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연애 만세! 이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이며 이 얼마나 가슴 벅찬 말인가! 

잡지 기자로 활동 중인 신여성, 한승주. 하지만 우연히 요리집 ‘명월관’ 앞에서 찍힌 사진 때문에 기생으로 오인 받은 그녀는 강제 혼인을 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결국 승주가 택한 길은 운소보통학교의 교원으로 지원하는 것!

운소보통학교의 교장 최경후. 부친의 친일행각을 뒤로한 채 교육을 위해 힘을 쓰는 그의 앞에 나타난 승주는 그에게 신선한 감정을 일깨워주는데…….

조선에는 마땅한 허스 감이 없다고 투덜대는 숙녀들이여.

얼치기 모던 보이나 핸드 보이, 룸펜에 지친 숙녀들이여.

마음에 든 사내가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하는 숙녀들이여.

외사랑에 가슴 시린 숙녀들이여.

이제부터 실속 없는 연애는 집어치워라.

필자가 이야기하는 연애, 그 열 가지 법칙에 따라 연애의 고수가 되어보자.

그리하면 올여름, 그대들의 애정도 탱글탱글 여문 포도 알처럼 꽉 차 있을 것이니.

그렇다면 조선의 아름다운 숙녀들이여!

다시 한 번 연애 만세!

2. 작가 소개

우영주

bax3888@naver.com

‘라벤더’, ‘선샤인’ 집필 중. 그 외 미완성인 글들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

▣ 출간작

모던연애만세

섬싱블루

아이니

이심전심

플래시

햇살처럼 당신이

3. 차례

#프롤로그.

#1.

#2.

#3.

#4.

#5.

#6.

#7.

#8.

#9.

#10.

#11.

4. 미리 보기

“라모네 한 잔 주세요.”

입고 있는 하얀 블라우스만큼이나 아주 화사한 말투였다. 이곳에 오면 항상 앉는 창가 자리에 앉아 승주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주문부터 했다.

“아, 참! 아주 시원하게 해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급이 가자마자 승주는 얼른 가방에서 펜과 원고지를 꺼내었다. 늘 그랬듯 사람들의 이목이 집요하게 달라붙었지만 승주는 무심히 펜을 쥐고 있는 손을 바삐 움직일 뿐이었다. 카페 안 손님 대부분이 여인들이라 쳐다본다고 할지라도 별로 부담스러울 일도 없었다.

“양복 빛깔이 다서색(茶鼠色) 전성이라서 모자색은 쥐색이 칠분, 다색이 삼분으로 유행이 될 것 같다. 흠…… 보자, 모자는 대충 되었고.”

원고지에 코를 박고 승주는 아까 취재해 온 것들을 다시 한 번 쭉 훑어보았다. 이번 ‘숙녀’는 봄맞이 특집호가 될 예정이었기에 특별히 백화점에 올봄 유행에 대해 알아보러 나온 참이었다. 백화점 직원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그녀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단발이나 짧은 치마 등이 유행하는 것에 사회적으로 설왕설래 말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인지 사람들은 유행에 꽤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물론 그 유행의 선두에 선 이들은 대부분이 여성이었고 승주는 그것이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 보았다.

“숄은 밝고 옅은 빛깔이, 그리고 예전보다 조금 두꺼운 것들이 유행 할 것이다. 파라솔도 경쾌하고 명랑한 빛깔의 것이 우세하고…… 음, 그러니까 모자만 어두운 색이고 나머지는 밝고 경쾌한 색들이구나?”

만년필 끝을 입에 물고서 원고지를 내려다보다 승주는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 싱긋 미소 지었다. 발그레 상기된 두 뺨이 복사꽃같이 보송보송했다. 차가운 라모네를 한 모금 마신 뒤, 원고지를 정리해 가방에 넣는데 문득 뒷자리에 앉은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까르르 들려왔다.

“참,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무슨?”

여자들의 이야기에 승주는 가방을 챙기다 말고 귀를 종긋 세웠다. 

“그 왜, 강일상회 김 사장이요.”

“그이가 왜요?”

“세상에 이번에 바람을 피웠다지 뭐예요?”

“어머, 그럼? 그 소문이 사실이에요? 난 설마 싶었죠.”

“설마는요. 근데 알고 봤더니 그 김 사장이 아예 처음부터 혼인신고를 안 했대요. 그래서 협의이혼이고 뭐고 없었던 거 있죠? 신 여사가 이혼 못하겠다 버티자 그이가 하는 말이 혼인신고 한 적도 없는데 무슨 이혼이냐고 대뜸 그러더라지 뭐예요? 쯧쯧, 아무튼 신 여사 꼴만 우습고 아깝게 되었어요. 요사이 매일이 눈물바람이라더군요.”

“어머, 사내들이란!”

여자 하나가 우아하게도 놀란 척을 하였다.

새치름하게 앉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승주는 가방에 넣었던 원고지와 펜, 그리고 책 한 권을 슬그머니 다시 꺼냈다. 어쩌면 ‘가두풍경’에 실을 만한 가십 거리들을 들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하긴 돈 있고 권세 있는 남자들 중에 열 여자 마다하는 남자가 어디 있겠어요? 누구야, 그 지난해 돌아가신 안현동 최 남작님 댁만 봐도 그렇지. 그 댁은 아예 떡하니 첩을 집에 들이고 살았잖아요.”

“내 말이요. 그렇잖아도 내가 어제 거기 파티에 다녀오지 않았겠어요.”

“아! 그러고 보니 어제가 그 댁 장남 생일이었지요?”

승주는 조심스레 펜 뚜껑을 열고는 원고지를 펼쳤다. 그러고는 책을 펼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원고지를 감추었다. 

작년에 죽은 안현동 최 남작이라 하면…… 최남효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비록 해가 지났지만 그의 죽음은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금광까지 소유하고 있던 그의 어마어마한 재산이 과연 누구에게 갈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항간에는 죽은 노인의 재산이 오십만 원이라더라, 백만 원이라더라 등, 이런저런 말들이 분분하게 떠돌았지만 정확하게 그 규모가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가장 유력한 후계자인 그의 장자가 미혼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의 이목은 더욱 집중된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들의 화제 역시 그 죽은 노인이 아닌, 그의 아들에게로 흘러갔다.

“이번에 작위를 물려받을 큰아드님께서 그리 인물이 잘나셨다면서요? 키도 양인들만큼 큰 데다가 아주 사내답게 생겼다구. 정말 그래요?”

승주는 정신을 바짝 집중하고 귀를 열었다. 드디어 그 소문만 무성하던 이에 대해 듣게 되는 건가?

“아유, 누가 아니래요? 전 내지인이고 외지인이고 간에 그리 훤칠하게 생긴 분은 처음 봤잖아요.”

“아이, 부러워라.”

피식 웃음 짓던 승주는 펜을 잡은 손을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집 아들이 그리 잘났다는 소문이야 승주 역시 들어본 적이 있었다. 허나 소문이란 원래가 이런저런 과장이 섞여 있는 법. 게다가 친일세도가의 아들이니 콩고물이라도 어떻게 떨어질까 하는 이들 눈에는 옥동자도 절세미남으로 보일 터였다.

“부럽긴요. 아주 잠시뿐이었는걸요. 말 한마디 나눠봤음 좋았을 텐데.”

“어머머, 왜요?”

“잠시 얼굴만 비치고 얼마 안 있다 안으로 들어가버렸거든요. 몸이 좋지 않다 그러더라구요.”

“세상에! 그런 것도 외탁하는가 봐요?”

“설마 그렇겠어요. 듣자 하니 돌아가신 양반이랑은 성격이 영 딴판이래요. 워낙에 오랜 기간 유학을 한 데다 그런 소란스런 자리 좋아하지도 않는다구.”

“그래요? 아유, 그래도 어제 자리가 보통 자리가 아니었을 텐데.”

“그렇죠. 총독부 고위 관리들은 물론이고 각국 대사들까지도 온걸요. 요시다 후작 각하야 물론이고. 원래 그 댁과 인연이 각별한 분이잖아요.”

“그럼 그 댁 차남은요? 차남도 봤어요?”

차남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여자의 목소리가 일순 높아졌다.

“설마요. 자기가 염치가 있음 그런 자리에 어떻게 나오겠어요.”

“하긴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난 솔직히 그 댁 차남이 작위도 물려받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돌아가신 양반이 아주 망령이 난 건 아니었나 봐.”

두 여자는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암만요. 그래도 멀쩡히 장자가 떡하니 있는데 첩 자식한테 그럴 수야 없지요.”

“아유, 그래도 솔직히 이런 말 좀 그렇긴 하지만…….”

그녀는 말을 잠시 멈추고 주변을 다시 둘러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좀 더 낮춰 소곤거렸다.

“죽은 양반이 큰마나님을 보통 괄시했어야지요. 큰마나님이 말이 좋아 건강 핑계로 요양하러 갔다지만 그게 어디 가고 싶어 갔겠어요? 그 세월이 장장 10여 년이 훌쩍 넘는데. 게다가 마나님한테 그리 박하게 굴던 양반이 마마님한테는 어찌했게요? 본처한테는 달랑 아들 하나만 보고 그때부터 마나님 계시던 안채에는 발걸음을 뚝 끊고는 첩한테서 아들까지 본 거 봐요. 정작 부인인 마나님은 저 멀리 시골로 내쳐버리고. 그러니 다들 작위랑 재산마저 첩한테서 본 아들한테 주는 거 아니냐구 그런 말이 나왔지요. 오죽 차이지게 그리했으면.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큰마나님이 떡 버티고 있는데 첩한테 마마님 소리가 가당키나 해요? 죽은 양반이 하도 싸고도니까 다들 어쩔 수 없어 안현마마님, 안현마마님 그리 불렀지. 그게 또 정말인 줄 알고 첩 주제에 생전에 어찌나 도도하게 굴던지 원…….”

“그럼 뭐해요. 이미 죽고 없는걸.”

“아무튼 큰마나님도 참 안되었지요. 암만 떵떵거리는 권세에 돈이 넘쳐나는 집안이면 뭐해요? 정작 지아비란 자 마음이 평생을 그리 다른 곳에 가 있었는데.”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고 있던 부인이 혀를 쯧쯧 찼다. 

“참말 그러게요. 사람이 그리 점잖고 예발랐다 시던데.”

“왜 안 그러셨겠어요? 첩한테 쫓겨난 거나 진배없는데. 허니 그 아드님도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서 공부한단 핑계로 도쿄에 있다가 구라파 갔다가 온갖 데로 그리 돌아다녔지.”

“그래두 다행이에요. 어제 가서 사람들이 쉬쉬하며 하는 소리 들었더니 재산이며 작위랑 모두 큰아드님한테루 상속이 된 모양이더라구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허긴 뼛속까지 양반인 분인데 암만 서자를 예뻐해두 장자는 장자지요. 그럼. 한데 아직 장가는 왜 안 가셨대요?”

“글쎄요? 그것도 이런저런 말이 많긴 하던데. 뭐, 워낙에 소문이 많은 곳이니 어느 게 진짜배기인지 알 도리가 있어야지요.”

최씨 집안의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사람들도 정작 자세하게 아는 건 별로 없는 듯하였다. 승주는 어깨를 으쓱이곤 펜대와 원고지를 가방 안에 고이 갈무리해 넣었다. 회중시계를 꺼내어 봤더니 어느새 신영과의 약속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승주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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