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 앞에 도착했어.”
수연의 승용차가 천천히 정차했다. 승용차의 뒤 유리창이 스르르 내려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재희는 청각을 유리창 밖으로 곤두세웠다.
“어떻게 할까?”
“참석자는 많니?”
“글쎄? 잠깐 들어갔다 올게.”
“괜찮아.”
“다섯 사람이 화랑으로 막 들어갔어. 승용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또 들어가고 있어.”
“화랑 앞의 배경 좀 설명해 줄래?”
“출입구 위에 ‘축, 조혜진의 아름다운 사진세계’라는 문구가 걸려 있어. 출입구 양 옆에 커다란 화환이 세워져 있고 ‘축, 조혜진의 신작발표회’란 문구와 ‘환영합니다’란 문구가 분홍색 리본에 나란히 적혀 있어. 다른 화환에도 ‘사진여왕 조혜진’이란 문구와 ‘환영합니다’란 문구가 나란히 있고, 출입구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양옆에 꽃 화분이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어.”
“보기에 괜찮니?”
“그래, 괜찮은 것 같아.”
“다행이구나.”
“기다려 봐. 차가 한 대 도착했어.”
재희는 시력 없는 선글라스의 시선을 창 밖으로 던졌다.
“언니야! 태수란 사람하고.”
“다정하게 보이니?”
“언니가 태수란 사람과 팔짱을 끼고 있고,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밝은 웃음도 보이고 있어.”
“행복해 보이니?”
“내가 보기엔 그래.”
“여전히 예쁘니?”
“후우, 이렇게 일일이 대답하는 내가 바보 같다.”
“미안하다. 내 생각만 했구나.”
“아냐, 내가 미안해. 언니는 예전하고 똑같아. 늘씬한 것도 여전하고 검은 원피스도 잘 어울려. 그렇게 굵지 않은 곱슬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헤어스타일이 아주 멋진데. 눈 화장 외엔 특별하게 화장한 것 같지도 않아. 깨끗하고 맑은 얼굴이야.”
“괜한 발걸음을 한 것 같구나. 이렇게까지 올 필요도 없었는데, 잠시 귀신에 홀렸었나 보다. 수연아, 그만 돌아가자.”
“무슨 얘기야? 여기까지 오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면 언니를 만나던가 해야 할 것 아냐.”
수연의 짜증 섞인 말투를 재희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정말 답답하다, 답답해.”
이어진 수연의 분통이 터지는 듯한 한숨소리까지도 재희는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행복하게 보이면 그걸로 됐어.”
“내가 괜찮지 않아. 그래, 충분히 오빠 마음은 이해해. 1년이나 지나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겠지. 하지만 오빠의 잘못만은 아니잖아. 누가 더 피해가 심했는데.”
격분한 나머지 수연이 운전대까지 세차게 두들겼다.
“그만하자. 내 운전 실수로 일어난 교통사고였고 혜진이는 병원에 입원했는데 행방을 감춘 사람은 나였어. 혜진이를 탓할 수 없는 일이야.”
재희는 차분해야겠다는 마음과는 달리 목소리가 다소 투박했다.
“언니는 멀쩡해. 행복하게 남편이란 사람과 팔짱까지 끼고 전시회를 개최하잖아. 오빠는 뭐야? 오빠는 눈을 잃었단 말야. 누구 때문에 빗길을 과속했는데. 사고처리도 삼촌을 속여 가면서 여기저기 돈 빌려서 다 해결했잖아. 그럼, 언니도 그렇지. 양심 있는 사람이면 퇴원해서 한번이라도 찾아오던가, 최소한 전화연락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었어?”
수연의 말투는 분개를 넘어 광분에 가까웠다.
“다 지난 일이야. 제발 그만하자, 수연아.”
“내가 왜 언니가 새로 이사한 아파트나 그 잘난 남편이 서울병원에 돌아왔는지 오빠 몰래 찾아다니고 연락해보고 그 난리를 부렸었는데. 오빠 때문이야. 언제까지 그렇게 죄책감에 힘들어 할 건데. 차라리 언니를 만나서 병원에 찾아가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사과라도 하고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사랑타령 좀 끝냈으면 해서야.”
“도대체 왜 이래? 누가 사랑타령이야, 사랑타령! 괜한 발걸음을 했다면 알아들어야 할 것 아냐! 이런 식으로 부담 주려면 내 주위에 얼씬도 하지 말고 떠나!”
수연에게 이렇게까지 분노를 터뜨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재희는 후회도 늦었음을 깨닫고 착잡한 심정을 가누지 못했다.
그런데 수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오래 지체되지 않았다.
“미안해, 오빠. 그래, 괜한 심통을 부렸나 봐.”
“나도 미안하다, 너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방금 했던 말들은 잊어라,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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