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간절히 소원을 빌고 착하게 산다면 소망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나는 열다섯 살이고, ‘이의 요정(어린아이들이 젖니를 갈 시기에 이를 빼서 베개 밑에 놓아 두면 이의 요정이 돈을 준다는 데서 유래)’이나 ‘산타 클로스’, ‘부활절 토끼(부활절에 사탕을 나눠 주는 토끼)’ 같은 것을 믿지 않은 지 오래지만 우리 주변의 세계에는 신비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만은 굳게 믿었다. 어딘가에 천사가 있어 우리를 지켜보고, 우리의 꿈과 소망을 심사숙고해 보고, 가끔씩 자격이 된다고 여겨지는 적절한 때가 오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한다고 말이다.
아빠는 내게 그런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아빠의 단단한 팔에 안겨 작은 공주처럼 지냈을 때, 아빠는 날더러 눈을 꼭 감고 땅벌처럼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천사의 모습이 가까이에 보일 때까지 소원을 빌라고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그 자신에게 배정된 천사가 있고, 천사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믿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준다는 거였다. 나이가 어릴수록 어른들이 상상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믿기 쉬워서 천사들은 가끔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세계를 믿는 데 좀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남들보다 좀더 힘이 들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비록 나이를 먹긴 했어도 꿈을 꾸고 산다는 것을 스스럼 없이 인정한다. 우리는 닭요리를 먹으며 뼈를 양쪽에서 잡아당길 때(두 사람이 뼈가 든 닭고기를 양쪽에서 잡아당겨 나눌 때 큰 쪽을 가진 사람이 득을 얻는다는 데서 유래)나,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불어 끌 때, 아니면 유성을 볼 때 소원을 빌고, 심지어는 그런 소원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기도 한다.
나는 자라면서 많은 소원을 빌었다. 내 천사는 분명 과로했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늘 아빠가 땅 밑 수킬로미터나 들어가 햇빛과는 동떨어진 습하고 어두컴컴한 먼지 동굴인 석탄광에 내려가지 않아도 되기를 빌었다. 여느 광부의 아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폐광의 통로에서 놀았고, 신선한 공기를 놔 두고 땅 속 깊이 내려가 하루 종일을 보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불쌍한 아빠는 그 일을 날마다 해야 했다.
난 우리 식구가 트레일러가 아닌 진짜 집에서 살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던 기억이 있다. 비록 우리 바로 옆 트레일러에 내가 정말 사랑하는 조지 할아버지와 알렌 할머니가 살고 있긴 했지만. 난 진짜 집을 갖게 되길 빌면서 조금 더 덧붙여 우리 바로 옆집에 그분들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두 집 다 뒤뜰과 잔디밭이 있고 단풍나무와 떡갈나무가 있는 그런 집을 갖게 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 비가 세차게 퍼붓는 날에도 마치 양철북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을 갖지 않아도 될 것이고, 바람 부는 날에는 트레일러가 전복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 소원은 끝이 없었다. 시간을 내서 그 소원들을 모두 적는다면 그 종이는 우리 트레일러에서 다른 트레일러까지 이어질 것이다.
또 엄마가 불행하지 않게 해 달라고도 빌었다. 엄마는 프란신 미용실에서 일했다. 모두들 엄마를 훌륭한 미용사라고 칭찬했지만, 엄마는 다른 여자들의 머리를 감기고 파마를 해 주는 일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 늘 불만스러워했다. 엄마는 잡담을 좋아했고, 부잣집 여자들의 여행 얘기와 그들이 가져온 물건 얘기를 듣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엄마는 그 아름다운 것들을 어느 것 하나도 살 수 없는, 그저 창을 통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슬퍼할 때조차 아름다웠다. 내가 가장 자주 비는 소원 가운데 하나는 엄마처럼 예뻐지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엄마의 침대에 앉아 화장대에서 꼼꼼하게 화장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엄마는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해 주고, 매력적이긴 하지만 자신을 가꾸는 데 게을러 좋지 않은 인상을 주는 여자들 얘기를 들려 주었다. 또 내가 예쁘게 태어났다면 대중 앞에 설 때마다 예쁘게 보일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머리를 매만지고 손톱을 손질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특별한 화장 크림을 사는 데 많은 돈을 들일 수밖에 없단다.”
엄마는 날 위해 샴푸와 헤어 컨디셔너 샘플을 집에 가져오곤 했다. 또 향기 나는 목욕용 오일을 가져왔고, 한 시간이 넘게 작은 욕조에 몸을 담그곤 했다. 엄마의 목욕을 도와 줄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 난 엄마의 등을 밀어 주고, 엄마가 손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동안 발톱을 다듬어 주곤 했다. 가끔 엄마는 내 발톱을 다듬어 주었고 머리 모양을 매만져 주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모녀지간이 아니라 자매 같아 보인다고 했다. 난 엄마의 이목구비를 많이 닮았는데 특히 코는 판에 박은 듯했다. 그런데 머리카락은 엄마보다 좀더 옅은 갈색으로 건초색과 비슷했다. 언젠가 머리카락을 엄마와 똑같이 염색해 달라고 졸랐을 때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예쁜 색이니까 그냥 놔 두라고 했다. 아빠는 아름다운 두 여자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일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온다고 했지만, 난 엄마만큼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
백구십 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팔십육 킬로그램의 체구를 지닌 아빠의 몸은 오랜 세월 광산에서 일하는 동안 더욱 단단한 근육질이 되었다. 광산에서 오래 작업한 날은 온몸이 쑤셔 느릿느릿 걸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아빠는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아빠의 얼굴에는 항상 행복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그러면 아빠의 힘센 팔이 얼마나 지쳐 있는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난 그 품에 뛰어들었고, 아빠는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공원 입구와 가깝고 앞뜰이 도로와 마주 보고 있는 우리 트레일러 앞에서 나는 트레일러들이 밀집해 있는 미네랄 에이커 공원으로 이어진 머캐덤 도로(자갈을 여러 겹 깔아 포장한 도로)를 무거운 걸음으로 돌아오는 아빠를 기다리곤 했다. 갑자기 고개 너머로 큰 키에 덥수룩한 옅은 갈색 머리의 아빠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군인 같았다. 아빠가 축구공처럼 오른팔 옆구리에 늘 끼고 있는 것은 점심 도시락이었다. 아빠가 아침에 일어나 일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면 엄마는 항상 잠을 자고 있었다. 아빠는 가끔씩 미네랄 에이커 공원 입구에 이르기 전에 내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아빠는 나를 보면 광부들이 쓰는 헬멧을 깃발처럼 흔들며 속도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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