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지 않은 때,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서……


여기에 마법이 있다. 꾸며 낸 것도, 실제도 아닌 신비로운 마법이…….
메건 사운더스는 친구들에게서 떨어져, 갈라진 벽 틈으로 수도원 안을 홀린 듯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품에 안고 있는 인형이 있는 한, 혼자라는 외로움은 전혀 없었다. 노랫가락이 소리 없이 아우성치듯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알갱이가 금빛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한참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자니,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녹슨 철제 대문이 보였다. 친구들은 높다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봄날 오후의 밝은 햇살 속으로 풀려 나온 기쁨을 만끽하면서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자연학습, 이 짧은 탈출의 시간만큼은 다른 모든 생각을 잊고 싶은 모양이었다.
메건은 두려운 마음이 앞서면서도 불가해한 힘에 이끌려 대문 가까이 다가갔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인형을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누군가가 대문 맞은편에서,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머금고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공주 같았다. 옥색 드레스에 허리까지 늘어뜨린 금발머리, 드레스와 같은 색의 생기 넘치는 눈과 눈부시게 뽀얀 살결, 메건은 휘둥그레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메건.”
목소리가, 미국에 살 때 이웃집 뒤뜰에서 영롱하게 울리던 풍경(風磬) 소리 같았다.
메건은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무척 어른스러웠다. 혼자 자란 탓도 있겠지만 본래 영리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꾸중을 들을 것인가.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국에서 입던 교복과 책, 인형 옷이 가득 든 상자, 그리고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인형이 메건의 전 재산이었다. 인형을 더욱 바싹 끌어안고 대문 쪽으로 몇 걸음 더 나갔다.
공주는 몸을 움츠리며 균형을 잡으려고 문살을 움켜잡았다. 드레스 자락이 가볍게 나부꼈다. 또 한 번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지만, 이번에는 영 알아들을 수 없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메건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모르는 사람하고 얘기하면 안 돼요.”
메건은 공주에게라기보다는 안고 있는 인형에게 속삭였다. 사실 그 인형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글로리아나’라고도 불린 엘리자베스 여왕 1세를 모델로 해서 만든 것이었다. 부모님이 런던 해로즈 백화점의 장난감 가게에서 그 인형을 골랐을 때, 거기 여직원은 무척이나 서운해했다. 떠나보내기가 아쉬웠던 것이다. 그 정도로 인형은 섬세하면서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물론 메건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메건에게서 벗어나 각자의 길을 가고 싶어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고, 떠나기 전에 교장실에서 필요한 서류에 서명했다. 브라이어브루크 학교의 상급생 언니가, 막대한 재산의 유일한 상속인이며 놀기를 좋아했던 메건의 엄마 에리카 페어필드 사운더스는 미국으로 아주 떠나 버렸고, 본래 영국인으로서 딸에게조차 요르단이라고 불리길 좋아했던 아버지는 ‘묶이길’ 원치 않기 때문에, 메건은 이제 완전한 고아가 되었다고 했다. 런던 영화관에서 일하고 있는 메건의 아버지는 에리카가 상속받을 재산의 상당한 양을 차지하기로 되어 있었다.
메건에게도 약간의 재산이 돌아왔다. 그러나 겨우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메건이 뭘 알겠는가.
무관심 속에 자라면서 메건은 엄마든 아빠든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의 사랑이 한없이 그리웠고, 귀염받고 사랑받는 다른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가족이란 울타리에 속하고 싶었다.
“메건, 무서워하지 마.”
두려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메건은 뜨끔했다.
“안 무서워요. 그런데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사실은 어리둥절하고 두려우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마법을 써서 알아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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