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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1권
에클레어 지음도서출판 가하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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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평점 | :  [참여수 0명] |
| 듣기기능 | :  TTS 제공 |
| ISBN | : 979-11-300-47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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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열여덟. 폭군을 향한 아버지의 간언 때문에 내 목은 가문과 함께 단두대 위에서 잘려나갔다.
그리고 다시 눈뜬 열두 살의 생일. 가문을 살리기 위해 나는 폭군의 간신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니 폐하, 우리 좀 친해져봐요. 성심성의껏 잘해드릴 테니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저는 진짜 전하 편이라니까요? 완전 맹세!”
“입 닥쳐.”
그런데 인간불신에 빠진 이 폭군 유망주, 점점 만만치가 않아진다.
“전하, 제가 당신을 기만하게 하지 마세요.”
“네가 내 옆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이 기만뿐이라면 그리해.”
“네?”
“다시 말하지만, 난 내 건 아껴. 내 허락 없이 네 몸에 상처 내지 마.”
2. 작가 소개
에클레어
쓰고 싶은 글을(만) 씁니다.
3. 차례
#0. 열여덟, 죽음
#1. 열둘, 돌아온 생일파티
#2. 삼켜진 이면
#3. 수면 아래
4. 미리 보기
나는, 눈을 떴다.
시야는 선명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추위가 새하얗게 말라붙은 창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으슬으슬 추워지는, 성에가 잔뜩 낀 유리는 제 존재의 이유도 잊은 양 불투명하기만 했다. 그 흐릿한 창문 너머에선 눈 그림자가 어른댄다.
작은 틈새로 얼어붙은 공기를 뚫고 가느다란 빛이 새어들었다. 가느다랗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눈부신 빛줄기였다. 벨네르니의 겨울은 새파랗게 춥고 고되었으나 볕만큼은 여름에 견주어도 될 만큼 강했다.
빛. 나는 그 선명하고 산란한 빛을 노려보았다. 고개를 조금 돌리면 보이는 눈. 빛과 함께 밀려드는 겨울의 바람이 한 자락. 눈. 겨울.
겨울.
나는 창문 너머로 허옇게 투영되는 겨울의 풍경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이를 인지하는 사고가 연결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내가 ‘눈을 떴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전제부터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었으니까.
황제를 저주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내 본데없는 쌍욕을 듣고 인상을 찌푸리는 그를 보며 내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비웃었다. 게다가 내가 죽은 날은 뜨거운 태양빛이 작열하던 한여름이었다. 하나 지금 창밖의 풍경은 분명한 겨울날이다.
나는 문득 이 낡은 창가를 본 적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미간을 모았다. 조금 까칠한 감람빛이 도는 이 방은 분명 낯익다.
“아가씨!”
흐릿한 기억을 더듬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여자 하나가 수선스럽게 들어왔다.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유모?”
“일어나셨어요?”
내 어릴 적 유모, 코엔 자작부인은 재작년 가을 마차사고로 남편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뭐지? 그럼 여기는 천국인가? 나는 사형을 당할 만큼 죄를 짓지는 않았으나, 그녀처럼 착하게 살지도 않았는데.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달려갔다.
“유모!”
“네, 네. 오늘은 웬일이세요? 이리 일찍 일어나시고. 생일이라 들뜨셨나 봐요.”
“응? 생일?”
천국에서도 생일을 챙겨주나? 근데 내 생일은 겨울이고, 나는 여름에 죽었는데……. 내가 천국에서 두 계절을 뛰어넘었나 보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지만, 유모는 한숨만 내쉬었다.
“빨리 준비하셔야죠. 밤새 춥지는 않으셨나요?”
“응. 안 추웠어.”
“보이트에게 장작을 많이 때라고 말해두었어요. 아가씨는 추위를 잘 타시니까.”
“보이트? 보이트도 여기 있어?”
보이트도 죽었나? 이 망할 황제가 정말 아무 잘못도 없는 백작가의 집사까지 잡아 죽인 걸까? 나는 보이트에게 미안해 어쩔 줄을 몰랐다.
유모는 이상한 소릴 다 듣는다는 듯 한쪽 눈을 잠시 찡그렸다.
“당연하죠. 아, 휴가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이고, 아가씨도 참. 다녀온 지가 언제인데요.”
“휴가라니?”
“부인이랑 여행 다녀왔잖아요. 걔가 또 신혼이니까요. 아가씨가 이해해주세요.”
보이트는 결혼한 지 7년 다 돼가는데 신혼은 무슨 신혼? 설마 천국에서 새장가를 간 건가? 에밀리와 그렇게 잉꼬부부처럼 사랑을 노래하더니,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는 모른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역시 남자는 믿을 게 못 된다니까.
“으응, 뭐. 신혼이면 할 수 없지.”
유모는 내 작은 목소릴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침구를 정리하며 투덜거렸다.
“아휴, 백작님도 참! 아가씨가 공부를 좀 미뤘기로서니 생일 전날 이런 낡은 침실에서 재우실 건 또 뭐래요?”
그녀 특유의 불만 가득한, 하지만 나를 위하는 말에 나는 풉 웃어버렸다. 저 다정하고 사려 깊은 여인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나는 이불을 접기 위해 허리를 숙인 그녀를 뒤에서 꼬옥 껴안았다. 따뜻하다. 천국에 유모라도 있어 다행이다.
“유모, 진짜진짜 보고 싶었어.”
“아휴, 아가씨는 어쩜 갈수록 어리광이 느신대요?”
“나이를 거꾸로 먹나 보지.”
나는 방글방글 웃으며 유모의 장난스러운 핀잔에 대답했다.
그녀는 무겁지도 않은지 나를 등에 매달고 침구의 정리를 끝마쳤다. 나는 그녀가 없어질까 무서워서 그녀를 감싸안은 팔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유모는 내 팔을 뿌리치는 대신, 빙글 몸을 돌려 나와 마주했다.
“밤새 악몽이라도 꾸셨어요?”
“아니. 으음. 악몽 비슷했나?”
“어휴, 왜 그러실까? 요즘 도련님도 악몽을 종종 꾸시던데.”
“도련님? 누구?”
“누구긴 누구예요? 아가씨 동생 르한 도련님이요.”
르한은 천국에 못 왔을 텐데. 나는 나보다 먼저 죽은 르한이 천국에 있다는 사실에-나는 여기가 천국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놀라 눈을 크게 떴다.
“르한이 여기 있어?”
“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도련님이 백작저에 없으면 어디에 있어요?”
“걔가 천국에 올 리가…….”
나는 유모의 말에 반박하다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그녀가 뭐라고 했지?
“여기가 어디라고?”
목소리가 까칠해진다.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유모는 내 구겨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문질러서 펴주며 대답했다.
“벨네르니 제국, 벨루아 백작령의 백작저요. 여긴 별채의 다락방이고요. 아가씨, 아직 잠이 덜 깨셨나요?”
“여기가 백작저라고?”
백작저는 한 달 전, 아버지와 르한이 잡혀가던 날 누군가 지른 불에 전소했다. 새까맣게 그을린 골조만 남은 것을 분명 내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 도저히 말이 되질 않는다.
나는 쿵쿵 뛰는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방을 훑어보았다. 그래. 나는 이 방을 안다. 아버지가 어렸던 나와 르한에게 벌주실 때에 종종 쓰던 ‘참회의 방’으로 백작저의 별채에 딸린 낡은 다락방이다. 혼자 있는 것과 어둠을 질색하던 내가 무척 싫어했던, 그러나 열두 살 이후로는 들어와본 적이 없는 곳이다.
“아가씨?”
“오늘이…… 아니, 그러니까 나 지금 몇 살이야?”
“오늘이 생일이시니 이제 열두 살이시죠.”
“……열두 살?”
내가 새하얗게 질려 미동도 하지 않자 유모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살폈다. 말도 안 돼. 여기가 백작저일 리 없다. 열두 살? 나는 열여덟에 죽었다.
나는 그녀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방문으로 달려갔다. 만약 이곳이 백작저이고, 이 방이 참회의 방이라면 이 방 옆 작은 침실에는 르한이 자고 있어야 했다. 어린 시절에는 착한 동생이었던 그 아이는, 내가 이곳에서 밤을 보내야 할 때면 꼭 옆방에 있어주었다. 내가 혼자 있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함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 르한을 불렀다.
“르한, 르한!”
방문이 열리지 않는다. 나는 두려움에 가득 차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딱딱한 문을 손으로 두드려댔다. 있어라, 있어줘. 제발. 제발.
“르한! 나 라리에트야. 문 좀 열어줘! 안에 있니?”
내 절박한 목소리에는 어느새 울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다시 르한을 만나고 싶었다. 여기가 천국이 아니라면, 지옥이라도 괜찮으니까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단두대에서 사위어든 내 동생을…….
“르한!”
“뭡니까?”
벌컥. 육중한 문이 다급하게 열리더니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남자아이가 튀어나왔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장한 청년은 아니었지만, 어린 얼굴이 르한과 닮았다. 아니, 르한이다.
나처럼 연하고 흐리멍덩한 갈색이 아닌, 벨루아의 깊고 진한 암갈색 머리칼이 잔뜩 헝클어져 르한의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나는 조금 당황한 표정의 어린 르한을 와락 껴안았다. 전조도 없이 제게 뛰어든 나를 르한이 올려다본다. 아이답지 않게 진중한 눈빛이다.
“악몽이라도 꾸셨습니까?”
르한은 열 살부터 내게 정중한 존대를 사용했다. 그러지 말아달라 울기도 하고 떼도 써보고 화도 내보았지만 죽는 날까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 재수 없는 존댓말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나는 울며 웃는 얼굴로 르한의 볼에 입을 맞췄다.
“좋은 아침이야, 르한.”
“생일 축하드립니다, 누님.”
내 눈에 고인 눈물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닦아내며 르한은 딱딱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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