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미, 빼어날 수, 미수.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할 줄 아는 게 많았던 사랑스러운 그녀, 미수!

우리의 시작은 정략결혼이었습니다.
하지만……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끌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끌림을, 그 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시작하는 순간부터 떠날 때를 준비하고 있었던 나의 아내!
늘 한 발을 빼고서 나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그녀를 나는 붙잡을 수 있을까요?

-본문 중에서-

“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한정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스커트 자락을 꽉 쥐었다. 그럼에도 떨림은 멈추질 않았다. 그녀의 어깨가 위태롭게 들썩였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반복해서 저어댔다.
‘이 늙은이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걸까.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잖아.’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꽉 참고 눈을 부라리며 윤성화를 노려보았다.
“내 말 못 알아들으시겠소? 그 아이는 우리 윤 가(家)네 씨요. 내 피붙이란 말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왜 피 같은 내 재산을 후원이랍시고 당신네들한테 꼬박꼬박 갖다 바쳤겠소?”
“아니야! 아니야! 이건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그 아이 귀국하는 대로 내 피붙이는 이제부터 내가 거두겠소. 그동안 애쓴 공은 내 인정하지. 섭섭지 않게 넣었으니 남아있는 여생,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사시게나.”
윤성화가 턱짓을 하자 심복처럼 서 있던 사내가 묵직한 하드케이스의 가방을 내밀었다. 그 안엔 웬만한 사람들이 평생을 모아도 만지지 못할 20억이란 액수의 큰돈이 들어 있었다.
밖은 종일 비가 왔다. 연 일주일째 지독한 비가 온 세상을 적시고 있었다.
눅눅하고 습한 날씨, 그리고 지겨운 장마. 이런 날씨엔 밖에 나가기 싫어지는 법이다.
한정희는 이곳으로 걸음한 자신의 두 다리를 저주하며 남자로부터 건네받은 가방을 그 자리에서 내던졌다. 5만 원 권의 뭉치들이 순식간에 종잇조각처럼 흩날렸다. 매섭게 치켜 뜬 눈매가 곧바로 한정희를 덮쳤고,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그녀는 비틀비틀 위태로운 걸음으로 윤성화의 방 안을 나왔다.
한땐 마음 좋은 어르신이라고 생각했던 딸의 후원자였다. 그런데 그녀가 실은 악마와도 같은 무시무시한 늙은이였다니!
어떻게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너무나 무섭고, 소름이 끼쳤다.

***

예식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짧게 진행되었다. 전직 대통령의 주례사가 있긴 했지만 시간이 채 5분도 되지 않았다. 축가도 없었고, 예물 교환도 없었다. 심지어는 양가 부모님께 인사하는 순서조차 없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가족이라고는 신부 측 조모, 윤성화가 유일할 뿐. 간신히 참석했던 신랑 어머니도 치미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식이 진행되는 도중, 뛰쳐나가버렸다.
신랑, 신부가 세상을 향해 힘찬 출발을 내딛는 시간. 유현이 넌지시 말했다.
“시작이 참 판타스틱 하네요.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미수가 속삭였다. 여전히 시선은 하객들을 향한 채, 오직 유현만 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근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낀 건데 돌려 말씀하시는 걸 참 좋아하시나 봐요. 그냥 하고 싶은 말씀 하시지.”
당황한 나머지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는 유현에게 눈을 맞추며 이윽고 미수가 말했다.
“‘내 인생 너 땜에, 좆 됐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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