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없어요.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는 자신, 그게 저한테는 없어요.”
“세상에 불행을 바라고 사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때때로 불행해지기도 해. 그게 사람이니까.”
행복의 정의는 각기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똑같은 행복을 꿈꾸며 살아간다.

“젠장. 그럼 그런 얼굴을 하지 말던가. 뭐야, 지금 동정심이라도 유발하겠단 거야?”
“난!”
“아니라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면 약한 소릴 하질 말았어야지. 대체 이 빈약한 몸뚱이로 할 수 있는 게 뭐야.”
신랄한 비판과 함께 승표가 현서의 가슴을 억세게 움켜잡았다.
“아얏!”
거친 남자의 악력에 견디다 못한 현서가 높다랗게 비명을 질렀다. 생각지도 못한 정신적인 충격에 몸도 함께 발작적으로 뒤틀렸다. 그사이 진로를 벗어난 차가 중앙선을 넘었다 간신히 차선 안으로 되돌아왔다.
승표의 차량 주변에서 운전을 하고 있던 차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행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불안함을 느꼈으리라. 발버둥치는 현서의 움직임에도 승표는 부득불 뻗었던 손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결국 뒤늦게 정신을 차린 현서가 승표의 손등을 물어뜯는 것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잇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진 팔을 앞쪽으로 잡아당긴 승표가 짜증스레 운전대 위로 상처 입은 손을 올려놓았다. 얼마나 악세게 깨물었던지 피멍이 들 게 뻔했지만 당장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정말이지 한 순간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었다.
짝.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바들대던 현서가 뒤늦게 승표의 뺨을 올려다 붙였다. 방금 전에 당했던 모욕적인 행위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뒤이은 목소리도 잔뜩 억눌러져 있었다.
“한승표 씨가 그렇게 잘났나요. 왜 계속 사람을 가지고 놀려고 하는 건가요. 대체 제게 이러는 이유가 뭐예요. 하고 있잖아요. 한승표 씨가 원하는 대로 모두 다 그렇게 해주고 있는데, 저더러 이 이상 뭘 더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승표를 바라보고 한 말이었지만 정작 그녀의 눈엔 승표는 들어 있지 않았다. 짜증을 넘어선 화기에 승표가 히스테릭하게 현서의 말을 받아쳤다.
“먼저 사람 성질을 돋우건 지현서, 너야.”
“가까이 오지 말아요. 끔찍하고 역겨워요.”
악다구니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잔뜩 방어적으로 변한 현서가 최대한 몸을 문 쪽 가까이로 붙이며 몸을 사렸다. 대번에 매고 있던 안전띠가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현서의 상체를 조여 들었다. 승표로선 익숙지 않은 거부였다. 그러나 단지 이것만이 승표를 혼란케 만든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끼익.
급브레이크 밟는 것과 동시에 도로 위로 차가 정차했다. 그 순간 승표의 두 손이 운전대를 거세게 내려쳤다. 갑작스럽게 멈춰 선 승표의 차량으로 인해 주변의 교통상황은 곧 정체 현상을 빚었다. 뒤따라오던 차가 사납게 클랙슨을 울리며 빵빵거려 봤지만 승표의 차는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변의 소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승표의 눈은 줄곧 현서에게 머물러 있었다. 마치 그가 머무는 세상에 현서 한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지겹도록 현서의 시선을 좇았다. 때늦게 비열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묵직한 둔통이 뒤를 따랐다.
“……넌, 내가 변하길 원해?”
“하지만 변하지 않을 거잖아요.”
“그래. 맞아.”
그런데도, 현서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있자니 문득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 지껄여대도 이런 자신이 제멋대로인 걸 테다.
상처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도 정작 생채기가 나 아파하고 있는 현서를 보고 있노라면 까맣게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 되었다. 바보 같지만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현서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심적 타격을 받은 뒤였다.
“지현서.”
“……네.”
“현서야.”
“…….”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원활치 못한 의사소통에 갑갑함이 중첩되었다. 실상 후회란 단어를 떠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닐 거라고, 잘못 알았을 거라고, 부정하며 넘겨 버린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 본다한들 처음으로 돌이킬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최소한 평창동 자택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 멈추었더라면, 이 자리에서 조금은 떳떳할 수 있었을까? 마음이 무거워졌다. 멋대로 계획한 일에 보기 좋게 발목을 붙잡혀 버린 형국이었다. 흘깃거려 확인한 현서의 상태는 여전히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방어기재를 펴고 있었다. 기껏 가라앉혀 놓았던 흉포한 마음이 들썩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삽시간에 승표의 무게 중심이 사선으로 기울어졌다. 곧 승표의 상체가 현서 쪽으로 근접했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얼굴, 금세라도 닿을 것처럼 마주한 입술, 찰나와도 같은 짤막한 시간 흐름이 둘 사이의 거리를 급격히 좁혔다.
“읍”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승표의 혀가 상처 입은 현서의 입술 위를 스쳐 지나갔다. 이내 진득한 피맛을 즐기기라도 하는 양 승표가 연신 그곳을 핥아 먹듯 흡착했다. 곧 약간의 빈틈도 없이 올곧게 포개진 두 개의 입술 사이에서 질척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설마 이런 일을 당할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현서가 당장에 몸서리치며 두 팔로 승표의 몸을 뒤로 밀어냈다. 그러나 건장한 남자의 힘을 감당하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게 분명한 승표의 단단한 근육이 현서를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맸다. 얼굴을 뒤흔드는 현서의 방향을 집요하게 뒤쫓으며 승표가 현서의 입술 여기저기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쪼는 듯이 가볍게 뽀뽀를 하다가도 혀를 사용해 거침없이 안을 헤집기도 했다. 이에 파드득 놀란 현서가 가늘게 몸을 떨었지만 그는 쉽사리 하던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겉 표면이 반질거릴 정도로 현서의 입술을 핥고 있던 승표가 이번엔 각도를 바꾸어 그녀의 뺨 위로 베이비키스를 퍼부었다. 이번엔 성적인 느낌보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것과 같은 토닥임이 담겨져 있었다. 바깥 너머로 창문을 두들겨 가며 거칠게 항의를 해오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승표는 더 오래 현서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을 테다. 성인 남성의 한 뼘 정도 될 만한 크기의 틈이 생기자 현서의 손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승표의 뺨을 향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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