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소개

서은에게 100일 동안 서로에게 열중하자는 게임을 제안하는 경준. 그 제안을 무시해야 하지만 그러기에 이 남자는 너무 매력이 넘쳤다! 한 여자만을 죽도록 사랑하는 운명을 지닌 경준은 이제 서은을 정복하기 시작하는데…….

“어제도 말했을 텐데. 신음 소리 내지 말라고.”
“그런 적 없어.”
“그럼, 이 흐트러진 숨결은 뭐지?”

2. 작가 소개

서미선
필명 소나기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을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세 남자와 매일 싸우는 게 하루 일과.

▣ 출간작

〈후견인〉, 〈루비레드〉, 〈잔인한 사랑〉, 〈가면〉, 〈카인과 아벨〉, 〈부부〉, 〈지독한 거짓말〉, 〈피의 베일〉, 〈넌 내게 지옥이었어〉, 〈되찾은 약혼녀〉, 〈아내〉, 〈레드 러브〉, 〈백설화〉, 〈도령〉, 〈홍분지기〉 외 다수

3. 차례

프롤로그
일 장
이 장
삼 장
사 장
오 장
육 장
칠 장
팔 장
구 장
십 장
십일 장
에필로그

4. 미리 보기

꿈을 꾸었다. 자신이 울부짖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공포였다.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몸을 튼 순간 통증이 느껴졌다.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통증이었다. 근육통 같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심했다. 감긴 눈을 뜨려 하자 눈부신 햇살이 눈 속을 파고들었다.
“따가워.”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주문이라도 된 것처럼 햇빛이 가려졌고, 바로 옆에 누군가 앉는 느낌을 받은 순간, 서은은 천천히 눈을 떠 그늘을 드리운 남자의 시선을 붙잡았다. 아직 꿈 속을 헤매는 자신과 달리, 상대방은 무척 활기차 보였다. 기억의 문을 두드릴 사이도 없이 모든 것이 선명하게 생각났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이 결코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눈을 다시 감아 버렸다.
“이제야 깼군.”
서은은 팔을 괴고 있는 그를 지나쳐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옷을 주워, 벗을 때와 다른 순서를 이용해 하나씩 입어 갔다. 무표정한 그의 눈빛을 외면하면서 블라우스의 마지막 단추를 끼워 넣으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씻을 거야?”
“별로.”
마지막으로 가방을 집어 들려고 하는데 그의 커다란 손이 채웠던 단추를 다시 풀기 시작했다. 하얀 속살이 드러나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유두가 눈앞에 드러나자,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쓸기 시작했다. 신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으려 했지만, 그럴 경우 더욱 그의 욕망을 부채질할 것 같아 나직하게 숨결을 토해 냈다.
“어제도 말했을 텐데. 신음 소리 내지 말라고.”
“그런 적 없어.”
“그럼, 이 흐트러진 숨결은 뭐지?”
코끝에 와 닿는 손가락에서 뜨거움이 다시 전해져 왔다. 서은은 왜 자신이 그에게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룻밤의 관계는 끝났고, 이제 서로 각자의 길을 가야 할 시간이었다.
“장난 그만 해.”
“난 오경준이야. 넌 한서은.”
어떻게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되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단지 탁자 위에 올려진 가방의 내용물이 나와 있는 것을 눈길로 좇을 뿐이었다.
“당신 고약한 취미를 가지고 있군. 하룻밤 유희로 나를 가졌으면 됐지, 뭘 알고 싶어서 남의 가방까지 뒤져?”
서은은 쏟아져 나온 내용물을 집어 넣고 가방을 챙겨 들었다. 손놀림이 너무 거칠었는지 바로 들어가지 않고 비어져 나왔다. 다시 한 번 쑤셔 넣고 정리를 하려 했지만,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 상태여서 그런지 더욱 엉키기만 했다. 무엇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하룻밤을 보낸 것도 싫은데 이름까지 알려졌다는 상황에 더 짜증이 났다.
“미성년자인가 싶어서…….”
“내가 당신 나이 물어 본 적 있어? 그리고 설사 내가 미성년자처럼 보였다 할지라도 남의 소지품을 뒤지는 것은 도둑이나 하는 짓이야.”
앙칼진 목소리가 커다란 침실 안을 가득 채웠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가 보인 반응이라고 해 봤자 침대에 뉘어 있던 몸을 일으키는 게 다였다. 알몸, 마치 자신을 자랑하기라도 하는 듯한 몸을 보며 서은은 눈을 돌리고 싶은 것을 힘겹게 참았다. 오히려 그를 당혹시키려 꼼꼼하게 남자의 얼굴에서부터 목, 가슴, 배, 그리고 여자와 남자를 구분 짓는 그 곳까지 샅샅이 훑었다. 그런 자신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며 서은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나와 게임을 해 보지 않겠어?”
그는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회색의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거리를 좁혀 왔다. 물러서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을 법한 모든 인내심을 동원했다. 하룻밤을 보낸 여자에게 게임을 제의하다니……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머릿속이 무척 궁금했다. 서은은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그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로 하고 싶지 않아. 하룻밤, 그거면 될 것 같은데.”
“이 게임에서 싫다거나 안 된다는 말은 없어. 언제나 ‘예’라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통용되지 않아.”
그의 요구 조건을 듣는 순간, 너무 제멋대로인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 없을 것 같아.”
“아니, 아주 재미있을 거야. 어때? 우리 두 사람, 100일 동안만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게임을 즐겨 보자고. 너한테 손해는 없을 거야. 풍족하게 쓸 돈을 줄게. 떠난 다음에는 너에 대해 절대 궁금해하지 않을 거야. 약속하지.”
서은은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왜 자신한테 그런 게임을 요구하는지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별로 응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비록 혼자 낯선 타국에서 살았지만 사고방식은 할머니 못지않게 구식이었다. 말 그대로 즐기자는 것인데……. 답변을 기다리는 남자를 보며 궁금한 것을 물었다.
“지금 당장 대답해야 돼?”
“아니, 내가 내일 전화하지.”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경준은 서은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서은은 한참을 바라보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 받아들었다. 그렇게 정확한 약속도 없이 두 사람의 게임은 시작되었고, 서은은 호텔을 나선 지 세 시간도 되지 않아 남자의 전화를 받았다. 생각할 시간을 준다고 했던 처음 약속과 달리 그는 무척 재촉했다. 10분이 멀다 하고 걸려 오는 전화에 서은은 결국 승낙을 해버렸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어쩌면 오경준이라는 남자가 자신에게 그 문을 제공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미선(소나기)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을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세 남자와 매일 싸우는 게 하루 일과.

출간작-<후견인>, <루비레드>, <잔인한 사랑>, <가면>, <카인과 아벨>, <부부>,
<지독한 거짓말>, <영원>, <남자는 도둑놈>, <빗나간 화살>, <디나>, <피의 베일>, <단, 하나!>, <넌 내게 지옥이었어>, <되찾은 약혼녀>, <광(狂)>, <데블>, <아내>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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