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유석영.
아버지는 그녀에게 있어 아버지였고, 어머니였고, 친구였고, 남자친구였고, 애인이었고, 영웅이었고, 하늘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14살이 되던 해, 성수대교 사건으로 잃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친구와 남자친구와 애인과 영웅과 하늘을 잃었다.
죽고 싶었다. 실패했다.
병원에서 깨어날 때마다 옆에 있었던 것은 동갑내기 소꿉친구 재한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미음을 먹이고 죽을 먹이고 밥을 먹였다.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유달리 더웠던 어느 여름날,
대학졸업반으로 준비하고 있는 그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재한의 어머니였다.
군을 제대하고 돌아온 재한이 얼마 전 자살했다고.
석영은 그냥 고개를 마냥 끄덕거리다 전화를 끊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석영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셨고, tv를 보며 깔깔거렸다.
다음 날, 그녀는 집을 나섰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남자 민태완.
그의 아버지는 원장아버지고, 그의 어머니는 부원장 어머니다.
가진 것이 없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노력 밖에 없었다.
어느 날, 안영주라는 여자를 만났다.
화사한 프리지아 빛깔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를 보며 가족을 꿈꿨다.
둘은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행복했다.
대구로 출장을 갔다.
회의도중 아내에게서 핸드폰으로 연락이 오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내가 남겨놓은 음성메시지도 바쁘다는 이유로 듣지 않았다.
몇 시간 후, 매스컴에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사건이 방송되었다.
뜨악해하며 밥을 먹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삼오제를 지낸 후, 태완은 아내 영주를 화장하고 바다에 뿌렸다.
집으로 돌아와 음성메시지를 들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오열했다.
다음 날, 그는 사표를 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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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도.
남해 바다위에 둘로 갈라져 떠 있는 작은 섬...
가혹한 현실과 너무나 멀리 떨어진 아득하고 따뜻한 세상 끝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여자와 모든 것이 떠나버린 한 남자가 마주친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누추하고 초라한 손을 내밀어 서로를 끌어안는다.

** 사량도는 경남 통영 서편에 위치한 섬입니다.
[해인제(海人祭)]에 나오는 인물들과 섬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모두 창작입니다.**

Wanna Be Storyteller
온라인 필명 네오메이커
밥벌이하느라 바쁜 호모 이코‘노믹’스
틈틈이 글쟁이의 기쁨을 만끽하는 호모 루덴스
충무공 이순신의 자 여해(汝諧)와 유사한 이름이 무척 자랑스러운 호모 코레아‘니우’스
백수가 체질이라 일하고 글 쓰는 틈틈이 놀 궁리만 하는 호모 날‘라리’안
역사와 사회에 관심 많은 호모 폴리티쿠스
가와사키 GTR 1400을 열렬히 짝사랑 중. 구입하는 대로 튜닝해서 사막에 끌고 갈 꿈에 부풀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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