽉 붙잡으면서 고개를 돌려 가이드를 쳐다보았다. 그는 배의 후미에 서서 장대로 수면을 휘젓고 있었다. 작은 배로 구불구불한 수로를 따라 나가려면 장대의 힘이 유용했던 것이다.
다리가 휜 케이준(프랑스 출신의 이민자 후손)의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다. 배 후미에 달린 희미한 전등 불빛 아래에서 그의 눈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수면에 떠오른 기다란 물체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건 늙은 악어라우. 우리가 뭐하나 싶어 살피러 나온 게지.」
줄리는 무서워하는 척하면서 악어를 바라보았다.
「사람은 안 잡아먹어요?」
이가 빠진 가이드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만 믿어요. 살아 있는 사람은 절대 안 건드리니까. 배를 뒤집는 경우는 있어도. 그것도 다 호기심에서 그러는 거유. 그래도 이왕이면 부딪히지 않는 게 낫겠지.」
「그럼요.」
줄리가 앞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가이드가 쿡쿡대면서 웃었다.

미디어 리뷰가 없습니다.

별점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