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그레이 1권 - 로맨스 소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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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647-040-2

도서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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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소개

그의 미래인 여자, 채윤. 그녀의 꿈인 남자, 형주.

씨실과 날실을 엮어 짠 인그레이의 서늘함을 닮은 사랑.

형주는 자신과 닮은 여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동병(同病)을 앓고 있는 사람만이 확인할 수 있었다.

바탕에 눌린 열정,

그리고 그 냉정의 바닥에 가라앉은 슬픔까지.

2. 작가 소개

이서윤

maroooo00@paran.com

착실한 직장인에서 일탈을 꿈꾸고파 글을 시작한 소심쟁이.

꿈은 이뤄진다(夢想成眞)라는 믿음을 가진 낭만주의자.

해피엔딩이 좋아 로맨스를 쓰는 해피엔딩 마니아.

작가연합 ‘깨으른 여자들’에서 활동.

▣ 출간작

『안개 속에 숨다』

『왈가닥 결혼하다』

『태양의 제국』

『프레지던트』

『매화우』

『비연』

『독감』

『해후』

『그 여자, 그 남자를 만나다』

『화흔』

『효월』外

3. 차례

프롤로그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4. 미리 보기

오래도록 컴퓨터 모니터의 한 곳을 들여다보던 형주의 눈빛이 부드럽게 빛났다. 언제나 무감하고 날카로워 송곳 같은 느낌을 주던 눈매 또한 희미하지만 둥글게 풀렸다. 수인이 보낸 메일 속의 사진 한 장이 그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 조카뻘이 되는 수인은 부모를 일찍 떠나 미국으로 들어왔고, 녀석은 그를 잘 따랐다. 잘 지내던 미국에서 무슨 생각인지 다시 한국으로 들어간 후, 대학원에 진학하며 떨어지게 된 후부터는 이렇게 꼬박꼬박 안부메일을 보내오곤 했다.

[삼촌, 나 있잖아요…….]

[있잖아, 삼촌…….]

항상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그녀의 메일은 늘 반복되는 그의 일상이 주는 작은 희망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동을 하는 출장이라도, 녀석과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침을 맞더라도 매일 확인하게 되는 개인 편지함에서 수인의 편지를 발견하면, 형주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만큼 그는 편안해 보였고, 여유가 있었다.

[삼촌! 이번 학술제 사진 보내요.

가운데 채윤이 보이죠? 채윤이가 이번에 메인발표 했어요.

그런데요. 본토 애들이 다 나가떨어질 정도였답니다. 어쩜 얘는 이렇게 말을 논리적으로 잘할까요? 그것도 남의 나라 말로. 채윤이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혹시 여기 대륙 태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죠. 남자들 반짝반짝 눈 빛내는 것 좀 봐요.

아휴, 이럴 땐 내가 남자여야 됐었는데.]

요즘 수인의 관심은 오직 한 가지로 집중됐다.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열성으로 쫓아다닌다고 선언한 친구. 수인은 그 친구의 이야기로만 가득 찬 메일을 벌써 몇 통째 보내오고 있는 중이다. 대학원을 북경서 상해로 옮겼다더니 요즘 들어 더 심해진 것 같아 형주는 밉지 않은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 들어오면, 꼭 만나게 해줄게요. 채윤이를 보면 나는 항상 삼촌이 떠올라요. 어쩌면 이렇게 닮은 사람들이 있을까 해서요. 이 친구도 냉정하긴 찬바람이 쌩쌩. 그래도 가끔 웃을 때면 주위를 녹이죠. 삼촌이랑 똑같아요, 흐흐. 웃으면 쏙 들어가는 입가의 작은 볼우물까지 닮았답니다.]

“한채윤?”

형주는 수인의 글을 읽어가다 친구라는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는 그저 웃으며 수인의 편지를 받았었다. 녀석이 좋아하고 관심 갖는 것에 대해서는 그저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 형주는 이유도 없이 사진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사진 속 그녀는 작았다. 토론의 중심이 되었다는 어느 세미나에서 굳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작고 가늘었다. 사진이 거짓을 말하기라도 하는 듯 그녀는 빛 속으로 사라질 것처럼 하늘거렸다.

그리고 형주는 그녀에게서 바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진 속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진으로도 느껴지는 날카로운 눈빛. 하지만, 무언가가 있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와 부드러움이 은연중에 배어나는 그녀로 인해 형주는 한동안 사진을 담고 있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훗!”

마침내 가벼운 코웃음을 흘리며 사진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 돌렸다. 눈에서 멀어지면, 그의 가슴에서 일고 있는 형언할 수 감정이 털어질 것 같았지만, 그것도 부질없는 듯했다.

수인아, 나 같은 사람은 하나로 족해.

책상을 벗어나, 창으로 몸을 돌리고, 형주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마천루의 숲 저편으로 아침 햇살이 떠오르는 광경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네 말대로 눈빛이 닮았을지 모르지. 하지만, 삶이 재미없는 사람은…… 나만으로 충분해. 알고 싶지 않아.

그렇게 그는 상대를 거부했지만, 그래도 수인의 말을 모조리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을 자각했다. 사진 속 그녀는 볼수록 묘하게 시선을 끌렸다. 아마 동류에 대한 끌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형주는 씁쓸히 웃었다.

냉정한 가면 뒤에 숨기고 있는 뜨거움과 슬픔. 분명 그것은 동병을 앓는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종류였다. 스스로를 감추고 싶은 사람은 더욱 냉정하고 치밀한 가면을 뒤집어쓴다. 지극히 싸늘하고 둘러싼 모든 것에 무감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약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그것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최선의 방패였다.

그래서 형주는 자신과 닮은 여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뭐라고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동병(同病)을 앓고 있는 사람만이 확인할 수 있었다. 바탕에 눌린 열정과 그리고 그 냉정의 바닥에 가라앉은 슬픔까지.

“후!”

깊은 한숨으로 형주는 사진 속 그녀에게서 본 감정을 털어내려 했다. 그곳에 또 다른 이유가 더해져 그날 아침 형주의 가슴이 조용히 젖어들었다. 깊은 눈매에는 아주 오랜만에 감정이 서렸다.

청죽원, 사철 대나무가 푸른 곳.

그곳에 그림과 젊음을 묻었던 박소아, 그의 어머니가 떠오르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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