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자에게 있어 매년마다 돌아오는 생일은 별로 반가울 게 못되는 것이라 여기며 수전 햄프턴은 팔꿈치를 괴고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아침마다 하루치의 석탄을 채워주러 오는 하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밤에 그녀는 아빠의 스타킹을 껴 신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는 것이 나이든 하녀들이나 하는 짓인 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체온이나마 간신히 유지하면서 겨우 잠들 수 있는 것을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혹한의 1월이었고, 없는 돈에 비하면 석탄 값은 터무니없이 비쌌던 것이다.
「제인, 오늘이 내 스물 다섯 번째 생일이란 거 알아?」
「세상에, 아씨, 벌써 그렇게 나이가 들었을 리 있겠어요?」
벽난로 앞에서 몸을 일으킨 하녀가 놀란 표정으로 대꾸했다. 수전은 움칫거리며 뒤로 나자빠지는 시늉을 해 보이면서 혼자 낄낄거리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오, 아가씨, 그러니까 제 말씀은요…….」
「괜찮아, 제인!」
당황한 하녀가 서둘러 방에서 나가자 다시 혼자가 된 수전은, 이 일이 결코 괜찮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녀는 이불을 어깨 위까지 잔뜩 끌어올렸다. 침실 안이 어지간히 추웠기에 그녀는 둥글게 몸을 웅크린 채, 자신의 입김이 수증기처럼 허옇게 떠올라가다 흩어지는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창한 여름날, 호반에서 즐겼던 야외 오찬의 추억을 떠올렸다.
편안하게 깔아놓은 담요 위에서 느긋하게 딸기 맛을 음미하던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햄프턴 힐은 아빠의 빚을 변제하기 위한 경매를 통해 북부지방 어딘가에서 왔다는 음침한 표정의 실업가와, 사치스런 옷차림으로만 기억되는 그 부인의 소유로 넘어가 버렸다.
한숨과 함께 수전은 베개를 파고들었다. 이미 두 해 전에 세탁부를 내보낸 탓으로 베갯잇의 다림질을 해본 지도 오래였다. 아래위층의 하녀들과 하인 둘, 그리고 마구간지기들도 그때 그만두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아빠의 마지막 말 한 마리는 태터솔(두세 가지 색조의 체크 무늬 모직물)에 쓰일 수 있을지 감정을 받는 중일 것이고, 남아 있게 된 집사의 급료조차 감봉을 면할 수 없으리라. 이 모든 재난의 원천은 오로지 그녀의 아버지인 로드니 햄프턴 경이 행운의 카드를 손에 쥐지 못한 데 있었고, 이제는 혼자 남은 하녀 제인이 집안 일의 대부분을 돌봐야만 했다.
한때는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릴 때에만 󰠏 그나마 그 초인종마저도 울려본 지가 벌써 오래되었지만 󰠏 낡은 에이프런을 허리에 두르곤 했지만, 그 짓도 그만둔 지가 언제였는지 수전에게는 기억이 없었다. 그러니 베갯잇을 다림질하는 일이야 급할 것 없는 하찮은 일로 전락해버릴 수밖에…….
「그래도 아직 이 집만은 남아 있잖아.」
수전은 베개를 향해 중얼거렸다. 작년에 문을 연 새 도박장에서 아버지가 지난가을에 몇 주간인가를 계속 불운에 시달린 끝에, 값나갈 만한 가재도구라고는 거의 모두 팔아치운 뒤라서 집안은 다소 휑뎅그렁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먼지를 털어주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쉰 다음 배를 깔고 엎드렸다. 아무리 그랬더라도,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작품인, 쇠테를 두른 가죽 트렁크만은 해도 너무했다. 돌아가신 엄마의 유품인 그 트렁크는 수전의 몫으로 남겨주기로 아빠가 약속했던 터였다.
「내가 그만 깜박 잊었구나, 얘야.」
짐마차꾼들이 그걸 들어내가고 난 다음에야 아버지가 다정스런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일은 마무리되고 말았지만…….
모든 일이 그런 식이었다고 생각하며, 수전은 베개를 안고 일어나 앉았다. 매력 만점의 로드니 경이라면, 껍질을 벗기는 도중에도 그 나무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엄마는 항상 말씀하셨다. 다시 누워버린 그녀에게도 근래에 이르러서는, 아빠가 다른 기술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이 자주 들고 있었다. 아빠가 신사라는 신분이기 때문에 무엇이건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어쩌다가 자신이 가진 것을 관리하는 방법마저 배울 수 없었던 것일까. 도대체 아빠는, 재단사를 하루 뒤에 만나기로 한 약속보다 먼 앞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깨 위로 담요를 두른 수전은, 아빠에 대한 못마땅한 기분이 자꾸만 뒤를 잇자, 늦잠의 은근한 즐거움마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사실 방금 전의 비난 섞인 그녀의 생각은 공평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빠가 재단사를 만나본 지도 어언 일년 여를 넘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의 책상 위에 쌓여 가는 청구서는 재단사가 여러 차례나 보내온 것뿐만이 아니었다. 언젠가 한번 걱정이 된 수전은 일부러 아빠의 서재에 들어가서 쌓여 있는 청구서뭉치를 망연히 바라보며, 그것들이 한 장도 빠짐없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소망에 잠겼던 적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보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나머지, 수전은 그후로 다시는 서재엘 가지 않았다. 요즈음 아빠는 일년이 다 지난 옷을 입으며, 시종을 내보낸 다음부터는 부츠도 손수 닦아 신고 다니셨다.
그녀의 침실에 할당되는 형편없이 적은 양의 석탄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혹독한 금년 1월의 추위를 당해낼 수 없었다. 수전은 조금이라도 빨리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혹시라도 찾아올지 모를 손님을 맞기 위하여 작은 응접실 하나만은 항상 따뜻한 불기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런 사람도 거의 없었으며, 더구나 젊은 신사들이 찾아온 적은 더더욱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로드니 햄프턴 경은 세인트 제임스(런던의 왕궁으로, 주변은 상류층의 주택가) 근처의 클럽에서 수전 햄프턴에게 관심을 갖는 독신남자들을 가까이 할 수 있을 만한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미모는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을 것이 확실했지만, 지참금 한푼 없이 시집올 수전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만한 부자이면서, 로드니 경 자신이 지고 있는 현재의 부채에다, 미래의 부담마저 떠안고 들어올 바보 같은 남자가 어디 흔할 것인가. 낮에는 자신의 팔짱을 끼고 다니다가 저녁이 오면 침대를 덮여줄 마누라를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라 할지라도, 그런 장인을 두게 되는 날이면 그 자신의 재정파탄마저도 머지 않을 것임이 불을 보듯 뻔할 터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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