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 사람이 실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었다.
오랫동안 팔을 베고 잔 바람에 팔이 저렸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나른하게 기지개를 펴면서 고개를 돌리다가 남자를 보는 순간, 팔이 아픈 사실도 잊었다.
초점이 제대로 안 맞은 눈의 장난이거나 늦은 오후의 졸음과 한여름의 지루함이 만들어 낸 환각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몇 번 깜박여 보았지만, 그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그만 손톱용 가위로 잘라 낸 것처럼 섬세한 남자의 실루엣은 마치 작렬하는 태양으로 통하는 검은 출구 같았고, 주홍색에서 금색까지 생생한 색들로 물들어 있는 수평선은 술탄의 터번처럼 화려했다.
미동도 없는 남자의 모습이 소나무를 연상시켰다. 커다란 나무들은 뾰족한 가지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보초병처럼 장엄하게 서 있었다. 미풍의 숨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실러가 누운 위쪽으로 삐죽삐죽 뻗어 있는 참나무 가지의 소나무겨우살이(이끼의 일종)가 태양이 내뿜는 뜨거운 기운에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낮잠을 자는 동안, 불과 2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면, 그건 협박을 받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마치 자신이 침입자이기라도 하듯 뻔뻔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남자라면 더더군다나 그랬다.
실러를 더욱 놀라게 한 건, 그가 정원용 괭이를 어깨에 메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괭이는 뱀처럼 보였다. 남자는 손잡이에 손목을 얹고 있었다. 런던과는 달리, 루이지애나 시골에선 지극히 평범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벨르테르’ 땅 이쪽 부근에서는 캐낼 양파도 없었고, 소작인들의 채소밭도 수천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러니 실러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다 자신은 혼자이고, 여긴 집에서 상당히 떨어진 으슥한 장소였다.
누구인지, 남의 땅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 보아야만 했으나, 실러는 자신보다도 더 벨르테르 사람처럼 보이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자는 땅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마치 하나처럼 보이는데 반하여, 실러 자신은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서로 응시했는지 모른다－적어도 실러는 서로 ‘응시’했다고 생각했다. 누구인지, 왜 그리 뚫어져라 바라보는지 몰랐지만, 그가 상당한 시간 동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음은 알 수 있었다. 실러는 몸을 일으켰다.
남자는 실러를 계속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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